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년만에 귀환한 고인물-54화 (54/175)

제54화

유채아에게서 온 쪽지를 확인한 나는 몸에 묻은 콜라를 정리하며 온천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느껴서.

나는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커뮤니티창을 급하게 켰다.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서 많은 플레이어들이 상주하는 채널에 들어갔다.

〈채널1〉

〈전채널 확성기〉 팬클럽 [Zㅣ존 신협단] 모집 안내: 신협을 존경하는 플레이어면 누구나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 와씨, 군침이 싹 도네.

⤷ 드디어 신협도 아이돌 데뷔냐고!!!

⤷ 엄마 난 커서 신협 같은 아이돌이 될래요! 엄마 난 커서 신협 같은 아이돌이 될래요! 엄마 난 커서 신협 같은 아이돌이 될래요! 엄마 난 커서 신협 같은 아이돌이 될래요! 엄마 난 커서 신협 같은 아이돌이 될래요!

⤷ 와 가슴이 웅장해진다

- ㅅㅂ 신협이 누군데 아까부터 ㅈㄹ이냐?

⤷ ㅉㅉ 탑 등반하면서 신협도 모르냐? 닌 그냥 지구에 내려가라

⤷ 탑을 등반하면서 신협을 모르는 놈이 있다? ㅋㅋㄹㅃㅃ

- 근데 이거 괜찮은 거임? 이런 식으로 세력 키우면 나중에 다른 길드에서 제재를 가하는 거 아님?

⤷ ㄹㅇ 그니까 걱정되는데

커뮤니티의 게시물을 확인한 나는 머리가 띵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혹시 몰라서 다른 채널을 확인해 봤지만, 어느 채널이라 할 것 없이 내 이야기로 가득했다.

무엇보다도.

“미친, 다른 건 몰라도 팬클럽 이름이 지존 신협단이 뭐야?”

보기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네이밍에 나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부여잡았다.

어떻게든 무마시키고 싶지만, 어떻게 된 모양인지 공지가 걸려 있었기에 대처할 방법은 없었다.

이 정도 화력이면 탑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가 보고도 남는다.

나는 서둘러 유채아한테 연락을 취했다.

- 확인했는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 [유채아]- 어? 한별 씨도 모르는 일인가요? 당연히 한별 씨가 기획한 일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것도 미친년이었네.

이런 기획이 있을 줄 알았으면 가장 먼저 말렸을 것이다.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자문을 구하기 위해 쪽지를 보내려는데, 유채아로부터 먼저 연락이 왔다.

[유채아]- 그러고 보니 저도 한별 씨 팬클럽에 가입했어요! 가입하니까. 한별 씨와 관련된 굿즈도 이것저것 주시더라고요. 아, 굿즈의 수익금은 전부 기부하신다고 하네요!!

- 굿즈를 준다고?

[유채아]- 네, 한별 씨 얼굴을 본떠서 만든 인형하고 씰하고 이것저것 있는데 멋있어요.

그 쪽지를 본 나는 확신했다. 그녀에게 기대를 걸면 안 되겠다는 것을 말이다.

게다가 일반적인 굿즈면 몰라도 내 얼굴을 본떠서 만들었단다.

그 뜻은 저 팬카페라는 곳에 들어간 놈들은 전부 내 얼굴이 박힌 굿즈를 들고 있다는 뜻이잖아.

상상만 해도 소름 돋는 상황에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튜토리얼에 있을 때조차도 이 정도로 당혹스러운 적은 없는데,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유채아로부터 다시금 쪽지가 날아왔다.

[유채아]- 아! 저쪽에서 멋대로 진행한 거라면 한별 씨도 곤란하시겠죠? 생각해 보니 방법이 하나 떠올랐어요!

오, 역시 최상위권에 속한 플레이어답게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건가?

그녀라면 인맥을 동원해서 당사자를 찾는 것은 간단할 터.

그 뒤에는 내가 알아서 잘 타이르면 될……

[유채아]- 기왕 상황이 이렇게 커졌으니 그냥 즐기세요. 괜히 생각하면 머리만 더 아프잖아요.

“…….”

누가 봐도 사심이 가득한 그녀의 쪽지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분명 저 녀석도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더 이상 그녀에게선 도움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였다.

마지막으로 팬클럽을 만든 본인에게 내려 달라는 쪽지만 보낸 채, 나는 시스템창을 껐다.

저 난장판을 계속 보고 있으면 두통만 더 심해질 거 같아서.

그리고 이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훌쩍 지났다.

〈12분 뒤에 21층으로 전이됩니다.〉

머지않아 21층으로 향한다.

최전선이 40층대라는 것을 생각하면 목표에 도달하기까진 딱 절반이 남은 셈이었다.

나는 간단히 몸을 풀면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21층부터는 다시 개인층이니까.”

나는 일전에 커뮤니티에선 본 정보를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변수가 많은 단체층에서 아무래도 제약이 많았으나. 개인층에서는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으니 내 무대나 마찬가지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띠고 있을 무렵이었다.

〈17층-19층 통합층의 순위권 통계가 집계되었습니다.〉

〈1위(신한별): +1034P〉

〈보상이 지급됩니다.〉

새롭게 뜬 시스템창과 함께 오른쪽 가슴에 뜨거운 인두로 지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아릿한 고통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옷을 벗어서 확인하니, 손가락 마디쯤 되는 표식이 가슴팍에 새겨져 있었다.

〈무한의 포켓(S)〉

- 물건이나 혹은 생명체를 용량 제한 없이 마음껏 수납할 수 있습니다.

- 대상에 오른손을 뻗고 의식하면 발동합니다.

- 아무리 세상의 모든 게 들어간다고 해도 납치 및 인신매매를 하는 범법 행위는 지양합시다!

시스템창의 설명을 읽어 보던 나는 피식 웃었다.

하여튼 매번 느끼는 거지만, 시스템의 설명은 왜 저따구인지 모르겠다.

설명은 그렇게 쳐도 확실히 S급 아티팩트답게 유용한 물건이었다.

지금까지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일일이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했었는데, 저런 게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간편하리라.

다만.

한 가지 불만이 있다면….

“이거 미친 새끼들 아냐? 사람 몸에 허락도 없이 문신을 왜 새겨.”

나는 퉁명스럽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비록 정신적 나이가 천 살(?)에 가까워서 그렇지. 육체적 나이는 지구에 있을 적과 마찬가지로 창창한 20대다.

벌써부터 건실한 청년의 몸에 문신을 새기는 건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심보인가.

혹시나 해서 침을 묻혀서 닦아 봤지만, 문신은 지워지지 않는다.

‘탑이 하는 일이 그럼 그렇지.’

뭘 기대하겠나.

나는 한숨을 푹 쉬며 가슴에 새겨진 문신을 손으로 털었다.

그러자 몸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온 보랏빛의 기운이 위를 뒤덮자, 문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재액의 가면을 사용해서 기존의 상태로 덧씌운 덕이었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파아아앗!

보상을 수령함과 동시에 천장에서 떨어진 새하얀 섬광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다음 층의 이동을 암시하는 섬광이다.

나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는 말했다.

“그럼 가 볼까.”

21층으로.

〈개인층 21층으로 이동합니다.〉

* * *

〈21층입니다.〉

〈이번 층의 컨셉은 재해- 화염입니다.〉

〈21층의 고유 패널티로 인해 착용하신 무구나 지니신 아티팩트의 효과가 70% 감소합니다.〉

〈일정 조건을 클리어하시거나 일주일 동안 버티시면 됩니다. 그럼 건승하기 바랍니다.〉

이어진 설명을 끝으로 화염으로 된 광활한 필드가 눈앞으로 펼쳐졌다.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당장에라도 용암이 분출할 듯이 생긴 활화산이 있었다.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떨리며, 숨을 내쉬며 호흡할 때마다 폐가 불타는 느낌이 들 정도.

확실하게 확답은 할 수 없지만, 체감상으로는 온도가 100도는 훌쩍 넘는 기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안 그래도 더워 죽겠는데 무슨 아티팩트 효과를 줄이고 있어.’

아니, 달리 말하자면 아티팩트의 효과가 30퍼센트나 발휘하고 있는데도 이 정도로 심각하단 건가.

그나마 SS+급이나 되는 백룡의 갑옷을 착용하고 있었기에 이 정도로 방열이 가능한 것이다.

나는 이마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훔치며 시스템창을 확인했다.

‘여기에서 일주일이라.’

주어진 미션의 내용만 보면 단체층에 있을 때보다도 훨씬 간단한 듯싶었지만.

난이도로만 따지면 개인층이 훨씬 높았다.

그 이유는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 어중간한 실력으로 버스를 타고 왔거나 템빨로 올라온 놈들은 전부 거르겠다는 거겠지.”

어떻게 생각하면 일종의 거름망.

안 봐도 눈에 들어올 정도로 뻔하지.

좀 덥긴 해도 나한텐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이 정도 더위야 튜토리얼에 있을 적에 비하면 선녀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적당히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거리를 거닐고 있는데, 방금 전부터 검붉은 연기를 내뿜고 있던 화산으로부터 불길한 감각이 느껴진다.

당장에라도 분화할 듯한 느낌.

21층에 도착할 때부터 화산을 관찰하던 나는 문득 불길함을 느끼고는 중얼거렸다.

“저거 지금 터지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연기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가 싶더니.

강력한 압력이 한 번에 터지듯 새빨간 화마가 간헐천처럼 뿜어져 나왔다.

뒤이어 분출한 용암이 파도처럼 밀려 나온다.

이번 층의 컨셉대로 완전히 재해나 다름없는 광경.

따지고 보면 재해 그 이상이었다.

하늘에서는 구름 사이를 뚫고 떨어진 수십 발의 바위가 이쪽을 향해 날아든다.

노골적이기까지 한 궤적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자세를 잡았다.

“저런 거한테 내가 질 거라고 생각했으면 오산이지.”

나는 오른발을 지면에 강하게 찍어 몸을 지지한 다음, 바위를 향해 힘차게 검격을 날렸다.

검격에 의해 바위는 허공에서 정확하게 이등분되어 바닥에 떨어진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나는 그대로 몸을 비틀어 회전력을 극대화시키고는, 검을 지면에서 쓸어넘기듯 상단으로 베어 올렸다.

무력에 의해 지면이 까뒤집히며 만들어진 잔해가 그 앞을 가로막는다.

잔해들은 마치 댐처럼 형태를 만들어내며 용암을 막아냈다.

“후우, 그래도 하나는 끝냈네.”

검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숨을 내쉬고 있을 때였다.

그 순간, 청명한 알림 소리와 더불어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일정 조건을 해결하여 21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22층으로 이동합니다.〉

나는 그 내용을 읽고는 한순간 넋을 잃었다.

“어?”

이번 층이 벌써 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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