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년만에 귀환한 고인물-4화 (4/175)

제4화

〈플레이어 일괄 메시지: 31기수의 마지막 도전자가 튜토리얼을 클리어하셨습니다〉

플레이어들에게 일괄적으로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탑에 신입이 들어오는 일은 거의 몇 개월에 한 번 일어나는 이벤트였다.

따라서 신입이 튜토리얼을 클리어하면 이를 증명하는 메시지가 전달된다.

그래봤자 탑을 등반하는 것에도 바쁜 플레이어들한테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에 평소라면 무시하고도 남았을 일이었으나.

“야, 지금 뜬 거 봤어?”

“어… 봤긴 했는데 시스템에 오류라도 생긴 거 아냐? 31기수라니 그게 언제 적 이야기야? 최근 들어온 기수가 1564번째인데.”

“하긴 그게 정말이라면 튜토리얼 내에서의 시간으로 계산하면 대략 1000년이나 있었단 얘기잖아.”

“푸하하하!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그게 사실이면 내가 손에 장을 진다! 새로운 고인물 신입을 위하여 건배!”

그걸 접한 플레이어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술자리의 안줏거리로 넘겼다.

그 사실을 웃고 넘기는 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자, 무시하는 자.

수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있었으나,

반대로 이에 대하여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도 있었다.

탑의 36층 최전선.

차가운 설산으로 뒤덮인 환경으로 극한의 한기를 자랑하는 플로어에는 무장을 갖춘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탑의 3대 세력이라 불리는 길드와 한 명 한 명이 엄청난 명성을 자랑하는 플레이어들까지.

좀처럼 한곳에서 얼굴을 보기 힘든 그들이었지만, 그들이 모인 목적은 단 한 가지였다.

몇 년째 돌파하지 못한 채, 난공불락이라고 불리었던 플로어를 돌파하기 위해서.

갖은 위험을 경험하고 탑을 등반한 랭커들의 얼굴에는 죽음을 불사한 결의가 드러났다.

그런 가운데.

“음? 이건 뭐야?”

토벌을 준비하던 플레이어 중 한 명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유채아 씨, 그러고 보니 채아 씨가 31번째 기수 출신이 아니었던가요?”

“네, 맞는데요?”

“분명 채아씨가 튜토리얼을 마지막으로 나오셨다고 하셨죠.”

“확실하게 말하자면 제가 끝에서 두 번째였습니다. 좀 오래된 기억이긴 한데 제 뒤에 마지막 한 분이 더 계셨거든요.”

“정말로요?”

그녀의 발언에 남자는 눈을 희번덕 뜨며 되물었다.

부담스럽기까지 한 그의 말에 유채아는 애써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네, 정말이에요. 분명 한별 씨라면 제가 있는 기수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괴수를 많이 처치했는데, 제가 튜토리얼을 나올 때까지만 해도 1레벨이었거든요.”

“그런데도 1레벨이라고요?”

“다른 분들보다도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가 많은 거 같아서 튜토리얼에서 나오시면 활약을 하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아무 소식도 없는 걸 보면….”

아련한 눈빛으로 추억을 되살리고 있을 때쯤이었다.

그녀의 바로 앞에 있던 남자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어… 그 마지막 한 분이 지금 막 튜토리얼에서 나오셨다고 시스템 공지가 왔는데.”

“네? 튜토리얼을 지금요? 그, 그러면 도대체 튜토리얼에서 몇 년 동안….”

“채아 씨의 말대로라면 최소한 천년에 가까운 시간이겠죠.”

탑과 튜토리얼 내의 시간 흐름은 현저히 달랐다.

예를 들면 튜토리얼 내에서 2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 탑에서는 거의 반나절이라는 시간밖에 안 지난다.

튜토리얼 내에서 천년에 가까운 세월.

그것도 아무런 사람도 없이 혼자서 지낸다. 그들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도 힘든 고통이었으리라.

하나 다른 시점으로 그를 바라본다면…

“그 한별 씨라는 분의 경험치는 수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튜토리얼에 있을 정도로 엄청난 양이 필요하단 뜻이니….”

남자는 아연해 진 얼굴로 발언을 아꼈다.

그런 강자가 탑에 올라 최전선까지 와준다면 이는 엄청난 전력이었다.

그들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어쩌면 저희는 전설의 시작을 본 건지도 모르겠네요.”

그래, 그걸 표현하자면 전설 이외에는 나올 말이 없었다.

* * *

번쩍!

오랜 기다림의 시간 끝에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처음에는 환한 빛이 시야를 가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섬광이 가지고 주변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축축한 습기와 작은 반딧불이들의 불로 밝혀진 비좁은 통로였다.

동굴을 연상케 하는 풍경.

튜토리얼과 비하면 실망감을 가득 안겨주기 딱 좋은 상황이었지만, 나는 두 눈을 빛냈다.

“여기가 탑의 1층…….”

그야 10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같은 풍경과 같은 환경을 지겹도록 경험한 나였다.

그런 나한테 동굴이라는 미지의 공간은 쾌감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벽을 짚었다.

이 질감, 냄새, 소리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확실히 옛날에 서적에서 봤던 것처럼 그대로야.”

지금은 어렴풋한 추억.

지구에서 공부했었던 탑의 공략집을 떠올리며 나는 연신 벽과 땅바닥을 매만졌다.

다 큰 근육질의 남성이 얼굴을 붉히며 맨바닥에 엎드려 땅 내음을 킁킁 맡으며 교감을 한다.

정상적인 지식인이 본다면 기겁하고도 남을 풍경이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이게… 술이고 마약이지.”

다른 건 바랄 것도 없다.

그 누구도 탑의 1층에 들어온 나를 막을 수 없다.

홀로 기쁨을 만끽하며 탑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을 때였다.

〈3레벨의 특전으로 커뮤니티가 활성화됩니다.〉

“커뮤니티? 아아,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있었지.”

그동안 까먹고 있었네.

아무래도 2레벨에 얻을 수 있는 [직업]에 비하면 중요도가 떨어졌기에 안중에도 없던 기능 중 하나였다.

탑을 나온 플레이어들의 말에 따르면 커뮤니티는 그저 친목질 그 이상의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친목질이라면 굳이 탑이 아니더라도 지구에서도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뮤니티를 활용하는 사람들은 많은 모양이었다.

나야 천년동안 튜토리얼에 있으면서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무뎌진 지 오래다.

까놓고 말해 지금의 나한테는 별 의미 없는 기능 중 하나다.

뭐 그렇다곤 해도.

“획득한 걸 굳이 안 쓸 이유도 없지.”

나는 신대륙을 탐험하는 기분으로 커뮤니티창을 열었다.

〈3채널로 진입합니다.〉

- 말이 된다고 생각함? 탑에 들어온 신입이 31번째 기수라니ㅋㅋㅋㅋㅋ

⤷ ㄹㅇㅋㅋ 그니까 시스템상의 오류 그런 거겠지.

⤷ 시스템이 오류가 생기나?

⤷ 그럼 저게 찐이게?

- 저게 바로 경력 있는 신인 그런 거 거냐?

- ㅋㅋㅋㅋ경험 ㅇㅈ 튜토리얼에서 수백 년간 갇혀 있는 것도 경험이짘ㅋㅋㅋ

⤷ 수백 년간 슬라임 때려잡기 난이도 ㅆㅅㅌㅊ네 wwwww

커뮤니티를 확인해보니 플레이어들은 내 이야기로 한창 화제였다.

아무래도 내 존재는 그렇게나 파격적인 모양이었다.

어질어질해지는 정신을 애써 붙잡으며 나는 커뮤니티에서 본 정보를 떠올렸다.

‘요약하자면 탑에서는 실제로 시간이 별로 흐르지 않았으며, 지금까지 돌파한 층은 36층.’

여기까지만 해도 크나큰 이득이었다.

내가 탑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30층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진전이다.

그것 외에도 가장 중요한 게 있다면…

뭐니 뭐니 하더라도 현재 내 기량을 파악하는 것.

그리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려던 때였다. 멀리서부터 발걸음 소리가 들리며 생물의 기척이 느껴졌다.

-끼릭! 끼이릭!

-끼리릭!

거리는 불과 100M쯤 될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가까워져 오는지 저 멀리서부터 그림자가 나타났다.

탑의 생명체를 처음 만난다는 부푼 가슴을 안고 제자리에 서 있자, 키가 허리쯤까지 오는 초록색 인영이 나를 향해 달려온다.

놈의 정체를 한 눈에 확인한 나는 상당히 충격받은 표정을 했다.

“고블린…?”

탑이라고 하면 나타나는 가장 기초적인 괴수.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특별한 의미였다.

그도 그럴 게 튜토리얼에서는 기본적으로 수십 미터 크기나 혹은 수십 가짓수의 괴수를 섞은 듯한 괴랄한 괴물들밖에 보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저런 순수한 괴수는 오랜만이었다.

나는 거친 호흡을 내쉬며 고블린을 향해 달려갔다.

-끼릭?

한순간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고블린들은 바로 몸을 돌려 도망치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한참 늦었다.

저들의 속도로는 나를 피할 순 없었다.

지면을 박차고 고블린의 앞에 도달하자마자, 중간지점에서 화살과 독가스가 쏟아져나왔다.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한순간에 목숨을 잃을만한 함정.

-끼리리리릭!! 끼릭!

일부로 함정에 유인한 고블린은 고소하다는 듯이 웃기 시작한다.

탑에 들어오고 자만하는 신인을 함정을 이용해서 한 방에 죽여버린다.

실로 추악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지만 반대로 나는 감탄했다.

‘고블린이 지능이 있다고?’

지금까지 튜토리얼에서 상대했던 괴수들은 아무런 지능도 없이 그저 제 몸을 믿고 뛰어드는 행위밖에 하지 못했다.

탑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대목.

나는 흥분에 들떠 입가를 짜악 늘어뜨리며 몸에 힘을 줬다.

“흡!”

아주 짧은 기합과 동시에 내 목을 노리고 날아든 화살은 근육에 의해 허무하리만치 쉽게 튕겼으며,

튜토리얼에서 여러 괴수들에 의해 독 내성을 길렀기 때문에 독가스는 간단히 무시했다.

잇따라 발생한 함정들을 죄다 전차처럼 독파해내자 이를 지켜보던 고블린들은 새파란 얼굴로 뛰기 도망치기 시작했다.

-끼릭! 끼릭!!

동정심을 유발해내는 장면이었으나, 내 손아귀에서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고블린을 손에 쥐었다고 생각한 순간!

콰아앙!

굉장한 굉음과 함께 벽의 한쪽 면이 폭발하며 온몸에 무장을 두른 고블린이 나타났다.

방금의 고블린에 비하면 몸집도 기백도 전혀 다르다.

이내 놈의 정체를 알아차린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일명 탑의 수호자.

일부 층마다 존재하는 스페셜리스트로서 저걸 쓰러뜨리면 해당 층을 클리어할 수 있는 일종의 트리거였다.

수호자는 상식을 초월하는 괴수.

“일단 만나면 필패는 확정이니 무작정 피하라고 공략집에서 본 기억이 있지만….”

현재의 기량을 파악하는 게 급선무인 나한테는 엄청난 기회였다.

시답잖은 송사리보다는 죽음을 불사하며 치고받고 싸우는 편이 알아보기 훨씬 편할 테니까.

고민은 짧았다.

나는 들고 있던 검마저도 옆으로 집어 던지며 외쳤다.

“그래! 명색이 탑의 수호자니까. 그 힘을 나한테 똑똑히 보여달라고!”

땀내 나는 상남자 간의 전투다.

그리고 이런 싸움은 기선제압이 가장 중요한 법이지.

나는 카운터로 되려 맞을 각오로 주먹을 휘둘렀다.

그리고.

콰득⎯!

생생한 파육음과 함께 1층의 수호자는 형체도 남김없이 다진고기가 되었다.

“어……?”

이거 왜 한 방 컷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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