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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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타석에 들어서자 관중들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뉴욕 양키스의 홈 팬들마저 손을 들며 타석에 들어서는 그에게 환호를 보내주었다.
그중 특히 원정 팬, LA 에인절스의 팬들의 반응이 가장 극적이었는데.
지난 며칠 동안 응원 팀의 무기력한 패배만 지켜봐야 했던 LA 에인절스의 팬들.
그들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카드가 지금 타석에 들어선 것이니, 이만한 반응은 예상된 결과였다.
더군다나 나의 천적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고 하니, 그들의 기대는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타석에 선 트라웃은 그런 분위기를 신경 쓰지 않는 듯, 태연하게 타격 준비를 마치고는 나를 바라 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
그때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마이크 트라웃은 앞선 두 타자와 달리 배트를 짧게 잡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선 1번 타자 콜 칼훈과 2번 타자 저스틴 업튼은 어떻게 해서든 출루를 하기 위해 배트를 짧게 잡아 배트 스윙 스피드를 높혀 구종 대응 능력을 최대한 높혀 공을 쳐내려 노력했는데.
마이크 트라웃은 자신은 그런 짓 따위 하지 않고 정정당당히 승부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허공에 배트를 몇번 휘젓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 나와 배터리를 이룬 개리 산체스 역시 발견했는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 상태라도 빠른 스윙을 할 수 있다는 건방짐인가? 아니지..... 그게 헛된 자만심이 아닌 걸, 내가 제일 잘 알잖아.'
지난 13년 간의 선수 생활동안 수 차례나 마이크 트라웃과 대결을 해본 나였다.
나는 그제야 트라웃의 스윙 스피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트를 가장 길게 잡아도 가장 짧은 코스로 재빠르게 배트를 이동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지금 나온 마이크 트라웃이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이 괴물한테는.'
자만하지 말자는 생각과 함께 나와 같은 생각인지 산체스가 유인구를 요구했다.
평소 내가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고 가는 게 거의 대부분인 만큼, 트라웃에게는 이 한방이 먹힐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
구종은 체인지업.
어퍼 스윙으로도 절대 칠 수 없을 만큼 바닥에 떨어지는 공을 요구했다.
나의 컨트롤이 개리 산체스의 기대에 부응한 것은 당연했고.
-뻐엉!!
"볼!!"
트라웃만이 산체스와 나의 예상을 배신했다.
'흐음... 움찔하지도 않네. 예상했다는 건가? 역시 괴물 같다니까 저 놈은.'
마이크 트라웃은 낮은 체인지업이 올 거라는 것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태연히 공을 흘러 넘겼다.
결과는 볼.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렇다면 한 번 더? 라는 심보로 개리 산체스가 다시금 체인지업 사인을 보냈지만 이를 내가 직접 거절했다.
그러자 개리 산체스가 마운드에 올라왔는데.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내가 선수를 쳤다.
"개리, 방금 확인했잖아. 트라웃한텐 이런 거 안 통해. 볼 카운트만 소비 되는 거라고. 그럼 더 위험해질 뿐이야. 그러니까 하던대로 가자. 하던대로."
"알았어."
원 볼 노 스트라이크에서 내가 던지겠다고 생각한 공은 포심 패스트볼이나 컷 패스트볼 두 개중 한 개.
현재 모든 구종들이 A급에 올라섰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경험치를 쌓고 있었으니.
언제나 위기의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게 최고였다.
개리 산체스 역시 나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았는지, 다시 한 번 사인을 확인하곤 공을 잡을 준비를 했다.
나는 눈으로 트라웃을 한 번 쳐다보고, 즉시 홈으로 공을 던졌다.
-따악!!
그와 동시에 움직이는 마이크 트라웃의 배트.
그리곤 이번에 던졌던 컷 패스트볼이 트라웃의 배트의 중심부와 맞닿았다.
허나 완전히 중심에 맞힌 건 아닌지 공이 바닥에 굴렀지만, 타구 속도만큼은 매우 빨랐다.
공이 내야를 순식간에 벗어날 것 같을 정도로.
하지만 그걸 기어코 막아서는 움직임이 있었다.
3.
"1루!"
유격수 디디에 그레고리우스가 급히 발을 굴렸다.
데뷔 시즌 데릭 지터의 후계자로 이름을 높혔다가 낮은 타율에 팬들의 기대를 저버린 그였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어떤 유격수를 데리고 와도 뒤지지 않는 수비 범위가 그에게 있엇다.
디디에 그레고리우스는 공이 트라웃의 배트에 맞은 순간 2루 베이스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빠른 땅볼 타구가 옆으로 흘러나가려 할 때, 급히 허리를 숙여 글러브로 공을 막아냈다.
공이 글러브 주머니에 완전히 들어온 느낌이 났을 땐, 글러브의 결 그대로 몸을 기울며 공을 던졌다.
목표는 1루 베이스.
그곳에는 고개를 돌려 확인하지 않아도, 움직였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동료가 있었다.
디디에 그레고리우스가 한 템포 빠르게 던진 공은, 발 빠른 타자 마이크 트라웃이 1루를 밟기도 전에 1루 수비수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었다.
"아웃!!"
완벽한 호수비로 삼자범퇴.
-우아아아아아아!!!!
3루 쪽에 모여 있던 수 만명의 뉴욕 양키스 팬들이 엄청난 환호성으로, 진기명기와 같던 지금의 플레이에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그리고 성호는 이번 경기 반전을 위해 준비하는 LA 에인절스와 다르게,
이후 전혀 반전을 만들 기회를 주지 않았다.
1회 초, 세 타자 연속 아웃.
2회 초, 세 타자 연속 아웃.
3회 초, 세 타자 연속 아웃.
1회에 13구, 2회에 17구, 3회에 15구를 던졌다.
모두 합해 45구.
나는 3회 말을 마칠 때까지 던진 공의 개수가 45구였다.
오늘 적극적으로 배트를 휘두른 LA 에인절스의 선수들은, 상당히 많은 수의 공을 쳐내는데 성공했다.
그라운드에 제대로된 타구를 내보내진 못했지만 작전 중 하나였던 타구수 늘리기에 성공한 것이다.
비록 점수를 내주지 않았지만, 평소 4이닝 또는 5이닝까지 던졌을 법한 투구 수를 3회 초라는 이른 시간에 기록한 것이다.
당연히 이 점을 신경 쓰고 있는 나와 개리 산체스.
둘은 덕아웃에 앉아 팀의 공격을 지켜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리! 오늘 에인절스 타자들이 장난 아닌데? 지난 시리즈 동안 이런 적이 없었는데... 앞선 두 경기에서도 집중을 한 느낌이 있었는데 오늘은 유독 더 그런 것 같아.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어서 그런가?"
"그러게... 확실히 좀 다르긴 하지?"
"어, 내가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잖아. 오늘따라 쟤네 컨디션이 좋은 거 같아. 네 공이 나빠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건 아닌 것 같은데.... 아, 그렇다고 움츠러들 필요는 없어. 4회 부터는 내가 더 신경 써서 리드할게. 오늘 쟤네들이랑 한 번씩 다 상대해 봤으니, 컨디션에 맞춰 투구 패턴을 좀 바꿔보려고. 괜찮지?"
"흐음..."
물론 산체스는 경기 전에도 나와 LA 에인절스의 타자들을 분석하고 나왔다. 거기다 나와 함께 오늘 경기에서 펼칠 전략까지 의논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 통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오늘 같이 중요한 날에서 이러다니.
솔직히 회귀 후, 이렇다할 위기를 맞지 않아 이제껏 살짝 자만한 감이 없지않아 있었는데... 생각을 달리 하게 되었다.
한 경기 내에서도 타석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이 바로 타자였다.
투수 컨디션이 매 이닝 다를 수 있는 것처럼.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나라도 매번 타자를 쉽게 잡아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리 산체스가 상대의 컨디션에 맞춰 투구 패턴을 바꾼다는 것은 좋은 전략이었다.
"어떻게 나눠보려고?"
"에인절스 타자들도 네 공을 한 타순이 돌 때까지 지켜봤으니까 조금 더 익숙해졌을 거야. 그러니 코스를 세심하게 나눠보려고 생각 중이야."
"흐음... 그래? 근데 굳이 그래도 될까?"
"어?"
"상대를 한 번 이상 지켜본 것은 LA 에인절스 타자들만이 아니거든."
실점?
뭣하면 해도 좋다.
내 목적은 실점이 아니라 우승이었으니까.
아무리 내가 연속 이닝 무실점을 기록하고 있다고 해도 무실점의 기록이 우승보다 값진 것은 아니다.
-따악!!!
-우아아아아아아아!!!
"어?......."
덕아웃에서 하늘 높이 날아가는 공을 바라보는 개리 산체스.
그의 어깨를 붙잡으며 못다한 말을 이었다.
"개리! 너만 괜찮다면 4회부터는 오랜만에 내가 리드하고 싶은데.... 그래도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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