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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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크!!"
-뻐엉!!
"보올!!"
-뻐엉!!
"보올!!"
공 3개를 던져, 볼 카운터가 투 볼 원 스트라이크가 되었다.
평소 1회, 첫 타자를 상대 할 때, 삼진 확률이 90%에 달하는 나에게 다소 생소한 볼 카운터.
오늘 주심의 볼 카운터는 중요한 경기이니 만큼 스트라이크 존이 좁은 듯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더욱 문제인 것은 타자의 의도를 도저히 종잡을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오늘 좌투수인 나를 상대로 테리 프랑코나 감독이 내민 선발 라인업은 9명의 우타자다.
그러다 보니 평소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선발 라인업에서 볼 수 없던 타자가 제법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 1번으로 나온 베이시 더 역시 시즌 중에는 대수비나 대주자 요원으로 활약하던 선수였다.
빠른 발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타격 정확성이 떨어져 테리 프랑코나 감독이 주로 주전으로 선호하지 않았던 선수.
헌데 웬일인지 정규시즌보다 더 중요한 챔피언십시리즈 1차전에 1번으로 출전했다.
그러고 나서 보여주는 행동이.
'번트를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한가지만 하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작전인 거야?'
베이시 더는 내가 초구를 던지자마자 곧장 번트 자세를 취했다.
그덕에 놀란 나와 내야수들이 앞으로 뛰어 나왔지만, 정작 공이 가까이 오자 배트를 뒤로 빼버렸다.
초구인 만큼 힘이 조금 실리긴 했지만,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어가는 포심 패스트볼이라 결코 번트를 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배트를 뒤로 뺐다.
그래서 나는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스트라이크 존을 완전히 벗어나는 유인구를 2구로 던졌는데.
그역시 베이시 더는 번트 자세를 취하다 배트를 빼, '볼' 판정을 받아내었다.
3구도 마찬가지.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오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태리 프랑코나 감독의 작전을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2.
'1차전을 버리더라도, 오늘 저 놈이 가진 모든 실력을 파악해야 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덕아웃.
테리 프랑코나 감독은 챔피언십시리즈를 앞두고 시범경기에서부터 이성호가 던졌던 모든 경기를 다시 확인했다.
그 작업은 무척 긴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는 승리를 위해서라면 며칠 밤을 새울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테리 프랑코나 감독은 지루한 작업을 모두 거친 후, 조금이나마 틈이 보이는 이성호의 마운드 위에서의 수비 실력부터 파고들기로 했다.
'던지는 체력이 충분하면 뛰는 체력을 싹 빼놓으면 되잖아.'
이는 단순히 오늘 한 경기만을 위한 작전이 아니었다.
이번 챔피언십시리즈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많으면 최대 3번까지도 이성호를 상대해야만 했다.
테리 프랑코나 감독은 오늘 지더라도, 4차전 혹은 7차전에서 이성호를 잡아내면 된다고 믿었다.
'그것만 해도 대성공일 테니.'
아무리 뛰어나도 빈틈은 있는 법.
그게 바로 테리 프랑코나 감독이 굳게 믿는 지략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내세운 선수를 묘한 표정으로 상대하는 그를 바라보며 팔짱을 낀 채 아무도 모르게 힘을 줘 주먹을 쥐었다.
자신이 며칠 밤을 세워가며 세운 전략이 꼭 들어맞길 기도하듯 말이다.
-따악!!
"파울!!"
-부웅!!
"스윙 스트라잌 아웃!!"
1번 타자 베이시 더가 물러났다.
그는 4구째 실제로 번트를 시도하다 파울을 기록했다.
5구째에는 처음으로 정상적인 스윙을 시도했는데, 이성호가 던진 공하고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헛스윙을 하고 타석에서 물러섰다.
어찌보면 한 없이 무기력한 모습.
하지만 감독의 작전을 완벽히 수행했기에 덕아웃으로 돌아가는 베이시 더의 표정은 결코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밝아보이기까지 했다.
'그저 난 시작에 불과하니까. 저 자식의 끝을 볼 수만 있다면... 나라도.'
성호는 이후 2번 타자와 3번 타자 모두 별다른 어려움 없이 아웃을 잡아냈다.
첫 이닝을 깔끔히 삼자범퇴로 끝낸 것이니 무척 좋은 시작이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둘 역시도 정상적인 타격을 했다고 보기 힘들었다.
기습 번트 시도는 기본이었고, 배트를 짧게 잡고 공의 커트만을 노린 선수도 있었다.
결코 그들의 의도가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은 오늘 경기가 다른 경기와는 다르게 흘러갈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사람들의 이목은 다른 곳으로 더욱 몰렸는데.
괴짜 테리 프랑코나 감독이 부린 전략에 성호가 어떻게 반응할지에 이목이 쏠린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데뷔이래 이런 전략을 처음 맞이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고작 1년차의 루키였으니말이다.
2.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경험 없는 애송이? 딱 그렇게 보인건가?'
나는 덕아웃에 돌아와 테리 프랑코나 감독에 관해 생각했다.
정보 수집에 능한 그라면 자신이 한국에서 왔다는 것 역시 당연히 알 것이라고 믿었다.
한국 역시 일본 못지않게 스몰 야구를 신봉하는 감독이 많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나 내가 뛰었던 한국 고교 야구는 선수들의 기량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부족해서, 감독의 의지에 따라 작전 야구를 하는 비중이 프로야구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나는 전생에서 그런 불안전한 환경에서 뛰면서도 고교 야구에선 별 다른 위기를 겪지 않은 투수였다.
'경험이 많은 감독도 상대 선수의 나이가 어리다는 것에 속는 건가?'
그렇다면 오히려 그에게 고마워질 지경이었다.
나에겐 테리 프랑코나, 그가 모르는 13년의 메이저리그 경험이 더해진 상태였으니,
그의 괴짜 같은 전략에 파고들 구멍이 얼마든지 있었다.
2.
투수가 마운드 위에서 타자를 상대할 때, 타석에 선 타자는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에 대응해야만 했다.
타자가 투수를 상대하기 위해 대응 했을 때, 사소한 방법이라도 투수에게 통했다면 평소보다 훨씬 치기 쉬운 공이 날아왔으니, 조금 치사한 방법이라고 해도 타자 입장에서는 외면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많은 타자들은 눈야구, 발야구 등 갖은 방법으로 투수를 압박하고, 기습적으로 번트하는 시늉을 해서라도 투수 마음을 흔들어 보려 노력했다.
이는 굉장히 흔하고 뻔한 방법 같지만, 150년 역사를 지닌 메이저리그에서도 여전히 통할 만큼 효과가 있었다.
특히나 저런 수법들은 대개로 투수의 집중을 흐트려놔 컨트롤을 어렵게 하는 효과가 있었는데.
어떤 투수의 경우는 타자가 홈 플레이트 쪽으로 한발 붙거나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컨트롤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큰 효과가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므로 타자는 계속 상대에 대해 연구하고 그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물론 이런 방법을 알아도 시도하지 않는 타자가 있긴 했다.
투수를 흔들 수 있는 방법을 알면서도 실력으로 승부하겠다고 자존심을 세웠다.
때로는 팬들이 그런 모습을 싫어할까봐, 때로는 자신의 이미지 때문에 고의적으로 그런 수를 쓰지않았다.
멋지고 당당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또는 혹시나 그러한 방법을 시도했을 때에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을 때, 팀의 패배에 쏟아질 비난이 두려워 차라리 본인의 실력대로 대결하는 것을 택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 성호와 맞서 타석에 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타자들에게는 그런 고민이 없었다.
테리 프랑코나 감독이 그들이 할 행동을 미리 모두 정해주었으니 말이다.
이러한 테리 프랑코나 감독의 성향이 시즌 내내 이어진 만큼, 클리블랜드 팬들 역시도 타자들의 지금 행동이 모두 테리 프랑코나 감독의 지시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모두 감독 탓이다.
반대로 괜찮은 결과가 나오면 타자 자신이 칭찬을 받을 것이니 피할 이유가 없었다.
테리 프랑코나 감독이 평소 그 타자가 잘 해낼 수 있을 만한 일을 지시기하기도 했으니 작전 성공 확률도 높았고.
그들 입장에선 오히려 자신들에게 이런 큰 경기에서 기회를 준 테리 프랑코나 감독에게 감사했다.
아무리 상대가 야구의 신이라 불리는 이성호라는 선수라고 해도 그는 19살의 나이이니 언제까지 이런 큰 경기에 그런 호투를 할 수 없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 만큼은 달랐다.
'그'를 넘기에는 그들이 가진 역량이 너무 아쉬웠다.
'그'와 클리블랜드 타자들 사이에는 작전으로 메울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고 있었다.
-뻐엉!!
"스트라잌 아웃!!"
그리고 경기 중반이 다가오자 그제야 그들은 느낄 수 있었다.
어째서 자신의 감독이 자신들을 이런 큰 경기에 내보냈는지.
어째서 자신의 감독이 자신들을 넘을 수 없는 '벽'을 상대로 경기에 내보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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