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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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경기에서 어떠한 결과가 나와도 올 시즌 더 이상의 다른 메이저리그 경기는 없다.
한 해 가장 마지막에 치뤄지는 이 경기에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열아홉 살의 어린 선수가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서게 됐다.
[자! 드디어 한국의 아들! 대한 건아의 이성호 선수가 월드시리즈! 그것도 7차전 마지막 경기에 선발 등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 정말 역사적인 날입니다. 대한민국 야구 역사에서 이제까지 찾아볼 수 없었던 월드시리즈 선발 투수, 그것도 월드시리즈 7차전이라는 최종전에 선발 등판하는 투수라뇨... 정말 대단하고 또 대단합니다.]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봐야겠죠. 그것도 보통의 획과는 다르게 굵고 힘있는 획을 말입니다.]
[심지어 오늘은 죽더라도 지면 안되는 한일전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갖는 한일전이라니....]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BMC 스포츠 미디어 중계팀은 이번 월드시리즈를 현지에 날아가서 중계하고 있었다.
다저 스타디움에서 벌어지는 월드시리즈 7차전 역시 본래부터 성호의 중계를 맡았던 캐스터와 해설위원 모두 경기장 분위기를 피부로 느끼며, 오늘 경기에 관한 이야기를 시청자들에게 전해 주었다.
그들은 관중석에 앉아 있는 어린아이의 표정까지도 유심히 살피며 조금이라도 시청자들에게 더 생생함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경기가 시작됩니다!]
[월드시리즈 그것도 7차전에 선발 등판하는 이성호 선수는 잠시 뒤인 1회 말에나 볼 수 있겠지만... 뉴욕 양키스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됩니다.]
경기는 시작 되었고.
원정팀 뉴욕 양키스의 선공으로 시작되었다.
이를 막아내기 윟 LA 다저스의 2선발 다르빗슈 유가 마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자 다저 스타디움을 찾은 관중 대부분이 목소리를 드높였다.
"우아아아아아!!"
"유! 유! 유! 유! 유!"
"우리에게는 유가 있다! 다르빗슈 유!!!!!"
일부에서는 양키 스타디움에서 볼 수 있었던 플래카드 응원을 준비해 LA 다저스를 응원하고 뉴욕 양키스를 조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 수가 양키 스타디움에서처럼 맣지는 않아 경기장 분위기에 큰 영향은 없었지만, 중계를 담당하는 카메라들은 그런 흔치않는 장면들을 꼭꼭 잡아내는 재주가 있었다.
-병신 같은 놈들. 따라 하려면 리의 플레이를 따라 해야지. 응원 방법을 따라 하고 있네.
-쪽팔린 줄 알아야지. 저러면 뉴욕 양키스 선수들은 되레 기세만 등등해질 걸? 응원법이나 따라 하는 하찮은 놈들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에효..... 불쌍하다. 그냥 우리가 넓게 생각하자. 상대 팀 응원을 베껴야 할 정도로 지금 다저스 팬들의 마음이 급하다는 증거니까. 아량 넓은 우리가 조금이나마 선심을 써줘야지 않겠어?
-오늘 경기 하나로 모든 게 결정되는 데 상대 팀 선발이 야구의 신이라고 불리는 '그 놈'이야. 너라면 저런 방법이라도 안 쓸 것 같냐??? 아무리 리가 타 팀 팬들에게 인정을 받아도 상대 팀이 되면 까내리는 건 별 수 없는 거야.. 그냥 이해하고 봐라..
-나라면 안 그럴건데? 만약 우리 팀이 이런 상황에 맞딱들이게 된다면 애초에 경기장에 직접 보러가지도 않을거야. 낮잠이나 자면서 경기 결과나 챙겨볼 걸?? 사실 경기 결과도 보고 싶지는 않지만.
주위에 눈쌀을 찌푸리며 그 장면을 지켜보는 수많은 팬도 있었지만.
LA 다저스를 응원하는 팬들은 전혀 기죽은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국과 일본의 사이를 이번 기회에 알게된 LA 다저스 팬들은 다르빗슈 유가 첫 타자 아쿠냐 주니어를 단 삼구만에 삼진으로 손쉽게 잡아내자 더욱 목소리를 크게 내질렀다.
오늘이 올 시즌 마지막 경기인 것을 생각했는지, 한동안 목소리를 잃어도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처럼 목의 핏대를 세워가며 숨도 내쉬지 않고 큰 소리로 다르빗슈 유의 이름을 불러댔다.
"달빛!"
"유!! 당신만 믿을게요!"
"당신은 우리의 희망!"
그리고 그가 응원에 힘을 입어 2번 타자 애런 저지와 3번 타자 개리 산체스마저도 쉽게 잡아내고 마운드에서 내려왔을 땐, 다저 스타디움 가득 다르빗슈 유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만 남아 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기선 제압 (機先制壓).
하지만 이는 모두 예고편에 불과했다.
[드디어 대한의 건아. 이성호 선수가 월드시리즈 7차전의 마운드에 오를 시간입니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순간입니다.]
1회 말, 홈팀 LA 다저스가 공격할 시간.
그걸 막기 위해 이성호가 덕아웃 밖으로 글러브와 모자를 챙기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다저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5만 6천 명의 입들이 모두 다물어졌다.
조금 전까지 이곳에서 경기가 진행되었다는 사실이 마치 환상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환상은,
이성호가 마운드를 향해 느린 걸음으로 오를 때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우우우!!"
"얻어 터지고 내려가 버려라!"
"우우우우우우우우!!"
"우리 다저 스타디움에서 꺼져버려! 이 개자식아!"
다르빗슈유의 이름을 외쳤던 것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LA 다저스 팬들이 이성호를 향해 내지르는 야유는 그보다 훨씬 더 큰 소리를 내며,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인 다저 스타디움을 그야말로 가득 메워버렸다.
이성호가 마운드에 가까워질수록 그 소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만약 성호가 일반적인 투수들과 같은 심장 크기를 가진 투수였다면 기세에 눌려 오금을 지리고 공 하나도 제대로 던질 수 없을 만큼의 압박이 마운드에 가해졌다.
그리고 그 기세에 잠시 걸음을 멈칫한 이성호.
LA 다저스 팬들은 작전이 성공한 건가? 라는 생각을 하며 호기롭게 더욱 기세를 올렸다.
하지만.
마운드를 몇발자국 앞두고 잠시 걸음을 멈춘 성호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다저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관중들을 한번씩 둘러보더니.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저벅. 저벅.
그리고 다시 움직이는 발걸음.
마운드에 가까워질수록 그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는데, 이번에도 역시 중계 카메라가 그 장면을 제대로 화면에 잡아냈다.
-역시..... 너란 남자. 이런 상황에서도 겁먹지 않는구나?
-제엔장! 믿고 있었다고! 나는 그가 이런 상황에서도 겁먹지 않을 거라는 것을!
-전쟁터에서 적국과 담판을 짓기 위해 왕이 직접 벅의 심장을 찾아오신 것과 같은 모습이군.
-보통 적국 병사들이 지금과 같이 상대 왕을 위협해 보려고 소리를 지르지만, 사실 그 위협은 왕을 본 두려움 때문에 지레 겁을 먹고, 소리를 지르지. 그것은 살고 싶다는 울부짖음이랑 같은 거야.
-캬~ 비유 쥑이네. 소설 작가나 해봐라. 이왕이면 야구 소설로다가. 잘 쓸 거 같은데? 한달에 삼백은 우습게 벌겠어.
-하나만 더 하자. 저 소리 왠지 진혼곡 같지 않냐? 오늘로써 다저스는 야구의 신에게 패배를 하고... 다 죽은 거야. 그리고 그것을 야구의 신께서 기리 삼아 들려준 거지.
-크으... 진짜 멋있다!
1.
이성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상대 팀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성호가 정규시즌 30경기에서 한 점밖에 내주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 타자들이 점수를 뽑아내지 못했다는 말과 같은 의미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포스트시즌과 같이 상대에 대한 분석이 더욱 철저해지는 경기에서도 점수를 내지 못했다는 것은, 명백히 기량에서 뒤처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점에서 철저히 대중들의 무시를 받아야만 했던 LA 다저스 타자들.
정규 시즌에서는 성호의 선발 등판 기간과 맞지 않아 만나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월드시리즈에서 자그마치 2경기.
그들은 총 2경기에서 이성호에게 2번의 완봉승을 내주었다.
심지어 그 중 한 번은 150년 역사를 갖춘 메이저리그에서도 최초로 월드시리즈 10이닝 퍼펙트게임을 이룰 수 있게 해준 경기였다.
9이닝 완봉승을 내준 경기가 평범하게 느껴질 정도로 정말 처참하게 당했따.
더욱이 그 기록 중 2경기가 월드시리즈라는 가장 중요한 무대에서 나왔다.
월드시리즈 2승.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1차전과 똑같이 승리를 한다면 3승째.
그많은 야구팬이 모두 7경기가 치뤄지는 월드시리즈를 이야기 할 때 절대적인 에이스가 나와 3승을 하면 그 팀이 이기기 쉽겠다고 말하지만, 그 일이 결코 쉬울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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