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시간은 약간 거슬러 올라가 신한별이 24층을 클리어한 직후.
한동안 잠잠했던 커뮤니티가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채널2]
- 신협 뭐임?? 21층에서 24층까지 왤케 빨리 깸? 이 정도면 거의 신기록 아님?
- 골리엇도 이 정도는 못 했잖아
⤷ ???
⤷ 선 씨게 넘네. 아무리 그놈이 잘나간다고 해도 그건 아닌 듯ㅋㅋㅋ
⤷ 또또 방구석 ㅈ문가들 나와서 올려치기 ㅈ되누;;
- 어쨌든 객관적으로 대단한 건 맞지. 이 정도 속도로 깬 건 골리엇 말고는 딱히 유례가 없잖아.
⤷ 왜 유례가 없어? 유채아 있잖아
- 헤으응, 채아 눈나
⤷ ㅂㅁㄱ
- 이게 바로 탑 대표 은행 신협!! 가슴이 웅장해진다
- 야야, 미친 또 신한별 관련해서 뭐 떴는데?
⤷ ㄹㅇ? 뭔 내용인데 선발대 없냐?
⤷ 선발대는 무슨 선발대여;; 직접 확인ㄱㄱ
- 와.... 이번에 뜬 건 ㄹㅇ 신협 미쳤는데?
* * *
“정말로 미쳤네.”
나는 이전 층을 클리어한 보상을 확인하며 감탄사를 흘렸다.
〈업적: NPC와의 친구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 NPC와 대화 시 친밀도가 급상승합니다.
- 아놀드 공방과 관련된 NPC에게는 호감을 얻습니다.
※주의! 적대 세력의 NPC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내가 봐도 칭호의 효과는 놀라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시스템창의 말미에 적혀 있는 글귀를 읽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적대 세력?”
그건 또 뭐야?
적대 세력이라고 하면 아눌드 공방과 경쟁하는 집단들을 뜻하는 건가.
여러모로 의문이 남는 문장이었으나,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적대한다고 해 봤자 결국은 NPC.
설사 내 앞에 나타나서 난동을 부린다고 해도 내가 먼저 놈들의 대가리를 깨는 편이 빠르다.
게다가 탑 제일의 공방이라 불리는 아놀드와 관련된 NPC가 그보다 많을 테니 남는 장사였다.
‘두고 보면 어떻게든 쓸 일이 있겠지.’
게다가 커뮤니티의 반응을 보고 안 사실인데, 탑 안에서 칭호의 존재는 생각 이상의 취급인 듯했다.
칭호는 탑에서 어마어마한 업적을 이룬 자에게만 지급되는 것.
당장 나만 봐도 처음에는 탑의 진행자를 쓰러뜨리고 칭호를 얻었으며.
이번에는 24층에서의 골칫거리를 내 손으로 직접 제거하기까지 했다.
따지고 보면 죄다 비슷한 층에 있는 등반자들은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지니고 있어서 나쁠 건 없다.
탑의 선두 주자라고 부를 수 있는 골리엇과 유채아만 봐도 하나가 아닌 상당수의 업적을 지니고 있다는 듯했으니 말이다.
요컨대 이를 전부 정리하자면.
“남들 다 갖고 있는 건데, 나만 없는 것보단 낫잖아.”
기왕이면 가능한 많게, 그리고 엄청 많이 갖고 있으면 좋겠지.
25층까지 올라오면서 내가 획득한 칭호는 기껏 해 봤자 2개.
유채아나 당대 최강이라고 불리어 온 골리엇과 비교하면 적은 편이다.
왜냐고?
‘원래 뒤처지는 사람은 먼저 앞서 나간 사람이 먹다 남은 부스러기나 주워 먹는 법이니까.’
지금까지 내가 여러 방법을 몰두하며 새로운 길을 걷고자 노력하고.
다른 등반자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속도로 탑을 상승 중이라고 한들, 그건 어디까지나 앞서 나간 자와 비교하는 상대적 수치일 뿐.
절대적인 숫자는 변하지 않는다.
41층과 25층.
그건 앞서 나간 자들의 발자취와 현재 내가 따라간 발걸음이다.
한 달째도 안 되는 기간에 엄청난 상승 폭이지만, 이걸로 안주하는 건 안 된다.
내 목표는 41층이 아니기 때문에.
“이 개 같은 탑의 꼭대기지.”
좀 더 확실하게 말하자면 그것조차도 틀렸다.
“나를 이곳에 처넣은 개새끼들의 대가리를 깨는 거지.”
탑 안에서 온갖 발악을 해도 결국 빌어먹을 새ㄲ… 그래도 아직까진 사지 멀쩡한 놈들을 두고 새끼라고 부르는 건 좀 그런가?
아니, 그 새끼들은 개새끼라고 불려도 싸지, 싸.
어쨌건 내가 아무리 날뛰어도 씹어먹어도 시원찮은 놈들의 손아귀 안이란 얘기다.
그러니 성장은 필수였다.
‘그런데 튜토리얼에서 나와서도 아무런 발전이 없으니.’
나는 헐벗은 나체를 내려다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간의 힘든 여정을 의미하듯 몸 곳곳에 박혀 있는 알찬 근육 사이에는 굵직한 흉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수련을 거듭한 덕분에 튜토리얼에서 나왔을 때와 변함없이 굵직한 모습.
어지간한 괴수들은 눈도 못 마주칠 만할 정도로 흉포한 모습 그 자체였으나, 그 말에는 자그마한 오류가 있었다.
“변함없이 강직하다는 말은 거꾸로 말하자면 그때와 비교해 성장한 게 없다는 거지.”
만일 이 말을 다른 플레이어가 들었다면 입가에 거품을 물을 일이었지만.
이게 적나라한 현실이다.
탑에 들어와서 많은 것을 얻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령 검이라든가. 코트라든지, 혹은 둘리처럼 말이다.
한데, 그런 자잘한 것들 제외하고 오로지 내가 지닌 힘은 강해졌을까?
아니.
달라진 것은 없다.
“따지고 보면 이터의 권능으로 강해지긴 했는데.”
아주 쫴에에끔?
굳이 따지자면 사막의 모래 한 톨 정도밖에 되지 않으려나?
이전의 나와 만 번 싸우면 한 번 이길까 말까 하는 근소한 차이였다.
‘보통 그런 걸 두고 강해졌다고 하진 않잖아.’
단지 운이 좋다고들 표현하지.
사실 튜토리얼에 계속 머무르면서 이터의 권능으로 괴수의 힘을 지속해서 흡수했다면 지금의 나보다 강해졌으리라.
참, 사람 마음이란 게 간사하지.
튜토리얼에 있을 때는 뭐든 됐으니 탑에 가고 싶어 했는데, 막상 탑을 오르고 보니 그때를 그리며 입맛이나 다지고 있으니.
“에라, 모르겠다.”
첨벙!
신경질적으로 목덜미를 벅벅 긁으며 온천에 몸을 내던졌다.
바깥 공기에 식은 몸이 팔팔 끓던 온천수에 맞닿자, 금세 몸이 달아오른다.
“궁시렁이나 떨고 있긴.”
내가 그런 사소한 것을 하나하나 따져 가는 소인배도 아니고, 뭐 어때.
어차피 전부 지난 일인데, 질질 끌고 있다간 끝도 한도 없다.
결국 중요한 건 지금까지가 아니라 앞으로가 될 테니까.
탄산이 전부 빠진 콜라를 입에 전부 털어 넣고는 커뮤니티를 열었다.
거의 무의식중에 나온 행동이라 아차 싶었지만, 기왕 켠 김에 둘러보기로 했다.
‘정보 수집도 필수니까.’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순간 할 말을 잃게 만들긴 충분했다.
〈4채널에 진입합니다.〉
- 하... 다들 들었음? 신협께서 또 업적 얻으셨다.
- 이왜진?
- ㅋㅋㅋㅋ찐이넼ㅋ
- 아아, 신협께선 당연한 결과이시다
- 다 같이 신성한 마음가짐으로 따라 부릅시다. 신멘
⤷ 신멘
⤷ 신멘
⤷ 신멘
- Zㅣ존 신협단 만세!
⤷ 컨셉도 이 정도면 칭찬해줘야 할 듯
⤷ 이 새끼들은 5분 대기조냐? 맨날 나타나네
⤷ ㅋㅋㅋㅋ 이 정도면 5분이 아니라 5초 아님?
⤷ 이건 킹정
업적을 얻어서 그런가. 커뮤니티에서는 나와 관련된 이야기로 가득했다.
이따금 커뮤니티에 접속하면 볼 수 있는 장면이었으나, 내 시선은 다른 곳에 꽂혔다.
그중에는 생각지도 못한 것들까지 끼어 있었기에.
- 신협단인가 씹발단인진 몰라도 저 새끼들 ㄹㅇ 제정신 아님;;
⤷ 그니까 머리에 이상한 두건 쓰고 다니던데
- 그 두건이 걔네들 성물이라더라
- 성물은 씹ㅋㅋㅋㅋ 오타쿠 새끼냐
- 유채아 머리에 두건 쓰고 있다고 하던데 걔도 신협단인가 뭔가임?
⤷ ???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셈
⤷ 선동의 민족이네ㅋㅋㅋ
⤷ 채아 눈나 건드는 건 선 씨게 넘네
- 신멘!!
⤷ 신멘!
“잠깐만….”
나는 어이없는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혹시 몰라 찬물로 얼굴을 헹궈 냈지만, 아쉽게도 내 눈이 잘못됐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아니, 잠깐만….”
저것들이 왜 아직까지 남아 있어?
내가 분명히 지존 신협단을 모집하는 놈한테 개인 쪽지로 집어치우라고 했을 텐데?
등줄기에 식은땀이 타고 흐르는 아찔함을 느끼며 서둘러 쪽지함을 바라본 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 어쩐지 손 떼라고 말했는데도 왜 남아 있나 싶었는데.
‘이 새끼 안읽씹하고 있었네.’
아예 쪽지를 확인하지도 않았는지 읽음 표시조차도 없었다.
당시에 누군가의 장난질이겠거니 하고 대충 넘겼었는데, 아무래도 그 파장은 심상치 않은 모양이었다.
- 신협이 뭔데?
⤷ 탑에 와서 신협을 모른다고?
⤷ ㅉㅉ 근본이 없네
- 솔직히 골리엇은 한물갔지 요즘 대세는 신협임
⤷ 미친놈들이 골리엇을 건든다고?
⤷ 어쩔티비~ 신협티비~
⤷ 불편하면 자세를 바꿔 앉아ㅋㅋㅋ
- 탑에서 신협 모르면 아싸임ㅇㅇ
⤷ 앜ㅋㅋㅋㅋㅋㅋㅋ
⤷ ㅇㅈㅋㅋㅋㅋㅋㅋㅋㅋ
채팅이 멈췄으면 하는 바람과는 정반대로 나를 찬양하는 글은 쉼 없이 올라간다.
어찌나 빠른 속도인지 내 동체시력으로도 도저히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
- ㅁㅊ 일 터졌다
⤷ 터지긴 뭐가 터짐ㅋㅋㅋ 터진 건 니 멘탈이고
⤷ 왜? 바지에 쌌냐?
- 아니 씹... 그거 말고 어떤 놈이 신협단이라고 하면서 대형 길드에서 난리 치는데
- 개소리도 작작하셈ㅋㅋㅋㅋ 어떤 병신이 대형 길드에서 난리치냐
⤷ 그니까ㅋㅋㅋ 대형 길드 있는 곳이면 41층 아니냐
⤷ 10층대에 있는 놈들이 신한별 빨지 랭커가 그놈을 왜 빠냐
- 아니;; 하... 일단 걍 보셈 [첨부.mp4]
⤷ 이왜진????
⤷ 쟤 일본에서 유명한 얘 아님?
- 일본에서 두 손에 드는 랭커잖아
- ㅋㅋㅋㅋ 근데 웃기긴 하네
커뮤니티를 보다 말고 나도 모르게 손에 쥐고 있던 힘이 풀렸다,
손에 있던 빈 캔이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요란한 소리를 일으켰다.
설마?
저거 내가 생각하는 그 짓거리는 아니겠지.
나는 떨리는 손으로 커뮤니티에 올라온 영상을 틀었다.
영상에서는 동양인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내 얼굴로 도배된 티셔츠와 두건, 보랏빛이 맴도는 형광봉을 들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신협단임을 증명하는 짤막한 소개를 시작한다.
그리고는 일종의 편집을 거쳤는지 화면이 바뀌며 남자가 대형 길드로 보이는 장소로 뛰어가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시이이인메엔!! 탑 최고의 은행이신 신협께서 나가신다!”
“자, 잠시만요! 여긴 관계자가 아니면 못 들어옵니다!”
“야야! 저 미친놈 못 들어오게 막아!”
“새끼들아 바리게이트라도 쳐서 막으라고! 안 막으면 뚫린다!”
남자가 건물 내로 뛰어들자,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고함을 지르며 필사적으로 막기 시작한다.
하지만 남자가 랭커라는 말이 사실이었는지, 설치한 바리케이드는 힘없이 부서졌다.
경비를 뚫고 건물에 들어선 남자는 내 얼굴이 새겨진 깃발을 대형 길드의 로비에 박으며, 익살스러운 자세로 소리를 외치는 것으로 영상은 마무리되었다.
“신⎯멘! 너희들은 나 못 막아!”
그제서야 깨달았다.
일전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일이 부메랑이 되어 엄청난 파급력을 몰고 돌아왔음을.
나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시발.”
너네들이 그러면 쪽팔림은 누가 감수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