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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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경기처럼 어떤 팀이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해 사람들이 크게 궁금해 하지 않았다.
2017년, 한해동안 메이저리그를 쭉 봐왔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뉴욕 양키스가 LA 에인절스와의 디비전시리즈 3차전에서 이긴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오죽했으면 LA 에인절스의 승리에 배팅하는 도박사를 보고 여타 전문가들이 미친놈이라고 말했을까.
심지어는 LA 에인절스의 배당이 3배까지 치솟은 반면에 뉴욕 양키스는 1.07배로 오히려 1.10에서 배당이 하락했다.
그만큼 사람들은 오늘 경기의 승리 팀 대신 LA 에인절스의 타선이 얼마만큼 이성호에게 대항할 수 있을지를 궁금해했다.
분명 보스턴 레드삭스나 뉴욕 양키스처럼 아메리칸리그를 대표하는 팀 중 하나가 바로 LA 에인절스인데, 이성호가 보여준 위압감은 그보다 훨씬 더 윗단계에 있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이성호와 LA 에인절스는 2017년도에 단 한번도 만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동안 마이크 트라웃과 이성호가 투타 대결을 하게 되면 누가 이길 것이냐는 질문에 많은 이들이 논쟁을 한 만큼 이번 대결은 그동안 치열했던 논쟁을 마무리 해줄 경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수의 전문가들은 성호가 이길 것이라고 추측 했는데.
이성호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두 게임 연속 퍼펙트게임을 달성했으며 연속 무실점 최다 이닝의 주인공이기도 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추측이었다.
"오늘은 무조건 이겨야 해. 우리를 더 비참하게 만들 루키가 마운드에 서는 날이잖아. 만약 오늘도 지게 된다면, 우린 전부 이번 시즌에 데뷔한 루키한테 치욕을 당한 선수들로 기억되고 말 거야."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지. 씨발! 오늘 아침 뉴욕 타임즈 봤어? 뭐? '에인절스의 한계, 과연 리는 몇개의 탈삼진을 잡을까?' 라고? 개새끼들!"
"오늘은 절대 지는 일은 없어야 돼. 그동안 내가 너무 못쳤어. 그러니까, 오늘은 꼭 이기자."
팀의 1번 타자로 오늘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콜 칼훈이, 경기 시작 전, 기사를 보고 분통을 터트리는 타자들을 이끌었다.
"내가 1번으로 먼저 출루를 해볼테니까, 작전대로만 하면 잘 될거야. 알겠지?"
"응"
LA 에인절스의 타자들이 노리고 있는 것은 당연히 이성호였다.
디비전시리즈 마지막 될 수 있는 경기에서 시리즈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는 선수.
이번 시즌 데뷔했던 선수였지만 야구의 신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메이저리그를 평정하고 있는 선수이기도 했다.
그리고 LA 에인절스는 그 선수가 한 번도 안뛰었음에도 홈 2연전에서 2연패를 당하고 말았으니.
언론들이 난리 치는 것은 어느정도 예상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잔인하게 인터뷰를 할 필요는 없지 아니한가.
"뭐? 리그 챔피언십을 준비해?"
오늘 아침에 터진 조 지라디 감독의 단독 인터뷰.
오늘 경기로 리그 챔피언십에 총 전력을 쏟아부을 것이라는 기사가 터져나왔다.
"이런 일, 저런 일 다 겪어 보았지만..... 역시나 이번 일 만큼 치욕은 없을 거야. 내 야구 인생을 전체를 되돌아보아도."
칼훈에 뒤를 이어 마이크 트라웃이 선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라커룸에서 콜 칼훈이 유능한 말솜씨로 선수들을 휘어잡는다면 마이크 트라웃은 실력으로 인정 받은 엄연한 리더였다.
다른 선수들도 LA에인절스에서 타선의 리더가 누구인지 선수들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2011년 데뷔 이후 항상 최고의 모습만 보여준 마이크 트라웃.
그가 이성호란 이름에 민감히 반응했다.
"만약 오늘 빚을 갚지 못하게 된다면, '그'를 볼 때마다 우리는 주눅들면서 경기할 게 뻔할 거야. 그리고 은퇴한 이후에도 그 루키는 선수 생활을 계속 이어나갈테고, 상대 타자들을 잡고 웃는 그 모습을 계속 봐야겠지. 내 말이 틀려?"
"...당연히 그러겠지."
"그래, 그럼 남은 방법은 하나야. 이미 우리가 입은 상처는 되돌릴 수 없겠지만, 모두가 예상하는 패배라는 두 글자를 승리라는 두 글자로 바꾸는 거. 그렇다면..."
마이크 트라웃이 모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빚을 갚아준 기억까지 함께 간직할 수 있을 거야. 평생."
그리고 잠시 후.
-따악!!
그 많은 관심을 받은 경기가 시작되었다.
1.
-따악!!
"파울!!"
3번째 파울.
나는 1회 초 첫 타자부터 오늘 la 에인절스의 자세가 평소 그들이 취하던 자세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소문대로 준비를 정말 단단히 하고 왔구나. 마음이든, 실력이든.'
1번 타자 콜 칼훈의 눈빛이 며칠을 꼬박 굶은 야수처럼 매서웠으며, 날카로웠다.
나를 바라본 채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물론 내가 거기에 겁먹을 리는 없었지만, 평소와 같이 위력적인 공을 던졌음에도 콜 칼훈은 파울을 계속해서 만들어 냈다.
카운트는 노 볼 투 스트라이크.
하지만 던진 공의 개수는 벌써 6개나 되었다.
콜 칼훈이 마이크 소시아가 경기 전, 정식 인터뷰에서 '모든 전력을 이 경기에 쏟아부을 것이다' 라는 말을 정확하게 이행하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따악!!
"파울!!"
방금 106마일이 찍히는 포심 패스트볼을 몸쪽 깊숙히 붙여냈음에도 날카롭게 쳐냈다.
결과는 페어 볼이 됐을 수도 있을 법한 3루수 파울 볼.
콜 칼훈이 배트를 내려놓고 1루 쪽으로 뛰어가려는 모션을 취하려다 결과를 보고 아쉽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 모습을 보니 오늘 경기가 쉽지 않으리라 생각 됐지만...
'여기서는 더 밀릴 수는 없지.....'
결국 첫 타자부터 개리 산체스와 정했던 결정구를 꺼내들기로 결심했다.
상대가 초반부터 전력을 다해 덤빈다면 이쪽도 역시 그래야만 했으니까.
내가 무슨 기록을 세웠건 여기는 세계 최고의 야구 선수들이 모인 곳이었다.
아무리 압도적인 투수라도 간절하게 매달리는 타자들에겐 언젠간 맞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나는 상대의 간절함이 어떻든지 간에 잡아 먹힐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 말이다.
2.
-부웅!!!
"스윙, 스트라잌 아웃!!!"
"씨발!!!!"
공과 10cm 이상 차이 나는 스윙을 마친 콜 칼훈이 안 좋은 소리부터 내뱉었다.
미리 상대의 선발 투수가 던진 공을 알고 대비 하고 있었는데도 제대로 쳐내지 못했다.
성호가 던진 공이 자기가 생각한 것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순간 꺾이는 공을 던질 줄 알고 있었는데...'
오늘 그가 얼마나 집중하고 있었는지, 상대의 선발 투수가 공을 던지기 전 분위기가 변한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이번에 오늘 경기에서 준비했던 승부 구를 던질 것이라고 추측하고 순간적으로 꺾이는 공에 맞춰 일부러 몸을 앞으로 낮추며 스윙 간격을 넓혔는데........
상대의 투수가 던진 승부구, 컷 패스트볼, 일명 '리베라가 던지는 컷 패스트볼 보다 더 이상한 공' 이라고 불리는 그 공은 콜 칼훈의 예상보다 훨씬 위력적이었다.
'미친.... 이런 공을 겨우 19살 짜리가 던진다고? 마이크 트라웃이 말했던 것보다 더 이상하잖아! 이런 공을 던지는 녀석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쫓아내야 한다고! 씨발! 도대체 어떻게 치라는거야!'
모든 걸 준비했다.
그를 비롯해 팀원 모두가, 상대의 선발 투수가 시즌 초부터 던진 공들을 하나 하나 살펴봤다.
그리고 그의 106마일이 넘나드는 포심 패스트볼과 100마일 초반대에서 놀고 있는 컷 패스트볼에 맞춰 스윙 연습도 했다.
그런데도 그의 공을 간신히 쳐냈을 뿐.
아무것도 하지못했다.
'시발....'
처음 느껴보는 압도적인 패배감.
아무리 메이저리그에서 뛰어난 선수들을 만나본 콜 칼훈이었지만 저런 선수는 처음이었다.
넘을 수 없는 벽과도 같았고, 쳐다볼 수 없는 무엇과 같았다.
'이길 수 없..... 아니야! 아니라고!'
순간 끝까지 포기 하지 말자고 하던 마이크 소시아 감독의 말이 생각나 금세 고개를 젓는 콜 칼훈.
한 번 더 마운드에 서 자신을 무시하고 어느새 다음 타자를 바라보고 있는 이성호를 세차게 노려보고 la 에인절스의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의 뒤로 나온 2번 타자도 별반 행동이 다르지 않았다.
-따악!!
-따악!!
-따악!!
-부웅!!
"아웃!!"
이미 시리즈 2패에 몰렸기에 더 이상 뒤가 없는 오늘.
LA 에인절스의 타자들은 진심으로 전력을 다해 상대의 선발 투수를 분석하고 나왔다.
시즌 중간에 만났다면 절대 이런 집중력과 단합력을 발휘했을 리가 없었다.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출루하려고 노력했고.
상대의 선발 투수에게 한 점이라도 뽑아내기 위해 최선의 준비를 다 하고 경기에 들어왔다.
이제까지 볼티모어를 제외하고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1점 뽑기'에 성공해야만 승리를 기대할 수 있었기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울러 자신들이 '1점 뽑기' 에만 성공한다면, 그 흐름에 올라타 4차전과 5차전까지 이겨 리버스 스윕을 완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상대의 선발 투수는 LA 에인절스의 9명의 타자 중 가장 열심히 경기를 준비했던 2명의 타자를 순식간에 처리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품고 6시간의 비행을 통해 뉴욕에 온 LA 에인절스의 원정 팬들은 고개를 숙였는데.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음 타석에 들어서는 선수를 보며 눈을 빛내며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우아아아아아!!"
드디어 LA 에인절스의 마지막 희망, 마이크 트라웃이 타석에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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