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이건 뭐야?”
보상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집었다.
이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간단했다.
그도 그럴 게 나한테 지급된 보상의 정체는 내 몸 크기만 한 알이었다.
멍하니 원형 물체를 바라보던 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보상이랍시고 나한테 지급된 게 저거란 말이지?’
그것도 이곳을 최단 속도로 클리어한 최상급 보상이란다.
복잡한 심경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차라리 나만 모르는 몰래카메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지경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거추장스럽긴 해도 일단은 받고 봐야지.
복잡한 얼굴로 원형 물체를 손에 쥔 그 순간이었다.
내 손 안에 들어온 원형 물체는 황금빛 빛을 발하며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점점 줄어들던 알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뼘 안에 들어오는 크기가 되었다.
〈미지의 알(S)〉
- 아직 정체를 알 수 없습니다.
- 부화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립니다.
“미지는 개뿔, 기껏 나온 게 알이라고?”
보상을 확인한 나는 어이없단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솔직히 말해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허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기대했던 수많은 S급 아티팩트를 제치고 나온 것은 반 뼘쯤 되는 작디작은 알이란 것을.
애써 내 기억과 커뮤니티를 뒤져봤지만, 아티팩트에서 이런 알 같은 게 뜬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전부라고.
그리 생각하며 어질어질한 머리를 싸매고 있자, 시스템창이 내 앞에서 떠올랐다.
〈미지의 알(S)〉
〈소유자의 능력치에 의해 부화 시간이 대폭 축소됩니다.〉
새롭게 떠오른 시스템창과 함께 알은 마치 자아라도 가진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부화 시간이 축소된다는 뜻은 이런 거였나.”
어이없다는 듯이 실소를 흘렸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마주하지 않아서 감은 잡히지 않지만.
튜토리얼에서 천년 동안 시간을 썩혔었던 만큼 초반 층에 있는 다른 플레이어보다는 비교적 나은 능력치를 지니고 있을 터.
그래서 알이 이렇게 날뛰는 건가?
알에서 뭐가 나타날진 몰라도 누가 봐도 귀찮아 보인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손끝으로 알을 툭툭 쳤다.
“들고 다니기도 귀찮은데 계란후라이로 부쳐 먹을까 아니면 삶아서 먹을까. 그래도 맛은 있겠지.”
어쩌면 먹고 나서 생각지도 못한 스킬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뭐든 실험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다.
“⎯⎯⎯.”
갑작스럽게 생겨난 실험정신에 입맛을 다시고 있자, 알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얼씨구 알 주제에 이런 이야기는 또 잘 알아듣네.
이걸 보고 명석하다고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나조차도 쉬이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래도 뭔지 까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겠지.’
한참 동안 고민하던 나는 숨을 길게 뱉으며 알을 쥔 손에 힘을 뺐다.
곁으로 보기에는 워낙 볼품이 없어서 그렇지.
그래도 명색이 S급 아티팩트.
탑의 안에는 다양한 등급을 가진 아티팩트들이 즐비했다.
그중에서도 S급이라고 한다면, 내가 지구에 있을 당시에도 플레이어 중에서는 S급이나 되는 아티팩트를 가진 자는 몇 없었다.
오직 탑의 상층까지 올라간 극히 소수의 랭커만이 지니고 있을 뿐,
이런 저층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정도의 거물이었다.
까놓고 말해 어떤 효과이든 간에 S급은 부르는 게 값이다.
“뭐, 어때.”
나는 귀찮다는 듯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어차피 부화한다면 이놈의 정체도 머지않아 알 수 있으리라.
괜히 구워 먹었다가 아무 효과도 없이 탈만 난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낭패니까 말이다.
나는 알을 이리저리 살펴보다 말고 한숨을 쉬며 체념했다.
“⎯⎯⎯!!”
그런 내 판단을 알아차리기도 했는지 알은 다시 날뛰었다.
“아, 물론 배고프면 구워 먹어야지.”
“…….”
혹시 몰라서 말을 덧붙이자 알은 침묵을 유지했다.
음, 확실히 말을 알아들으니까 편하긴 하네.
이걸로 소동도 정리했겠다.
나는 권능을 사용해 중간 관리자의 스탯까지 싹쓸이 흡수한 뒤에 발걸음을 옮겼다.
대망의 5층을 향해서.
* * *
〈플레이어 일괄 메시지: 신한별님이 비밀 구역 2-4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4채널로 진입합니다.〉
- 이거 뭐 임 내 눈이 잘못된 거임? 아니면 탑이 잘못된 거임?
⤷ 22
⤷ 333
⤷ 아니, ㅅㅂ 등수놀이 작작하고 대답 좀 해봐
⤷ 마! 니 나 아나? 반말하지 마라
- 2-4가 뭔데? ㄹㅇ 나도 첨 들어보는데
⤷ ㅇㅇ 맞음, 커뮤니티 검색해봐도 그런 층은 안 나옴
- 신한별? 그… 전에 떴던 그놈 아님?
- 본인, 랭커인데 최전선에 저거 때문에 난리 남
⤷ 제가 랭커인데 아무 일도 없는데요? 시스템 첨부합니다. +.jpg
⤷ 가만히 있던 랭커들 어리둥절
⤷ 폰커 뭐냐고ㅋㅋㅋㅋㅋ
- 야야! 대형 길드 피셜 떴다!!
- - 야 근데 너네는 5층에서 뭐 나왔었냐.
⤷ 나오긴 뭐가 나옴ㅋㅋㅋ 덮고 자라고 딸랑 신문지 한 장 나오던데
⤷ 그래도 닌 신문지는 줬네. 난 부싯돌하고 땔감 주더라ㅇㅇ;;
⤷ 뗄감 ㅁㅊㅋㅋㅋㅋ
⤷ 정보: 그 정도면 탑에서도 ㅅㅌㅊ다. 그 골리엇도 5층에선 담요 한 장 받았다.
* * *
파아아앗-!
이번에도 역시 눈 앞을 가리는 강렬한 빛과 함께 따스한 기운이 심신을 감쌌다.
섬광이 가시자 이전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졌다.
튜토리얼에서처럼 끝도 한도 없이 이어지던 드넓은 평야도, 1층에서 4층처럼 숨이 턱턱 막히던 습한 동굴도 아닌.
꿈에 그리던 작은 방이 있었다.
아주 간단하게 샤워실과 침대, 냉장고로 이뤄진 7평 남짓인 공간.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테지만, 이를 본 나는…
“미친.”
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상, 하지만 내게 있어선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28년간 무인도에 갇혔던 로빈슨 크루소가 문명을 처음 접했을 때의 감상이 바로 이것이었으리라.
아니, 겨우 28년 가지곤 내 앞에선 짬도 안 된다.
거긴 백 년도 안 된 거에 비해서 나는 천년이라는 세월이다.
솔직히 말해서 튜토리얼에서부터 탈출하고 나서도 문명을 다시 느낄 수 있을 거라곤 꿈에도 몰랐다.
다 큰 성인이 침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콧물, 눈물을 전부 흘리는 모습은 상당히 괴리감이 느껴졌지만 그건 넘어가도록 하자.
남의 눈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
그것보다도…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못 참지.”
하루종일 온갖 업무에 시달린 직장인이 집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할까.
밥? 목욕?
전부 틀렸다.
답은 훨씬 단순했다.
‘일단 어디든지 몸을 던지고 보겠지.’
이건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나는 아주 잠깐의 고민도 없이 침대를 향해 몸을 던졌다.
물론 지금의 내 몸으로 침대에 뛰어들었다간 박살 날 게 뻔했으니, 나는 낙하 순간에 기술을 사용해 최대한 힘을 분산했다.
그 덕에 나는 온몸으로 침대의 탄성을 즐길 수 있었다.
스프링의 힘으로 살짝 튕기며 다시 푹신한 매트릭스 속에 몸이 푹 잠겼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푹신함이었다.
그동안 상당한 피로감이 몸에 쌓여 있었는지 침대에 몸을 맡기자마자 잠이 솔솔 왔다.
그런 행복을 두고 냉정한 현실을 자각시키기라도 하듯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5층은 휴게 공간입니다.〉
〈휴게 공간은 플레이어님의 업적을 기반으로 구성이 됩니다.〉
〈초기 데이터 구성 완료!〉
〈29:55 뒤에 6층으로 전이됩니다.〉
“안 알려줘도 나도 알고 있어.”
나는 차갑게 뇌까리며 시스템창을 닫았다.
이미 다른 플레이어들의 커뮤니티를 통해 미리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지구를 넘어 탑에서까지 빈익빈 부익부의 재현이라니 안타까운 현실이었지만 어쩌겠나.
그게 꼬우면 활약을 해서 제 권리를 쟁취하면 되니까.
1층에서 수호자를 잡고, 2-4층의 중간 관리자까지 사냥한 내 방이 7평 남짓한 공간인데 다른 방은…
“그쪽은 살만한지 모르겠네.”
상상만 해도 숨이 턱 막혔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아무리 피곤하다고 하더라도 이대로 잠을 청할 순 없었다.
침대에서 잠을 청한 상황에서 다음 층에 도착하기라도 했다간 여러모로 곤란했으니까.
간혹 그런 얼빠진 행동으로 지구로 귀환 당한 이들도 적지 않았으니 나는 아쉬움을 달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은 시간은 30분가량.
잠을 자기도 애매했으니 나는 방의 한쪽에 있는 욕실에 들어갔다.
푸쉬이이이!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활용해 목욕을 끝마치고는 젖은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나왔다.
욕실에서 나온 수증기가 방 안을 맴돌았다.
“후, 따뜻한 물로 씻는 게 또 몇십 년만이야.”
손으로 젖은 머리를 털며 상쾌함을 즐겼다.
튜토리얼 내에선 간혹 용암을 사용해 물을 덥혀 간단하게 씻어 보기만 했지, 이렇게 본격적인 것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래간만이었다.
극락이나 다름없는 환경.
나는 상쾌함을 즐기며 상황을 즐겼다.
‘방에 있는 건 전부 즐겼으니… 남은 건.’
내 시선은 자연스레 한쪽 끝을 향했다.
그 자리에는 작은 크기의 냉장고가 설치되어 있었다.
씻고 난 뒤의 행복을 위해 일부러 남겨뒀다.
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기분으로 크게 숨을 들이켜곤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냉장고 속의 차가운 냉기가 살결에 닿으며 이전과는 다른 쾌감을 선사했다.
한껏 부푼 기대를 안고 안을 들여다보자 코X콜X라가 들어있었다.
“캬! 역시 탑이야 뭘 좀 알긴 하네.”
씻고 난 뒤에는 상쾌한 탄산이 진리지.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 평화로울 때까진 펩X니 하면서 근본 없는 것들이 있었지만, 탑의 선택은 아무래도 코X콜X였나 보다.
이게 바로 활약한 뒤에 얻을 수 있는 권리!
치익!
캔을 따자 천년 만에 들어보는 청량감 넘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번에 원샷을 때릴 생각으로 기대를 안고 차가운 캔을 입에 대려던 그 순간.
〈삐삐삐!〉
〈00:00, 시간이 전부 흘렀습니다.〉
요란한 경고음을 내며 창이 떠올랐다.
“어, 잠만 나 입도 안 댔….”
적어도 한 모금이라도 하기 위해 서둘러 캔을 기울였으나.
〈6층으로 이동합니다.〉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온몸이 빛에 물들더니 나는 다음 층으로 이동했다.
〈6층입니다.〉
다음 층으로 이동한 직후, 나는 무미건조한 텍스트를 바라보며 주먹을 쥐었다.
뿌드득!
나는 손을 바라보며 이빨을 갈았다.
아니나 다를까, 손에 쥐고 있던 콜라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신기루 같은 풍경.
아니, 신기루는 처음부터 허상이기라도 하지 누군가 줬다가 뺏은 이 기분은 형용치 못할 정도로 짜증이 치솟아 올랐다.
“이번에도 꽝인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어리바리할 줄이야.”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두꺼운 갑옷 차림의 백발의 노인이 서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상대였지만, 그리 놀랄 건 없었다.
그는 6층을 관장하는 일종의 NPC.
커뮤니티의 정보에 따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꼰대라고 불리며 다른 플레이어의 치를 떨게 만드는 존재로 유명했다.
“자네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휴게 공간에 가고 싶나 보지?”
“……!”
“내 그럴 줄 알았지. 걱정 마라. 휴게 공간이라면 이 늙은이의 재량으로 보내줄 수 있을 터이니. 다만 그냥은 안 되지.”
이쪽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노인의 말투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긴말은 하지 않겠다. 네 실력을 직접 증명하고 쟁취하거라. 이제부터 시련의 내용을 정하겠다. 난이도는 최하부터 시작해서….”
NPC는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구구절절 어려운 이야기가 이어졌지만 그의 말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6층부터는 스스로 난이도를 선택해 탑의 시련을 클리어할 수 있다.
가장 쉬운 난이도는 통과하기 간단한 것에 반면.
‘높은 난이도일수록 보상은 크지.’
이른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더는 들어볼 것도 없었다.
나는 그에게 처음부터 정한 선택지를 내뱉었다.
“가장 어려운 단계로 하지.”
“허허, 젊은이가 꿈도 크군. 그 모드를 클리어 한 자는 지금까지….”
“뭐든 상관없어.”
노인의 말꼬리를 끊고는 딱 잘라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직접 증명하면 되잖아.”
나는 탑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각오를 입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