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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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양키스 덕아웃에서 나온 투수가 마운드로 걸어가는 모습이 테리 프랑코나 감독의 눈에 들어왔다.
근데 그 투수.
자신이 알던 뉴욕 양키스의 챔피언십시리즈 4차전을 책임지던 투수와 키가 달라 보였다.
이성호의 키는 유명했다.
아시안 치고 큰 키.
193cm에 육박하는 키는 다른 투수들과 비교해도 확실히 큰 덩치를 자랑했는데, 지금 나오는 투수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앞서 마운드를 책임지던 자신의 팀의 투수, 자그마치 키가 201cm에 달하는 투수와 비교해봐도 크다고 싶은 정도로 비대한 덩치였다.
그와 동시에 테리 프랑코나 감독의 두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응? 뭐야? 저게 누구야?"
"저... 감독님, 조던 몽고메리 같습니다. 등 번호를 보니....."
갑작스러운 상황에 황당해 외친 테리 프랑코나 감독의 말에 옆에 있던 벤치 코치가 놀라 대답했다.
테리 프랑코나 감독 역시 마음을 진정하고 자세히 살피니 확실히 조던 몽고메리가 맞았다.
조던 몽고메리는 정규 시즌 막판 이성호가 2게임 연속해서 5이닝만 던졌을 때 이어서 나와 경기를 마무리한 그 투수였다.
'설마 저들도 투수 2명으로 경기를 마무리하겠다는 건가? 아니, 아니지 그건 중요하지 않아.'
사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저들이 몇 명의 투수를 더 투입하는 지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테리 프랑코나 감독은 일순간 등골이 오싹해져 식은 땀을 흘리며 벤치 코치에게 다급히 물었다.
"자네, 혹시 5회까지 리가 던진 투구 수가 몇 개인지 기억하나?"
"38개였습니다. 감독님."
38개?
테리 프랑코나 감독의 표정은 조던 몽고메리가 뜬금 없이 마운드에 올랐을 때보다 황당한 표정이었다.
"왜 이렇게 투구 수가..... 우리 작전이 안 먹혀든건가? 혹시 내가 잘못 본거야?"
사실 질문을 하는 테리 프랑코나 감독은 본인이 답까지 알고 있었다.
매회 직접 상대의 투구 수를 체크까지 하고 있었으니 모를리가 없었다.
클리블랜드 타자들의 작전이 게으른 것이 아니라, 상대의 선발 투수가 오늘 적극적으로 승부에 나서서 그렇다는 것을 본인이 가장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걸 보고 초구에 풀스윙을 해보라고 지시를 내린 것도 자신이란 사실을 방금 또렷이 기억났으니 말이다.
상황에 대한 인식을 끝낸 테리 프랑코나 감독에겐 이제 깊은 번뇌가 찾아 왔다.
'설마 저 자식이 지난번처럼 2일 쉬고 등판하려는 건가?'
7차전이 아닌 6차전에서.
이성호는 이미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 등판하고 딱 이틀 후 와일드카드 게임 결정전에 출전한 경력이 있었다.
심지어 그 경기에서 와일드카드 게임 결정전 최초 퍼펙트게임을 완성했다.
'그러고 7차전에 불펜으로 투입하려고? 설마....'
자신이라면 충분히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그런 적이 있었던 뉴욕 양키스의 작전에 신경이쓰였다.
아무리 바로 전날 선발로 출전한 투수라고 할지라도, 시즌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마냥 놀게만 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팀의 간판을 맡고 있는 에이스 투수라면 그 정도 희생정신과 책임감은 가져야 한다는 것이 평소 테리 프랑코나 감독. 자신의 지론이기도 했고.
'이성호 역시 팀을 위해 헌신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정규 시즌에 200이닝을 넘게 던지고 와일드카드게임에서 2일 휴식 하고도 또 챔피언십시리즈에서 그렇게 던질 거라고?'
막상 생각을 해보니 일리가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그렇다면 이제 자신의 추측을 단순히 짐작이 아닌 현실이 될 가능성이 컸다.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5차전과 6차전을 승리로 이끌고 오늘 이후 이성호를 만나지 않을 계획이 삽시간에 흐트러져 버렸다.
만약 자신의 생각대로 이성호가 7차전에서 이른 시간에 마운드에 오른다면, 2경기 모두를 이성호 때문에 빼앗길 수 있었다.
'젠장.... 미친 자식! 마치 광병에 걸린 놈같군! 이런 식으로 우리 앞길을 막으려 할 줄이야....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가? 아니 그것보다..... 경기가 우선이지. 그럼 6차전 선발을 7차전으로 돌려야 하나?'
메이저리그 2013시즌 정규시즌부터 바로 어제까지.
모든 시즌 경기를 자신의 계획하에 지휘했던 테리 프랑코나 감독의 팀 운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2.
[뉴욕 양키스, 5차전 선발로 루이스 세베리노 카드를 꺼내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선발은 예상대로 코디 클루버!]
[모두의 예상을 뒤집은 조 지라디 감독의 선택, 왜 다나카 마사히로가 아닌 루이스 세베리노 였을까?]
[정규 시즌 이후, 충분히 쉰 루이스 세베리노는 과연 다나카와 사바시아를 불태웠던 클리블랜드의 타선을 잠재울수 있을 것인가?]
[명장(名匠) 테리 프랑코나 감독은 과연 뉴욕 양키스의 조 지라디 감독의 전략에 어떤 식으로 대응 할 것인가?]
[조 지라디 감독 "우리는 준비 됐다."]
테리 프랑코나 감독을 흔든 것은 이성호의 이른 교체만이 아니었다.
정규시즌 5선발로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해낸 루이스 세베리노.
그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5차전 선발로 예고되었다.
사실 그는 시즌 시작 전만 해도 3선발로 예정되어 있었다.
작년 다나카 마사히로의 부상 이후에는 2선발로 기대를 받았던 꽤나 실력이 대되는 투수였다.
더군다나 정규시즌 막판부터는 충분난 휴식 기간을 가져서 그런지, 팀 내 자체 평가 경기에서 확인한 결과 구위도 많이 좋아져 있었다.
그래서 조 지라디 감독은 디비전시리즈에서도 그를 투입할 시기만을 엿보았다.
만약 3승 0패로 시리즈가 끝나지 않았다면, 4차전에서 루이스 세베리노 카드를 꺼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뉴욕 양키스는 완벽히 시리즈 스윕을 한 덕분에 그를 아낄 수 있었다.
그때 아낀 것이 지금 이 상황에서 비장의 무기가 된 상황.
그사이 루이스 세베리노는 틈틈이 라이브 피칭을 소화하며 자신이 마운드 오를 날 만을 기다렸다.
3.
"리!"
"어, 세베리노? 준비는 잘 하고 있었어?"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5차전이 벌어지는 날.
회복트레닝을 마치고 나온 나를 루이스 세베리노가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는 거의 다 끝났지. 아직 남은 거 때문에 널 찾아온 것이고."
"날? 갑자기? 왜?"
"어, 음... 이번 시리즈에서 우리 중 유일하게 클리블랜드 타선을 두 번이나 상대해본게 너잖아. 혹시나 내게 해줄 말이 있나 궁금해서. 비밀이면 말 안해줘도 괜찮아! 코치한테 물어보니까 그런거 숨기는 투수들도 있다더라고!"
"흐음.... 한 마디로 공략법을 달라는 말이지?"
"응응!"
공략법이라....
"큭큭."
자신의 메이저리그 경력을 고려하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
고작 1년도 시즌을 보내지 않은 루키에게 저런 것을 물어보는 것은 이상한 것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이제껏 이룬 업적까지 떠올려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이제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어떤 투수에게 조언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위치가 되었으니까.
게다가 루이스 세베리노의 말처럼 현재 뉴욕 양키스의 투수들 중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가장 많이 상대해 본 것도 사실이었다.
전생의 경험들은 여전히 남아있었으니까.
"이미 다나카 마사히로랑 CC 사바시아한테는 이야기 듣고 왔어. 그러니 네 것만 들으면 될 것 같아. 혹시 그런게 정말로 있는 거야?"
"내가 한 말이 네게 도움이 될까?"
"으음... 백퍼센트 도움이 된다면 거짓말이겠지. 나는 너만큼의 엄청난 공들을 던질 수 없으니까. 하지만 어느정도 도움을 받을 수 잇진 않겠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잘근잘근 밟아 주었던 너의 그 투구를 보면 말이야."
이 말을 하는 루이스 세베리노의 표정에는 두 가지 감정이 담겨 있었다.
하나는 오늘 5차전 경기를 잘 던지겠다는 각오.
그는 그동안 다른 투수들의 활약을 지켜보며 자신에게도 기회만 오면 잘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 넣어 왔다.
하지만 거기에 숨은 또 다른 감정은 오랜만에 마운드에 서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그렇게 두 가지.
그는 지금 두가지의 표정으로 태연한 척 나에게 묻고 있었다.
정규시즌 경기라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오늘 경기는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5차전.
그것도 두 경기씩 승패를 나눠가진 상황이니 시리즈 향방을 결정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경기에 선발로 나서게 된 것이었으니 이해가 되었다.
만약 루이스 세베리노가 잘 던진다면 웃기게도 나라는 승리 보증수표가 있는 뉴욕 양키스의 월드시리즈 진출이 거의 확정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루이스 세베리노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조그마한 거라도 좋으니까 뭐라도 하나만 알려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코앞에 둔 월드시리즈 반지를 내 손에 끼는 건, 나도 절대 원하지 않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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