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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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위협구라고 생각하는건가? 누가봐도 한번은 빠진 공에 한번은 몸쪽 코스 노린 공이잖아? 맞지도 않은 놈이 유난 떨기는..... 하여간 핀 스트라이프 입은 놈들은 뭔가 재수가 없다니까. 조 스타인브레너 그 노친네가 구단주일 때부터 쭉 그랬어. 그치?"
"어, 좀 꼴 보기 싫더라."
개리 산체스가 배트를 던지고 마운드를 향해 걸어가자, 뉴욕 양키스의 홈구장인 양키스타디움의 절반을 채운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원정 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뉴욕 양키스의 홈 팬들도 마커스 스트로먼의 위협구에 야유를 보내고 있었지만 토론토 원정 팬들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토론토의 팬들은 건방지게 앞으로 나선 개리 산체스를 에이스 마이크 스트로먼이 그를 응징해 주길 바라며 목소리를 한껏 높힌 탓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는 장면이 뒤로 이어지진 않았다.
개리 산체스가 마운드에 도착하기도 전에, 토론토의 포수 미구엘 몬테로와 주심이 산체스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기 때문이다.
"맞지도 않았는데. 괜한 분위기 만들지 마! 왜 이렇게 과민반응이야?!"
"개리, 당장 돌아가게. 자네가 이성적인 선수인걸 아니 하는 말일세. 마지막 기회야."
개리 산체스는 심판의 진심어린 말에 차마 그를 뚫고 지나가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여전히 마운드 위에 서 있는 마커스 스트로먼의 앞까지 가서 멱살을 잡고 왜 그런 공을 던지는지 이유를 묻고 싶었는데, 눈앞의 심판을 밀쳐내기라도 한다면 문제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다른 경기도 아닌 와일드카드 결정전.
단판 승부로 상위 라운드 진출과 탈락이 결정되는 단두대 매치였다.
여기서 자신의 흥분은 팀에게도 독이 될 수도 있었다.
'큭, 뭘 하지도 못할거면서. 왜 올라오려한거야? 겁쟁이 자식!'
개리 산체스가 마음을 다스리는 모습을 보이자, 마운드에 선 마커스 스트로먼이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애초에 그는 개리 산체스의 눈을 전혀 피하지 않았고 올 수 있다면 와 보라는 도발적인 눈빛을 강렬하게 보냈다.
188cm인 개리 산체스에 비해 자신은 170cm로 작은 키를 지녔지만 전혀 겁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계획과는 다르게 다른 사람들에 의해 개리 산체스의 발걸음이 멈추자 오히려 실망했다.
이번 기회에 상대의 주전 포수와 동시에 중심 타자를 아예 보내버릴 좋은 기회였으니.
집중력이라도 흔들자는 생각에 개리 산체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비웃음과 코웃음을 날렸다.
'지레 겁먹어서 마운드까지 달려오지도 못할 새끼가 괜히 허세는.'
상황이 모두 진정되고, 개리 산체스가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그동안 마커스 스트로먼 역시 마운드 주변의 흙들을 정리하고 다시 던질 준비를 마쳤다.
그때 개리 산체스가 먼저 움직였다.
기존에 서 있던 자리, 홈 플레이트에서 약간 떨어진 위치에 서있던 전타석을 대신해서 홈 플레이트 쪽으로 한발 돌리고 접근한 것이다.
안 그래도 몸쪽 공이 날아와 문제가 생겼는데, 이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그대로 드러냈다.
이걸 본 투수 마커스 스트로먼은 어이없다는 듯 글러브로 입을 가리고 웃음을 흘리며, 산체스가 움직이는 것을 가만히 지켜만 봤다.
'주제에 나를 도발하겠다고? 11타수 무안타인 자식이?'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조금 놀려주는 것을 그만두고 제대로 교육 시켜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투수가 타자를 교육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역시 간단했다.
'가만..... 있어보자. 지금 저 위치면 두번째 공과 똑같은 공을 던졌을 때....'
마커스 스트로먼은 머릿속에 떠오른 계획을 실행하기 앞서 이어서 혹시나 그가 출루했을 때를 대비해 나올 다음 타자들의 이름을 떠올려봤다.
오늘 경기를 정규시즌의 한경기로 여겨서는 안 되는 만큼, 신중함을 드러내었다.
하지만 이내 웃음이 나왔다.
4번타자 지안카를로 스탠튼 3타수 0안타, 5번 타자 애런 힉스 10타수 1안타, 6번타자 그레고리우스 10타수 2안타.....
누구하나 겁나는 상대가 없었다.
자신이 정말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잘 던진 게 맞는지, 타자들의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그를 어떻게 잡아낼지가 머릿속에 자연히 떠올랐다.
다소 상대를 안해본 스탠튼을 제외하면 모두가 정말이지 쉬운 일이었다.
마음을 굳힌 마커스 스트로먼이 입을 꽉 다물고 자세를 잡았다.
'겁쟁이새끼. 꼴사납게 엉덩이 쭉 내빼고 혓바닥이나 내밀면서 뒤로 나자빠져봐라!'
다리를 하늘 높이 드는 것으로 투구의 시작을 알렸다.
보란 듯이 두 번째 공과 마찬가지로 몸쪽을 깊숙히 파고드는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
날아가는 것을 보아하니 코스는 완벽.
이대로라면 아까 전보다 타석에 가까이 선 개리 산체스의 몸에 무조건 맞을 수밖에 없는 공이었다,
'큭큭, 나자빠져서 분한 표정을 보여보라고! 그리고 흥분해서 달려와주면 더 좋고!'
마커스 스트로먼은 기다렸다.
개리 산체스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여유롭게 지켜보았다.
혹시나 기대했던 대로 꼴사나운 동작을 선보이며 나자빠진다면 아까 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제대로 비웃어 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자신의 그런 모습이 뒤를 이어 나올 타자들마저 흥분시켜 경기를 더욱 쉽게 만들어 줄 것이다.
겁먹고 홈 플레이트에 접근하지 못하게 되면, 그건 그거대로 좋은 일이었고.
만약 흥분해서 벤치 클리어닝이라도 일어난다면 포수 자원이 없는 양키스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뉴욕 양키스의 3번 타자 개리 산체스는 상대가 걸어오는 싸움을 결코 피하지 않았다.
-퍽.
"힛바이 피치드볼!(Hit by pitched ball) 1루로 가게."
주심의 콜이 없더라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마커스 스트로먼이 던진 공이 개리 산체스의 허리를 강하게 때렸다.
하지만 그는 전혀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았다.
허리를 몇번 움직이며 툭툭 털어내더니 '이정도의 공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 라는 표정으로 태연하게 마커스 스트로먼을 쳐다도 보지 않고 거의 없는 사람 취급을 하며 1루로 걸어나갔다.
오히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커스 스트로먼이 인상을 써야만 했다.
'저 개자식이 진짜!'
1.
'저 새끼, 일부러 던졌어!'
양키스의 덕아웃에서 이 장면을 지켜본 나는 단번에 방금 공이 고의로 던져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걸 느낀 게 나 혼자만이 아니었는지, 지금 뉴욕 양키스 덕아웃에는 마커스 스트로먼을 향한 욕설이 매초마다 한번씩 들려왔다.
조 지라디 감독 역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대신 그라운드로 뛰어나가, 주심에게 이상황을 행동으로 묘사하며 마커스 스트로먼을 손짓으로 가르키고 격렬히 항의했다.
"한 번 더 이런 비슷한 일이 있으면 무조건 퇴장일세. 그러니 주의하도록. 다시 말하네.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자네는 퇴장이야.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퇴장이 아니었다.
개리 산체스가 홈 플레이트 가까이 붙어 있었던 것 역시 원인이 됐다고 생각했는지 주심은 마커스 스트로먼에게 엄중 경고를 하는 것으로 처벌을 마무리 했다.
조 지라디 감독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판정에 다시 한 번 항의를 했지만, 결과는 뒤바뀌지 않았다.
-우우우우우!!!
"개자식들! 3차례나 공으로 위협하고 심지어 맞춰도 경고라고? 심판들도 맞아봐야 정신 차리려나?"
"투수가 저렇게 날뛰는데 맞추고도 웃고 있었잖아!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저런 판정을 하는건데!"
"안되겠어. 다같이 나가서 항의해보..."
"그만. 다들 그만해."
주심의 판단이 경고로 끝남과 동시에 뉴욕 양키스 덕아웃이 다시 한 번 더 달아올랐다.
모두 입에 '보복' 이라는 단어를 담고 있었고 팀 분위기는 흉흉해져만 갔는데.
팀 베테랑인 브렛 가드너가 나서 그들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코칭 스테프들 역시 나의 등을 두들기며 영향을 받지 말라며 조언해주었다.
혹시나 내가 동료들의 성화에 못이겨 마음에도 없는 보복구를 던져 데뷔 후, 처음으로 경기를 망치지 않을까 염려한 것이다.
하지만.
'못 참지. 이건.'
누구보다 팀 케미의 중요성을 깨달은 이번 생에선.
이런 일에서 절대 참을 생각이 없었다.
무엇보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배터리인 개리 산체스의 일이었으니 말이다.
'두고보자고. 개자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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