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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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감독 테리 프랑코나 감독이 했던 인터뷰를 곱씹어 보는데, 누군가 나를 불러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자 개리 산체스가 날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개리? 아, 컨디션 좋은 것 같아. 정말 푹 쉬었잖아. 문제 없어."
"그렇지? 다행이다. 확실히 4일 휴식이 달콤하긴 하지? 3일 휴식 선발 등판도 가능하긴 하지만, 4일 쉬고 나면 몸 상태가 완전히 달라진 것 같다니까. 공의 위력도 한 단계 상승한 것 같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1차전을 앞둔 나와 개리 산체스.
나와 개리는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등판을 앞두고도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시즌을 강행한 팀이 충분히 휴식을 취한 이상 겁날 팀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오늘 상대는 평소와 좀 달랐다.
오늘 경기 상대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 이미 자신들에게 졌다는 것을 인정이라도 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것도 경기를 운영하는 감독의 입에서 말이다.
"내가 전에 대니 살라자르 그 자식 공을 상대해 봐서 아는데, 우리 팀을 상대로 6이닝은 커녕 5이닝도 버티지 못 할 거야. 그 뒤 불펜 투수들도 마찬가지일 거고. 걱정할 일은 없을 거야. 그 생각하고 있었지?"
개리 산체스가 보이는 자신감.
이것은 오직 그만이 부리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뉴욕 양키스 라커룸에 있는 모든 선수가 공유하고 있는 감정이었다.
테리 프랑코나 감독이 자신들을 상대로 5선발 투수를 마운드에 세운 것을 톡톡히 후회하게 해줄 작정이라는 듯 크게 콧김을 내쉬며 경기 얘기를 덧붙였다.
그들에겐 그의 인터뷰가 갚을 빚처럼 느껴진 것이다.
"후우.... 그러니까 걱정하지말라고. 너를 무시한 댓가는 우리가 충분히 치루게 해줄테니까.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소리를 짓거리는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오늘로 끝일 거야."
"괜찮아. 그런 걱정한 적은 없어. 다만...."
"다만?"
"어쩌면 오늘 클리블랜드 쪽에서 불펜 투수가 생각보다 많이 안 나올지도 몰라. 아니, 어쩌면 아예 안나올 수도 있고."
"어? 그게 무슨 말이야?"
놀라는 표정의 개리 산체스.
무슨 뜻이냐는 표정이었다.
"한 마디로 대니 살라자르한테 9이닝을 전부 맡기던가, 아니면 한 명의 불펜 투수 정도만 더 투입할 수도 있다는 소리야. 내가 기억하는 테리 프랑코나 감독이 추구하는 야구라면 말이야."
"으응? 자기 팀 투수가 계속 실점을 해도 투수를 바꾸지 않을 거라고?"
"어, 아마도. 오늘만 경기가 있는 건 아니니까."
아무리 내가 전생에서 한국에서 나고 자란 만큼 미국에서 선수 생활을 오래간 해왔다고 해도.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그곳에서 처음 야구를 배웠다.
오랜 기억 속에 파묻혀 있던 기억이었지만 회귀한 이후 기억 보정 덕분인지 그 시절이 아직도 생생했다.
내가 처음 접한 야구는 한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한국 프로야구였다.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냐면, 그런 값진 경험때문에 오늘 경기 상대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감독, 테리 프랑코나의 야구 철학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었다는 뜻이었다.
더군다나 전생에서의 테리 프랑코나 감독이라면 충분히 내가 방금 말한 짓거리를 할 수도 있는 괴짜 감독이었다.
개리 산체스는 여전히 나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는지 의아한 표정에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이 섞인 요상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묘한 웃음을 보이며 말을 하다 말았다.
어차피 경기가 시작되면 곧 그도 알게 될 것 같아서.
하지만 그는 궁금증을 참지 못했는지 서둘러 나에게 질문했다.
"그러다가 우리 팀 타자들 컨디션이 전부 올라가면... 그쪽에서 손해 아니야? 아무리 경기를 포기한다고 해도...... 1차전에 기분 좋게 치고 나면 다음 경기까지 그 컨디션이 유지 될 수도 있잖아? 그런 걱정을 안한다고?"
"으음... 뭐랄까. 생각보다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기도 하거든. 스포츠에 백퍼센트는 없으니까. 특히나 야구같은 경우엔 더 그래."
"뭐가?"
"개리, 이번 1차전에서 상대할 투수에 비해 2차전 투수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몇 선발 투수인지 알아?"
"....1선발?"
"맞아. 잘 아네. 그럼 쉽게 생각하면 돼. 1차전. 그러니까 오늘 상대한 투수에 비해 내일 상대 할 2차전 투수의 수준이 훨씬 올라가게 되면, 이전 수준 낮은 투수에 적응한 타자들이 어떻게 되겠어?"
"어.... 적응하기 힘들어하겠지? 아! 진짜 그러고보니 그 사실을 놓치고 있었잖아?"
타석에 서 스트라이크존을 향해 공이 날아올 때, 0.4초 이내에 판단과 스윙을 모두 마쳐야만 하는 타자.
이는 머리 계산이 아닌 몸의 적응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질이 낮은 공을 던지는 투수가 9이닝 동안 한 팀의 주전 타자들을 상대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타자들은 그 공들을 쉽게 적응하고 쳐낼 것이다.
하지만 다음 날, 그보다 수배 질 높은 공을 던지는 투수가 공을 던진다면?
나의 말처럼 투수의 수준이 확연히 달라진 만큼 타자들은 적응하기 힘들 것이고 그에 대해 재조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 우리가 오늘 복수심에 점수를 많이 내도 결코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라는 거네."
"네 말도 어느 정도 맞긴 해. 많이 치면 좋긴 하지. 좋은 타격 컨디션이 유지되는건 좋은 일이니까. 대신 과하지만 않다면 괜찮다는 말이야. 상대 투수가 잘 던지지 못한다고 해서 괜한 욕심에 스윙 폼이 괜히 커져서도 안 되고. 개리, 그러니까 네가 그 부분만 타자들한테 잘 신경써서 말해주면 훨씬 더 나아질 부분이기도 해."
"어. 그래야겠다. 안그래도 오늘 애들이 벼루고 있었거든. 리, 널 무시한 댓가를 치루게 해준다면서 말이야. 홈런 적게 친 놈은 벌금까지 내기로 했다던데... 말려야겠어. 혹시 모르니까 이번에 말하고 또 덕아웃에서 한 번 더 이야기 해줄게. 고마워, 나조차도 이런 사소한 사실에 놓치고 있었네."
이런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모두에게 인정 받는 베테랑 선수가 필요했다.
또한 실력이 좋아 목소리를 키워도 되는 선수가 필요했고.
하지만 뉴욕 양키스에서는 현재 이런 말을 해줄 베테랑급 선수는 없었다.
CC 사바시아 같은 경우에는 이런 상황에서 나서지 않는 성격이었으니 애초에 배제되는 인물이었고.
그렇다면 남은 것은 데뷔 시즌 임에도 인정을 받고 팀의 중심책을 맡고 있는 나 뿐이었다.
"리, 그럼 내일이 어찌 되었건 오늘부터 이기자. 만약 그러지 못하면 머리가 정말 아파 질 테니까. 테리 프랑코나 감독이 이상한 수를 쓰더라도 절대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대처하면 이길 수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날씨가 정말 마음에 드니까."
"그래?"
"어. 던지기 참 좋은 날씨인 거 같아. 그렇지 않아?"
"으음...."
개리 산체스가 또 다시 나의 말에 날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누군가 밟지 않아 고고해보이기까지한 마운드만을 주시했다.
거기에는 지지 않을 것이라는 무한한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1.
-따악!!
"아웃!!"
1회 초, 원정팀이었던 뉴욕 양키스의 공격이 끝이 났다.
상대의 5선발 대니 살라자르는 메이저리그 내에서 나름 인정을 받는 55점의 체인지업을 던지는 만큼, 땅볼 유도 능력이 뛰어났는데.
1번 타자인 아쿠냐 주니어를 시작으로 2번 타자인 애런 저지, 3번 타자인 개리 산체스에게서 3개의 땅볼을 잡아내며, 1회 초를 간단히 막아내었다.
투구 수는 단 9개.
자신의 인터뷰대로 뉴욕 양키스의 타오르던 타선을 잠재운 것이다.
그리고 1회 말.
오늘 뉴욕 양키스의 선발 투수인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컨디션은 좋았다.
거기에 재밌는 일이 하나 벌어졌으니.
웃기게도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나고 이미지마저 좋아 인기마저 많은 내가 마운드에 서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팬들마저 박수를 보냈다.
-짝짝짝짝짝.
-리이이이!!!
이 장면을 보며 느낀 것은 이제 나는 모든 팬의 존경을 받는 선수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단 1년만에 말이다.
물론 승부를 벌여야 하는 상대에게는 수많은 관중들이 느끼는 것과 다르게 느껴지겠지만.
가볍게 관중들에게 모자를 들어 인사라는 보답을 하고, 공을 던지는 것으로 또 다른 경기의 시작을 알리려는데.
'후우....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괴짜 테리 프랑코나 감독의 작전은 1회부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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