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오오….”
코트를 착용한 나는 감탄사를 내질렀다.
확실히 튜토리얼에서 대충 만들어 입었던 거적때기와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느껴졌다.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열기가 차단되었다.
게다가 느낌뿐인지도 몰라도 육체적인 피로가 해소되고, 움직임 또한 훨씬 편해진 것 같았다.
보통 일반적인 갑옷을 입으면 방어력이 올라가는 대신에 신체의 움직임이 제한되는 편인데, 그런 단점 역시 깔끔하게 사라졌다.
그야말로 내가 바라왔던 이상향.
코트를 입고 이리저리 움직여보다 말고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어째 SS+급치곤 기대에 못 미친다는 느낌인데?’
누가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 있지만, 적어도 내가 느낀 첫인상은 그랬다.
백룡의 외피로 만든 코트라고 해서 착용하자마자 지금까지와는 달리 확연히 달라질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평범했다.
솔직히 피로가 회복되는 건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면 금방이고.
움직임이 편해지는 거야 그냥 옷 벗고 싸우면 그거나 이거나 똑같잖아?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자, 이를 지켜보던 노인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하, 완전히 애송이인 줄만 알았더니만, 감이 없지만은 않구나. 그래, 네가 느끼는 대로다.”
“그게 무슨 뜻이지?”
“무슨 뜻이긴, 너도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지 않더냐. 당연하겠지 그건 아직 완전한 제품은 아니니까.”
“그러니까. 손님한테 받을 건 전부 받고 불량품을 줬다고?”
이게 돌았나.
내가 검을 뽑기 위해 손을 가져다 대자 노인은 안색 한 번 바뀌지 않고 말을 이었다.
“어허, 불량품이라니. 네가 가져간 그건 어디 가서 사려고 해도 살 수 없는 거라네. 아니, 오히려 탑의 상인과 수집가들이 얻기 위해서 혈안이지.”
노인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탑에 들어오기 전에 플레이어들과 커뮤니티를 통해 용의 위엄과 회귀성은 익히 들었으니까.
그냥 용도 탑에 등반하면서 한 번 볼까 말까인데, 더욱이 백룡의 외피로 만든 아티팩트라니.
값어치로는 충분하다.
‘하긴 6층에서 이런 걸 얻는 거부터가 말이 안 되지만.’
이 사실이 다른 플레이어들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는 날엔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나조차도 상상할 수 없었다.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한 나는 분노를 가라앉혔다.
“그래서 본론이 뭔데? 뜸 들이지 말고 말할 거면 한 번에 말해.”
“끌끌, 젊은 놈이 조급해하긴. 있어 보거라 안 그래도 지금부터 얘기하려고 했으니까. 사실 그 옷에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 있지.”
“가장 중요한 거?”
“그래, 그건 어디까지나 껍데기에 불과하지. 아티팩트의 활용도를 100퍼센트로 끌어올리기 위해선 백룡의 드래곤 하트가 필요하다네.”
드래곤 하트.
쉽게 설명하자면 용의 심장 같은 개념이었다.
용은 수백, 수천 년을 살면서 흡수한 마나를 전부 드래곤 하트에 응축한다.
그렇게 응축된 드래곤 하트는 실로 엄청난 값어치를 자랑한다.
‘그러고 보니 해츨링의 드래곤 하트를 얻은 랭커가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었지?’
해츨링의 드래곤 하트가 그만한 가치를 가진다.
하물며 에이션트나 로드급의 드래곤 하트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임은 틀림없었지만.
“아저씨 다른 건 다 좋은데, 누구 얘길 들어보면 용이 다른 괴수들처럼 지척에 깔려 있나 봐?”
문제는 그 드래곤 하트가 찾기가 쉽냐는 것.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표출하자, 노인은 별문제 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하하하, 너무 나무라진 말거라. 탑을 계속 오르다 보면 언젠간 볼 수 있을 테니까.”
“그거 엄청 경우 없는 말이라는 건 잘 알고 있지?”
“큼… 대신할만한 괜찮은 보상을 주도록 하마.”
딴에도 억지스럽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모양인지, 노인은 창고에서 들고 온 물건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그가 가져온 물건은 각종 장비였다.
그것도 상당히 비싸 보이는 것들.
나는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그것들을 바라봤다. 그러자 노인은 인자한 얼굴로 내게 내밀었다.
“원래는 돈을 받고 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자네니 특별히 그냥 내주도록 하겠네.”
“그냥 준다고?”
“그렇다네.”
돈에 미쳐서 매번 요구할 땐 언제고 웬일로 순순히 양보하는 그를 보곤 눈을 가늘게 떴다.
지옥을 연상케 하는 지구에서 하루하루를 버겁게 생존하면서 몸소 깨달은 세상의 이치가 하나 있었으니.
세상에선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냥 주는 호의는 없다.
그 호의를 아무 생각도 없이 받아들였다간 나도 모르는 새에 호구가 될 수 있다.
그것이 나만의 격언.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이윤을 추구하는 상인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의심이 증폭되는 가운데.
나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장비를 집었다.
“뭐, 그렇긴 한데. 뻔히 주겠다는데 안 가져가면 그건 호구지.”
또 남이 거저 준다는 데 거절하는 성격은 아니거든.
“이건 내가 가져간다?”
“가져가긴… 입을 떼기도 전에 벌써 입어보는 중이면서 그런 이야기는 뭐 하려 하나.”
“아, 안 그래도 그냥 한 말이야. 신경 쓰지 마.”
“자네를 볼 때마다 느끼는 생각이지만, 성격 하나는 진짜로 더럽군.”
그가 콧방귀를 뀌고 있는 동안, 나는 장비를 착용했다.
일부러 내 신체에 맞도록 들고 왔는지, 크거나 작거나 하지 않고 사이즈도 딱 맞았다.
이리저리 움직여 보던 나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튜토리얼에서 입던 거적때기와 비교하면 훨씬 나았다.
물론 내 관심은 이런 장비보다는 백룡의 코트였지만,
나는 이리저리 둘러보다 말고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하나만 물어보자. 이렇게 해주는 이유가 뭐야?”
방금 전에는 대충 얼버무렸지만 그래도 알고 있는 편이 더 나을 거 같았다.
모르고 받는 거보단 미리 알고 있는 게 훨씬 낫잖아.
내 의문에 노인은 사색에 잠긴 얼굴로 서두를 뗐다.
“훗, 별거 아닌 이유라네. 비록 지금은 이런 외딴곳에서 조그마한 상점을 운영하는 모양새지만, 그래도 소싯적에는 일국의 토벌 대장으로서 명성을 떨쳤다네.”
“그런 거치곤 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거 같은데?”
“그럴 만도 하지. 그때는 벌써 수백 년이나 넘은 이야기니까.”
“그래?”
나는 별 감흥 없다는 듯이 대충 대답했다.
어차피 튜토리얼에 갇혀 있었던 탓에 이러나저러나 해도 나한테는 모르는 이야기다.
“토벌대장이면 그래도 꽤나 높은 직책인 거 아니야? 왜 그런 작자가 여기에 서 있어?”
“조금 그런 사정이 있었다네.”
“사정?”
“….”
물어봤지만 아무래도 자세한 사정은 얘기해 줄 생각이 없는 듯 그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나 역시도 여기까지 와서 남의 사생활 이야기를 들어줄 생각은 없었기에 그냥 넘겼다.
“토별 대장으로 지내면서 많은 애송이를 직접 지도하고, 또 이곳의 NPC로 있으면서 수많은 등반자를 봐왔지. 하나 내 눈에 차는 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네.”
“그래?”
“그런 와중에 나타난 게 바로 네 녀석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입이나 행동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족속들과 빼닮았지만 그래도 실력 하나만큼은 봐줄 만했으니까.”
“그러니까. 노인네가 말을 어렵게 둘러서 말해? 내 가능성을 보고 투자했단 거잖아. 그럼 그런 거지 사족이 길어.”
신한별 코인이라.
그것참 듣기만 해도 국밥 한 그릇 뚝딱한 거처럼 든든해지는 네이밍이네.
그러니까 믿고 맡길 만도 하네.
내 말에 노인은 피식거리며 말했다.
“애송이는 애송이로군. 그래서 본론이다만. 자네, 내 후계자를 할 생각이 없나?”
“후계자?”
“그렇다네. 이곳에서 내가 지도를 해줄 터이니 나만 믿고 따라….”
서론이 왜 이렇게 길대 싶었나 싶었는데, 결국 이게 본론이구만.
그럼 그렇지.
당황할 것은 없었다. 사실 어느 정돈 예상했던 일이어서.
나는 더는 들을 것도 없단 듯이 그의 말문을 막았다.
“거, 미안하게 된 일인데. 난 누구 밑에 들어가는 건 질색이라서. 그리고 까놓고 말해서 나보다 약한 놈한테는 이래저래 훈수 받을 생각은 없어.”
“푸하하하! 이제 보니 그냥 애송이가 아니라 당돌하기까지 한 애송이였군.”
노인은 시원한 폭소를 터뜨렸다.
“그래, 자네 성격상 누구 맡에 들어갈 놈도 아니긴 하지. 자네의 말은 알겠다네. 뭐, 기왕 준 거니 내가 준 물건은 안 줘도 된다네.”
“어? 진짜?”
“그래, 이것도 인연이니까. 그리고 그것들은 내가 가져가 봤자 필요 없다네. 가질 거면 필요한 놈이 가져가는 게 맞지.”
이게 웬 떡이야.
설마 제안을 거절하면 도로 내뱉으라고 할까 봐, 진지하게 도망칠 준비도 하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그의 대답에 나는 웃었다.
“그래서 다음 층으로 올라갈 생각인가?”
“당연하지. 안 그럴 거였다면 탑에 들어오지도 않았어.”
“껄껄, 젊은이의 패기라… 그것도 좋지. 그렇게 됐으니 가는 김에 이것도 같이 들고 가거라.”
노인은 품속에서 꺼낸 목걸이를 내게 건넸다.
난생 처음 받은 목걸이가 여자가 아닌 이런 남정네라니.
여러모로 불만이 있었지만, 그에게는 이미 은혜도 많아 거절하기도 그랬기에 일단 주머니에 넣어뒀다.
“나중에 탑을 등반하다 보면 내가 과거에 머물렀던 나라에 갈 일도 있을 테니. 그때 그게 있으면 큰 도움일 될 것이라네.”
“그래? 그러면 겸사겸사 받아둘게.”
“하하하! 필히 좋은 일이 있을 게라고 내가 약속하지! 그럼 잘 가게나! 자네의 여정에 행운이 있길 여기에서 빌고 있으마!”
나는 노인과의 마지막 인사도 끝낸 채, 앞으로 내가 갈 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다시 그를 향해 되돌아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저씨, 다음 층으로 가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해?”
…이거 분위기 깬 거 아니지?
* * *
노인과의 헤어짐을 끝으로 나는 다음 층을 향해 이동했다.
〈7층으로 이동합니다.〉
〈플레이어 일괄 메시지: 신한별님이 6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이제는 일상과 같이 떠오른 시스템창과 함께 강한 섬광이 눈 앞을 가렸다.
한참의 시간 끝에 강렬한 섬광이 가시자.
내 눈앞으로 무미건조한 벽돌이 전부인 넓은 공동이 펼쳐졌다.
전체적인 구조만 보면 6층과 동일했다.
익숙한 구조물이 긴장을 느슨하게 만들었지만.
이곳에 탑인 만큼 어떤 기괴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경계심에 한참 동안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무렵이었다.
쩌적!
아주 미세한 기척과 동시에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비유하자면 달걀을 깨는 듯한 소리.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지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기척이 느껴진 진원지를 찾을 수 있었다.
진원지는 다름이 아닌 바로 내 주머니 속이었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넣어놨던 게 분명….
비밀 구역 2-4층을 클리어하고 받은 S급 보상.
“그 망할 알이었던가…?”
그 말을 끝으로 시스템창이 다시 시야 위로 생겨났다.
〈조건 완료!〉
〈미지의 알(S)이 부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