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모집글을 확인한 나는 못 볼 것이라도 본 사람처럼 입을 쩍 벌렸다.
이미 커뮤니티를 통해서 신협단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진 것은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이제는 커뮤니티에서 하나의 밈이 된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직접적으로 관련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단정 지었으니.
근데 진짜로 있다고?
“그러니까. 저기에 열 명도 넘는 놈들이 있다는 거지.”
나는 얼떨떨한 목소리를 내며 손을 떨었다.
26층에 참가하는 전체 플레이어들의 숫자에 비교하면 절대적으로 적은 숫자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아예 적은 수라고도 할 수 없었다.
평범하게 미친놈이라면 그나마 낫지. 이전에 대형 길드에 난입했던 그놈과 똑같은 미친놈들이다.
단 한 명이 그런 짓을 벌였는데, 자그마치 열 명이 넘는 인원이 모였는데 무슨 짓을 벌일까.
상상만 해도 온몸이 떨리는 기분이다.
참 묘한 일이지.
수많은 또라ㅇ…아니, 플레이어들이 숭상하면서 떠받드는데 막상 나는 싫어하니까.
‘그래도 모르는 게 약이니까.’
나는 애써 시선을 돌리며 외면했다.
만일 정말로 일이 터져도 그때 가서 생각하고 싶지, 지금 머리를 싸매고 싶진 않았다.
못 본 거로 치자.
그래, 그편이 훨씬 정신 건강에는 좋을 것이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신협단의 모집글을 넘겼다.
그 외에도 수많은 모집글들이 있었다.
그중 대다수는 길드나 동맹 혹은 인맥으로 맺어진 단체였다.
만약 내가 그들과 함께 한다고 하면 오히려 쌍수를 들면 들지 이를 거절할 이는 없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보여준 무력과 업적은 그 누구보다도 경쟁자인 그들이 알고 있을 테니까.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신협단이라는 이름이 그걸 증명한다.
제 이익과 자존심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하는 플레이어들이 직접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으니.
“내 앞이라고 말하기도 뭣하지만.”
나는 조소를 머금으며 중얼거렸다.
만약에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신협단을 언급한다면 누구보다도 먼저 지구로 돌려보낼 생각이니 말이다.
어쨌든 간에 다른 층이면 몰라도 이번에는 신중해야 한다.
이번 층은 하위 30%는 탑에서 퇴출당한다는 치명적인 패널티가 존재한다.
보상을 독차지하기 위해 혼자서 진행했다간 큰 화를 입을 수 있다.
아무리 활약한다고 한들, 팀의 인원수가 중요해 보이는 지금으로선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흐음.”
침음을 내며 시스템 창을 둘러보던 도중이었다.
한참 동안 팀을 모색하던 나는 눈을 형형히 빛내며 어느 모집 글을 바라봤다.
“이걸로 해 볼까.”
짧은 고민 끝에 판단을 내리곤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시스템창을 향해 손을 뻗었다.
* * *
“하아.”
한 플레이어는 짙은 한숨을 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어두운 잿빛이 만연해 있었다.
26층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으로 수없이 사선을 지나왔을까.
여느 플레이어들이라고 다를 건 없지만, 그는 뼈와 살을 깎는 각오로 몇 년이라는 세월 끝에 26층에 도달하는 것에 성공했다.
어린 날의 치기라고 해야 할까.
그 역시도 탑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유명한 플레이어들처럼 탑을 누비는 영웅이 되려는 꿈을 꿨었다.
“그것도 여기까진가.”
그의 한계는 명확했다.
수많은 랭커들이 지닌 압도적인 재능이나 화려한 직업은 그에게는 없었다.
이대로 전진하다간 벽에 막히는 것도 곧일 테지.
그랬기에 그는 26층에서 모든 사활을 걸어 최소한의 멤버로 최대한의 보상을 벌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모험 역시 필요하니까.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운은 여기까지였다.
〈[드래곤의 엄니] 모집합니다.(3/30)〉
일부로 어그로를 끌기 위해 거창한 이름까지 지었건만 모인 인원은 2명.
그 둘마저도 단체층에서 교류를 했던 동료라는 것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파티에 참여한 플레이어는 전무했다.
“그것에 비해서….”
남자는 허탈한 시선으로 다른 모집글을 바라봤다.
〈♧♡♥→쁘띠 신협단←♥♡♧ 모집합니다(17/30)〉
누군가 장난스럽게 만든 저 파티에조차 미치지 못한다.
“적어도 저 미친놈들한테는 지지 않으려고 했는데.”
게다가 소문에 의하면 저 미친놈들을 이끄는 신한별도 이번 층에 참가한다는 듯싶었다.
‘신한별이라 불리는 그놈은 이런 고민도 하지 않았겠지.’
아니, 사치스러운 고민을 했으려나.
그는 피식거렸다.
천부적인 재능과 능력을 지닌 천재는 범재를 평생 이해하지 못한다.
까득.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손을 불끈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며 새빨간 피가 손을 타고 뚝뚝 떨어진다.
저들을 시기하는 마음이 없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리라, 하지만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그보다 컸다.
자기의 힘이 약한 이유로 타인을 힐난하는 건 할 짓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기에.
한숨을 푹 내쉬며 포기하려던 그때였다.
〈띠링!〉
〈파티 지원이 들어왔습니다.〉
청명한 방울 소리가 귓가를 때리며 시스템창이 떠오른다,
“어?”
몇 날 며칠을 기다렸음에도 한 번도 듣지 못한 소리에 그는 눈을 부릅뜨고는 시스템을 낱낱이 살펴봤다.
환청은 아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파티 지원이 왔다.
혹여나 상대가 취소할까 싶어 서둘러 시스템을 터치했다.
그는 파티에 지원한 플레이어의 신상을 살펴보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익명 지원이라고?”
잘못 봤나 싶어 눈가를 비볐으나 틀림없었다.
익명으로 파티에 지원했다.
보통 다른 파티였다면 수상하다고 여겨 가차 없이 처 냈겠지.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찜찜했지만, 그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어딘가 수상한 플레이어라고 한들, 그것도 전력.
다른 플레이어들이라면 꺼림칙하다고 밀어냈을지 몰라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그에게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설사 배 속에 들어와 사지를 뒤트는 요물이라도 지금은 달게 삼키는 수밖에 없다.
‘일단 받고 봐야지.’
행여나 이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수락을 눌렀다.
그가 수락을 누름과 동시에 시스템창이 나타났다.
〈모든 플레이어 매칭 완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 그럼 이 사람이 마지막 플레이어였다고?”
꼭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그 뜻은 휴게 공간에 가장 오랫동안 머무른 플레이어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였다.
순간 어떤 플레이어의 이름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현재 26층에서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가장 큰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이라면 한 사람밖에 없었으니까.
상식적으로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혹시 모른다는 의문이 솟아났다.
“설마 백신…”
파앗!
그가 머릿속에 떠오른 플레이어의 이름을 입에 담기도 전에 하늘에서 새하얀 섬광이 떨어졌다.
그게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지금으로선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 * *
“와씨, 하마터면 아무 곳에도 못 들어갈 뻔했네.”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확실히 익명으로 파티에 지원하니 섣불리 받아 주려는 곳은 없었다.
만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남겨 둔 파티마저도 받아 주지 않았다면 곤란할 뻔했다.
왜 익명으로 지원했냐고?
물론 이름을 밝히면 그 누구나 할 것 없이 환영하겠지.
하지만 그래선 의미가 없었다.
‘신협단 그 새끼들에게 내가 26층에 있다는 확신을 줬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내가 없는 곳에서도 온갖 난리를 치는 놈들이다.
그런데 거기에 내가 직접 얼굴을 내비치면 어떻게 될까.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절로 치가 떨린다.
몰론 그런 짓을 하는 놈들은 직접 찾아가 대가리를 깨면 금방 진압될 일이지만.
그래서 진정될 일이었다면 미친놈을 미친놈이라고 부르지 않았겠지.
‘하여튼 그 신협단인가 뭔가 하는 곳 만든 새끼는 내가 무조건 머리 깨고 만다.’
살생부에 탑을 만든 놈들 이외에 처음으로 이름을 새긴 나는 악귀 같은 표정을 지었다.
뭐, 그놈들이야 둘째치고.
“여긴 뭐 하는 곳이야.”
나는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봤다.
내가 서 있는 장소는 거대한 크기의 늪지대.
얼마나 거대한지 최대한 기감을 넓혀도 규모를 짐작할 수 없었다.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고 있자, 이를 설명하듯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이번 층의 컨셉은 재해- 낙뢰입니다.〉
〈26층의 고유 패널티로 인해 착용하신 무구나 지니신 아티팩트의 효과 및 플레이어의 힘이 50% 감소합니다.〉
〈클리어 조건은 살아남으시오.〉
아주 깔끔한 설명.
다른 때였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그 순간만큼 나는 전율을 느꼈다.
지금까지 탑을 클리어하기 위한 조건에는 구구절절 복잡한 룰이 있었다. 추가적인 설명을 필요로 할 정도로.
하지만 지금의 설명은 너무나도 간단명료했다.
그저 살아남으라는 것뿐이었으니 말이다.
시스템창을 인지함과 동시에 밟고 있던 늪지대의 바닥이 푹 꺼진다.
“윽.”
마치 다리에 수백 키로에 달하는 추를 단 거 같은 무게.
이대로면 반항할 새도 없이 늪지대에 가라앉아 죽는 것밖에 없다.
퍼뜩 정신을 되찾은 나는 푹푹 꺼지는 늪지대를 발로 힘차게 걷어찬다.
가공할 만한 무력에 의해 공기가 터지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이거면 조금쯤은 시간을 번….’
한숨을 돌리며 마땅히 착지할 만한 곳을 찾고 있던 나는 얼굴을 굳히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쿠르릉!
당장에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암적색의 구름과 함께 귀청을 때리는 천둥소리가 들린다.
이번 층의 컨셉은 늪지대가 아니다.
“낙뢰지. 쓰벌….”
욕지거리를 내뱉는 것과 함께 하늘에서 수십, 수백 개의 낙뢰가 내 몸을 노리고 떨어진다.
누가 일부러 노리기라도 하듯 낙뢰는 한점에 모였다.
자연의 것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는 명중률.
하필이면 그곳은 내 머리 위였다.
콰과과과광!!
낙뢰라고는 믿기지 않는 굉음이 내 머리 위를 때린다.
어지간한 괴수라면 한방에 절명할 만한 위력이 수십, 수백 발이 들이닥친다.
나는 검으로 상단세를 취하며 이를 악물었다.
“흐흐, 탑 새끼들이 드디어 실성했나.”
온갖 경험을 한 나조차도 입이 쩌억 벌어질 만한 위력이다.
만약 사전에 방어하지 않았다면 기절하기에 충분한.
하지만 대비를 했다면 못 막을 것도 없다.
고함 소리를 내지르며 검을 세차게 휘두른다.
하늘 위까지 날아간 풍압은 먹구름을 절반으로 갈랐다.
필드 전체를 횡단하고도 남을 만한 풍압에 먹구름은 반으로 쪼개졌다. 하지만 절망을 안겨 주듯 갈라진 먹구름 위에는 또 다른 먹구름이 있을 뿐이었다.
묵직한 발걸음으로 뻘 위에 우뚝 서 있는 나무를 밟은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차갑게 식은 눈으로 필드 전체를 둘러봤다.
‘밑은 수백 키로의 무게가 느껴지는 뻘이고, 위는 한점에 쏟아지는 낙뢰라.’
이래서는 탑이 여기에서 죽으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아무리 나라도 이런 곳에서 며칠 밤낮을 새면 뒤는 장담 못 한다.
다른 플레이어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
“다른 놈들은 낙뢰 한 방 맞으면 가겠…… 어?”
짜증이 더러 섞인 목소리로 말하다 말고 고개를 기이하게 돌리며 말을 멈췄다.
이 사이를 놓치지 않고 떨어지는 낙뢰를 몸으로 때우다 말고 나는 눈을 형형히 빛냈다.
“찾았다.”
빌어먹을 탈출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