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콰드득!
단 한 방.
초고속으로 뻗은 한 방에 대장으로 보이는 언데드의 두개골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튜토리얼에서 가지각색의 언데드와 전투를 치러 본 경험자로서 확신했다.
이걸로 놈의 생명은 끝이다.
그리 생각하며 내뻗은 주먹을 거두려는데 생각지도 못한 이변이 벌어졌다.
-그에에에엑!
분명 끝이라고 생각했던 언데드의 손이 움직이더니 내 팔뚝을 빠르게 베고 지나갔다.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
아슬아슬하게나마 반응한 나는 놈의 손을 발로 걷어 차내고는 거리를 벌렸다.
언데드의 핵은 머리에 있을 터.
하지만 놈은 머리가 흔적도 없이 박살났음에도 멀쩡히 움직이고 있었다.
“탑은 튜토리얼하곤 다르단 건가?”
방심했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그야 튜토리얼에 있는 수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마주친 모든 언데드는 머리를 박살내면 그대로 힘을 잃고 쓰러졌다.
그런 고정 관념이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남아 있었던 탓이었다.
혀를 차며 왼팔을 바라봤다.
불행 중 다행히도 베이는 것과 동시에 반응을 해서 그런지 상처 범위는 비교적 얕았다.
그렇다곤 해도 적들로 넘쳐나는 적진 한가운데에서 부상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순 없다.
나는 우악스럽게 티셔츠를 찢어 왼쪽 팔을 지혈했다.
불편하긴 하지만, 금방 회복될 테니 별 상관은 없었다.
게다가…
“이 정도 부상이야. 튜토리얼에 있을 적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지.”
나는 시선을 돌려 상대를 바라봤다.
그러는 사이에 언데드는 완전히 박살 난 두개골을 수복하고는 자세를 잡았다.
나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회복 속도.
방금전이야 기습을 했기 때문에 상대를 빠르게 제압할 수 있었다.
반면 경계하고 있는 지금은 아까와 같은 기습이 두 번 먹힐 리는 없겠지.
뭐, 그렇다고 해도 별문제는 없다.
“기습이 안 통한다는 거지. 정공법이 안 통한다는 건 아니니까.”
1대1로 싸우면 금방 끝난다.
놈 역시 그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는지 사령술을 사용해 주변에 있는 언데드 군세를 진격시켰다.
‘일당백… 아니 일당천에 가까운 숫자인가.’
할만하네.
몸풀기로는 딱이다.
방금 전의 격돌을 통해서 놈을 쓰러뜨릴 방법도 막 떠오른 참이다.
가볍게 실험해보기엔 괜찮아 보인다.
들고 있던 철검을 땅바닥에 버리고는 등에 지고 있던 괴수의 뼈로 만든 검을 뽑아 들었다.
예전에 구매한 철검도 썩 나쁘지만은 않지만, 내 힘을 버티기에는 내구도가 별로였다.
“뭐니 뭐니 해도 이게 최고지.”
나는 양손으로 무기를 붙잡고는 자세를 취했다.
한 방울의 힘도 허투루 날리지 않는다.
검을 좌에서 우로.
허공을 세차게 가르는 궤적이 빛을 발했다.
부우우웅⎯⎯⎯!!
세찬 풍압과 함께 정면에 있는 모든 언데드들이 가루가 되어 소멸했다.
그야말로 추풍낙엽.
압도적인 광경이었으나.
이걸로 끝이 아니다.
사방에 깔린 수많은 언데드들은 물결처럼 넘실거리며 빈 공간을 즉각 채웠다.
물량을 쏟아부어서라도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놈을 바라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어느새 역전된 처지.
미안하게 됐지만, 이쪽은 한마디로 놓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켜며 오른발로 지면을 세차게 내리찍었다.
쿠구궁⎯
그러자 내 발이 맞닿은 지면부터 움푹 들어가더니 거대한 크레이터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지면이 일순 파도치더니 언데드들은 그대로 생매장됐다.
‘생매장은 아닌가? 저것들은 이미 죽었으니까.’
따지고 보면 원래 있을 자리로 돌아간 셈이었다.
잘됐네.
지하 깊숙이에 묻혀 있으면 번거롭게 부활할 일도 없다.
자질구레한 잡몹들은 쓰러지고 남은 개체는 이제 딱 하나.
나는 암흑 기운을 사용해 높은 상공에 떠 있는 놈을 바라봤다.
언데드 주제에 눈앞에서 펼쳐진 상황에 당황한 모양인지 인상에 바짝 찡그리고 있었다.
“왜 그래? 기왕이니까 얼굴 풀어.”
그러다간 주름 생길라.
아, 애초에 언데드니까 살아 있는 사람들처럼 주름이 생길 걱정은 없으려나?
편하네, 살기 위해서 아득바득거리는 우리와는 달리 이제 관짝에 들어가면 끝나니까.
“다른 놈들하곤 달리 넌 내가 고이 묻어줄 테니까. 언제든지 드루와.”
특별히 너만 특별 취급이다.
내가 손을 흔들며 도발하자, 녀석은 제대로 걸려든 모양인지 짙은 암흑 물질을 내뿜으며 이쪽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당장에라도 폭주할 듯이 날뛰는 마기.
한점에 응축된 마기는 마치 레이저처럼 내 가슴을 향해 쏘아졌다.
가히 성벽을 가볍게 꿰뚫고 남을만한 위력이었으나, 나는 별동요 없이 정면을 향해 검을 뻗었다.
엄청난 출력량으로 쏘아진 마기는 그대로 검의 궤적에 적중하며 옆으로 비켜나갔다.
쿠구궁!
비켜난 방향에 적중한 마기는 폭발하며 거대한 홍염과 토네이도를 만들어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보고 있었다면 놀라고도 남을 위력.
하지만 나한테 있어서는 산들바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놈을 향해 점프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로우킥으로 언데드의 대가리를 박살 냈다.
이거면 충분할 것 같이 보여도 쉽게 방심할 순 없다.
방금 전에도 두개골을 박살냈음에도 상대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재생했으니까.
그래서 직접 개안해낸 상대법은 아주 간단했다.
“머리가 박살 나도, 가슴뼈가 부러져도 재생한다고 했지? 그러면 아주 간단하네. 아예 복구도 못 할 정도로 몸을 가루로 만들어버리면 되잖아.”
아무리 언데드의 재생력이라고 하더라도 분명히 한계점은 존재했다.
아무런 제약도 없이 끝도 한도 없이 재생할 수 있다면 번거롭게 다른 언데드들로 이뤄진 군대를 사용하지 않고.
자기가 직접 전투에 나서서 싸우면 될 테니까.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는 뻔했다.
‘재생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물론 나는 그 한계를 모른다.
그렇기에 내가 낼 답변은 간단했다.
“재생력의 한계를 모른다면 지금부터 차차 알아가면 되잖아.”
궁금하면 직접 몸으로 때워서 알아내면 그뿐이었다.
무엇보다도 몸으로 때우는 거라면 자신 있다.
그대로 놈의 품속으로 파고 들어가 빗장뼈에 프론트킥을 날렸다.
다시금 바닥을 나뒹굴던 언데드는 벽에 부딪히고는 그대로 제자리에서 뻗었다.
어정쩡하게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야.
콰득!
나는 빠르게 재생하는 언데드의 팔을 밟아 가루로 만들었다.
전투에서 있어서 어쭙잖게 방심하는 것만큼 미련한 짓은 없다.
다 끝난 것 같더라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확인하는 것은 기본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습관처럼 남아 있었기도 했고.
두개골과 팔다리, 사지를 박살냈음에도 불구하고 언데드의 몸에서는 짙은 마기가 피어올랐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절로 숨이 턱턱 막힐 만큼의 농도다.
하지만.
“수작질은… 이 새끼가 누구 앞에서 수작질을 부리고 있어.”
나는 눈가를 일그러뜨리며 지면을 발로 찼다.
그러자 흙 밑에서부터 새하얀 뼈들이 폭발하듯이 튀어나왔다.
모르리라고 생각했다면 곤란하다.
내 눈을 피해서 부서진 뼛가루 일부를 가지고 지면에서 복구해낸다.
언데드 주제에 썩 나쁘지만은 않은 계획이었지만, 처음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은근슬쩍 내 시야에서 도망치려고 한듯했으나 이미 들킨 시점에서 실패한 거나 다름없었다.
나는 언데드의 심장부에 검을 쑤셔 박고는 강하게 비틀었다.
회전력에 의해 언데드의 남은 뼛조각이 먼지가 되어 아주 손쉽게 갈려 나갔다.
“끝인가.”
놈의 몸에 남아 있던 마기가 흔적도 없어진 것을 확신하고 나서야 나는 검을 거뒀다.
더할 나위 없이 아주 깔끔한 마무리.
그 증거로 나를 향해 달려오던 남은 언데드들도 힘없이 뼈가 분해되어 쓰러졌다.
바다와 같이 나를 향해 쏟아지던 그 모습을 떠올린다면 다소 맥 빠지는 결과였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어찌 됐건 모두 해결됐으니 간에 상관없다.
이걸로 놈도 쓰러뜨렸으니, 이제 중앙에 있는 성에 깃발을 꽂기만 하면 이번 층도 마무리였다.
“혹시 몰라서 미리 챙겨왔는데, 잘됐네.”
나는 허리춤에 챙겨온 깃발을 보며 씨익 웃었다.
언데드와의 전투로 인해 내가 있던 성과도 거리가 멀어졌겠다.
다시 되돌아가기엔 여러모로 귀찮았는데 덕분에 시간 낭비도 줄었다.
“그 전에 일단….”
나는 한숨을 돌리며 상공을 향해 풍압을 쏟아냈다.
빠른 속도로 쇄도하던 풍압은 상공에서 폭발하더니, 검은 형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럼 그렇지.”
나는 당연하단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언데드와 싸우는 내내 어디에선가 묘한 기척이 느껴진다고 했었다.
상공에 몸을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보이지 않았던 걸 보니까. 은신 쪽의 능력을 지닌 건가?’
그리 생각하며 검은 인영이 떨어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부로 출력량을 낮췄으니, 목숨을 잃지는 않았으리라.
적어도 뭐 하는 놈인지부터 알아내고 처리해도 늦지 않다.
상대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려는데, 바닥에서 솟아난 빛의 덩굴이 내 다리를 얽어매고는.
독 안개를 피어올렸다.
그것도 모자라 독이 묻어진 비수가 내 목을 노리고 날아왔다.
온갖 역경을 겪은 나한테는 아무렇진 않았지만, 곧바로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만난 어중이떠중이와는 다르다는 것을.
“누군가 싶었는데 너구나? 이런 시답잖은 계획을 세운 건.”
나는 힘을 줘서 다리를 묶은 덩굴을 뜯어내고는, 날아오는 비수를 손으로 붙잡았다.
어지간한 독이야 내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아무렇지도 않다.
그야말로 계산이라도 한 듯한 한 박자.
다른 플레이어들이라면 놀랄 만도 한 광경이었겠지만, 마치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이 상대는 별다른 미동도 없었다.
하긴 숨어서 지금까지의 내 전투를 보고 있었다면 놀랄 것도 없나.
상대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너지? 황결이라는 놈은?”
“…….”
상대는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년.
네 물음에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저번 층에서 나 다음으로 강한 놈은 너였거든.”
비교적 젊어 보이는 저 나이인데도 그만한 대처 능력과 실력을 지니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다른 건 전부 제쳐놓고 네가 계획했지? 이런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짠 건?”
“그야 그만한 괴물을 상대하는데, 그 상대로 괴물을 써먹는 건 당연하잖아.”
이 새끼 보자 하니까 말이 짧다?
그리고 괴물?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나는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그만큼 많은 사상자가 나올 걸 알면서도?”
“뭐 어때. 다른 사람들까지 전부 데리고 가는 얼빠진 생각을 하는 건 너밖에 없어. 탑을 오르는데 사상자가 일어나는 건 당연하잖아. 단지 그게 내가 아니면 되는 거지.”
나 또한 그 말에는 그다지 부정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사상자를 줄이자는 게 내 생각이지, 나도 여차하면 이기적으로 움직일 거니까.
다만, 하나만 정정하자면.
“얼빠진 놈은 어디서 나온 말이야.”
“왜? 그렇게 순해 빠진 놈이 나를 죽일 수 있겠어?”
아주 당연하단 듯이 말하는 소년이었다.
“그럼 지금 한번 실험해보면 되겠네.”
“어? 실험이라니….”
“내가 얼빠진 놈인지 아닌지 말이야.”
내가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이자, 놈은 흠칫 놀란 얼굴로 두 손을 휘둘렀다.
“자, 잠까……!”
“잠깐은 무슨, x까.”
나는 그가 말을 끝내기 전에 주먹을 날려 얼굴을 날려버렸다.
예의 없는 것들은 직접 두들겨 패는 게 답이다.
아무래도 다음 층부터는 손 봐야 할 놈들이 늘어난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