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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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이 미트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
그사이에 끼어든 것이 있었다.
"달려! 2루로!"
타석에 선 타자의 배트에 맞은 공이 1루수 키를 훌쩍 뛰어 넘었다.
떨어지는 지점은 라인 안쪽이었지만, 이후로는 라인 밖으로 멀찌감치 흘러나갔따.
페어 볼.
근처에 대기하고 있는 수비수들이 없을 수 밖에 없는 파울존 위치로 공이 데굴데굴 굴러가기 시작했다.
LA 다저스 우익수 야시엘 푸이그가 황급히 달려와 공을 잡은 뒤, 2루에 던지려고 했지만, 그보다 성호의 행동이 더 빨랐다.
야시엘 푸이그가 공을 잡을 때는 이미 1루를 지나쳐 2루에 거의 도착한 상태.
이성호는 고개를 돌려 3루 뒤에 위치한 주루 코치의 사인을 살피기 시작했다.
달리면서 타구를 전혀 확인할 수 없었으니 3루를 갈지 말지 고민해야할 상황.
'어? 달리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저건 무슨 신호지?'
먼가 망설이는 모습.
뉴욕 양키스 3루 주루 코치는 달리라는 사인을 먼저 냈다가 곧장 멈추라는 사인을 보냈다.
이미 성호는 2루 베이스를 밟은 후였는데.
원래라면 이제라도 멈춰서는 게 맞았다.
하지만 성호는 아주 짧은 시간 고민한 다음 그대로 2루를 통과해 버렸다.
이왕 이렇게 된거.
확실히 이번 이닝에 승부를 보려는 것.
자신이 던진 주사위는 이미 하늘 높이 떠올라 바닥에 굴러가기 시작했다.
"어느 쪽으로 날아와요? 코치님!"
다급한 성호의 물음.
이제 남은 것은 슬라이딩 뿐.
이때 주자는 주루 코치의 사인을 보며 슬라이딩 코스를 정하는게 보통이었다.
공이 오는 방향과 반대쪽을 택해야 그나마 살안마을 확률이 더 커지니 말이다.
주루 코치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기에 이성호 대신 우익수의 송구를 먼저 바라보다, 이내 제스처를 취했다.
"리! 오른쪽으로!"
선택은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투수에게서 좀처럼 보기 힘든 동작이 성호에게서 흘러나왔다.
성호는 3루 수비수의 위치를 확인하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고 왼손으로 베이스를 향해 손을 뻡었다.
혹시나 하는 걱정에 오른팔을 접고 내민 왼팔.
분명 글러브가 몸에 닿기 직전에 베이스의 촉감이 내 손끝에 먼저 느껴졌다.
느끼기에 완벽한 세이브 상황.
하지만 이것을 지켜보는 심판의 입장에서는 그 차이가 아주 크지는 않았다.
성호와 3루 수비수, 주루 코치를 시작으로 몇만명의 팬들의 시선이 모두 3루심에게 몰렸다.
심판은 1초 정도 인상을 쓰며 머뭇거리다가 이내 양팔을 자신의 몸 바깥으로 쫙 벌리며 호쾌하게 소리쳤다.
"3루! 세----이프!"
그제야 바닥에 팔을 벌리고 누운 채로 활짝 웃는 성호.
그가 자리에 일어나 흙이 묻은 부위를 털어내자.
사방에서 함성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
1.
[와우.. 정말 말도 안 되는 플레이군요. 이게 전문적인 주루인이 아니라 투수가 보인 슬라이딩이 맞나요? 존 위원님?]
이성호가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시도하는 순간 폭스 스포트 중계 부스에는 일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아무리 베테랑 중계팀이라고 할지라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
존 해설 위원과 캐스터는 그저 그 장면을 보며 탄성만을 내질렀다.
그나마 두 사람 중 먼저 정신을 차린 쪽은 캐스터 쪽.
[리가 클레이튼 커쇼를 상대로 3루타를 쳐냈습니다. 그리고 이건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첫 3루타 였습니다.]
[ 월드시리즈에서 말이죠. 그리고 상대가 클레이튼 커쇼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도 퍼펙트게임을 이뤄가고 있는 커쇼를 상대로 3루타를 뽑아냈어요. 데뷔 후 첫 3루타를 말이죠!]
'퍼펙트게임 vs 퍼펙트게임'으로 5회까지 막아낸 경기에서, 6회에 한쪽 투수가 다른 투수를 상대로 3루타루를 뽑아냈따.
이는 확실히 메이저리그 역사상 한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지금 다시 그 장면이 나오지만, 분명 커쇼 선수가 던진 슬라이더는 정규시즌에서도 이만한 공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하게 날아간 공이 아니었습니까?]
[맞습니다. 바깥쪽 낮은 스트라이크 존을 파고드는.... 거의 완벽에 가깝다 싶은 공이었습니다. 이 공은 빠른 타구를 만들어 내야를 벗어나는 것이 거의 유일한 공략법인데, 리가 이 공을 띄웠어요. 아주 높이 말이죠. 그리고 이게 운이따랐는지, 1루수 키를 넘고 페어 지역 안으로 떨어졌고요. 진짜 어떻게 이런 상황이 일어나죠? 정말 그는....]
[잠시 잊고 있으신게 있으신 것 같습니다. 주루 플레이도 진짜 대단했습니다. 저는 푸이그 선수가 잡는 순간 2루에 거의 도착한 상태여서 리가 멈출 줄 알았거든요. 2루타도 충분했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지금 방송에 나가는 장면을 보시면 푸이그 선수의 강한 어깨를 의식했는지 뉴욕 양키스 3루 주루 코치가 멈추라는 사인을 분명히 내줬음에도 리는 망설임 없이 3루를 전진했어요.]
[허... 이제 봤네요. 정말 대단한 장면입니다.]
[어쩌면 도박수였을지도 모르죠.]
성호의 플레이에 놀란 것은 이들 폭스 스포츠 중계팀뿐만이 아니었다.
월드시리즈를 중계하는 세계 여러 나라의 중계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전 세계 월드시리즈 중계를 하고 있는 모든 채널에서 성호의 플레이가 반복해서 플레이됐다.
주루 코치가 사인을 냈던 장면과 그것을 거절하고 3루를 내달린 성호의 세세한 반응을 몇 번이고 다시 보여주며, 해설진들과 열과 성을 다해 설명을 보태었다.
그렇게 반복해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장면이었다.
[정말이지 너무도 대단한 주루 플레이였습니다. 이 선수가 투수가 아니라 타자였다라고 해도 믿겨질 정도로요. 기록에 따르면 리는 올 시즌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처음 한 것으로 나오는데, 그런 것 치고는 너무 깔끔하게 들어갔어요. 마치 수십년을 해본 베테랑처럼 말이죠.]
[맞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했지요. 투수로써도 완벽한데... 타자로써도 저런 모습을 보이니 참. 커쇼 선수는 답답하겠군요.]
[부상의 위험성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쉬운 판단이지만.... 시즌을 보내면서 거의 300이닝을 가까이 던지며 몸에 이상이 없는 리니까.... 정말 대단한 장면이었다고 그저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퍼펙트. 이 말로 정리가 되겠죠. 오늘 그의 투구 처럼요.]
2.
존 해설위원의 지적은 LA 다저스 스타디움에서도 마찬가지로 언급되고 있었다.
내가 몸을 정리하고 자세를 바로 하자, 뉴욕 양키스 3루 주루 코치가 단번에 그 이야기부터 하고 나섰다.
"리, 손가락은 조금 괜찮아? 긁히거나 피나진 않았어? 쥐었다 펴봐. 불편한 곳있나 살펴보게."
그의 말대로 나는 순순히 따라 손을 굽혔다 폈다.
"괜찮네요.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아요. 워낙에 잘 들어간 것 같아서. 다음엔 왼손이 아니라 오른손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래야지! 당연히!"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음에도 3루 주루 코치는 정색을 하며 따지기 시작했다.
"방금 전 플레이는 타자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플레이였지만, 리는 그런 장면을 굳이 만들어내지 않아도 좋아. 방금은 2루타에 그쳐도 충분히 기대 이상의 장면이었다고. 왜냐고? 자넨 월드시리즈 1점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가치를 지닌 선수니까. 설사 월드시리즈에서 지더라도 자네에게 부상이 생기는 일만은 없어야 해. 알겠지?"
"으음.... 알겠어요."
"자넨 오늘 월드시리즈 1차전 선발 투수라는 사실도 있지 말게. 나는 우리 팀의 마운드를 늘 자네가 첫 번째로 맡아줬으면 좋겠으니까."
조금 전 상황은 6회 말 투 아웃에 주자도 없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말해 거기서 3루타가 하나 나오고 안 나오고가, 경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만약 그 상황에서 나의 몸이 조금이라도 상한다면, 나, 개인과 뉴욕 양키스 모두에게는 크나큰 재앙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막상 생각해보니 내가 얼마나 멍청한 짓을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놈의 승부욕이 문제지. 원.
"죄송합니다. 빌 코치님."
나 역시 그 사실을 깨달으니 타석에 대한 욕심을 조금 놓을 수 있었다.
오늘 타석에 들어서기 전만 해도 투수 코치에게서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헌데도 승부욕에 눈이 멀어 이러다니.
"저.. 근데 코치님."
"으음? 왜 그런가."
그런데도 나는 포기 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기대 이상의 장면' 이라고 하셨나요?"
"그렇지. 자네가 2루타만 쳤어도 충분히 모두를 만족하는 기대 이상의 장면이었어."
"하지만.... 전 그걸로 만족하고 싶지가 않아요."
"응?"
"저는... 따로 목표가 있어요. 모두에게 인정 받을 수 있게. '늘 완벽한 장면을 보이는 선수'가 되는 것. 말이죠. 그러니까..."
"...."
"그저 기대 이상의 장면만 만들어내고 싶지는 않네요. 제 목표는 그것과 다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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