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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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루이스 세베리노가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해서, 기술적인 조언을 한다거나 투구 패턴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등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은 루이스 세베리노가 가진 노하우로 본인 스스로 완성하는 것이지 누가 참견해서 될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저 이전 두 경기에 대한 감상 정도를 덤덤히 말하는 것뿐이었다.
그것도 나의 시각에 한해서.
간혹 이야기를 듣다 루이스 세베레노에게 궁금한 점이 생기면, 거기에 대해 추가 설명을 해줄 뿐이었다.
뭐, 다른 사람이라면 그것만 알려주냐며 화를 낼 순 있겠지만.
자신을 생각해서 이런 행동을 하는 걸 아는지 그는 나름 감동적인 듯 보였다.
"리, 오늘 고마웠어. 내가 반드시 잘 던져서 월드시리즈 반지를 끼는 데 한몫할 테니까, 지켜만 봐줘. 그리고... 충고 고마워. 생각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네."
"알았어, 너라면 충분히 잘할 거라 생각하고 있거든. 세베리노, 믿어도 되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당연히 믿어야지. 월드시리즈로 가는 길인데. 나 안 믿으면 누구 믿게? 나만 믿으라고. 내가 리를 꼭 월드시리즈로 데려다 놓을 테니까."
1.
루이스 세베리노는 자신을 격려하는 성호를 보며 묘한 감정에 빠졌다.
자신과 다른 좌안 투수.
키는 자신보다 이성호가 5cm는 더 컸다.
나이도 루이스 세베리노, 자신이 1994년생인만큼 1998년생인 이성호보다 4살이나 더 많았다.
심지어 메이저리그 데뷔전 역시도 루이스 세베리노가 2015년으로 그보다 2년은 빨랐고.
만약 남들이 이 장면을 보게 된다면 서로의 위치가 뒤바뀌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이 당연하게 여겨질 만큼 루이스 세베리노에게 이성호란 존재가 아주 커다랗게 다가왔다.
'어린 시절 내 꿈 중 하나를 깨부순 녀석인데도 이러니 원.....'
루이스 세베리노의 얼굴에 미묘한 미소가 꽃처럼 피어났다.
어떻게 보면 아주 시원한 미소였다.
"리,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지?"
"으응?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난 진짜 게이 같은 거 아니라니까! 아쿠냐 주니어 이 새끼 때문에 아직까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워, 세베리노, 나는 진짜 그런 취향이 아니라고!"
"뭔 이상한 소리야. 진짜 그런거야? 흐흐, 장난이고. 그냥 존경한다는 말이야. 리스펙. 리스펙 몰라? 너 리스펙 하다고."
"다행이네. 나 역시 루이스 널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팀의 도움이 되기만을 위해 그동안 준비 잘 해왔잖아. 그걸 버텨내기 정말 힘들었을텐데."
1년 야구에서 가장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포스트시즌에 이름을 올리고도 던지지 못하는 것은 분명 투수에게 곤욕일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 세베리노는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고, 오늘 선발로 낙점 받을 수 있었다.
충분히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겨도 될 상황.
루이스 세베리노 역시 이런 자신이 꽤 괜찮다고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진지한 분위기가 싫었던 루이스 세베리노는 슬그머니 웃으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근데 리, 있잖아. 네가 내 꿈 하나를 없애 버린 것은 알고 있는거야?"
"응? 내가? 루이스의 꿈을? 도대체 무슨 꿈인데?"
"처음 핀 스트라이프를 입었을 때 내 목표는 이곳의 에이스가 되는 것이었거든. 다나카 마사히로씨나 사바시아가 있긴 했지만 언젠가 내가 그들을 넘어서 이 팀의 에이스가 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어. 적어도 올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야."
특히 다나카 마사히로가 부상으로 시즌을 통으로 빠지고 복귀를 하자마자 부진을 했을 때, 조 지라디 감독님이 자신을 치켜세우며 인터뷰를 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자신은 이번이 기회라 여기며 반드시 구단과 팬들이 기대하는 것 이상의 모습을 보여 자신을 향한 평가를 바꾸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슬프게도 팀 동료가 부상을 당해 부진을 하게 됐지만, 하늘이 자신에게 준 기회를여겨 그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성호의 본 모습을 알고 나선 의욕이 꺾인 것이 사실이었다.
그는 이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같아 보였으니까.
그래서 루이스 세베리노, 자신은 작게나마 다른 꿈을 품게 되었다.
'넘을 수 없는 벽 밑에 작게나마 있는 문이 되고싶어.'
루이스 세베리노는 그런 마음을 이제껏 숨겨왔다.
뉴욕 양키스에 입단을 하면서 늘 꿈 꿔온 꿈.
하지만 이젠 그렇지 않아도 됐다.
그저 저 말도 안되는 녀석의 옆에서 한 동료로 서있고 싶어 졌다.
여전히 자신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녀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지금 자신의 표정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 표정은 아닐까.
"이제 너에 대해서 확실히 안 만큼 양키스 에이스 말고 새로운 걸 노려보려고."
"응? 갑자기? 어떤 걸 노리고 싶은데?"
"양키스의 유니폼인 핀 스트라이프를 입고 우승 반지를 열 손가락 전부에 끼는 거. 그게 내 새로운 꿈이야."
루이스 세베리노는 이성호를 알기 전에도 월드시리즈 우승을 꿈꾸기는 했었다.
뉴욕 양키스의 부진을 보며 지금처럼 확신을 가지지는 못했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그와 함께라면 월드시리즈 10회 우승이 결코 헛된 꿈으로 남을 것 같지 않았다.
자신 뿐만 아니라 올 시즌 뉴욕 양키스의 모습을 지켜본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을 루이스 세베리노는 확신하고 있었다.
"열 번 우승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내가 한 자리는 차지해야겠어. 오늘 경기를 시작으로 말이야. 그리고... 그게 내 꿈이야. 어때?"
루이스 세베리노의 말을 듣고 어째선지 장난스러운 미소를 보이는 이성호.
비웃는다거나 기분 나쁜 미소는 전혀 아니었다.
"으음..... 그렇구나. 그런 꿈이 있었다니...... 근데 말이야... 세베리노, 그걸로 되겠어?"
"어?"
"난 스무 개 정도 모을 생각이거든."
2.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5차전.
오늘 루이스 세베리노가 상대해야 할 투수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에이스 코리 클루버였다.
코리 클루버는 정규시즌에 클리블랜드의 부동의 에이스라고 평가 받을 만큼 대단한 선수라 평가를 받고 있었는데 챔피언십시리즈 1차전에서 이성호를 피하고 등판한 것이 아쉽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챔피언십시리즈 2차전에 등판을 해 타오르던 뉴욕 양키스 타선을 꽁꽁 묶어내자 여론은 급 반전됐다.
-역시 코리 클루버.
-클리블랜드의 에이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리 다음으로 뛰어난 투수.
뉴욕 양키스 전에서 보여줬던 투구가 정말 대단했으니.
경기를 지켜본 수많은 전문가와 팬들은 그를 칭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시작되는 5차전 역시 그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으니.
그날 보여줬던 구위를 생각해 보면, 오늘도 뉴욕 양키스 선수들이 쉽사리 점수를 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을 것이라고 모두가 추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뉴욕 양키스 선수단을 통틀어 오늘 뉴욕 양키스의 선발 투수인 루이스 세베리노 역시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
루이스 세베리노는 경기 초반부터 자신의 투구에 온 힘을 쏟아 부었다.
경기 전, 그녀석에게 들은 충고를 떠올리며 말이다.
'너도 쭉 지켜봐 왔겠지만,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타자들은 정면 승부보다는 내 약점을 파악하는 데 집중해왔어. 다나카 마사히로나 CC 사바시아가 던질 때도 마찬가지였고. 그럼 아마 너에게도 그러지 않을까?'
이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감독 테리 프랑코나 감독이 감동 샐활 내내 추구해 왔던 공격 전략.
상대적으로 스타 선수들이 부족한 타선을 이끌고 점수를 내려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고육지책 [苦肉之策] 이기도 했다.
테리 프랑코나 감독은 오늘도 역시 선발 라인업에 새로운 이름을 올리고 타순도 거기에 맞게 조정하였다.
'날 제대로 물어뜯기 위해 준비한 선발 라인업이겠지. 망할 자식들.'
루이스 세베리노는 경기 전 개리 산체스와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 두었다.
물론 해결책까지도 준비해 왔고.
'테리 프랑코나 감독이 아는 내 모습은 2015년부터 2017년 정규시즌때의 나겠지. 하지만 그때의 난 선발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쫓기기만 했던, 에이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뒤도 안돌아봤던. 멍청이였거든.'
큰 기대를 품고 시작했던 시즌이 새로운 인물의 등장으로 뜻대로 흘러가지 않자 마음이 불안했다.
이성호와 조던 몽고메리와 같이 새로 팀에 합류한 투수들이 잘 던지고 밖에서는 트레이드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들렸으니, 지금까지 쌓아둔 거마저 잃을까 조급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좋은 공을 정상적인 상태에서 던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게다가 정규 시즌이 끝나고 충분한 휴식까지 취하고 나니, 시즌 때에 비해 구위가 훨씬 살아있었다.
단순히 평균 구위만 놓고 보면 지금 뉴욕 양키스 로스터에 있는 투수 중 자신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걸로 너희가 준비한 모든 걸 마음껏 부숴주겠어. 리가 어제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타석에 들어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1번 타자가 배트를 까딱거리며 자신을 강렬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제와 달리 상당히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
그 모습을 지우고 싶었던 루이스 세베리노는, 1회 초부터 본인이 가진 최고의 공을 뽐내기 시작했다.
-뻐엉!!
"스트라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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