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콰득!
무언가 박살 나는 소리와 동시에 검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거구의 사내가 뇌수를 흘리며 쓰러지자 주변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경악하며 뒤로 물러났다.
누가 봐도 잔뜩 경계하는 눈빛.
이상한 것은 없었다.
갑자기 죽어달라고 부탁하면서 대답을 듣기 전에 상대를 죽이는 미친놈을 앞에 두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더 이상한 법이다.
나는 다른 플레이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손을 들며 다가갔다.
“별거 아니니까. 진정….”
“히, 히익 다가오지 마!”
내가 녀석들을 향해 다가가자, 그들은 겁에 잔뜩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아, 그러고 보니 손에 피가 잔뜩 묻어있었던가?
뒤늦게 피가 묻은 손을 털어봤지만, 아무래도 저들을 설득하는 건 늦은 것 같았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까 하고 고민을 하고 있을 무렵.
하늘에서 섬광이 떨어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흐헉!”
바로 뒤에서부터 숨을 크게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분명 머리가 박살 나 죽었을 터인 남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어, 어떻게…….”
되살아난 남자를 직면한 플레이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내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달라는 얼굴.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진행자가 마지막에 얘기했었잖아. 이번 층에서 죽기 싫다면 공성전에서 승리하는 걸 목표로 하라고.”
“부, 분명, 하지만 그게 왜…….”
“그전에 패배한 팀은 탈락이라고 말한 시점에서 모두가 아는 사실을 다시 한번 더 상기시킨 이유야 뻔하잖아. 그 말에서 핵심은 공성전에서 승리하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는 뜻이지.”
그 이야기를 들은 플레이어들은 말문이 막혔다.
그렇기에 조금 전처럼 죽어도 지구에 가지 않고, 다시 탑에서 부활한다.
그 뜻은 이번 공성전에서는 죽어도 상관없다.
그러니 이전 층과는 달리 미리 지휘관을 선정해 혼란이 일어나지 않게 만든 거고.
“그렇다곤 해도 정말로 죽었으면 어쩌려고…!”
“뭐, 그럼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래도 그 정보를 모르고 있다가 한참 뒤에 깨닫는 거보단 낫잖아.”
“…….”
반박할 말이 없는지 남자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이와 같은 공성전에서는 정보야말로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싸게 먹힌 셈이지.
저쪽과는 달리 미리 선점한 정보를 살려서 다양한 전법을 취할 수 있으니까.
“그건 그렇고, 핵심 관건은 진행자 그놈이 말했었던 중간성이겠네.”
중간에 있는 성을 함락시키면 이번에도 역시 아무런 피해도 없이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
메리트로는 충분하다.
그리고 이미 생각해둔 전략 역시 있었다.
“야, 덩치.”
“네, 넵!”
“너 직업이 뭐야?”
내 물음에 남자는 우물거리며 힘겹게 대답했다.
“궁수입니다.”
시원찮은 그의 대답에 하는 피식 웃었다.
누가 봐도 선두에서 앞장서서 적을 학살할 것같은 덩치로 멀리서 활 쏘는 직업이라니.
우습긴 했지만, 오히려 바라던 대로다.
“그럼 멀리 있는 것도 잘 보겠네?”
“네. 일단… 궁수의 스킬 중에는 추적자의 눈이라고 상당한 거리에서도 볼 수 있는 스킬이 있긴 있습니다.”
“그래? 잘됐네. 우리 중에서 너만 한 적임자도 없는 거 같으니까. 정찰은 네가 갔다 와라.”
“저, 정찰이라니? 어딜…?”
“어디긴 어디야. 진행자가 얘기했었던 중간 지점에 있는 그 성 말이야. 뭔진 몰라도 일단은 정체는 파악해두는 편이 좋잖아.”
안 그래?
내 물음에 녀석은 시무룩해진 얼굴로 수긍했다.
그래봤자 큰일이 벌어질 확률은 낮았다.
여차하면 부활할 수도 있으니 위험성은 없었다.
“다만 걸리는 게 있다면 진행자가 미리 했던 경고인데.”
그놈이 말하길 최대한 건들지 말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으로서 추측할 가능성은 총 세 개였다.
“중간 성에 있는 놈들이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강한 놈이던지… 혹은 그놈들에게 죽으면 부활 기능 따윈 없이 그냥 말 그대로 죽던지.”
“흡!”
내가 손을 꼽으며 말하자 덩치는 답지않게 새하얘진 얼굴이 되었다.
하긴 자신이 선발대니 충분히 걱정될 만도 했다.
그것 외에도 있을지 모르는 다른 가능성을 염려하고 있자, 옆에 서 있던 다른 플레이어가 의문을 던졌다.
“저기… 가능성은 세 가지라면서요. 아직 한 개를 말 안 하셨는데요?”
“아아, 나머지 한 개? 그다지 큰 내용은 아니야. 내가 말했던 두 가지의 가능성이 전부 맞았다는 거지.”
플레이어들이 미처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면서, 그들의 손에 죽으면 죽는다.
그뿐인 이야기였다.
나는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덩치의 어깨를 툭툭 쳤다.
“너무 걱정하진 마. 설마 너를 혼자 보내면서 대처법을 생각해두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저, 정말입니까?!”
“어, 만약에 놈들의 손에 죽을 거 같으면 한 번 눈 감고 자살해. 너 같은 경우에는 머리 위로 화살을 쏘면 되겠네.”
아주 간단한 자살 방법 아니겠어?
내가 내놓은 대답에 녀석은 할 말을 잃었다.
이걸로 손수 대처법도 알려줬으니.
“뭐해? 우린 여기에서 성을 지키고 있을 테니까. 최대한 빨리 다녀 와. 가는 김에 그 너머에 있는 다른 플레이어들의 성도 같이 정찰하고 오면 좋고.”
기왕 이니 일석이조의 성과물을 갖고 오길 바란다.
* * *
그렇게 덩치를 정찰에 내보낸 지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꽤 긴 시간이었지만, 아직까지 정찰병들에게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보니 상대편 성에서의 침입도 없었다.
‘저쪽에서도 우리처럼 중앙에 있는 성을 노리는 건가?’
아니면 신중하게 나오는 걸 수도 있다.
어찌 됐건 경계해서 나쁠 건 없겠지.
한참 무료한 시간이 흐르고 있을 때쯤이었다.
타앙! 타앙!
짤막하지만, 강렬한 격발음이 공기 중을 울렸다.
저격이다.
내 판단대로 망루에서 적을 확인하던 플레이어 두 명이 총에 맞고 쓰러졌다.
한 명은 사망, 나머지 한 명은 아슬아슬하게나마 치명상을 비켜나갔다.
이걸로 상대가 죽을지도 모르는데도 과감한 무력 행위.
빠르게 저격 포인트를 찾아봤지만, 이미 자리를 이동한 탓인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이동한 흔적 역시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상대는 엄청난 실력자.
롱기스트 길드에서 상대했던 어중이떠중이하고는 레벨이 달랐다.
‘쯧, 군인 출신인가.’
상대가 뭐라 하든 간에 거추장스럽다는 것은 변함없다.
서둘러 자리를 이동하려고 하자.
타앙!
다시금 들려온 총격음.
이윽고 왼쪽 가슴에 박힌 총알이 힘없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내 육체 능력이라서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한 방 감이었다.
“일반적인 총알도 아니었나.”
나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총알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탄환에는 유형의 기운이 코팅되어 둘려 있었다.
이게 바로 플레이어들을 한 방에 보낸 원인이리라.
따끔하긴 했지만, 이걸로 상대방의 위치도 파악했다.
이제 놈은 사정 범위 내에 들어왔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놈이 있는 방향으로 뛰쳐나갔다.
한달음에 저격수의 눈앞까지 도달한 나는 주먹을 쥐었다.
반지의 쿨타임도 끝났겠다. 이제 힘 조절을 걱정할 필요 없이 주먹을 휘둘러도 문제없었다.
“제, 젠장… 그 짧은 순간에 이만한 거리를 좁히다니 괴물이잖아.”
나와 직면한 스나이퍼는 인상을 와락 구기며 손에 쥐고 있던 폭탄의 안전핀을 뽑았다.
피잇⎯!
순간 엄청난 광량의 빛이 뿜어졌다.
황급히 눈을 감았지만, 섬광탄의 효과로 한동안 시야가 차단되었다.
자신이 잡힐 것을 염두에 넣지 않았다면 도저히 내릴 수 없는 판단 속도.
‘11층에서의 전투를 보고 미리 대책을 세워뒀던 건가.’
상대할 수 없는 괴물이라면 피해라.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작전이다.
이게 적의 지휘관의 판단인지 아니면 스나이퍼 본인의 판단인지는 몰라도 상당한 전략이었다.
허나, 저들의 실수가 있다면…
‘눈이 안 보이는 거야. 익숙하지.’
튜토리얼에 갇혀 있는 천 년간 나는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기상천외한 짓들을 모두 해봤다.
어쩌면 우연히라도 튜토리얼을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험정신에 의해서.
“그중에는 눈을 감고 한 달을 생활하는 것도 있었지.”
이미 시야가 차단됐을 때의 감각 역시 랭커 못지않을 자신이 있었다.
나는 몸을 틀어 총격을 회피하고는 스나이퍼의 배에 주먹을 꽂았다.
총알 그 이상의 충격에 스나이퍼는 그대로 수십 미터를 날아가 바닥을 뒹굴었다.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니 기절한 듯했다.
“이건, 방탄조끼인가?”
한동안의 시간이 흐르고 시야가 돌아온 나는 스나이퍼의 몸에 착용한 방어구를 보고는 나직였다.
다른 플레이어라면 한 방에 골로 가기 딱 좋은 상황이었으나, 이것 덕분에 산 것 같았다.
일단 기절했더라도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위험 대상.
확실하게 마무리를 할까 싶었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여기에서 스나이퍼를 죽이면 상대도 부활한다는 사실을 파악할 테니까.’
오히려 잘 됐다.
이런 식으로 적을 제압한다면 최대한 길게 정보적인 우위를 취할 수 있다.
나는 스나이퍼의 머리만 남겨둔 채로 땅바닥에 묻었다.
이거라면 정신이 돌아온다 해도 날뛸 수는 없을 터.
기왕, 놈의 무기도 가져가고 싶었는데, 귀속 아이템이라는 문자와 뜨더니 상대의 무기로부터 내 손이 튕겨 나갔다.
뭐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나.
‘나중에 둘리한테라도 정보 탈취를 맡기면 되겠지.’
그러면 남은 건 남아 있는 적들의 소탕과 중앙에 있는 성에 보낸 덩치의 소식을 기다리는 것뿐.
그리 생각하며 바지를 털고 일어날 때쯤이었다.
파아아앗!
성의 중앙에서부터 환한 빛기둥이 생겨났다.
죽은 플레이어가 다시 부활하는 현상이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딱 좋은 타이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