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어느덧 시간은 흐르고 흘러 튜토리얼에서 39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인간이 미쳐버려도 이상할 것 없는 기간이었지만, 아무래도 시스템의 작용으로 튜토리얼에서는 신체가 노쇠하거나 정신이 붕괴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 듯했다.
처음 100년 동안은 도저히 못 버틸 것 같다는 생각에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적어도 튜토리얼에서 죽었다는 경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지만, 탑에서 죽게 되면 지구에서 다시 부활한다.
익사, 낙사, 동사, 분신 등.
그 허점을 이용해 가지각색의 자살을 시도해봤으나,
행운인지 악운인지는 몰라도 튜토리얼에서는 일정 이상의 중상을 입으면 튜토리얼에서 다시 부활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200년가량이 흘렀을 때는 나는 도저히 외로움을 버텨내지 못하고 언젠가 봤던 영화에서처럼 괴수의 두개골을 모아 이름을 붙였다.
렉스, 케인, 제라드,
지구에서는 영화를 보면서 추하다고 생각했으나 사람이 극지에 내몰리면 못 할 것은 없었다.
그걸로 외롭다는 생각은 어느 정도 가셨지만,
이윽고 300년이 흘렀을 때는 나는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하는 내 희망은 부질없는 것이라고.
나는 기어코 포기라는 단어를 깨우쳤다.
무려 3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튜토리얼 내에서 사냥한 괴수들의 숫자만 해도 탑의 여느 플레이어보다도 더 많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레벨이 오르지 않는다는 뜻은 간단한 이치다.
“신은 내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거지.”
현재에 돌아와 나는 미친 듯이 중얼거렸다.
튜토리얼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아무도 없는 곳에 쓸쓸하게 있다 보니 혼잣말이 버릇되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바지를 털고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월의 풍파를 맞아 튜토리얼에 올 때 입던 옷은 닳아 없어진 지 오래.
지금 입은 복장은 괴수들의 가죽을 엮어 대용으로 만든 옷이었다.
그렇다곤 하지만 완전히 넝마나 다름없는 행색이지만 말이다.
“후, 그럼 슬슬 시간도 됐나.”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검을 잡았다.
이 역시 수제로, 괴수의 뼈를 갉고 닦아서 제련한 검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사실상 검의 형태를 한 몽둥이지만.’
튜토리얼 내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강한 괴수들이 나타난다.
필연적으로 괴수들의 기골이 굵어지기 때문에 비전문가인 내가 일반적인 검처럼 날카롭게 날을 서게 벼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뭐 그러면 어떤가.
본디 무기란 괴수를 더욱 잘 때려잡기 위한 용도.
상대가 뭐든 간에 이걸로 잘 때려잡을 수 있다면 장땡이다.
시선을 돌리자 어둠에서부터 새빨간 안광들이 번뜩거렸다.
한둘이 아니다.
기척으로 확인하건대 적어도 수십, 수백은 되는 숫자.
어둠 속을 뚫고 거대한 덩치의 괴수들이 입에서 자욱한 유황을 내뿜으며 다가온다.
화르르르!
등에는 익룡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날개가 달려 있고 우악스러운 발톱에는 극독이, 꼬리에는 히드라의 머리가 달린 늑대형 괴수였다.
외견으로만 보자면 지옥의 파수꾼이라 불리는 케르베로스 그 이상의 괴물.
수백 년 전의 나라면 공포에 몸을 떨었을지도 몰랐겠지만, 지금의 나한테는 아니다.
“개새끼는 오랜만이네, 한 2년 만인가? 못 본 사이에 등짝하고 엉덩이에 뭘 주렁주렁 달고 나왔어.”
나 참 어이없다.
도대체 누구 대가리에서 나온 얕은 생각인지는 몰라도 그런 부가 옵션을 붙여봤자 달라질 건 없다.
나는 여유만만한 자세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본적인 체격을 차를 보고 괴수는 비웃기라도 듯 유황을 뱉어낸다.
그리 놀라운 모습은 아니다.
지금까지 나타났던 괴수들은 전부 나를 앞에 두고 저런 조소를 보내며 도발을 보냈었다,
나한테는 익숙한 광경이었기에 불쾌할 것은 없었다.
어차피 결과는 매번 똑같았거든.
“대가리 박살 날 때 내는 소리는 어떤 괴수든 간에 똑같던데, 넌 다른 놈들하고 다른지 보자.”
그 말을 끝으로 지면을 박차고 괴수들을 향해 쇄도했다.
주변이 빠른 속도로 가속되더니, 눈을 뜨자 괴수의 턱이 바로 앞에 나타났다.
절로 구역질이 날 것만 같은 괴수의 침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놈의 턱을 하늘 위로 걷어찼다.
콰득!
뼈가 박살 난 것 같은 소리가 난 것과 동시에 상공에 붕 뜬 괴수.
한순간 초점을 잃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나 싶더니, 괴수는 금방 평정심을 되찾곤 메두사의 머리를 한 꼬리를 휘두른다.
미처 피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속도!
하나하나가 거목을 박살 내고도 남을 위력이었으나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런 경험이라면 수도 없이 많이 겪어봤다.
저런 어쭙잖은 공격을 그대로 맞아주던 시절은 한참 지났다.
쫘아악!
들고 있던 대검을 상단으로 크게 휘두르자 둔탁한 굉음과 함께 꼬리가 절반으로 갈라졌다.
절단된 꼬리에서부터 독성으로 이뤄진 피가 간헐천처럼 쏟아진다.
고통으로 물든 괴수의 비명은 덤이었다.
그제야 위험성을 깨달은 괴수는 발톱으로 내 등을 낚아채고는 날개를 이용해 상공을 향해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드높은 상공에서 나를 떨어뜨려 버릴 심상이었겠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끝낼 생각이라면 틀렸다.
왜냐하면.
“날 붙잡은 시점에서 네 패배야.”
자신보다 훨씬 강할지도 모르는 적을 붙잡고 있다니, 이래서 괴수들의 대가리가 개돼지만도 못하다는 거다.
나는 그 자세 그대로 괴수의 다리를 붙잡았다.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막기 위한 단단한 비늘이 표피에 우수수 돋아나 있었으나, 이런 건 유리 조각만도 못한다.
악력으로 잡고 비틀어 버리면 끝이니까.
다리뼈를 아작내 버릴 생각으로 잡고는 비틀어 버리자, 괴수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급강하했다.
콰과광!
땅바닥에 추락한 괴수는 몸을 부르르 떨며 야단법석을 피우기 시작한다.
나는 검을 어깨에 가져다 대며 히죽 웃었다.
“내가 분명히 말했지? 내 앞에서는 어떤 괴수든 간에 빠짐없이 전부 비슷했다고.”
그리고.
손에 쥔 대검을 크게 휘두르자 놈의 머리는 마치 수박처럼 절반으로 쪼개졌다. 뇌척수액이 바닥을 주르르 흐른다.
괴수는 그대로 절명했다.
숨이 끊어지자, 여느 때와 같이 경험치가 올랐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시스템 창을 확인한 나는 조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돌렸다.
“경험치는 개뿔, 어차피 레벨업도 안 시켜줄 거면 그깟 경험치가 무슨 소용이라고.”
경험치에 목을 매달던 옛적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별 감흥도 없었다.
그간 수백 년간 튜토리얼 내에 머무르면서 경험치를 얻었다는 표시는 bgm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기에.
그것보다도 할 일이 있다면…
“저것들을 전부 해치우는 거지.”
나는 남아 있는 괴수들을 바라보고는 검을 붙잡으며 말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과의 시작이다.
* * *
촤악!
마지막 남은 괴수까지 전부 쓰러뜨린 나는 검을 휘둘러 괴수의 피를 떨쳐냈다.
땅바닥에 떨어진 핏방울은 괴수 특유의 극독에 의해서 잔디가 녹아내렸다.
그도 그럴 게 괴수의 피는 어지간한 철제 검이더라도 녹여버리고도 남을 만한 산성을 띠고 있다.
놈들의 온전히 상대할 수 있는 것도 전부 괴수의 뼈를 깎아 제련한 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는 경계했던 것만큼 별것도 아니네.”
나는 검을 아무렇게나 집어던지며 제자리에 앉았다.
어차피 나와 함께 들어온 기수의 플레이어들은 튜토리얼에서 탈출한 지 오래였으니, 이 안에는 나밖에 없다.
제자리에 앉아서 대충 시간을 때우고 있자니, 허공에서 섬광이 번쩍이더니 무언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의 정체는 생수 한 병과 약간의 호밀빵.
튜토리얼에서 수백 년 동안 갇혀 있는 동안 매일 같이 지급되는 보급품이었다.
아무리 튜토리얼에서는 영양부족으로 죽을 일은 없다고 하더라도, 허기짐이 없어지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나는 호밀빵은 입에 쑤셔 넣으며 투덜거렸다.
“기왕이면 다양한 종류로 주면 좋을 것이지. 하필이면 왜 많은 빵 종류 중에서도 호밀빵이야.”
수백 년간 같은 종류의 빵만 먹으면 질릴 만도 했다.
뭐 불평은 했지만, 따지고 보면 튜토리얼은 탑에 가기 전에 잠시 머무르는 장소.
애초에 이곳에 수백 년간 박혀 있는 내가 비정상이다.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괴수를 구워 먹을 순 없잖아.
“예전에 한 번 시도해봤다가 식겁하기도 했었고.”
튜토리얼에 들어온 지 2년이 지났을 무렵일까.
그때는 젊은 날의 치기 같은 것으로 괴수를 해체해 불에 구워 먹었다.
갖은 연구 덕에 괴수가 지닌 특유의 독을 걸러내는 것은 성공했지만, 그 맛은…
“차라리 독을 마셔서 배를 채우는 게 더 낫겠다 싶을 정도로 그 맛은 끔찍했지.”
지구에 있을 당시의 환각까지 봤을 정도니 말 다 했다.
바닥에 떨어진 생수를 들이켜고 있을 때쯤이었다.
띠링!
뜬금없이 귓가에서 시스템음이 들려왔다.
튜토리얼에서는 사소한 행동을 해도 그 나름대로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괴수를 상대할 때와는 달리 일상생활의 작은 행동 하나로 경험치를 획득하는 것은 시스템으로 일일이 알려 주진 않을 터.
이상하다.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돌린 나는 시퍼렇게 굳은 표정으로 제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내가 튜토리얼에서 3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토록 기다려왔었던,
마음 한켠에서는 한 줌의 가능성마저도 포기해버렸었던 문구가 있었기 때문에.
〈2레벨이 되었습니다.〉
아주 간략한 한 문장.
그 문장을 직시한 나는 얼떨결 한 표정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어?”
내 레벨… 버그 걸려서 멈춘 게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