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화
잇따른 발언에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를 바라봤다.
단순히 허세에서 비롯해 던진 말인 줄 알았는데, 그는 비장하기까지 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본다.
저건 진심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본능적인 느낌에 나는 퍼뜩 허공에 손을 뻗어 물건을 꺼내 들었다.
〈성신의 숨결(A)〉
- 무기나 방어구에 성신의 숨결을 불어넣어 특수 효과 추가및 강화를 합니다.
- 대장장이 클래스의 직업을 가진 자가 제련할 시 효력이 상승합니다.
혹시나 하는 심정에 고이 챙겨 놨던 물건.
내가 지닌 아티팩트를 남자에게 건네자, 그는 눈을 번쩍 떴다.
지금까지는 흐리멍덩한 눈이라면, 아티팩트를 본 순간부터는 사냥감을 눈여겨보는 포식자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분위기만으로도 압도된다는 표현은 바로 이럴 때 사용하는 단어이리라.
말없이 아티팩트를 지켜보던 그는 안광을 번뜩였다.
“대협, 이 물건은 도대체 어디에서 얻으셨소.”
“탑을 등반하면서 보상으로 얻었는데 그건 왜?”
“허긴… 당연한 건데 괜한 질문이었구만.”
홀로 고개를 끄덕이던 그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내보였다.
한참의 고민 끝에 그는 내 눈을 직시하며 직설적으로 말했다.
“대협 혹시 물건과 검을 우리 공방에 맡겨 주실 생각이 없소? 도움을 받았으면 보답하는 것이 인간 된 도리, 이번 일만 잘 해결된다면 공방의 명예를 책임지고 꼭 맡아 주겠네.”
도대체 이게 뭐라도 되는지 그는 공손한 어조로 청해 왔다.
남자와 아티팩트를 번갈아 보던 나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게 웬 떡이야.’
역시 사람은 길게 봐야지 된다니까.
탑을 등반하면서 언젠가는 공방에 맡기려고 했는데, 탑에서도 최고라 불리는 공방에서 알아서 맡아 준다고?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두 손 벌려 환영이지.
나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방 쪽에서 원한다면 나쁜 것도 없지.”
“감사하오! 이 검은 저희 공방에서 싼값으로 해 드리겠습니다.”
“싸게?”
“네. 거래 상대가 대협이시니 최대한 값싸게 해 드리겠소.”
“싸게 해 준다면 나야말로 고맙지. 그런데 얼마나 싸게 해 줄 생각인데?”
“예? 그건 어찌….”
본격적으로 돈 얘기에 들어가자, 그의 눈이 뱁새처럼 가늘어졌다.
“에이, 그리 긴장 안 해도 돼. 원래부터 없는 놈이면 몰라도 내가 가격을 후려칠 놈은 아니잖아. 하나 나중에 서로 괜한 오해로 여러 말이 나오지 않게 미리 정해 두자는 거지.”
“허… 하긴.”
나는 가볍게 너스레를 떨자 그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의 입장에서 봐도 썩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으니까.
만약 그가 공방에서 조금이라도 재정을 맡아 봤다면 돈 문제가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탑에서 돈 때문에 살인멸구가 벌어진다는 소문은 꽤 흔하니 말이다.
굳이 탑이 아니라도 지구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렇다면 제값의 30퍼센트를 깎아 드리겠소.”
“30퍼센트라….”
“왜 그러시오? 혹여 금액에 문제라도 있나?”
“아니, 그건 아닌데. 내가 뼈 빠지라 고생하면서 갖고 온 물건의 가치가 겨우 30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나 새삼스럽게 느껴져서.”
“새삼스럽다니 그게 무슨 뜻이오?”
“뭐, 나야 그쪽에서 직접 공방의 명예를 지킨다고 하니까. 맡겨 ‘주는’ 거지. 값이 비싸면 굳이 안 맡겨도 상관없거든.”
가볍게 툭 던진 말에 그의 어깨가 한 차례 들썩인다.
착각인가?
“공방의 명예.”
“…….”
동물도 안 들릴 정도로 아주 작게 중얼거리자, 그의 어깨가 가볍게 움찔한다.
이걸로 두 번째.
“공방.”
“…….”
세 번째.
“명예.”
“…….”
그의 어깨가 장구라도 된 듯이 연신 들썩인다.
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의 볼에서도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 그러고 보니 탑에서 첫 번째가 아눌드 공방이라면 두 번째로 가는 공방은 어디더라?”
커뮤니티를 열어 보며 다른 곳을 알아보는 시늉을 하자, 그는 내 팔을 붙잡으며 만류했다.
“흠흠, 대협 생각해보니 가격을 잘못 책정했던 모양이외다. 제값에 50퍼센트를 깎아 드리지오.”
“오십 퍼센트?”
“그렇다오. 우리 공방에서 취급하는 VIP의 최대 한도….”
“그러니까. 제일의 공방이라는 곳에서는 인심이 절반밖에 안 된다는 거네?”
“아니….”
남자는 말을 이으려다 멈췄다.
탑에서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플레이어와 흥정을 해 본 그로서는 알 수 있었다.
잘못 걸려도 완전히 잘못 걸렸다는 것을.
여기에서 약속을 무른다 해도 계약을 한 것은 아니니 그에게 있어서 직접적인 타격은 없다.
하나 공방은 장비를 제작하고, 그 장비를 사용한 자가 이름을 떨칠수록 자연스레 공방의 명성이 드높아지는 법.
만일 물건을 다른 곳에 뺏긴다면 그 공방의 명성이 올라가게 내버려 두는 꼴이었다.
‘쯧, 안 그래도 다른 공방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던데.’
다소 고혈은 있더라도 향후를 생각하면 공방에서 절반 이상을 지불한다 해도 싸게 먹히리라.
“알았소. 원래는 안 되는 거지만 특별히 60퍼센트 할인된 가격으로 쳐 드리겠네. 어떻소?”
“두 번째로 가는 공방이 퍼큘레온 공방인가 보네.”
그의 발언에 아티팩트를 집어넣으며 커뮤니티를 확인했다.
“퍼, 퍼큘레온 공방은 왜…?”
“별건 아니고 거긴 명예가 얼마나 무거운가 싶어서.”
“그곳만은 안 되오!”
내 이야기에 남자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으며 말린다.
“안 되면?”
“…….”
이죽거리며 물어보자, 그는 한참 동안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하긴 업계에서 제일을 다투는 만큼 경쟁도 상당할 텐데, 그들에게 건네주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겠지.
“알겠소! 알겠다네! 대협의 말대로 아눌드 공방에서 값을 전부 지불하겠네!”
“그래도 사람이 염치가 있지. 명색이 공방에 의뢰를 맡기는 사람이 돈을 아예 안 낸다는 것도 좀.…….”
“그렇다면 기존에 얘기한 대로 30퍼센트로.”
“그래도! 굳이 공방에서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모든 금액을 내주겠다는데 사람 된 도리로서 이걸 거부하면 공방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셈이겠지?”
빙그레 웃으며 말을 돌리자, 그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검을 제련하는 건 지금 당장은 안 되오. 진행 중인 일이 마무리된다면 해 주겠소.”
방금 전과는 달리 단호한 어조.
그의 목소리에서는 절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뭐 나도 급한 건 아니니까.’
날이 날아가거나, 검이 당장 쓰지 못할 정도로 박살 난 것도 아니니 기다리는 것은 문제없었다.
그나저나.
“통신기도 찾았는데 여기에서 할 일이 더 있어?”
나는 막연한 의문에 질문을 던졌다.
꽈득!
그러자 남자는 주먹을 꽉 쥐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소. 이곳에서 꼭 찾아야 하는 장소가 있는데. 공간이 워낙 넓을 뿐만 아니라 토네이도가 거센 바람에…”
그의 마음을 증명하듯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며 피가 툭툭 떨어져 내린다.
그만큼 마음이 급하다는 증거.
무슨 일인진 몰라도 어지간히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지.
“그거 나도 한 번 찾아볼까.”
몸을 간단히 풀며 대답하자, 그는 의외라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대협께선 어째서…”
“어째서긴, 좋든 싫든 나도 일주일 동안 여기에 처박혀 있어야지 다음 층으로 갈 수 있는데 기왕이면 움직이는 게 낫지.”
게다가 움직이다 보면 저번처럼 나도 모르는 클리어 조건을 알지도 모르고.
‘무엇보다도 저놈이 찾아야지 내 검을 공방에 맡기든 말든 하지.’
약속만 해 놓고 수년 동안 못 찾고 있으면 그거만큼 낭패가 없다.
내가 함께하겠다는 말에 그는 방긋 웃으며 정면으로 나섰다.
“그럼 제가 앞장설 테니 대협은 뒤에서 따라오시오.”
“앞장서긴 누가 앞장선데? 반년 동안 통신기 하나 못 찾아서 쩔쩔맨 놈한테 뭘 맡겨.”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이 녀석의 속도에 맞혀서 움직이면 시간 낭비밖에 되지 않는다.
남자의 목덜미의 붙잡고는 어깨에 들쳐 업었다.
순식간에
“어… 어? 대, 대협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제가 충분히 뒤따라갈 수 있으니…”
“됐어. 거기에서 꽉 붙잡고 있어.”
거기에서 떨어지면 책임은 못 지니까.
그 말을 끝으로 지면을 도약해 토네이도를 향해 몸을 던졌다.
바로 직전까지 내 옷을 꽉 붙잡고 있던 남자는 고함을 지르며 눈을 까뒤집었다.
“대혀혀업어어어!”
협곡에는 한 남자의 장렬한 비명 소리만이 널리 퍼질 뿐이었다.
* * *
협곡.
시간은 흘러 태양은 언덕 너머로 모습을 감추고, 쌀쌀한 어둠이 감돈다.
거의 반나절에 가까운 시간.
남자는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비명을 질렀는지 거의 탈진한 채 내 어깨에서 기절해 있었다.
쓰러진 와중에도 삶의 의지만큼은 놓지 못한 모양인지 그의 손은 내 옷을 강하게 붙잡고 있다.
“대충 여긴 거 같은데 일어나 봐.”
나는 어깨에서 기절한 남자를 떨어뜨리곤 손바닥으로 뺨을 툭툭 건들었다,
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 동안 침음을 흘리던 남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흐… 흐헥! 혀… 형님들 드디어 저도 저승에 왔습니다. 웬 이상한 놈이 저를 등에 업곤 토네이도 사이를……”
“누가 이상한 놈이래?”
신경질적으로 되묻자 그는 움찔하는가 싶더니, 안심하는 기색을 보였다.
“후우, 대협이 눈에 보이는 걸 보니 아직 죽진 않은 것 같구만, 근데 뺨이 얼얼한 거 같은데….”
강제로 깨우기 위해 뺨을 친 후유증 때문인지 남자의 양쪽 볼이 퉁퉁 부어 있었다.
건들면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은 느낌에 나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아아, 그건 신경 쓰지 말고. 네가 일러둔 대로 수상한 곳은 다 찾아봤는데 여기 맞아?”
“으음?”
내 말에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새파랗게 굳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던 그는 재빠른 움직임으로 배낭에서 물건을 꺼내 긴 작대기를 흙탕물에 꽂는다.
작대기에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몸통 부분에 두 줄이 나타났다.
저 줄이 무슨 의미인 진 몰라도 제대로 찾아왔는지 그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진다.
“맞소! 대협, 여기가 맞소이다! 여기가 바로 제가 그토록 찾고 다녔던 곳이오!”
“그래?”
“그렇소! 여기는 외각이지만 분명 중심부로 들어선다면 제가 찾던 그것이…”
쿠웅!
그가 말을 전부 잇기도 전에 저 멀리서부터 진동이 느껴졌다.
상당히 떨어진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피부에 맞닿을 정도의 압박감.
“저기에 가면 제가 찾던…”
쿠웅! 쿠우웅!
“제가… 제가 그토록 목숨을 걸고 찾아왔던…”
쿠우웅! 콰앙! 쾅!
“목숨을 걸었던… 저희 공방을 한 번에 부흥시킬 수 있는…”
콰아앙⎯!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장소로부터 과감한 폭발음이 연속적으로 들려오기 시작한다.
이윽고 짙은 연기 속에서 지금까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위압감을 지닌 괴수가 나타났다.
괴수와 눈을 마주친 남자는 그대로 힘을 잃고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럴 수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그토록 찾고 있던 물건을 손에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남자의 주억거림을 끝으로 한편에서 나타난 괴수가 이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가공할 만한 살기가 피부를 찌른다.
모든 게 끝이라고 남자가 확신한 순간!
씌잉!
내가 휘두른 날카로우면서도 묵직한 일격이 괴수의 손아귀를 튕겨냈다.
단 한 번의 격돌에 뒤로 물러선 괴수는 나를 보며 경계심을 바짝 올린다.
나는 묵직한 검을 어깨에 올리며 남자를 향해 물었다.
“그러니까. 저 곰탱이를 해치우면 여기에서 볼 일은 끝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