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년만에 귀환한 고인물-1화 (1/175)

제1화

탑에 들어오기 전까지 나는 영웅이 될 줄 알았다.

어느 날 지구에서 게이트가 열리고 탑이 생겨났다.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괴물로 인해 각국이 차례차례 무너져 내렸으며,

지구는 한순간에 지옥이 되었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건지 많은 자들이 선택을 받고 탑에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탑을 공략하다 사망했다. 그러나 탑에서 오래 버티면 버틸수록, 강한 힘을 가진 채로 지구로 귀환했다.

그 귀환자들은 지구의 괴물을 무찌르고 영웅이 되었다.

나 역시 어릴 적부터 각박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영웅을 꿈꿨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나 또한 탑에 들어갈 기회를 얻게 되었고.

튜토리얼에 들어오고 나서 999년, 나는 무수히 많이 쌓여 있는 괴수들의 시체들의 정상에서 소리를 질렀다.

“나도 탑 좀 들어가 보자!”

* * *

파아아앗!!

엄청난 밝기의 섬광이 눈앞을 가렸다.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뜨자, 나와 같이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동시에 반투명한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곳은 튜토리얼입니다.〉

〈당신들은 탑의 31기 도전자로, 총 100명입니다. 각자 살아남으시오.〉

배려심 따윈 일절 보이지 않는 불친절한 설명.

하지만 나는 씨익 웃었다.

처음 들어와 보는 탑이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지구로 귀환한 자들이 탑과 관련된 정보와 설명을 이해하기 쉽게 떠들어 댔기 때문에.

게다가 탑과 관련된 가이드 교본도 암시장에서 팔았기 때문에 이를 익히 접했던 나한테는 아주 익숙했다.

‘튜토리얼.’

탑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거치는 일종의 베타테스트로 다양한 지식과 전투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장소였다.

탑에 들어오자마자 멋모르고 뒈지는 걸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라고 생각하면 되리라.

그 상황을 알아차린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다른 사람들도 웃음기를 띠기 시작했다.

“흐흐흐! 드디어 탑에 들어왔다! 그래,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건 모두 이날만을 위한 것이라고!”

얼떨결한 표정의 사람들 속에서 서양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를 질렀다.

나와 마찬가지로 반투명한 창을 보고 내지른 외침이었다.

탑에선 어릴 적에만 보던 영웅처럼 각종 능력을 사용하면서 괴수들과 싸울 수 있다.

그리고 탑에만 있으면 그 지옥 같은 지구를 다신 볼 일도 없다.

만일 죽는다고 해도 탑에서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지구에서 생존할 수도 있다.

그야말로 보장된 인생 역전의 기회.

어디까지나 낙관적인 관점으로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지만.

“어, 엄마… 무서워요.”

“그래… 겁 먹지 않아도 된단다.”

유치원생 뻘일까.

최연소라고 불려도 이상할 것 없는 아이가 엄마의 손을 붙잡고 떨었다.

이처럼 앞으로 닥칠 일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지구와 마찬가지로 죽음이 바로 턱밑까지 닿은 셈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대다수는 서양인과 같은 전자의 얼굴이었다. 인생 역전의 한방 기회인데 마다할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나 또한 전자였다.

“후… 그래. 최대한 오래 그리고 높게만 올라가자.”

매일 아침마다 나를 반겨주는 괴물들과 공기 한 점도 안 통하는 지하방은 이젠 사양이다.

언제 죽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생활도 이제 끝.

과거의 삶은 청산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이 튜토리얼을 끝내야지.”

미디어에서 떠들어대길 튜토리얼은 3레벨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레벨을 올리기 위해선…

“와씨! 저건 또 뭐야!”

머릿속에서 상념을 떠올리고 있자, 타이밍이라도 잰 듯이 멀리서부터 비명이 들려왔다.

짤막한 외침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형형색색의 슬라임들이 점프하며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징그럽기까지 한 광경이었으나.

“야! 상관없으니까 다들 달려가! 미디어에서 튜토리얼에서 처음 나오는 슬라임들은 공격력이 없댔어.”

누군가의 고함 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튜토리얼의 슬라임들이 공격력이 없다는 건 탑을 나온 모든 자들이 입 모아 말했던 내용이다.

그 사실이 거짓이 아니라면 저건 경험치 덩어리.

“그리고 빨리 쓰러뜨리는 놈이 임자지.”

잘됐네.

나는 속으로 외치면서 선두로 뛰쳐나갔다.

공격력이 없는 슬라임은 노다지라 할 수 있었지만, 그 수가 한정되어 있었다.

다른 이들보다 먼저 슬라임을 처치하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경험치를 벌어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지배했다.

나는 달리면서 미리 봐둔 나뭇가지를 확인했다.

그걸 재빠르게 주운 다음, 슬라임의 머리에 대충 쑤셔 박고 그대로 휘저었다. 마치 내 손이 믹서기가 된 듯이.

그러자, 무언가 걸려드는 느낌이 있었다.

‘이게 슬라임의 핵인가?’

서적에서 읽었던 대로 핵을 찌르자 슬라임은 형태를 잃고 녹아내렸다.

“나이스!”

언제 올 줄 모르는 이 날만을 기다리며 없는 돈을 쪼개면서까지 검도를 다닌 보람이 있네.

우선 한 마리.

쫄지 말자.

최대한 쓰러뜨려서 다른 이들과 초반부터 격차를 벌려야 한다.

나를 시작점으로 나른 사람들도 속속히 슬라임을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에서 강렬한 섬광이 터져 나온다.

레벨업의 신호다.

다른 이들과 비교해도 슬라임을 쓰러뜨린 숫자는 내가 현저히 많지만, 나한테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조급해질 법도 했지만,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 말이 있잖아?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지만, 시작점은 다르다.]

탑도 마찬가지로 동등한 기회를 주어졌지만 저마다 시작점은 다르다.

이미 탑을 겪은 영웅들의 말에 따르면 개인마다 필요한 경험치의 양은 다르다고 했다.

필요한 경험치의 통이 크다는 뜻은 곧.

“성장할 폭이 크다는 거지.”

그릇이 작은 자는 빠르게 그릇을 채울 수 있으나, 그릇이 큰 자는 채우는 속도가 느리다.

씨익.

나는 내 손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탑에 들어온 것은 호재였나 보다.

두 번째의 삶, 신은 나한테 미소를 지은 것 같았다.

* * *

튜토리얼에 들어온 지도 삼 일이 지났다.

이상함을 느낀 것은 그때부터였다.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레벨업 소리가 들려오는데, 내 시스템창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만약에 지금까지 획득한 경험치의 양이라도 보였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겼겠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지구로 귀환한 영웅들이 설명했다시피 3레벨을 달성하면 튜토리얼을 탈출할 수 있다.

그 증거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3레벨을 달성해 바깥으로 나갔다.

이제 튜토리얼에 남은 이는 20인.

그중에서 1레벨은 아직 나 혼자뿐이었다.

불안하냐고?

뭐, 곁으로 보기엔 남들에 비해 뒤처지는 것 같아서 마음 한구석이 불안하다고 해도.

“조급할 건 없지. 이대로 2레벨이 되면 남들을 뛰어넘고도 남을 텐데.”

그릇이 크기에 당연히 그에 필적하는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

실제로 탑의 고위층에 있는 자들은 전부 그릇이 큰 사람들이다.

‘역대 최강이라고 불리는 골리엇도 튜토리얼에서 20년을 썩혔다니까.’

에이. 소설 같은 이야기도 아니고 설마 20년이나 있겠어?

그런 일이 나한테 벌어질 리는 없지.

아직 3일밖에 안 지났는데 이런 불안감을 가지는 것을 보면 나도 참 어린놈이라니까.

수년간 노가다로 몸을 굴린 거에 비하면 훨씬 양반인데 말이야.

나는 마음속의 불안감을 종식시키며 주변을 둘러봤다.

3일이 지난 것뿐이었으나 저마다의 위기를 극복하며 탑에도 익숙해진 모양인지 덤덤한 얼굴이다.

그걸 위해 존재하는 튜토리얼이니 당연한 건가.

‘그건 그렇고 저건 욕심난단 말이지.’

나는 시선을 돌려 다른 이들의 무장을 바라봤다.

철제 검부터 시작해 활과 배틀 액스, 스태프까지.

1레벨이 지나 2레벨이 되면 자신의 능력치에 맞게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저것들은 직업을 고르면서 얻은 보상이었다.

어차피 곧 레벨이 오르면 나 또한 보상을 얻을 테니 조급할 건 없다.

다른 이들을 살펴보면서 내가 선택할 직업에 대해서도 분석을 했으니 준비는 완벽하다.

남은 것은 레벨업을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땐 그냥 남들보다 조금 그릇이 큰 것이려니 생각했는데, 또다시 시간은 이 주일이 흘렀다.

어느 날을 기점으로 3레벨에 이르는 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남아있는 이들은 전부 5인이 되었다.

한 기수당 튜토리얼의 클리어 기간이 평균 1주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꽤나 심각한 일이었다.

까놓고 말해 여기까지 남은 이들은 둘 중 하나다.

진짜배기나, 혹은 그에 상응하는 폐급이거나.

모 아니면 도다.

“아씨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창을 바라봤다.

2주일째 내 레벨은 1이라는 숫자에서 변함이 없었다.

마음이 조급해지긴 했지만,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다.

“최대한 경험치를 쓸어모을 수밖엔 없지!”

나는 기합을 외치며 지면을 박차고 도약했다.

-꺄라아아악!!

내 뒤를 뒤따라 수십 마리의 고블린들이 몽둥이를 들고 달려온다.

처음은 슬라임으로 시작해, 개와 늑대 등.

튜토리얼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력한 괴수들이 나타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더 나아가 적게나마 지능을 가진 괴수까지 나타났다.

그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상대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지!”

덤블링으로 바위를 뛰어넘은 나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바닥에 떨어진 넝쿨을 집어 당겼다.

휘리리릭!

신호에 맞혀 나무 위에서 떨어진 바위가 고블린들의 머리를 짓뭉갰다.

고블린들은 허무하리만치 단 한 방에 바닥에 쓰러졌다.

-그에에에엑!

머리뼈가 박살 난 고블린은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서 움찔거렸다.

그 와중에도 내 목을 노리기 위해 몽둥이를 휘두르는 노력은 가상했지만.

“야 미안한데 그래 봤자 소용없어.”

그게 꼬우면 너희들도 나처럼 머리를 쓰던지.

아, 맞다.

저것들은 지능도 없었지. 그럼 어쩌긴 죽어야지.

나는 조소를 머금으며 날카롭게 깎은 돌검을 내려찍었다. 공기를 가르는 파찰음과 함께 돌 검은 고블린의 목을 관통했다.

동맥을 절단하면서 피가 튀며 얼굴에 묻었지만 상관없다.

이게 전부 경험치라고 생각하면 얼마야.

“오늘도 대박인데.”

역시 본능에 따라 멍청하게 움직이는 괴수들한테는 몰이잡이만 한 게 없다니까.

오늘의 할당량도 이걸로 끝이다.

당연하게도 레벨업을 의미하는 섬광은 없었다.

뭐… 익숙한 일이니 절망하진 않았다.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지.

왜냐고?

왜냐하면, 신은 나를 보고 미소를 짓고 있을 테니까.

* * *

그로부터 또다시 반년이 지났다.

“한별 씨… 가능하면 당신과 함께 나가고 싶었는데, 안타깝게 됐어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 있어 주던 소녀는 이름을 부르며 안타깝다는 얼굴로 말했다.

탑의 31기 도전자 중에서도 마지막으로 남은 플레이어.

그녀는 나와 마찬가지로 많은 경험치를 필요로 했기에 반년이나 넘게 튜토리얼에서 재능을 썩혔다.

그동안 그녀의 무위를 봐왔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탑에 올라가면 엄청난 무력을 플레이어로서 각광 받겠지.

아씨 나도 그래야만 하는데.

눈에서 땀이 흘러내리는 거 같은데, 착각이리라.

“한별 씨도 저처럼 금방 탈출할 수 있을 거예요.”

“어, 그래야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나도 알아.

나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녀 딴에는 날 생각해서 말한 말일 텐데 마음 한편에서는 시기심이 들끓는 것은 왜일까.

왠지 모르게 저 웃음이 조소처럼 느껴진다.

아무래도 약 먹을 때가 다 됐나 보다.

“튜토리얼에서 나오면 가장 먼저 저한테 연락하세요. 탑에서 만나게 되면 밥이라도 한 끼 살게요.”

“알았어.”

“그럼 위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녀가 싱긋 웃자 눈 앞을 가릴만한 섬광이 몸을 잡아 삼켰다. 튜토리얼을 벗어나 탑을 향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걸로 난 저 현상을 49번째 지켜 봐왔다.

나는 그때마다 결심한 생각을 입에 내뱉었다.

“그래, 세계 최강이라고 불리는 플레이어도 튜토리얼에서 20년 동안 인생을 썩혔는데, 난 그럴 리는 없겠지.”

중학생 때 군인을 보면서 통일을 꿈꾸던 시절도 아니고.

지금은 휘황찬란한 두 번째 삶.

내 인생 절정기는 지금이다.

“20년? 어차피 튜토리얼에서 썩힐 거면 까짓것 채워보지.”

장난으로 내뱉은 그 농담을 끝으로 튜토리얼에 갇힌 지 20년이 흘렀다.

그제야 알게 됐다.

지금까지 신이 나를 향해 짓는 것은 미소가 아니라 비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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