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플레이어 일괄 메시지: 신한별 플레이어가 8층을 클리어했습니다.〉
〈서버 최초로 믿기지 않는 성과를 달성했습니다!〉
〈업적: 탑의 변혁을 일으킨 자의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평소에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탑의 클리어 메세지.
한두 명도 아닌, 전 세계의 플레이어들이 탑을 등반하기 때문에 클리어 메세지는 일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비유하자면 매일 대중교통에서 볼 수 있는 팝업창 광고 같은 느낌이었다.
간격만 짧으면 하루에도 수십 번이나 볼 수 있는 메세지니까.
그렇기에 최상층의 클리어나 지인, 혹은 각 길드의 루키가 아닌 이상 메세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자는 극소수였다.
그랬을 터였으나.
신한별,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불러일으킨 파장은 탑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8채널로 진입합니다.〉
대박 사건! 와씨 내가 말했지. 저 새끼 언젠간 말도 안 되는 사건을 터트릴 거라고.
⤷ 와… 8층 대에서 업적이라고?? 그게 가능한 거였음?
⤷ ㅅㅂ 저거 도대체 뭔데
- 최상위권 헌터들도 얻을까 말까인 탑의 업적을 8층 따리가 따낸다고? ㄹㅇ 버그 걸렸네
⤷ 버그 걸린 건, 니 등반 속도고요ㅋㅋㅋ
⤷ 아ㅋㅋㅋ ㄹㅇㅋㅋ만 쳐라고
- 근데 업적은 둘째치고 등반 속도도 미쳤는데
- 얼마 안 가서 최상위층에 합류하는 거 아님?
⤷ 내가 장담하건대 저놈 5년 안에 랭커 될 듯
⤷ 극⎯락
이렇듯 거의 모든 채널의 채팅에는 신한별이라는 자의 이야기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칭호라는 것은 오직 탑의 인정을 받은 플레이어만 받을 수 있는 징표.
보통 칭호를 받는 자는 탑으로부터 공공연히 인정받을 만한 업적을 세운 소수의 랭커들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고작 8층을 등반하는 플레이어가 칭호를 받았다.
이 사실은 크나큰 파급력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타플레이어와는 달리 신한별은 아직까지 밝혀진 사실이 하나도 없는 미지의 인물이라는 점도 큰 몫을 했다.
그러니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으레 빛이 있다면 반대에는 그림자가 있듯.
커뮤니티의 대다수 반응은 부정적인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신한별? 그건 뭔 듣보잡이야.
⤷ 그니까ㅋㅋㅋ 어그로 끄는 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 시한별? 그 새끼 시한 인생 만들러 간다. 파티원 구함(1/1000)
⤷ 천 명은 개뿔, 내 선에서 처리 가능
- 그럼 탑이 구라 쳤단 거임?
⤷ 발작ㄴㄴ 그냥 우연히 얻어걸렸겠지
⤷ 솔직히 우리 전부 8층 겪어봤는데, 8층에서 칭호를 받을 요소가 뭐가 있냐ㅋㅋㅋ
- 오늘부터 신한별이 아니고 신한‘갓’이라고 부르자
⤷ 신한별인가 뭐시기보다 이 새끼부터 족쳐버리고 싶네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은 커뮤니티의 반응대로 썩 좋지만은 않았다.신한별의 폄하 하거나 얕잡아보는 게 대다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있는 플레이어들의 반응이었을 뿐.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3대 길드나 랭커들은 이 사태를 다른 관점으로 보고 있었다.
“뭐? 8층에서 칭호를 받은 플레이어가 나왔다고? 도대체 뭐하는 놈이야! 어서 관련된 정보를 수집해!”
“하, 하지만… 9층까지는 개인층이라 저희들도 손 쓸 방법이….”
“그럼 개인층이 끝나는 11층에서 어떻게든 포섭해 와!”
“아, 알겠습니다!”
3대 길드 중 하나, 신화의 팀장은 신한별과 관련된 서류를 뒤적거리며 이를 갈았다.
서류라 해봤자 신한별과 관련된 신상 정보밖에 없다.
그가 쓰는 능력이나 직업에 관해선 아무런 정보가 없었기에 지금으로서 신한별은 미지의 인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부분을 생각하면 너무 과한 행동이 아닌가 싶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칭호를 받은 놈이니까. 어쩔 수 없지.’
과거를 통틀어 탑에서 칭호를 받은 플레이어는 두 손에 꼽을 정도로 희귀했다.
그리고 그 플레이어들은 횟수가 많든, 적든 간에 엄청난 파급력을 가져왔다는 것은 공공연히 아는 사실.
그렇기에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선점할 수밖에 없었다.
신한별이라는 미지의 원석을 말이다.
“또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지푸라기라도 잡아야지.”
팀장은 고개를 돌려 다른 서류를 확인했다.
그것은 일전에 있었던 36층 공략의 피해 리스트.
확신을 가지고 무수한 물자와 인력을 쏟아부은 3대 길드는 보스 몬스터 앞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이걸 메꾸기 위해선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아니, 그 이전에 36층의 클리어는 가능한 일인가?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의심이 증폭되는 가운데, 신한별에 대한 이야기는 새로운 카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선 11층에서 포섭해야 하는데….”
기회는 단 한 번.
마찬가지로 신한별 플레이어를 노리는 경쟁 길드를 생각하며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도중이었다.
“저기 바쁘신가요?”
“유, 유채아 씨?”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의 목소리에 팀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세련된 복장을 한 아리따운 여성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팀장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는 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실력을 지닌 랭커.
게다가 실력이면 실력, 외모면 외모, 인망까지도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그녀는 랭커들 사이에서도 연예인으로 불리었다.
같은 길드 소속이라고 하더라도 오직 실무만을 맡은 그가 그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그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놀라고 있을 때쯤이었다.
“지나가다가 들었는데 신한별 씨를 만나러 간다고 했었죠?”
“아, 아… 네 그렇습니다. 상부의 방침이 그렇게 정해져서 지금부터 영업할 예정이었습니다.”
“잘됐네요. 그 자리에는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모르는 사람보다는 한별 씨와는 안면이 있는 제가 직접 가는 편이 낫겠죠?”
“그, 그렇겠죠?”
별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유채아가 꺼낸 주제에 그는 말을 떨었다.
‘뭐야? 신한별 그놈이 튜토리얼에서 31기수라고 했던 소문이 사실이었어?’
그것도 잠시, 퍼뜩 제정신을 되찾은 그는 서둘러 만류했다.
“아, 제가 말을 잘못했습니다! 안 그래도 36층의 공략이 실패한 지금 유채아 씨 같은 막강한 전력이 하나라도 없으면 큰 타격입니다. 그러니….”
“반대로 말하자면 이미 모든 전력을 쏟아부은 36층에서 공략을 실패한 마당에 저 하나 자리가 빈다고 별일이 일어날 거 같진 않은데요?”
“그래도 있는 것과 없는 게 얼마나 차이가 날지 모르는데.”
“제가 판단하기엔 아무것도 안 하고 자리를 지키는 것보단 11층에 내려가는 게 더 효율적으로 보이네요. 그러니 상부에 말은 잘 부탁할게요.”
“자, 잠시만….”
남녀노소가 봐도 반해버릴 듯한 매혹적인 미소를 마지막으로 그녀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대로 자리에 홀로 남은 팀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의 단독행동을 상부에 설명하려면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여러모로 회의감이 들었지만, 지금으로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11층으로 내려간 그녀가 성과를 가져오는 것.
아무튼 큰 걱정은 없겠지.
“신한별이라… 다른 것보다도 섭외를 위해 저분이 직접 내려갔다는 사실을 알면 다른 길드에서는 까무러치겠군.”
팀장은 피식 웃으며 신한별과 관련된 서류를 정리해서 파일에 정리했다.
* * *
〈9층에서 일어난 트러블을 해결하십시오.〉
〈모종의 이유로 9층의 난이도와 내용이 개벽합니다.〉
〈당신은 태엽 시계가 돌아가 회귀(回歸)했습니다.〉
“이건 또 뭐야.”
나는 매번 층을 이동할 때마다 버릇처럼 입에 붙은 말을 꺼내며 혀를 내둘렀다.
내 시선이 닿은 곳에는 무수한 시스템창이 허공 위에 떠 있었다.
시스템이 말하는 모종의 이유라면 나 또한 파악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이유란 두말할 여지도 없이 8층에서 일어난 탑과 관련된 관리자들의 회의 내용을 뜻하는 것이겠지.
헌데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앞의 내용이 아닌 뒤에 잇따라 온 이야기였다.
“회귀라니?”
생각지도 못한 단어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회귀라…
언제나처럼 의문투성이였지만, 다른 건 몰라도 확신할 수 있는 내용은 한 가지 있었다.
적어도 나의 회귀는 아닐 거라는 것.
내 인생을 기준으로 회귀했다면 지금 서 있는 이 장소는 지구라는 이름의 지옥이거나, 이젠 지겨울 정도로 있었던 튜토리얼의 안이겠지.
그러나 내가 서 있는 자리는 난생 처음 보는 장소였다.
의문이 섞인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자, 마찬가지로 나와 함께 서 있던 둘리가 입을 뗐다.
“냄새가 난다!”
“냄새? 난 아무런 냄새도 안 나는데?”
“아니다! 틀림없이 난다!”
“무슨 냄새길래 그래.”
“이건 저번에 봤던 날개 달린 파충류의 냄새다!”
“파충류?”
여기가 동물원도 아니고, 그건 뭔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야.
다른 사람이었다면 일단 뒤통수부터 갈기고 봤겠지만 나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고 거짓말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는 게, 드래곤은 인간에 비해서 후각이 월등히 발달해 있다.
심지어 코가 민감한 개체는 수십 킬로 떨어진 자리에서도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마냥 헛소리는 아닐 터.
그때였다.
둘리가 언급한 내용을 알게 된 것은.
쿠구구구궁!
멀리서부터 미약한 진동이 느껴진다 싶더니, 상당한 거리에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곳에는 수백, 아니 수천마리나 되는 와이번들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야말로 경이롭다는 말밖에 안 나오는 광경에 둘리는 입을 쩌억 벌리며 감탄했다.
그렇다.
둘리가 말한 도마뱀의 정체는 바로 와이번.
“역시 그랬나.”
- 저희들이 수호용님을 보필하겠습니다.
머릿속에서 노이즈가 낀 것처럼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기억.
그 기억은 도저히 셀 수 없을 정도로 반복되는 삶의 굴레에서 가장 첫 번째 페이지였다.
기억과의 대조를 마친 나는 인상을 가득 찡그렸다.
‘이건 내가 아닌 수호용의 삶을 토대로 한 회귀.’
수천 마리의 와이번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따라가자, 그곳에는 웅장한 규모의 제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마치 의식을 치르듯 와이번들은 숭고한 분위기 속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외견만 봐선 용도를 알 수 없었지만,
수호용의 기억을 가진 난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은 이 빌어먹을 제단 때문이다! 제기랄!! 이것만… 이것만 아니었다면…
머릿속에서 광기에 물든 수호용의 고함이 울려 퍼진다.
내 앞에 펼쳐진 숭엄한 분위기와는 달리, 기억 속에선 모든 것을 집어삼킬 화염 앞에서 흔적도 없이 붕괴한 제단 앞으로 광기에 물든 수호용의 모습이 연출된다.
[지금부터는 신의 뜻대로 소환의식을 치르겠습니다.]
모든 것은 원흉은 신… 지금부터 신 따윈 없다!
제단 밑으로 즐비한 와이번의 시체와 그 속에서 피에 물든 채 비명을 지르는 수호용.
그곳에는 지금과 같이 드넓은 평야도, 생명이 느껴지는 수풀도, 장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죽음과 그 위에 덧칠해진 피와 고통.
수호용의 기억이다.
[모든 의식을 끝마쳤으니 그럼 소환하겠습니다.]
기나긴 의식을 끝으로 와이번은 복잡한 진법에 손을 올렸다.
농후한 마나가 작용하자, 마법진에서부터 강렬한 섬광이 솟아났다.
구름 사이를 뚫고 하늘 전체를 밝힐 정도의 광량.
그야말로 숭고하기까지 한 광경에 와이번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제단을 바라본다.
그들에겐 뜻깊은 섬광일진 몰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나한테는 울화통이 치밀어오르기엔 충분했다.
왜냐하면 그 빛은⎯
쉬이이익!
천공을 가르는 섬광 사이에서 수십 명의 사람이 걸어 나왔다.
⎯탑을 등반하는 플레이어를 소환하는 빛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부터 시작되는 역사는 최악이자 그와 동시에 차악과 관련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