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끄응….”
탑에서도 제일의 공방이라 불리는 아눌드의 공방주는 이마에 차가운 수건을 얹은 채, 끙끙 앓았다.
그의 얼굴에는 새까만 근심과 씁쓸함이 감돌고 있었다.
몸져눕다 못해 당장이라도 죽을 듯한 낯빛.
물을 마시기 위해 떨리는 손을 뻗고 있을 즈음, 뜨거운 열기로 땀으로 범벅이 된 대장장이가 방문을 벌컥 열었다.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몸을 흠칫 떨던 공방주는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곤 한숨을 푹 내쉬었다.
“…히익! 뭐냐, 네놈이었느냐. 쯧, 기왕이면 인기척이라도 내고 다니거라! 계속 그러다간 문이 남아나질 않겠다! 난 또 재수 없는 애송이인 줄 알았구만.”
“공방주님…? 여긴 어쩐 일로?”
“네가 알 건 없으니 됐다!”
“아, 알겠습니다.”
공방주의 난데없는 불호령에 대장장이는 고개를 떨구며 다시 문고리를 잡는다.
공방에서 쇠질만 반복하는 그라고 해도 기본적인 눈치는 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알아채곤 눈치껏 움직이려던 행동이었으나, 공방주는 미련이 담긴 어조로 그를 다시 불러 세웠다.
“그… 다른 게 아니라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거네만.”
“어떤?”
“빌어먹을 꼬맹이… 아니, 오늘 공방에 방문하신 등반자는 지금 어디에 있지?”
“등반…? 아! 그분 말씀이십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공방주가 부르는 인물을 떠올리고는 탄성을 내뱉었다.
아눌드는 탑 제일의 공방이라는 명성답게 평소에도 각종 플레이어와 길드로부터 의뢰가 들어온다.
그중에는 그들과 같은 NPC들의 의뢰도 산처럼 쌓여 있다.
고객이 워낙 많다 보니 평소라면 공방장이 말하는 인물 따윈 모르는 게 당연했을 터였으나.
이례적으로 단 한 사람만을 위해서 공방의 모든 일거리를 정지시키고, 모든 인력을 투자 시켰을 정도니 모르려고 해도 모를 수 없었다.
당장 방금 전까지 두들기고 있던 광물도 그것을 위한 것이었으니.
“그분이라도 잠시 산책을 나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산책이라… 끄응, 그 족제비 같은 놈이 상황을 이따구로 만들어 놓고 산책 타령이라니.”
이쪽은 누구 때문에 밤낮 가리지 않고 수백 도를 훌쩍 뛰어넘는 화로 앞에 붙어 있는데, 산책이라니!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혀를 끌끌 찼다.
살벌한 분위기의 공방주의 모습에 대장장이는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한데, 그분은 왜?”
“됐다. 네가 알 것 없으니 가서 할 일이나 마저 하거라.”
“네, 알겠습니다.”
퉁명스럽기까지 한 공방주의 어조에 그는 서둘러 몸을 돌렸다.
그가 방을 나서는 모습을 끝까지 보고 나서야 공방주는 한시름을 놓았다.
‘후우, 아이들한테 이걸 언제까지 감출 수 있을지.’
전염병을 이 땅에서 뿌리 뽑기 위해 포션을 매번 공급받는 건 좋다.
하나, 포션을 공급받기 위해서 공방 기반의 대다수가 탈탈 털렸다고 말하면 순전히 기뻐할 사람이 있을까.
NPC라고 해도 탑 제일의 공방, 명성 하나로 사는 자들이다.
고작 20층대 등반자한테 공방의 기반 자금까지 털렸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당장 망치를 들고 대가리를 깨도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신한별과 계약한 내용은 공방의 그 누구한테도 알리지 않았다.
공방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과 장판마저도 신한별에게 탈탈 뺏길 판인데, 이 사실을 바깥에 알려봤자 좋을 건 없었다.
‘큭… 그 고약한 놈이 탈탈 털어먹을 줄은 몰랐지.’
만약 그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그와는 절대로 계약 따위는…
계약 따위를…
미리 알았다고 해도 하지 않았을 수 있었을까?
“끄응….”
그에 대한 물음에 관해서라면 그조차도 쉽사리 입을 떼기 힘들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처음부터 끝까지 놈의 계략에 휩쓸려 넘어간 기분이었다.
설마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을 계획에 넣고 움직인 건가.
23층에서 공방의 사람을 만난 거부터 시작해 포션이 솟아 나오는 성물을 찾은 것까지 미리 계획된 것이라면?
“…쯔쯧, 과한 생각이지.”
암만 그래도 고작 20층 대의 등반자가 NPC를 상대로 그런 계획을 세웠을 리는 없지.
노인네의 괜한 걱정이다. 걱정.
워낙 깊이 파고들다 보니 머릿속에 마구니가 낀 것뿐이다.
그는 최대한 자기 합리화를 시키며 이마에 붙이고 있던 수건을 뗐다.
복잡한 생각을 해서인지 얼음장 같던 수건도 뜨거워진 느낌이다.
애써 잡념을 지우며 얼음물을 들이켜려는 그때였다.
〈표식 감지(SS) 스킬이 발동합니다.〉
“……이건?!”
거의 수십 년 만에 들어 보는 청량한 알람 소리와 함께 그의 눈앞으로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진 상황을 입에 담았다.
“그 물건이 사라졌다.”
‘어떻게’라는 말은 섣불리 나오지 않았다.
NPC가 되고 무려 수십 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강산이 몇 번이고 바뀔 시간이었지만, 지금껏 한 번도 이변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수십 년이라는 세월을 투자하면서 이변이 일어나길 바라면 바랐지. 그간 달라진 건 없었다.
그런데 아무런 조짐도 없이 그토록 바라왔던 이변이 일어났다.
지금과 같은 사태를 만든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단 한 명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신한별.”
공방주는 등골이 서늘한 감각을 느끼며 이름을 불렀다.
만약 일을 저질렀다면 그의 짓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 * *
“후우. 누가 내 이름이라도 부르나.”
왔던 방향으로 벽을 박차고 지상에 올라온 나는 옷에 묻은 흙먼지를 탈탈 털며 중얼거렸다.
왠지 모르게 찜찜한 기분이 들긴 했으나 어쨌건 일도 이걸로 끝.
게다가.
〈일정 조건을 해결함으로써 24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나는 허공 위에 둥둥 떠 있는 시스템창을 보며 싱긋 웃었다.
아무래도 24층은 모든 일의 원인이기도 한 재액의 알을 제거하는 것이 클리어 조건인 듯싶었다.
따지고 보면 제거한 것은 아니지만, 24층 자체에서는 사라졌으니 결국 같은 거잖아.
탑에서도 그렇게 여기는 것 같았고.
이걸로 25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으나 나는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올라가더라도 검은 받고 가야지.”
물론 24층을 클리어했으니, 상층으로 향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다시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원래 사람 마음이란 게 원수 같은 법이거든.’
당연히 탑 제일의 공방이라는 이명답게 대충 제작하진 않을 거다.
어떻게 만들든 기본 이상의 퀄리티는 보증되겠지.
“응응, 대충은 안 만들겠지. 대충은 말이야.”
대신에 쏟을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진 않겠지.
당사자가 바짝 붙어서 옆을 지키고 있으면 눈치라도 보여서 뭐든 하겠지만, 아무도 없으면 해이해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가령 예를 들면 화장실을 가기 전에는 무엇이든 다 한다고 해 놓고선 갔다 와서는 모르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적어도 완성품을 이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는 한은 끝은 없어.”
나는 혀로 입술을 날름거리며 주먹을 맞붙였다.
만족하는 완성도가 되기 전까진 국물도 없을게다.
어쨌든 내 검을 제작하는 건 두 번째 목적이고.
이곳에 머물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가장 중요한 이유를 생각하려는 찰나, 멀리서부터 누군가가 나를 부르며 이쪽을 향해 달려온다.
“대, 대협!”
“음?”
저건 분명…
“누구였더라?”
“아이구! 대협,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얼마 만이라고 벌써 잊으신 겝니까! 접니다! 23층에서 구해 주셨지 않으셨소.”
“분명 단게…”
“다켄입니다.”
“다켄, 나도 알고 있었어. 잘못 발음한 거야.”
아아, 분명히 저런 이름이었었지.
워낙에 특이한 이름이라 까먹고 있었다.
어색함을 지우기 위해 너털웃음을 짓고 있자, 다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도대체 어디에 계셨길래 찾기 어려운 것이요! 볼 일이 있어서 계속 찾고 있었소.”
“볼 일?”
“다름이 아니라 지금 공방주님께서 대협을 찾고 있소.”
“공방주가?”
“그렇소, 제게 대협을 찾으면 방에 정중히 모시고 오라고 하셔서 한참을 찾고 있었소.”
“그래?”
그의 말에 나는 눈가를 가늘게 떴다.
어떻게 된 모양인지는 몰라도 하나만큼은 직감할 수 있었다.
‘대충 보니까. 그 노인네도 눈치 깠구만.’
따지고 공방의 지도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길을 표시한 것도 그 노인네였다.
명색이 NPC 중에서도 공방을 대표하는 자인데, 지하에 그러한 시설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는 없었다.
추측건대 지하에서 뭔 일이 났는지는 대략이나마 파악하고 있겠지.
이번에도 그 때문에 나를 부르는 것일 테고.
근데 말이야.
“노인네가 말년에 노망이라도 났나. 이미 눈치 까고 있으면 누굴 오라 가라 하고 있어.”
누가 시다바리인 줄 아나.
내가 불쾌한 기색을 곁으로 보이자, 다켄은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마음 같아선 공방이고 뭐고 전부 확! 뒤집어 버릴까 생각했는데.
‘그럴 순 없지.’
암, 그렇지 그래.
내 검을 만들어야 할 소중한 인력인데, 괜히 몸 상할지도 모르니 이들을 탓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탓해야 할 상대가 있다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나는 다켄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짓누르며 말했다.
“지금 가서 그 노인네한테 전하고 와. 지금 당장 공방 엎어지는 꼴 보기 싫으면 5분 내로 달려오라고.”
* * *
사람을 보내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타다다닥!
공방주는 바깥에서부터 들려오는 부산스러운 소리에 누가 말할 것도 없이 직감했다.
그토록 기다리고 있던 상대가 도착했음을.
그는 거울을 통해 옷매무시를 재차 정리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섰다.
어떻게 됐던 간에 최대한 공방에 해가 되지 않도록 이야기를 잘 끌고 가야 한다.
그렇게 다짐한 순간, 문이 벌컥 열렸다.
“허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 힘든 발길을 하셨을 텐데 여기에 앉아서… 어?”
“…….”
공방주는 말하다 말고 표정이 바짝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말꼬리를 끊었다.
그도 그럴 게 방 안에 들어온 상대는 그가 기다리던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켄? 등반자는 어디에 가고 왜 네 혼자서 왔더냐?”
“그, 그게…”
그의 의문에 남자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길이 엇갈린 것이더냐?”
“아니오. 이미 대협과는 만나긴 했소이다만….”
“만났으면 이곳에 정중히 모시고 왔어야지. 왜 혼자 왔지?”
“대협께서 볼일이 있으면 고, 공방주님께서 직접 오시라 명했기에…”
다켄은 벌을 각오하고는 힘겹게 전언을 전했다.
그래도 공방을 대표하는 NPC 자리에 있는 분이다. 아무리 은인이라고 하더라도 한낱 등반자가 저리 말했다는 사실을 안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노성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그의 예상과는 달리 공방주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크흠, 그분께서 그리 말하셨다면 어쩔 수 없지.”
“예?”
“아, 혹시 그분이 따로 하신 말씀이 없으셨나?”
그것으로도 모자라 직접 나설 채비까지 하는 그를 보고는 다켄은 서둘러 대답했다.
“음… 아! 있었습니다.”
“옳다구나! 그거구나! 그래, 따로 한 말이 뭐지? 난 괜찮으니 그분이 하신 말을 그대로 말해 보거라.”
“…….”
방긋 웃는 공방주의 말에 다켄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바로 직전에 신한별이 분노 어린 목소리로 말했던 내용이 떠올라서.
그래도 명색이 그의 상사이자, 공방을 책임지고 이끌어 가는 주인이다.
암만 그대로 전해라고 해도 그의 앞에서 ‘공방 엎어지는 꼴 보기 싫으면 5분 내로 오라는 말’을 내뱉을 순 없었다.
한참 식은땀을 흘리며 고민을 반복하던 그는 갑자기 번뜩인 이야기를 떠올리곤, 그걸 그대로 말했다.
“오기 전에 필요할 거 같으니 최대한 두꺼운 공책 몇 권과 펜을 들고 오라고 하셨소. 헌데 그게 무슨 뜻입니까? 공방주님이라면 알아들으실 거라고 했는데….”
“…….”
“저기 공방주님?”
그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일전의 일을 떠올리곤 머리에 벼락이라도 떨어진 듯 바짝 얼어붙었다.
최대한 두툼한 몇 권의 공책.
그 말의 의도라면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은인… 아니, 그 망할 것이 드디어 벼룩의 간까지 빼먹으려고 하는구나.’
공방주는 훤히 보이는 앞날을 예상하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억울하면 어쩌겠는가.
은인이 까라고 하면 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