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년만에 귀환한 고인물-65화 (65/175)

제65화

타닥! 타다닥!

용광로 안에서부터 강렬한 화염이 피어오른다.

잠시 서 있는 것만으로도 땀이 삐질삐질 날 것 같은 온도였으나,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주변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그러자 시선을 느낀 대장장이들이 자기네들끼리 속닥거린다.

“저분은 이곳에 왜 있어?”

“낸들 알겠나? 됐으니 지금은 저쪽은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이나 마저 하자꾸나. 괜히 불똥 튀기 싫으면.”

“잠시 허리 펴고 쉬었을 뿐인데, 개 털리듯 맞은 사람도 있다지. 분명 허리 펼 시간이 있으면 망치를 한 번이라도 더 휘두르라고 했다고. 쯧, 악귀나찰도 안 할 짓을… 히, 히익! 어서 일하자고.”

공방의 대장장이들은 눈을 내리깔고는 황급히 망치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실소를 흘렸다.

그렇게 쑥덕거리지 않아도 거기에서 하는 이야기는 전부 들린다.

본보기로 몇 명 더 손볼까 생각하긴 했지만, 금방 관두기로 했다.

‘안 그래도 부족한 노동력인데 허투루 쓸 순 없지.’

탑의 꼭대기에서 거만한 자세로 내려다보고 있을 놈들의 멱을 딸 검인데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

하물며 인력 부족으로 정해진 시일 안에 제작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도 없지.

양 눈에 불을 켜고 대장장이들을 노려보고 있을 즈음, 멀리서부터 인기척이 느껴졌다.

기감을 통해 상대방의 정체를 진작에 파악한 나는 가볍게 몸을 돌렸다.

내 시선이 닿은 곳에는 공방주가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허허, 부르셨다고 들었소만.”

“아니지, 먼저 볼 일이 있다고 부른 사람은 영감님이잖아.”

“허허헛, 그, 그랬었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길 바라네. 나이가 나이인지라 노망이 들어서 그런가. 가끔 잊어먹곤 한다네.”

“탑의 NPC라는 작자가? 노망?”

“…….”

막연히 든 의문을 내뱉자, 그는 식은땀을 뻘뻘 흘린다.

자기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헛소리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런 주제에 내가 챙겨 오라고 한 물건은 잘 챙겨 왔구만.”

내 시선이 그가 가지고 온 공책에 닿자, 공방주는 얼굴을 붉히며 화제를 돌렸다.

“…흠흠, 여하튼 중요한 것은 그 일이 아니다.”

주변에 있는 대장장이들에게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일단 물어는 보겠네만, 지하에 있는 그걸 처리한 건 자네인가?”

반쯤은 반신반의한 물음.

그의 궁금증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놈도 알고 있었네.’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지하에서 한 건 해결하고 나오자마자, 공방주가 찾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직감했으니까.

그 정도 눈치는 있다.

오묘한 감정이 깃든 그의 눈빛과는 대조적으로 귀를 파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바쁜 사람 불러다 놓고 고작 한다는 이야기가 그거야? 정말로 할 말 없으면 간다.”

“아니! 이 자리에 부른 놈이 누군데 어디서… 자, 잠시만 그렇다면 정말로 자네가 그 물건을 처리했다는 겐가?”

“아, 그렇다니까. 몇 번 말해.”

공방주는 이마에 핏대를 세우고 말하다 말고, 우뚝 멈춰 섰다.

마치 믿기지 않는 얘기를 들은 듯한 얼굴이었다.

아침 드라마에서도 저렇게나 다채로운 표정을 표현할 수 있을 배우는 못 본 거 같은데, 제법이네.

“도, 도대체 그걸 무슨 수로?”

“그거까진 알 거 없잖아.”

그의 의문에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지하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열거하려면 입만 아프다.

애초에 그것들을 꼬박꼬박 보고할 의리도 딱히 없다.

“그래그래, 자네의 말대로 우리가 알 거까진 없지. 결과만 좋으면 됐으니까.”

까칠한 태도로 나서자, 이미 익숙하다는 듯 공방주는 인위적인 웃음을 지으며 한 보 물러섰다.

기껏 좋은 일인데 내 기분을 망쳐서 일을 그를 칠 수 없다는 판단.

썩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귀찮게 굴었으면 그 물건을 지하 말고 여기다가 확 풀어놓을까 했는데.”

“옛?”

“그냥 해 본 말이야.”

농담이다, 농담. 뭘 그리 정색하고 그래.

누가 보면 정말로 상종 못 할 악당처럼 보겠어.

나는 대충 손을 휘적거리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어쨌건 방사능 때문에 땅이 오염됐을 테니까. 전에 이야기한 대로 포션은 꾸준히 거래할 거니 그건 걱정하지 마.”

“휴우, 그건 다행이로군.”

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품고 있던 일말의 걱정을 지웠다.

원인이 해결됐다고 하더라도 오염된 땅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건 시간을 들여 천천히 자연적으로 회복되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공방의 면적에 맞먹을 포션을 구해서 한꺼번에 쏟아붓던지.

포션은 부르는 게 값이다 보니 공방주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후자보다는 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그만한 양의 포션을 구하는 것부터가 가능할지도 잘 모르지만.

“그건 그거고, 설명은 해 줘야지. 지하에 있던 그거 도대체 정체가 뭐야?”

“자네에겐 미안하지만 나도 모른다네. 지하에 있던 그것은 우리가 이곳에 터를 잡았을 때부터 있었던 것이니.”

그의 눈치를 보니 거짓은 아니다.

하긴 정체를 알고 있다면 그동안 공방이 저 알 때문에 골골 대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공방의 골칫거리를 내가 직접 처리함으로써 대장장이들도 머지않은 시기에 평화를 되찾을 것이다.

공방주는 인상 좋은 미소를 지으며 훈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허허, 모든 게 자네 덕분일세. 감사의 의미로 자네의 무기는 내가 책임지고 확실하게 만들어 놓겠네.”

“그건 당연한 거고.”

“그, 그렇지. 자네의 말대로 당연한 거지. 허허허.”

몇 초 전까지만 해도 훈훈했던 분위기에 차디찬 물이 뿌려졌다.

“그런데 잠시 잊은 모양인데, 나한테 건네줄 거 없어?”

“이, 잊고 있다니… 무, 무엇을 말하는가. 난 도저히 모르겠네만.”

말을 더듬는 그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누가 봐도 절로 고개를 흔들 정도의 어색한 연기톤.

타인을 속이고, 탑을 속인다고 하더라도 그 연기 실력으로는 나를 속여 넘길 순 없다.

“누구 앞에서 모르쇠야. 네가 들고 온 건 아직 안 끝났잖아.”

“…….”

손짓으로 그의 품에 든 공책을 손짓하자 그의 얼굴이 새파래진다.

아니, 그 전부터 새파래진 상태였으니까. 그의 몸은 시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차가운 한기마저 느껴졌다.

자기가 죽는 한이 있어도 이건 못 넘겨준다는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천천히 손을 뻗으며 말을 내뱉었다.

“확 씨 뒈지고 싶나? 손에 힘 안 풀어.”

“알겠네.”

“처음부터 그럴 것이지.”

그가 내뿜던 기세도 폭풍 앞에서는 한풀 꺾였다.

끝내 공방주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내 손에 몇 권의 공책과 펜을 쥐여 주었다.

나는 방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걱정 마. 빨리 끝낼 테니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어. 오늘 안에 끝낼 테니까.”

“알겠다네.”

비록 얼굴은 할 말이 많아 보였으나, 공방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공책에 내 요구 사항을 빽빽하게 채워 완성한 것은 수일이 훌쩍 흘러 내 검이 완성된 날이었다.

* * *

검을 제작하기로 한 일정의 마지막 날.

나는 공방주한테서 건네받은 검을 하늘을 향해 뻗었다.

“오오.”

검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나는 감탄사를 흘렸다.

옛날에는 최대한 검의 형태를 한 막대기라면 이건 누가 봐도 반박의 여지가 없는 검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날이 둔탁했던 전과는 달리, 비수같이 날카로운 날이 보인다.

슬쩍 손가락을 갖다 대자, 가볍게 베이며 핏방울이 송골송골 올라온다.

“와, 이걸 진짜로 만드네.”

솔직히 기대 자체는 별로 안 했다.

튜토리얼에 있는 천 년간 이걸 깎아내기 위해 얼마나 갖은 노력을 기울였나.

오랜 세월을 들인 끝에도 결국 실패한 물건이다.

그래서 부서지지만 않으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제대로 된 형태가 나올 줄이야.

게다가.

〈검(SS)〉

- 값비싼 재료를 쏟아부은 아눌드 공방의 특제 무구! 이름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 파괴 불가.

- 검신에 마법이 새겨져 있어, 특수능력을 발동할 수 있습니다.

SS급이라니 놀라울 정도였다.

감탄 어린 탄성을 내뱉고 있자, 이를 지켜보던 공방주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허심탄회하게 외쳤다.

“우리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요. 탑 제일의 공방이오. 품질은 보증하겠네.”

의뢰인조차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한 일을 결국 해낸 공방.

대장장이 사이에서는 이에 대한 긍지로 기세가 하늘을 찌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으나.

“어, 어. 그래 잘했어.”

나는 그들의 몰골을 확인하고는 어색한 미소를 띠었다.

어째 공방주부터 시작해 대장장이 모두가 다크서클이 볼까지 내려왔으며, 지금이라도 당장 곯아떨어질 듯한 몰골이다.

어째 보니까. 끼니도 제대로 안 챙겨 먹었는지 볼이 움푹 팬 듯한 느낌도….

‘아, 진짜로 안 먹었지.’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밥 먹을 시간에 망치를 한 번 더 휘두르라’라고 말했었던가.

이거 좀 미안한데.

어서 다음 층으로 가는 게 이들을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한 나는 서두르기로 했다.

그렇게 시스템 창을 누르려는데, 공방장이 불러 세웠다.

“흠흠, 혹시나 해서 말해 두지만, 검에는 그 외에도 특수 기능을 넣었소.”

“특수 기능?”

“그렇다네. 탑 제일의 공방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고작 검의 형태만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지. 그 기능들은… 뭐, 입으로 말하는 것보다 직접 경험하는 편이 이해가 빠르겠지. 그건 다음 층에 올라가서 확인해 보게나.”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할 말은 이걸로 끝이라는 듯 공방주는 손을 흔들었다.

“그럼 가게나. 비록 늦었지만,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 자네가 없었으면 우리 공방은 아직까지도 고통받고 있었을 테니. 누가 뭐래도 자네는 우리 공방의 영원한 은인일세.”

“그래.”

나를 배웅하기 위해 그의 뒤로 모인 수십 명의 대장장이들이 손을 흔든다.

그들의 마중을 받으며 나는 시스템창을 눌렀다.

“그리고 그 빌어먹을 공책을 갖고 다시 돌아오지도 말고.”

왠지 모르게 뒤에서 묘한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대충 넘기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건 다음 층으로 가는 것.

“후, 가볼까.”

하늘에서 떨어진 강렬한 빛줄기가 몸을 감싼다.

〈25층으로 이동합니다.〉

〈25층은 휴게 공간입니다.〉

〈휴게 공간은 플레이어님의 업적을 기반으로 구성이 됩니다.〉

〈2시간 32분 뒤에 26층으로 전이됩니다.〉

기나긴 여정 끝에 도착한 휴게 공간.

“후우, 이것도 여간 못 할 짓이네.”

나는 간만에 온천에 몸을 담그며 시원한 탄산음료를 깠다.

치이이익!

강한 탄산으로 인해 흘러넘친 거품을 입으로 빨아 마신 나는 몸을 릴렉스하며 긴장을 풀었다.

잠시 찜질한 거뿐인데도 절로 노곤한 기분이었다.

탑의 등반을 잊고, 편안함 속에서 잠시 눈을 붙이려는 그때였다.

〈21~24층의 통합 층을 클리어했습니다.〉

〈플레이어들의 업적을 정산합니다.〉

〈빠바바밤~!〉

〈서버 최초로 믿기지 않는 성과를 달성했습니다! 신한별 님만의 특별 보상이 지급됩니다.〉

웅장한 팡파르 소리가 들리며 눈앞으로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탄산음료마저도 땅바닥에 내려놓으며 탐욕 어린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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