소설리스트

999년만에 귀환한 고인물-71화 (71/175)

제71화

‘어, 어떻게?’

남자는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바로 앞에 있는 등반자를 바라봤다.

처음에는 잘못 본 건가 싶었다.

이 장소는 한낱 20층 대를 등반하는 플레이어가 있을 만한 장소가 아니었으니까.

“나도 여길 어떻게 올라왔는데….”

믿을 수 없다.

아니, 설령 가능했다 해도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른 NPC들의 지원을 받아, 몇 주라는 시간 동안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 올라온 곳이 바로 이 구름섬이다.

혹시나 자신도 모르는 또 다른 길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단호히 부정했다.

‘그럴 리는 없지.’

오만이 아닌 확신.

구름섬에 도달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조사를 했었는데, 그런 길을 놓쳤을 리가 없다.

쉬운 길이 있었다면 등반자가 알아차리기 이전에 발견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저 등반자는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이곳을 올라온 셈이다.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등반자의 몸을 훑다 말고 그의 눈은 어느 시점에서 우뚝 멈췄다.

‘아눌드 공방?’

단번에 등반자의 검을 알아차린 그는 화들짝 놀랐다.

모를 리가 없다.

당장 이 섬에 오르기 위해 그가 짊어진 장비만 봐도 아눌드 공방에게서 신세를 졌으니 말이다.

26층에 이제 막 올라왔으며 아눌드 공방과 관련된 플레이어.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그의 머릿속에서 생각이 정리됐다.

“아눌드 공방을 위기에서 구해 낸 플레이어가 저 녀석이었나?”

분명 신한별이라는 이름의 플레이어였지?

그렇다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다.

아눌드의 기술력을 총동원한다면 등반자라 하더라도 이곳에 도달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닐 테니.

하나 저자가 아눌드 공방와 우호적이다는 사실 역시 얕볼 수 없었다.

이렇든 저렇든 간에 저자의 뒷배에는 아눌드 공방이 있는 셈이니.

일단은 적당히 대화로 풀어갈까.

“하하하, 그쪽이 신한별이지? 다른 NPC들한테서 자주 들었어. 보아하니 요새 잘나간다는 플레이어 같은데….”

어색한 웃음기를 입에 담으며 그에게 알은체를 하려던 그때였다.

신한별이 이곳을 향해 저벅저벅 다가오는가 싶더니, 차갑게 경고하며 그의 옆을 무심하게 지나쳤다.

“미리 경고하는데 괜히 휘말려서 뒈지기 싫으면 떨어져.”

“어?”

이렇게 간단하리만치 무시를 당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한 그는 얼빠진 목소리를 내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이쪽을 완전히 약자로 보고 있다.

어리둥절함이 분노로 바뀌려던 즈음이었다.

신한별의 발길이 향하는 장소를 목격한 그는 아연한 낯빛을 했다.

당장에라도 혼절할 것처럼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가 향하는 곳이 26층 전역을 통틀어 얼마나 위험한 장소인지 어느 NPC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저 멍청한 것이! 잠깐, 잠깐만! 거기 가면 너 뒈져! 아무리 아눌드제 장비라도 거기 들어가면 죽는다 이놈아!”

뒤늦게 정신을 잡은 NPC가 신한별의 발걸음을 말리기 위해 애타게 불렀지만, 한참 늦었다.

‘어, 언제 저기까지?’

신한별은 남자의 예상보다도 훨씬 빨랐다.

이미 저기까지 가 버렸으니 말리려고 해도 막을 수 없다.

그가 탑을 등반하는 플레이어보다 훨씬 많은 걸 알고, 강한 힘을 지녔더라도 그래 봤자 NPC.

불가능한 일은 가능하게 만들 방법은 없었다.

앞으로 벌어질 참상을 예상하고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적어도 앞으로 벌어질 끔찍한 광경을 눈에 담기는 싫었기에.

파지지지지직!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파찰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강렬한 충격이 그의 몸을 강타했다.

충격에 의해 수십 미터를 나가떨어진 그는 손을 떨었다.

상당히 떨어진 거리였음에도 이만한 충격이다.

그런데 바로 근처에 간 플레이어는 어떻게 됐을까.

“시, 신한별…!”

파랗다 못해 새하얗게 질린 그는 서둘러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앞에서 펼쳐진 광경을 눈에 담은 그는 제자리에서 우뚝 굳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상처 하나도 없이 멀쩡한 신한별과 그와는 대조적으로 처참하게 부서진 아티팩트가 있었다.

말도 안 된다.

저게 저렇게 쉽게 부서질 리가 없는데?

저 망할 아티팩트로 인해 26층은 생물이 살아남을 수 없는 황무지가 됐다.

그런데 저 아티팩트를 저리도 쉽게 부서뜨린다고?

머리로 이해하기도 전에 그는 서둘러 손을 뻗으려 했다.

하지만 그런 그를 나무라기도 하듯, 앞선 충격으로 인해 구름섬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남자가 서 있는 발판을 포함해서.

쿠구궁!

어…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신한별이라는 플레이어한테는 꼭 물어볼 것이 있는데….

“자, 잠깐만…!!”

남자는 악착같이 신한별을 불렀지만, 아쉽게도 그의 목소리가 닿는 일은 없었다.

그의 목소리가 닿기에는 거리가 너무나도 멀었다.

* * *

“누가 부른 거 같았는데?”

내 착각이었나.

아티팩트를 한 방에 박살 낸 나는 귀를 후비며 손을 털었다.

아, 그러고 보니 방금까지 NPC가 여기에 있었던 거 같은데 그놈의 목소리였나?

뒤늦게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봤지만, NPC의 혼적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었다.

‘뭐, 됐나.’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니다.

그것도 잠시, 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헛웃음을 흘렸다.

조금 전의 충격으로 인해 구름이 박살 나기 시작하면서, 균형을 잃고 무너져 내린다.

“아, 이거 힘을 너무 줬나 보네.”

“한별이 무식한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두 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리자 옆에서 한마디를 덧붙이는 둘리.

내가 녀석을 뚫어져라 바라보자 그제서야 녀석은 살며시 꼬리를 내린다.

어째서인진 몰라도 나랑 같이 다니면서 실력 대신에 눈치만 는 거 같단 말이지.

‘근데 드래곤이 사회성이 필요한가?’

탑에 있는 모든 종족을 통틀어 드래곤만큼 말이 안 통하는 놈은 찾기 힘들다던데.

새삼스러운 의문이 들었으나 대충 넘기기로 했다.

그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으니까.

〈번개의 정기(B)〉

- 벼락 생성기 안에 들어 있던 힘의 근원이다.

- 단독으로는 따로 쓸 만한 구석이 없어 보인다.

- 보기에는 쓸 곳이 없어 보여도 열심히 7개를 모은다면 초월적인 존재가 나타나서 소원을 들어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아니면 말고요! (찡긋)

- 찌릿찌릿!! 조심하세요!

곁눈질로 시스템 창을 확인하던 나는 조소를 흘렸다.

어쩐지 근래에 들어서 옛날과는 달리 조용하다 싶었는데, 드디어 정신이 나간 건지 아니면 꾸준한 건지 모르겠네.

헛웃음을 흘리며 손으로 구슬을 집자, 찌릿한 느낌이 손목을 타고 온몸을 전율한다.

다른 플레이어였다면 감전사했을 정도의 위력이다.

나는 스킬을 사용해 구슬을 수납했다.

쫘아악!

팔뚝에서 흘러나온 보랏빛 안개가 구슬을 감싼다.

깔끔하게 일을 정리한 나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구름 위를 훑었다.

이러는 와중에도 섬은 꾸준히 무너지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섬의 중심부라서 조금이나마 시간을 벌었지, 머지않아 전체가 붕괴하는 건 이미 기정사실이었다.

“여기에서 더 챙겨 갈 물건은 없지?”

“한별! 직접 확인해 보고 왔는데 여기 말고는 볼 일이 없다!”

“그래? 잘됐네.”

내 물음에 둘리는 날개를 퍼덕거리며 앙증맞은 주먹을 불끈 쥔다.

둘리가 없다고 하면 정말로 아무것도 없을 테지.

시간이 지날수록 붕괴는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나는 점진적으로 붕괴하는 낭떠러지를 향해 걸어갔다.

“하, 한별… 물론 한별이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진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몰라서 하나만 물어보겠다. 계획은 있나?”

뒤를 뒤따라오던 둘리는 내심 불안한 듯 질문을 건넸다.

충분히 들 수 있는 의문이다.

올라올 때는 위만 보고 악으로 깡으로 올라왔지만, 내려가는 길 역시 쉽지 않을 테니까.

나는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뭐 별난 걸 묻고 있어? 당연히 있지.”

계획?

나만 믿고 따라왔을 텐데, 당연히 계획이라면 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막무가내로 올라왔다고 생각하면 섭섭하지.

나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얼굴에 담으며 둘리의 목을 붙잡았다.

한순간에 내 손아귀에 붙잡힌 둘리는 의문과 불안이 서로 뒤섞인 표정을 짓는다.

도대체 뭘 하느냐는 듯한 눈빛.

나는 녀석의 의문에 대답하듯 세차게 발을 굴러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씌이이잉!

빠른 속도로 강하하자, 세찬 바람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만든다.

“끄아아아아!”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둘리는 눈물을 흩날리며 연신 비명을 질러 댄다.

나는 어이없는 눈빛으로 둘리를 내려다봤다.

한두 번이면 모를까.

이놈은 같이 다니면서 시도 때도 없이 떨어져 봤는데, 왜 이렇게 엄살이야.

이쯤이면 제법 익숙해질 법도 하지 않나?

그런 의문을 가졌을 즈음.

점차 가속이 붙으면서 지면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진다.

곧 있으면 땅인데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는 내 모습에 품에 속에 안겨 있던 둘리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입에 거품을 물었다.

“한별? 한, 한별!! 곧 바닥이다! 어서 준비를….”

“준비?”

“그래, 어서 착지할 준비를….”

“그러니까 무슨 준비?”

“…….”

고개를 기이하게 꺾으며 되묻자, 둘리는 생각하기를 포기한 모양인지 고개를 돌린다.

아, 생각이 아니라 그냥 삶을 포기한 건가?

해탈의 경지에 다다른 녀석을 지켜보던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두고 보면 안다.

둘리는 지면에 곤두박질치는 동시에 눈을 질끈 감았다.

푸우웅!

필드 전역을 덮고 있는 늪의 너머로 떨어지면서 진공음이 고막을 울렸다.

숨을 내뱉자, 입에서 자그마한 공기 방울이 방울방울 떠오른다.

호흡을 잘못해서 질식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하늘에서부터 떨어진 가속력으로 기존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내려갔기에.

이윽고.

타닥, 늪을 지나 무사히 바닥에 착지한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늪 밑에 뭐가 있었네.”

추측한 내용이 귀신같이 들어맞을 줄이야.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있는 둘리의 이마에 딱밤을 툭 쳤다.

“눈 떠. 도착했으니까.”

“한별? 여긴…?”

“어디긴, 늪 밑에 있었던 장소지.”

나는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원래대로였다면 26층에 도달한 플레이어들이 가장 먼저 도착했을 터인 장소.

한발 늦긴 했지만, 어쨌건 도착했다.

그리고.

크르릉!

나는 주변을 에워싸듯 둘러싼 포위망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는다.

언뜻 봐도 사나워 보이는 인상.

당장에라도 달려들 듯이 괴수들은 붉은 안광을 드리우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크르르….”

“크릉!!”

그중에서도 가장 머리 격으로 보이는 놈의 외침에 괴수들은 일시에 덮치듯 한꺼번에 달려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도 마찬가지로 검집에 손을 올렸다.

‘이렇게 빨리 찾을지는 몰랐는데 잘됐네.’

그동안 검을 뽑을 일이 없어서 몸이 근질근질했는데 이 정도면 충분히 정당방위겠지?

나는 히죽 웃으며 입맛을 다셨다.

“그럼 나도 사양 말고.”

공방에서 제련한 검을 실험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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