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화
〈일정 장소를 찾는 조건을 해결하여 23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24층으로 이동합니다.〉
* * *
〈24층입니다.〉
〈이번 층의 컨셉은 재해- 전염병입니다.〉
〈24층의 고유 패널티로 인해 착용하신 무구나 지니신 아티팩트의 효과 및 플레이어의 힘이 70% 감소합니다.〉
〈일정 조건을 클리어하시거나 15일 동안 버티시면 됩니다. 그럼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파아아앗!
하늘에서 떨어진 섬광과 함께 우리는 다음 플로어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시스템창의 내용을 확인했다.
시스템창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번 층의 주요 위협은 전염병.
‘전염병이라….’
이전 층과는 달리 직설적이지 않고 포괄적인 단어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염병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사람이나 동식물 같은 매개체를 통해 전염되는 병이라던가, 썩은 음식과 같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병 등과 같이 그 종류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이딴 식으로 알려 주다니 불친절한 거에도 정도가 있지.
탑에게 따져 묻기 위해 시스템 창에 손을 대려는 그때였다.
“쿨럭쿨럭!”
함께 있던 남자가 기침을 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가 입에서 손을 떼자 검붉은 혈흔이 묻어 나온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의 몸을 부축하려는데, 남자는 익숙한 손동작으로 주머니에서 주사기를 꺼내서 약물을 정맥에 투여한다.
얼마 가량의 시간이 흘렀을까.
“크흡! 허억허억!”
그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주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곁으로는 괜찮은 듯이 보여도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척으론 아슬아슬해 보였다.
“괜찮아?”
“익숙하니 걱정해 주지 않아도 괜찮소. 헌데 대협께서는 괜찮소? 저는 그나마 면역이 있어서 그렇지 보통 면역이 없으면 쓰러지기 마련인데….”
“아, 괜찮아. 익숙하니까.”
그의 물음에 나는 손을 휘적거리며 대답했다.
예전에도 생명체를 살상하는 부정에너지에 노출됐음에도 불구하고 괜찮았었는데, 이까짓 전염병 가지곤 별일도 아니다.
“나도 문제없다!”
둘리 역시 드래곤의 면역력으론 전염병 따윈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소리친다.
“휴우, 그건 다행이로군요.”
그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방금 전에 투여한 약으로 낯빛이 밝아지긴 했지만, 후유증이 여전히 남아 있는지 인상을 찌푸리는 남자.
나는 그를 향해 궁금증을 물었다.
“그래서 여긴 도대체 왜 이래? 시스템의 설명에는 전염병이라던데 무슨 병인데.”
“아쉽지만 저 또한 무슨 병인지 모르오. 그러니 이곳에서는 물과 식량을 멸균하고 상처가 생기는 것을 최소화할 수밖엔….”
결국 그의 말을 종합하자면 미지의 질병이라는 건가.
모르는 병에 아픈 거만큼 힘든 고통은 없다.
병의 정체를 알면 바이러스를 통해서 해독약이라도 만들 테지만 그게 불가능하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해독약이라면…?’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순간 머리에서 그럴듯한 가설이 번뜩였다.
23층에서 목숨을 걸면서까지 포션을 구했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나.
그제서야 그의 행동이 퍼즐처럼 맞춰진다.
물론 그중에는 모순점 역시 존재했지만,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어 무시했다.
그 모순점은 천천히 알아내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내 무기를 수리하는 건 당장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이렇게 됐으니, 공방까지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어, 알겠어.”
나는 앞서 나가는 그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그를 뒤따라 얼마나 걸어갔을까.
머지않아 거대한 규모의 공방이 나타났다.
적어도 수백 미터는 떨어진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공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여기까지 느껴진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철을 두들기는 소리에선 강한 압박감마저 느껴졌다.
공방의 입구에 도착하자, 그는 열쇠를 이용해 문을 열었다.
문의 너머로 들어서자, 바깥이 투명하게 보이는 반투명한 원통을 지난다.
취이이익!
원통의 틈 사이로 하얀 분말이 뿜어져 나온다.
내가 일순 경계하는 기색을 보이자, 남자는 짧은 웃음기를 띠며 손을 제지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바깥의 세균을 사멸하는 소독제이니 말이오.”
미지의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방법이란 건가.
그런 내 추측이 틀어 맞았는지 그는 옅은 웃음기를 띠며 말했다.
“대협께서 예상하시는 대로 모든 위험 요소를 배제할 만큼 완벽한 건 아니오. 다만 없는 것보단 눈에 보이는 게 낫다는 거지.”
이른바 플라시보 효과.
그의 웃음기에는 약간의 씁쓸함마저도 느껴졌다.
그것도 잠시, 그는 표정을 달리하고는 원통의 출구를 열었다.
“환영하겠소! 탑 제일의 공방인 아눌드에.”
* * *
‘상황이 썩 좋지만은 않았지.’
남자의 배려로 객잔에 도착한 나는 공방의 상황을 떠올리며 찻잔을 기울였다.
이번 플로어의 컨셉은 전염병.
탑의 악명답게 24층의 대지에서 거주하는 사람은 거의 전염병에 걸렸다고 해도 무방했었다.
남자가 그토록 포션을 찾아 탑을 헤맨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정도로 심각했다면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하고 싶겠지.
준비된 다과를 즐기고 있을 무렵.
문이 열리며 지독한 인상의 노인이 들어왔다.
“특별히 별꿀 파라다이스제에서 직접 수입한 다과인데 어떠시오. 입에 맞으시나?”
“그쪽은?”
“아, 다켄 녀석이라면 구해 온 포션을 분석한다고 바쁘니 대신해서 공방의 주인인 내가 왔다네. 그 점은 넓은 아량으로 양해 부탁하지.”
다켄?
아, 그게 그놈의 이름인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짤막한 키와 근육질 몸매의 노인은 내 앞에 마주 앉았다.
“다켄의 말을 듣자 하니 자네가 포션의 샘물을 찾는 것에 큰 공을 기여했다지? 그 점은 공방을 대표하여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드리겠소.”
겉으로 보기에도 자존심이 강할 거 같이 생긴 노인은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래서 기껏 여기까지 찾아온 손님인데 궁금한 게 있나? 있으면 공방주로서 할 수 있는 대답은 해 주겠네.”
그의 말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잘됐네.
그쪽에 관해서는 나도 여러모로 느끼는 모순점부터 시작해서 물어보고픈 게 많았다.
그중에서도 제일인 것이 있다면.
“병에 감염되는 걸 보니 탑의 NPC도 탑에서 건 제약에 당하나 보지?”
“흐음…. 그래, 그것부터 물어보다니 등반자치고는 의외군.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일반적인 NPC의 경우는 아니지.”
“일반적이라니?”
잇따른 물음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안하게 됐지만, 그거까진 알려줄 순 없다네. 그건 공방주로서 할 수 있는 대답은 아니라서 말이지.”
뭔 개똥 같은 소리야.
궁금한 걸 물어보라고 해서 물어봤더니, 알려 줄 수 없다고? 말장난하자는 것도 아니고 저건 뭐야.
내가 노골적으로 인상을 구기자, 그는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아, 오해는 하지 말았음 하네. 내가 괜히 알려 주기 싫어서 심술부리는 건 아니네. 오히려 반대지.”
반대라고?
내 눈치를 살피던 노인은 몸소 행동으로 보였다.
“그야, 그대의 질문에 대답하면 등반자들은 못 알아듣거든. 나는 탑의 ⎯⎯고 원래는 ⎯⎯⎯⎯에 기존의 ⎯⎯⎯⎯는 다르다네.”
분명 그의 내 질문에 대답하는 듯 보였지만, 노이즈가 낀 듯이 들리지 않는다.
입 모양으로 말을 유추하려 해도 그마저도 인식이 되지 않았다.
어디에선가 한 번은 겪어 본 듯한 기시감.
‘그러고 보니 단체층에서 아티팩트를 얻었을 때도 설명창이 안 보였었지.’
상황은 다르지만, 그때 당시에도 지금과 비슷했었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노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대꾸했다.
“어쨌건 이런 식으로 탑이 제지를 하기 때문에 알려 줄 수 없다네. 탑의 본질과도 관련된 내용은 이렇게 제약이 걸린다네.”
“탑의 본질이라….”
그럼 그때 내가 얻었던 아티팩트도 탑과 깊은 관련이 있는 물건이란 건가.
그에게서 직접적인 정보는 얻어 내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수익은 있었다.
불만이 없다고 하면 거짓이겠지만.
빌어먹을 탑 때문에 아무것도 알 수 없는데 이걸로 만족해야지. 뭐 어쩌겠어.
“전염병이 문제면 공방의 위치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 되는 거 아냐?”
“허허, 그게 말처럼 편히 됐으면 우리들도 이 고생을 사서 하지 않았겠지. 왜냐하면 탑에서 ⎯⎯⎯⎯ 했기에 ⎯⎯⎯⎯로 ⎯⎯⎯⎯ 못한다. 어? 이것도 안 들리나? 이건 예상치 못했군.”
내 반응을 눈여겨보던 그는 의외라는 듯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것도 잠시. 그는 혀를 차며 서류 가방을 책상에 올렸다.
“쯧, 이런 영양가 없는 대화는 됐으니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까. 다켄한테 이미 들었다만 자네가 지닌 검과 아티팩트를 먼저 확인할 수 있을까.”
“그러던지.”
그의 물음에 검과 함께 성신의 숨결을 앞으로 내밀었다.
어디에선가 꺼내 온 돋보기로 그것들을 면밀히 살펴보던 그는 숨을 크게 삼켰다.
NPC로서 다양한 무기를 접해 본 그로서도 놀랄 만한 물건이라.
그럼 그렇지.
내가 저걸 얻기 위해서 튜토리얼과 탑에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당연한 일이다.
어깨를 으쓱이고 있을 무렵, 그는 아티팩트를 내려놓으며 평가를 내렸다.
“다켄에게 뛰어난 물건이라곤 들었지만, 녀석 눈이 없군.”
“음?”
생각 외의 평가에 나는 한쪽 눈썹을 들썩였다.
이것들이 뒈지려고 환장했나. 이런 것들이 탑 제일의 공방이라고?
그런 거창한 타이틀을 단 사람이 누구야. 아무래도 눈이 삔 상태에서 뇌물을 받을 데로 처먹은 모양인데….
저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가려던 순간, 그가 뒤이어 말을 이었다.
“이런 귀물을 물건이라고 일축하다니! 그놈은 내가 정신 교육을 철저히 해 두겠네.”
“이제 보니 뇌물이 아니라 바람직한 돈이었네.”
“…응? 지금 뭐라고 했나? 어쨌든 간에 이런저런 사족은 됐고, 이런 귀물을 직접 손보려면 인력도 재료값도 엄청날 텐데….”
“그래서? 더 할 말이라도 있어?”
“큼큼, 걱정은 말게나. 값은 전부 공방에서 지불한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으니.”
그렇게 말하는 그의 안색에는 욕망이 한가득했다.
이걸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듯한 얼굴.
감정을 내색하지 않은 채, 무표정으로 있자 노인은 챙겨 온 서류를 테이블에 펼쳤다.
“자네에게 약속한 건 공방에서 일반적인 고객으로서의 제작이라네. 그대로 진행해도 상관은 없겠지만, 여기에서 자네가 값을 더 치른다면 무기의 제작 시기를 1순위로 배정 그리고 최고의 인력과 재료들로 할 수 있지. 참고로 그 비용은….”
그는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영수증을 건넸다.
영수증을 확인한 나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금액의 단위를 세었다.
당연히 제일의 공방이라는 타이틀만큼 금액은 상상 이상이었다.
억 소리가 난다고 해도 모자랄 판이니까.
“껄껄, 애송이 그리 놀랄 건 없다. 당장 비용을 못 챙긴다고 해도 은인인 자네를 못 본 척할 리는 없으니.”
노인은 웃는 것도 잠시, 상인으로서의 눈을 번뜩였다.
“자네에겐 특별히 비용을 최소한으로 해 주지. 다만 자네는 향후 1년간 공방에 소속되어 같이 각층에 숨겨진 샘터를 찾는 건 어떤가? 이 조건이라면 내 이름을 걸고 확실한 물건으로 만들어 주겠네.”
“됐어, 그런 제안은 필요 없어.”
“끌끌끌, 그래! 그거야말로 좋은 선택일세, 앞으론 내가 자네를 도맡아서 잘 맡을… 어? 자네 방금 뭐라고……?”
“뭐긴 뭐야. 그딴 제안은 제안 필요 없다고.”
호기롭게 제안한 내용이 단번에 거절당할 줄은 몰랐던 그는 불쾌한 기색을 내보였다.
“이 좋은 기회를 날릴 셈인가?”
“글쎄다?”
배려 따윈 필요 없다.
나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협상테이블에 두 팔을 올렸다.
“그전에 하나만 물어보자, 23층에서 갖고 온 포션. 그걸론 터무니없이 부족하지? 너희들의 병을 치료하기엔.”
“…….”
내 물음에 그는 인상을 찡그리며 침묵을 유지했다.
포션의 효과가 좋다고 하더라도 C급으로는 상태를 호전하는 것에 그친다.
병에서 벗어나려면 많은 양의 포션을 꾸준히 복용해야 할 테지만, 수량에는 한계가 있다.
그들이 아무리 돈이 썩어 넘친다 해도 탑에 있는 포션의 수량은 정해져 있으니.
“그게 어떻다는 거지? 이제 와서 포션의 소유권을 주장할 셈인가.”
“에이, 설마. 뭐 그래도 상관없긴 하지만 그 정도로 야박한 놈은 아냐.”
이 영감탱이가 한두 번 속아 보셨나.
나는 의자에 기대며 양다리를 X자로 꼬았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꺼낸 또 다른 포션을 좌우로 흔들며 그에게 물었다.
“그쪽에게 필요한 걸 내가 갖고 있다고 하면 믿을래?”
믿는 것은 그쪽의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