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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년만에 귀환한 고인물-59화 (59/175)

제59화

쿠웅!

지면이 울리며 그 충격파로 천장에 달려 있던 종유석이 떨어진다.

보기에도 상당한 위치에서 떨어진 종유석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었다.

“제, 제기랄!”

천장 위에서 야속하게 떨어지는 비수를 본 남자는 빠르게 몸을 날렸다.

사정거리 밖으로 빠져나가기 위한 발악이었으나, 야속하게도 그의 몸은 따라 주지 않는다.

죽음을 앞에서 마주하는 공포는 상상 이상이었기에.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기 직전.

슈우웅! 콰앙!

빠른 속도로 날아온 풍압이 종유석을 박살 냈다.

덕분에 쏟아지는 잔해에 맞는 것으로 끝난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칫했다간 그토록 찾던 물건도 못 찾고 죽을 뻔했다.

그는 놀란 가슴을 쓸어 안으며 풍압이 날아온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만한 괴수를 상대하는 와중에도 이쪽까지 신경을 쓰다니.”

놀랍다 못해 입이 쩌억 벌어질 정도다,

꽤나 떨어진 거리였지만, 얼마나 치열한 전투인지 피부가 따가워졌다.

‘치열한 게 아니라 대협께서 일방적인 건가.’

남자는 헛웃음을 흘리며 말을 내뱉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는 괴수에 비해서 신한별이라는 플레이어는 시큰둥한 반응이었으니까.

오죽하면 지루하다는 듯이 하품을 하며 귀를 후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괴수가 지닌 아티팩트를 하나하나 해제해서 따로 챙기곤 속물적인 미소를 짓는….

아니, 그럴 리가 없지.

탑을 등반하는 등반자가 괴수를 상대로 저렇게까지 사리사욕을 챙긴다고?

물론 플레이어마다 개인적인 욕심은 있기 마련이지만 저렇게 저질스러울 리는…….

몇 번이고 확인해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된 거 같았지만, 그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잡으며 모르는 체했다.

“흠흠,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거지.”

그는 헛기침하며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서둘러 화제를 바꾸긴 했지만, 빈말로 한 말은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장인으로서 살아온 그는 무예에 대해선 깊은 조예는 없었다.

하지만 평범한 그의 눈썰미로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신한별이라는 플레이어의 강함에 대해서.

“적어도 23층에 있을 만한 실력은 아니로군.”

난세의 호걸이라 불러도 부족함 없는 실력,

비록 지금은 탑에게 영혼이 묶여 NPC로서 존재하는 그였지만, 그 사실은 뻔히 알 수 있었다.

특히나 예전에는 그와 같은 처지에 처해 있었으니까.

그는 고개를 저어 상념을 치우곤, 신한별의 전투를 눈에 똑똑히 새겼다.

‘만약에 저런 실력으로 우리 공방의 검을 들고 활약한다면…!’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 주는 격이다.

그가 탑에서 활약하면 할수록 공방도 지금의 이상으로 이름이 드높아지는 것도 기정사실이었다.

남자는 필사적으로 신한별의 전투를 눈에 담았다.

* * *

“에취!”

나는 검을 휘두르다 말고 재채기를 하며 주변을 슥 둘러봤다.

누가 염탐이라도 하나, 아까 전부터 묘한 시선이 느껴지는 기분인데?

묘한 느낌이 들었으나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괴수의 왼팔을 베었다.

투둑!

눈 깜짝할 새에 괴수의 왼 팔뚝이 땅바닥을 나뒹군다.

뒤늦게 팔 한쪽이 사라졌음을 깨달은 괴수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당장에라도 내 목을 베어 버릴 듯한 살기가 이따금씩 찔러 댔지만, 손을 휘저어 일단락시켰다.

저따위 힘으로는 자극도 안 된다.

더 이상 볼일도 없었기에 놈을 향해 빠르게 파고든 다음, 정권을 날렸다.

간단하면서도 묵직한 일격이 놈의 얼굴에 꽂힌다.

콰득!

회전력을 더해 허리의 힘을 주자, 괴수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터졌다.

두말할 여지도 없는 즉사.

머리를 잃은 괴수의 몸통은 그대로 힘을 잃고 지면에 쓰러진다.

나는 손등에 묻은 괴수의 피를 툭툭 털어 내며 검을 집어넣었다.

“역시 별 볼 일 없는 놈이네.”

상황을 갈무리하며 발길을 돌리자, 그곳에는 당황한 낯빛의 남자가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뭘 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그는 넋을 잃은 눈으로 공책을 붙잡을 뿐이었다.

“거기 서서 멍하니 뭐 해? 입에서 침 흐르니까 그거나 닦고 빨리 움직여.”

“네…넵. 알겠소!”

신경질적으로 구박하자, 남자는 소매로 입가를 훔치며 서둘러 공책을 덮는다.

그의 시선은 괴수의 시체에 머물다 말고, 동굴의 안쪽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정처 없이 움직이고 있을까.

슬슬 지루해질 찰나, 어느샌가부터 바닥에서 물이 출렁거렸다.

“움?”

물에 바지의 밑단이 젖었으리라는 생각과는 달리, 어떤 이유에선지 젖진 않았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피로가 회복되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예상 밖의 상황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바로 옆에서부터 따라오던 남자가 정면을 향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 묵묵히 따라가자, 곧이어 새파란 물이 솟아오르는 샘이 나타났다.

‘물이 어디에서부터 생기나 싶었는데 여기에서 나오는 거였나.’

신기한 눈빛으로 공동을 둘러보는데, 샘을 바라보던 남자는 눈물을 흘렸다.

“크흑… 드디어… 드디어 이곳에… 사형들 제가 도착했습니다.”

그는 감격에 벅찬 듯이 눈물을 흘린다.

그런 그를 지켜보던 나는 혀를 내둘렀다.

‘쟨 왜 여기서 신파극을 찍고 있어?’

반응으로 추측하건대 그가 반년이 넘도록 찾고 있던 장소는 바로 이곳인 듯했다.

하긴 반년 동안 여길 찾기 위해 고생했다고 하니, 괜히 분위기를 말아먹진 말자.

한 번뿐인 시간인데 찬찬히 즐기게 해 줘야겠지,

나는 그를 뒤로하고 물이 솟아 나오는 샘을 향해 집중했다.

〈샘물(C)〉

- 성신 카르텔의 갸륵한 은혜로 지하로부터 성수가 흘러나옵니다.

-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으니 오염되지 않게 주의 바람.

- 이런! 성신의 성수라고 해서 이걸로 배를 채우는 일은 없도록 합시다. 약도 과하면 독이 되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내 예상대로 샘물에서부터 시스템이 반응했다.

그 다음으로 시스템에 적혀 있는 익숙한 이름에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분명 카르텔이라면…’

저번에 단체층에 머무를 당시에 성녀가 추종하던 신의 이름이었지?

“그러니까. 종합하자면 이게 성신인가 뭔가 하는 그 카르텔한테서 나오는 액체라는 거지?”

쓰벌, 있는 그대로 말하니까. 어감이 좀 거시기한데.

어쨌든 간에 여기에 적힌 내용에 따르면 무한히 솟아 나오는 포션을 얻을 수 있다.

무한 리필로 즐길 수 있는 포션이라는 점에서는 꽤나 매력적이긴 한데….

‘겨우 C급이면 별거도 아니네.’

시스템의 설명을 읽은 나는 고개를 돌렸다.

끊임없이 포션이 솟아 나온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지만, 포션 자체의 성능에 관해서라면 그다지 눈길이 가지 않았다.

내 수중에 있는 물건과 비교하면 한참 차이가 나기 때문에.

당장 팔이 절단되어도 바로 붙일 수 있는 포션이 있는데, 겨우 이런 것 가자고 성에 찰까.

물론 어디까지나 내 관점에서 그렇지. 그의 시선에서는 금은보화보다도 귀하게 느껴질 터였다.

“찾으러 다녔다는 게 결국 이거야?”

“그렇소. 사정이 있는 바람에 포션을 필요로 해서 제가 직접 왔소이다.”

“흐음? 사정 말이지. 그동안 나한테는 한 번도 안 알려 준 그 사정?”

“…….”

내 물음에 그는 난처한 얼굴로 입을 닫았다.

한참 동안 고민하다 말고 그는 힘겹게 입을 뗐다.

“때가… 때가 되면 대협께도 알려 드리겠소. 송구하게 됐지만 지금은 좀 그렇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됐어, 나도 남의 집 사정 따윈 딱히 안 궁금해.”

“…….”

그냥 해 본 말이다.

손을 툴툴 털며 간단히 넘기자 그는 감사의 인사로 고개를 푹 숙였다.

인사를 적당히 받은 후, 나는 샘에서 솟아나는 물을 손으로 떠 한입 마셨다.

“캬, 물맛은 좋네.”

암, 그럼 여기까지 어떻게 고생해서 왔는데 물맛이라도 나쁘면 안 되지.

마치 산 중턱의 약수터에서 물을 떠 마시는 듯한 광경에 그는 흘낏 놀란다.

과연 이래도 되냐는 듯한 눈빛.

생각해 보니 이거 저 성신인가 뭔가 하는 녀석의 신도가 보면 엄청난 불경을 저지르는 셈이려나.

객관적으로 보자면 건들건들한 자세로 신의 액체를 손으로 퍼마시는 셈이니까.

‘뭐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어차피 나한텐 신앙심도 없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나는 대충 넘기곤 그의 등을 걷어찼다.

“뭐 해? 여기에 있는 물 때문에 왔다면서 지금 안 가져가면 나중엔 없다?”

“아, 알겠소!”

언제 왔는지 둘리까지 가세해서 샘물을 빠르게 흡입하자, 그는 새파래진 얼굴이 되었다.

그는 서둘러 가방에서 각종 부품들을 꺼내 조립하기 시작했다.

아티팩트에 대해선 문외한 나조차도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의 손놀림.

한참의 시간 끝에 조립을 끝내고는 그는 아티팩트의 입구 부분을 샘에 담갔다.

위이이잉!

그러자 강한 흡입력과 함께 아티팩트 속으로 포션이 들어간다.

빠른 속도로 수위가 줄어드는 샘.

그는 샘이 밑바닥을 드러내고 나서야 아티팩트는 작동을 멈췄다.

경이로운 모습에 나는 쩍 벌린 입을 닫았다.

“모든 건 대협 덕분입니다! 이 은혜는 두고두고 잊지 않겠습니다!”

어, 그래. 나도 이번이 내 덕분이라는 건 알고 있어.

“근데 말로만?”

“예?”

“별건 아니고, 이런 계산은 나중에 딴말 나오기 전에 확실하게 해 둬야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도 있다잖아.”

“대협 그건 이 상황에서 쓰이는 말이 아닌데….”

“…….”

아무 말 없이 침묵하자 그는 헛기침하며 대화를 이었다.

“큼큼…. 대협의 말씀대로 중요한 건 말이 아니라 안에 담긴 진의겠죠. 다음 층엔 공방이 있으니 그에 대한 보상은 확실하게 쳐 드리겠소!”

“확실하지?”

“물론이오. 나름의 보상을 챙겨 둘 테니 걱정 마시오. 우리 공방은 손님을 기다리게 할지라도 은인을 못 본 체하진 않소.”

남자는 가슴을 활짝 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표정에서부터 공방에 대해서 얼마나 깊은 소속감과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지 잔뜩 느껴졌다.

나는 그에 화답하듯 옅은 웃음을 지었다.

“몰랐는데 아눌드 공방은 통이 큰가 보네.”

“예?”

“이쪽에서 뭘 요구할지도 모르는데 보상을 확정 지어 주는 걸 보니까 말이야.”

“…….”

어째서 그게 그런 이야기로 이어지지?

보통이라면 서로에게 감탄하면서 적당히 포장한 칭찬을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문득 남자의 머릿속에서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것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적어도 나한테서 돈 얘기를 꺼냈다면 끝장을 봐야 했기에.

심란한 얼굴을 짓고 축 늘어진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혹시나 싶어서 그러는데 네가 보상을 준다고 했던 거 강요는 안 했어.”

순간 그의 얼굴이 아연해졌다.

보상을 쳐 주겠다고 말은 했어도 그리 비싼 것을 원하진 않을지도 모른다.

남자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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