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음, 뭐라고 쓰면 되지?’
나는 자판 위에 손을 올리며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매번 커뮤니티를 봐와서 깨달은 것인데, 그들 사이에서도 일종의 문화층이 형성되어 있는 것 같았다.
비유하자면 일종의 채팅 문화이려나.
가령 예를 들자면 음슴체나 반말, 혹은 짧게 요약하는 듯이 말이다.
커뮤니티에 글은 써본 적은 없지만 눈대중으로 많이 봐왔기에 적응한 데는 문제는 없으리라.
“대화 주제도 딱 내 얘기니까. 후기라도 적어두면 괜찮겠지.”
-진행자 그놈하고 붙어보니까. 별것도 없던데?
⤷ 이 새끼 뭐냐
⤷ 진행자하고 싸운 건 신협이 싸웠지 니가 싸웠냐ㅋㅋㅋ
⤷ ㅋㅋㅋ꿈이라도 꿨나 보지ㅇㅇ;
⤷ 원래 찐들 기본 소양이 망상임
- 윗댓ㅋㅋㅋ 뭐냐ㄹㅇ
⤷ 망상하는 건 방구석 찐들 특징이잖아
⤷ 아ㅋㅋ 일단 빵부터 사오라고ㅋㅋ
⤷ 빵셔틀이 말 대꾸?
예상 밖의 반응에 나는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뭐가 문제지?’
분명 다른 댓글과 비교해도 어색함은 딱히 느껴지지 않았을 텐데.
무슨 이유에선지 다른 댓글들과 비교해도 악플이 월등히 많이 달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원인을 찾아보고 있자 누군가 힌트를 알려줬다.
- 새꺄 사칭도 적당히 봐가면서 해라. 아니면 인증이라도 하던지
“아…!”
그제서야 이유를 알아차린 나는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인증을 안 하고 그냥 댓글을 올렸다.
하긴 아무런 인증도 없이 무작정 글을 남기면 사칭이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커뮤니티 기능에는 사진을 찍는 기능이 있다는 것을 퍼뜩 떠올린 나는 적당히 인증할 법한 것을 찾았다.
인증함 JPG.
무심한 어투와 함께 업로드한 것은 바로 누워 있는 둘리였다.
처음엔 뭔지 모르던 플레이어들도 금방 알아차렸다.
-이거 신한별이 데리고 다니는 펫이잖아.
⤷ 엥? ㄹㅇ?
⤷ 배경도 휴게 공간인 거 보니까 진짜였네ㄷㄷ
⤷ 와씨, 지금 걔 15층이라고 하지 않았음? 왤케 좋아 보임?
⤷ 그니까. 호텔인 줄
- 신협한테 빵셔틀이라고 한 새끼들 어디 갔냐ㅋㅋㅋ
⤷ 빵셔틀이 아니라 매점 주인이었네
⤷ 신협이면 셔틀 안 시키고 일진들한테 빵수금 시킨다고ㅋㅋㅋ
⤷ 찐들 PTSD 씨게 오겠네
- 신협 논란일자 “진행자는 내 빵셔틀.”
⤷ ㅋㅋㅋㅋ 얜 뭐냐
⤷ 신협이라면 인정이지
인증 한 번 했다고 수백 개에서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물론 이 중에는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 반대의 숫자가 더 압도적이었다.
적당한 대답이나 할까 하며 자판 위에 손을 올릴 때쯤, 어느 글이 눈에 띄었다.
-신협은 지금 뭐함?
지금 뭐하냐고?
나는 손에 쥔 콜라를 한 번에 원샷 하며 댓글을 적었다.
-침대에 누워서 콜라 마시는데
아무 생각 없이 적은 댓글.
하지만 내 의도와는 달리 그것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ㅁㅊ;; 15층인데 방안에 침대랑 콜라가 있다고?
⤷ 랭커들도 다들 한 번이라도 얻으려고 온갖 난리 치는데 실화냐ㄷㄷ
⤷ 애초에 그게 15층에서 가능한 거였음?
⤷ 신협이면 쌉가능이지
⤷ 하긴 진행자 그 새끼를 쥐 팼는데 안 될 건 없겠지
- 엄마 난 커서 신협이 될래요 엄마 난 커서 신협이 될래요 엄마 난 커서 신협이 될래요 엄마 난 커서 신협이 될래요 엄마 난 커서 신협이 될래요
⤷ 장래 희망: 은행
⤷ 난… 바퀴벌래 나오는 방에서 10분 동안 있어야 하는데 빈부격차 뭐임
“아, 다른 곳은 여기보다도 더하는가 보네.”
커뮤니티를 훑어보던 나는 확실히 체감했다.
전에는 그런가 싶다 하고 대충 넘겼었는데.
다른 플레이어들이 올린 휴게 공간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탄식 밖에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는 방도 없이 배란다만 나와 있는 사진은 모든 이들의 설움을 사기에는 충분했다.
어느샌가 커뮤니티는 나에 대한 주제에서 벗어나 자신의 휴게 공간의 이야기로 가득 찼다.
“대충 여기까지 할까.”
더이상 볼 것도 없겠다고 생각한 나는 커뮤니티창을 종료했다.
〈1분 뒤에 16층으로 전이됩니다.〉
덕분에 시간도 훌쩍 지났다.
나는 몸을 튕겨서 침대에서 일어나곤 눈을 붙이고 있던 둘리를 깨웠다.
“…으음, 한별 5분만 더… 5분만 더 자겠다.”
“5분은 무슨, 시간 없으니까 일어나. 아니면 내가 직접 깨워주랴?”
“아, 아니다! 내가 직접 일어나겠다!”
둘리는 잠꼬대를 하는 것도 잠시, 내가 주먹을 움켜쥐며 다가가자 화들짝 놀라며 일어난다.
허겁지겁 준비하는 녀석을 뒤로하고 나는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이제 16층인가.”
빠르다면 빠를 수도, 느리다면 느리다고도 할 수 있는 속도,
여러모로 다양한 생각이 들게 했지만 상관없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처럼 적당히 할 생각은 없었기에.
이왕 하는 거면 최고,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1등이 내 목표니까.
〈16층으로 이동합니다.〉
〈이번 플로우의 컨셉은 ‘주연’입니다.〉
* * *
파아앗!
16층에 도착한 직후.
눈을 뜨자 나보다도 먼저 도착한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들의 시선을 한 몸에 차지하던 나는 의아함을 느끼기도 잠시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설마 내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거였나.’
하긴 단체층에서는 모든 인원이 모이면 해당 층이 시작된다.
다른 플레이어들에 비해 휴게 공간에서 보낸 시간이 길다는 것을 감안 하면 그런 듯했다.
“그래도 숫자가 이것밖에 안 되나 보네.”
나는 곁눈질로 플레이어들을 살펴보며 혀를 내둘렀다.
처음에는 60명으로 시작했던 인원은 이제 와선 겨우 30명 남짓.
아무래도 13층에서 많은 인명 사고를 낳았던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한국의 멸망이 시작되는 장소에서 3개의 재액을 상대했다.
반대로 생각하면 오히려 이만큼이나 살아남은 게 용할 정도.
원래대로였다면 11층에서 60명 중 절반이 탈락했을 예정이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썩 나쁘진 않은 셈이다.
“그건 그렇고 이번엔 또 뭐야.”
나는 인상을 구기며 주변 풍경을 바라봤다.
전체적으로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는 석실.
벽에는 창문이나 문이 전혀 달리지 않았기에 갑갑한 기분마저 유발한다.
여러모로 불쾌한 장소다.
애초에 따지고 보면 탑에서 불쾌하지 않은 장소가 어딨다면서도…
‘뭐, 따지고 보면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
이제 모든 플레이어가 모였으니 곧바로 16층이 시작될 터.
본래 진행자였던 악동 녀석이 탑에게 끌려갔으니, 이번 층의 진행은 어떻게 될까.
그런 막연한 의문을 가지며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푸스스스.
“응?”
천장을 바라보던 나는 미약하게나마 들린 묘한 소리에 주변을 둘러봤다.
혹시나 해 확인했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의 반응은 없었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데, 둘리가 귀를 쫑긋거리며 말을 건넸다.
“한별, 천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어…? 너도 그래?”
“그렇다! 음, 철이 쭈그러지는 소리 같다.”
뭐야 그게 진짜였어.
인간보다도 수십, 수백 배나 민감한 귀를 가진 드래곤의 말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철이 쭈그러진다고?
나는 의아한 눈빛으로 천장을 바라봤다.
듣고 보니 기분 탓인진 몰라도 천장이 점차 찌그러지고 있는 듯한…
“어? 잠만 천장이 왜 찌그러져?”
상식적으로 수십 명이 모여있는 장소에서 천장이 찌그러지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지구면 몰라도 탑에서 안전 부실이 일어날 리가 없다.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랐을 즈음.
천장은 큰 소리와 함께 기우뚱하더니, 그대로 수평을 잃고 낙하했다.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철근이 머리 위로 떨어진다.
안 봐도 뻔한 탑의 수작.
“그럼 그렇지. 내가 한두 번 속았나.”
그만큼이나 속고 또 속으면 내가 호구 새끼지.
나는 손으로 풍압을 일으켜 철근을 날렸다.
남은 잔해물은 이 자리에 같이 있던 황결이 식물을 성장시켜 떠받혔다.
거의 본능적인 감에 의존한 반응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다수의 플레이어는 놀란 낌새였다.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천장부를 잃은 벽은 사방으로 넘어졌다.
쿠웅⎯!
웅장한 소리가 들리며 지면에서 일어난 모래 먼지가 사방으로 풍겼다.
“쯧, 하여간 매번 같잖은 짓이나 하긴.”
탑이나 악동이나 다를 게 없다니까.
나는 혀를 내차며 풍압을 이용해 주변에 잔뜩 깔린 먼지를 걷어냈다.
그리고는.
주변으로 펼쳐진 광경을 보고는 자리에 있는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지면을 제외하곤 모든 방향으로 끝도 안 보이는 은하수가 펼쳐져 있었다.
하늘에 있는 수만… 아니 이루 셀 수도 없을 정도의 별.
그 아래로 별똥별이 비처럼 끝도 한도 없이 떨어진다.
모든 풍경은 우리들을 전율하게 만들었다.
오죽하면 둘리는 아예 입을 벌린 채 멍을 때리고 있을 정도.
나는 풍경을 감상하다 말고 허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우리한테 이걸 보여주는 의도가 뭐지?”
[어이쿠, 이미 알고 계셨군요. 역시 이례적으로 업적을 획득하신 분답게 상당하시군요.]
화려한 은하수의 뒤에서 중후한 중절모와 파이프를 문 진행자가 나타났다.
일전에 우리들을 맡은 악동과는 다른 존재.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악동보다도 더욱 상위의 존재처럼 느껴졌다.
내가 경계를 늦추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진행자는 지긋한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여러분도 시간을 낭비하고 싶진 않을 테니 간략하게 설명하도록 하죠. 이곳은 여러분들도 보다시피 거대한 천체입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
[별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죠. 가령 예를 들자면 견우와 직녀와 같이 말이죠.]
진행자는 연무를 내뿜으며 끝없이 펼쳐진 별들을 가리켰다.
[자질구레한 건 전부 건너뛰고, 여러분들은 이곳에 있는 별들을 선택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영화나 드라마, 소설등등 다양한 창작물의 이야기를 겪을 수 있죠.]
“창작물의 이야기?”
[네, 그렇습니다. 뽑은 창작물은 곧 16층에서 19층까지의 배경이 됩니다.]
오호라, 그런 거였나.
진행자의 설명을 듣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층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정해진 것이 없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다는 건가.
마치 이 은하수처럼.
[아! 물론 이야기는 창작물에 국한된다곤 할 수 없죠. 가령 예를 들자면 여러분들의 역사 또한 하나의 이야기일 테니까요.]
그는 나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고리타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여러분도 이해하실 수 있도록 직접 뽑아보도록 하죠. 그럼 신한별 플레이어 당신이 먼저 별을 뽑아보실까요?]
뜬금없는 진행자의 제안.
하지만 이에 대해서 반발하는 플레이어들은 없었다.
나는 분위기에 휩쓸려 앞으로 나섰다.
진행자의 설명에 따라 손을 앞으로 뻗자, 마치 모든 별자리들이 내 손 안에 움켜쥐는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하나를 뽑으면 돼?”
[그럼요. 이야기는 당신의 손으로 개척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해주는 게 아닙니다. 신한별 플레이어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나 잡아보시지요.]
“그럼 사양하지 않을 게.”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모든 은하수를 통틀어 가장 반짝이는 별을 잡았다.
내 손아귀에 들어온 별은 점점 부피를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진행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의미심장한 미소로 일관하며 입을 열었다.
[이런… 여러분들은 꽤나 재밌으신 곳을 뽑으셨군요.]
“재밌는 곳이라고?”
[그럼요. 제가 생각해도 여기만큼 재밌는 곳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는 입에서 파이프를 떼고는 어디에선가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점점 부피를 키워나가는 별을 지팡이로 툭 치자, 별은 우리의 몸을 전부 덮을 정도의 상당한 광량을 일으키며 빛을 발했다.
[자! 그럼 소개하겠습니다!! 신한별 플레이어가 뽑은 16층의 배경은 탑의 튜토리얼입니다!!]
“잠깐만 뭐라고?”
그 이야기를 멍하니 듣던 나는 얼빠진 표정으로 반 박자 늦게 반응했다.
시발? 그거 잘못 뽑은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