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화
“저기네.”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진 늪을 바라보며 짧게 뇌까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삼자가 들었다면 벼락을 맞고 정신 나갔냐고 물어봤겠지만, 나는 진지했다.
근거 없이 하는 말이 아니다.
‘벼락.’
나는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먹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을 직시했다.
그나마 나라서 버티는 거지. 끊임없이 몰아치는 벼락을 다른 플레이어가 맞았다면 한 방에 죽는다.
이번 층의 컨셉이니 당연한 게 아니냐고?
아니지.
아무리 컨셉이라고 쳐도 묘하리만치 과했다.
벼락을 이용해 플레이어를 한 방에 끔살시킬 작정이었다면 굳이 하위 30%는 탈락이라는 조건을 만들 이유는 없었다.
그런 조건이 없어도 벼락으로 인해 대다수의 플레이어가 죽었을 테니까.
게다가.
“이렇게 강한 벼락이 1초에도 수십 번이나 내려치는데 그럼 내가 이 층에 도착했을 때도 내려쳤어야지.”
26층에 들어 오고 나서 움직이기까지 몇 분 남짓의 시간이 걸렸다.
벼락이 수천, 수만 번은 치고도 충분한 시간.
내가 늪에서 빠져나오고서 벼락이 쳤지, 그전에는 쥐 죽은 듯이 잠잠했었다.
그걸로 알 수 있었다.
벼락은 의도적으로 치고 있다.
“다른 곳에도 내려치고 있으면 몰라도 죽자 살자 내가 있는 곳에만 내려치는데 의도적인 건 당연한 얘기지, 뭐.”
나는 조소를 머금었다.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당장 지금도 의도적이다 못해 살기가 느껴질 정도로 내 위로 벼락이 떨어지는데. 말 다 했지.
어쨌든 간에 내가 특이 케이스지, 다른 플레이어들처럼 늪 밑으로 떨어지는 게 정석적인 방법이었으리라.
그래서 정석대로 늪 밑에 빠졌으면 그 뒤에는 어떻게 됐냐고?
‘그건 나도 모르지.’
제대로 들어가 봤으면 몰라도 살짝 몸을 담가 봤을 뿐인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주 만약, 내 심증이 보기 좋게 틀렸다면?
알고 보니 늪이 아닌 다른 길이 있었다면?
“거기까진 내 알 바는 아니지.”
내 추측이 틀렸든 맞았든 간에 그 사실은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벼락이 떨어진 원인이 늪 위로 올라온 플레이어를 죽이기 위함이라면.
반대로 말하자면 플레이어를 한 방에 절명 시킬 만한 벼락을 떨어뜨리면서까지 접근을 막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탑에 대한 원망을 가진 내가 말하긴 뭣하지만, 탑은 보기보다 이성적이다.
“아무짝에 의미 없는 짓 따윈 하지 않는단 말이지.”
다시금 내려친 벼락으로 인해 입술이 터지며 짙은 피 맛이 입안을 감싼다.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입술을 슥 훑었다.
결과가 있으면 그것이 일어난 이유 또한 역시 존재한다.
그래서 탑을 등반한 상위권 플레이어들이 골머리를 앓는 것이다.
대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무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나 나한텐 무력을 지니고 있다.
그 이유를 알기에는 충분한 힘을.
“간단하네.”
나는 피식 웃으며 하늘을 향해 검을 그었다.
반달 모양으로 뻗어나간 풍압이 구름 사이를 내지른다.
하지만 그 힘이 부족했는지 그보다 위에 있는 먹구름에서부터 강렬한 뇌전이 떨어진다.
하나하나는 위험하진 않지만, 그것들은 모여 긴장하게 충분한 위력을 일궈 낸다.
분명 다른 플레이어였다면 지레 겁을 먹고 물러서기 바빴겠지.
내 얼굴에는 냉소적인 미소가 서렸다.
쿠르르릉⎯ 콰아앙!
벼락이 떨어진 것과 동시에 검을 휘두르자, 강렬한 스파크가 튀며 푸른 불꽃이 인다.
무차별적으로 떨어지는 벼락에 맞서 1초에 수십, 수백 차례의 검격이 쏟아진다.
얼핏 보면 거의 대등한 싸움처럼 보여도 실상은 달랐다.
시간이 흐를수록 풍압은 점점 강해진다.
이윽고 가공할 만한 위력으로 뻗어져 나간 검은 구름을 넘어 하늘 전체를 베었다.
쏴아아아!
두 갈래로 갈라진 먹구름 사이로 서슬 퍼런 장천이 펼쳐졌다.
나는 찢어진 손바닥에서 흐르는 피를 대충 털며 씩 웃었다.
“이제야 좀 몸이 풀리네.”
등반하기 수월한 산은 언덕이라 부르지 산이라 부르지 않는다.
배려 따윈 없이 거칠고 도전하게 만들어야지만, 비로소 산이라 부른다.
그렇기에 정상에서 느끼는 정복감 역시 존재하는 것이다.
“이 정도는 해 줘야지. 등반하는 맛이 있지.”
나는 한 자루의 검으로 벼락을 찢어발기고, 구름을 가르며 말했다.
저 너머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면 직접 확인해 보면 될 일이다.
* * *
잠깐이나마 구름을 가르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효과.
부족한 곳이 있으면 메꾸면 된다.
안 그래도 이 필드의 전역은 두꺼운 적란운으로 채워져 있다.
수 분이면 원래대로 만들기에는 충분하겠지.
하지만 나한테도 그 시간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충분했다.
이 필드를 샅샅이 살펴보기엔.
“여기도 아닌가?”
한달음에 획획 바뀌는 풍경을 뒤로하고 혀를 내둘렀다.
필드 자체가 위치를 판별하기 힘들 정도로 널찍했기 때문에 쉽사리 확신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구름이 언제 다시 원 상태를 되찾을지 모르니, 시간 제한도 존재한다.
다시 벼락이 떨어지면 곤란할 테니.
물론 다시 벼락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아까 전과 마찬가지로 하늘을 가르면 되지마는.
‘말은 쉽지.’
끝도 한도 없는 필드를 가로지르며, 그 와중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을 의식하면서 드높을 하늘을 풍압만으로 갈라야 한다?
이렇게 보니까. 그냥 말로 내뱉기도 어렵네.
어쨌건 내가 전력을 다해서 구름을 가른다고 해도 대여섯 번이 한계다.
나는 손의 떨림을 가라앉히기 위해 손아귀를 불끈 쥐었다.
아무리 플레이어가 강하다고 해도 애초에 자연현상을 사람의 몸으로 어찌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잖아.
그래서 못 하겠냐고? 이걸로 쫄렸다면 탑에 오기 전에 뒈졌어야지.
“흐흐, 탑의 관리자라는 새끼 족치기 전까진 죽으라 해도 못 죽지.”
여기까지 왔으면 못 하는 게 아니다.
설령 인간의 힘으로 못 한다고 해도 악으로 깡으로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한참 동안 주변을 둘러보다 말고, 나는 제자리에서 우뚝 멈췄다.
이 정도면 충분할 정도로 살펴봤다.
아니 충분하다는 말이 과할 정도지.
뛰어다닌 반경이 수 킬로 남짓이라면 이미 기감으로는 그의 수십 배는 훌쩍 넘는 거리를 확인했을 테니까.
만약 이 필드 위에 뭐가 있었다면 진즉에 발견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소득이 없다.
그 말이 가리키는 바는 뻔하디뻔했다.
“땅이 아니라.”
하늘이지.
샛노란 번개가 번뜩이는 먹구름을 직시하며 말을 내뱉었다.
몇 번의 계산 끝에 확신을 내렸다.
이제 남은 곳은 저기밖에 없다.
일반적인 수단으로는 그 어느 플레이어도 저 위로 올라갈 순 없다. 올라가는 걸 논하기 전에 벼락이 떨어지면 피할 곳도 없이 직격이니.
하나 나한테는 방법이 있다.
“둘리야 준비됐지.”
“하, 한별? 조금만 뒤에 가자, 둘리는 아직 준비가 덜 된 거 같다.”
“뭘 빼고 있어. 암만 그래도 사람이 벼락 맞는다고 안 죽는데 드래곤이 죽을 거 같아?”
“어, 죽을 거 같다.”
“…….”
답지않게 단호한 표정으로 답하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뭐 딱히 부정하진 않겠다.
내가 특이한 셈이지.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저기 위를 날아다닌다는 미친 생각을 하는 놈은 없겠지.
“그래서 안 갈 거야?”
내가 눈을 부라리자, 그제서야 둘리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거참 안 죽는다니까. 걱정도 많긴.
이미 눈가가 핼쑥한 게 뭔가 삶을 포기한 거처럼 보이는 거 같았지만, 나는 애써 시선을 돌려 외면했다.
둘리한테는 안타깝게 됐지만 이제 와서 무를 생각은 없다.
그 사실을 짐작했는지 둘리는 날개를 활짝 펴고 상공으로 떠오른다.
파앗!
나는 한달음에 둘리의 다리를 붙잡았다.
“한별 꽉 잡아라.”
“어.”
그 한마디를 끝으로 둘리는 빠른 속도로 적란운을 향해 뻗어간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진득한 기운이 온몸을 짓누른다.
당장에라도 압박감을 못 이기고 떨어질 거 같은 기분이지만, 둘리는 이를 악물고 날개를 힘겹게 내저었다.
빠른 속도로 상공 위를 활주한다.
나조차도 입이 쩍 벌어질 속력.
둘리가 한계에 봉착했을 즈음.
어느 지점에 다다르자, 둘리의 몸은 마치 벽에 부딪힌 것처럼 튕겨 나갔다.
“윽!”
한 번의 충격.
하지만 이미 한계에 봉착한 둘리한테는 원동력을 잃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기동력을 다한 둘리의 몸이 추락하기 시작한다.
둘리의 다리에 매달려 있던 나는 악귀처럼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이를 빠듯 갈았다.
‘쓰벌, 어떻게 왔는데.’
여기까지 온 이상, 죽어도 못 내려간다.
둘리의 발목을 잡은 채, 나는 허공을 박찼다.
강렬한 풍압이 발끝에서 터지며 그 반동력으로 허공 위로 다시 떠오른다.
아주 잠깐의 여유.
스르릉, 이 기회를 놓칠세라 나는 둘리가 튕겨 나간 지점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구름이 삼각형으로 쪼개진다.
단숨에 구름 사이를 뚫고, 지나간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발밑으로 느껴지는 감각이 너무나도 이질적이어서.
“구름 위를 서 있어?”
착각이 아니다.
나는 푹신하면서도 탄력성이 느껴지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벙찐 표정을 지었다.
둘리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튕겨 나간 것을 목격하고 거의 본능적인 감각으로 움직인 것이었는데, 설마 구름 위로 발을 딛고 설 수 있을 줄이야.
상상 이상의 결과였다.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나는 피식거렸다.
놀랍긴 해도 탑이라면 상식에서 벗어난 일을 일으켜도 이상할 건 없다고 생각해서.
‘애초에 드래곤이니 와이번이니 하는 이상한 것들도 넘치는 마당에 구름 위에 공간이 있는 게 별 대수야?’
상상의 동물인 드래곤이 있다고 믿을 바엔 차라리 사탕과 초콜릿으로 만들어진 화원이 있다고 해도 순순히 믿겠다.
그러던 와중이었다.
한쪽 너머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왜, 이런 곳에 사람이… 그것도 플레이어? 아니, 나도 겨우 올라온 곳을 어떻게 플레이어가… 그보다도 저 사람이 신한별이라고?”
남자는 내 얼굴을 보고는 흠칫 놀라며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왜 이런 곳에 사람이 있고, 또 한 번도 일면식이 없는 남자가 어째서 내 이름을 알고 있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도 먼저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남자의 뒤에 있었기 때문에.
〈벼락 생성기(SS)〉
- 벼락을 지면에 무한적으로 떨어뜨립니다.
- 타게팅 기능이 있습니다.
※ 주의! 혹시라도 잘못 건들 생각은 마지 맙시다! 만화 영화 속 100만 볼트를 직접 경험할지도 모르니까요!
나는 시스템의 설명을 읽고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