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메이저리거 (155)화 (153/207)

15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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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기 상어 인형 복장을 하고 중앙으로 나와 인사를 마쳤을 때, 무대 뒷 편에서 낯익은 얼굴이 나를 보고 있었다.

"에밀리?"

나는 놀란 표정으로 에밀리를 바라봤다.

당연히 나는 그녀가 이곳에 올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상황이었다.

"에밀리가 여긴 어쩐 일이에요? 무대는 또 어떻게 올라왔고? 아니, 그것보다 오늘 무슨 약속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에밀리와 오늘 행사가 벌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에밀리가 자신이 이곳에 온다는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분명 오늘 오전에도 잘 하고 오라는 격려의 메세지만 보냈던 걸로 기억하는데....아.

그러고보니 어떤 일이 벌어져도 당황하지 말라는 말도 있었긴 했는데....

'당황?'

하지만 에밀리는 나의 어리둥절한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대 중앙으로 나갔다.

그리곤 나의 옆에 서서 팬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뉴욕 양키스의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이라면 그녀의 존재를 모를 리 없었기에 환호성이 그녀를 반겼다.

그중 가장 앞에 앉은 'the goddess of baseball'의 회원들 반응이 유달리 뜨거웠는데.

"에밀리? 어떻게 된 일이에요?"

"풋, 진짜 지금 표정 웃긴거 알아요? 궁금한거 답해주자면 저도 'the goddess of baseball' 창립 회원이거든요. 물론 나이...가 제일 많지만...... 리의 에이전트라 그런지 몰라도 부회장 자리도 맡고 있어요. 몰랐죠? 이 자리도 저희 쪽에서 추천한 건데."

"어? 'the goddess of baseball'는 분명 뉴욕 명문대 학생들이 중심으로 만들어졌다고 들었는데.... 창립 회원이요?"

"저도 거기 학생이었거든요. 물론 이미 졸업했지만 회장이 제 직속 후배에요. 집안끼리도 아는 사이이기도 하고."

에밀리는 타고난 미모로 모델로까지 성공적으로 활동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모델 출신의 에이전트로 '미녀 에이전트'라는 타이틀로만 에밀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실제로 나도 전생에선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뉴욕 명문대 출신이라니?

거기다가 졸업자라니...

그렇게 보니 에밀리가 좀 다르게 보였다.

자세히는 알려줄 수 없다고 했지만 그 회장이라는 후배의 권유로 참여하게 됐다고 말을 잇더니 모인 관객들에게 다시금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다시 터져나오는 환호성.

센트럴파크가 떠나갈 듯한 환호성과는 별개로 남은 행사는 여전히 진행됐다.

오늘 행사가 루키 헤이징의 루키 드레스 업 데이인 만큼 특별한 일정이 따로 있진 않았지만, 현장에 온 팬들 중 일부가 뉴욕 양키스에서 루키 드레스 업 데이에 참여한 선수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시간이 있었다.

물론 여기에 모인 모든 사람이 그럴 수 없는 만큼 대상자는 즉석에서 현장투표로 뽑았다.

선수들이 뽑은 숫자와 자신이 앉은 좌석 번호가 같은 사람만이 무대 위에 올라와 사진을 찍고 내려가는 일정.

이 역시도 시간이 오래 걸려 스무 명 정도 밖에 진행하지 않았지만, 당첨되지 않은 팬들도 이 시간을 무척 즐거워하며 보냈다.

나를 포함한 뉴욕 양키스 선수들이 무대 위에 올라온 팬과 함께 정말 다양한 포즈로 나름의 재미를 만들어 주었으니 말이다.

어느 새, 루키 드레스 업 데이에 예정된 일정들이 모두 끝이 나고 남은 일정은 단 하나.

작별인사였다.

나는 사전에 이야기 한대로 아쿠냐, 애런 저지, 세베리노를 대표해서 마이크를 잡았다.

마무리 일정인 작별인사는 내가 맡기로 했다.

"오늘 이 자리에 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제가 이 복장을 입고 나온 이유는 단순히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라고 해서 입고 나온 것인데 나이 드신 분들도 좋아하시니 참... 좋네요."

-하하하.

객석에서 자그맣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사인회 중간에 평소 이런 의상을 좋아하냐고 질문하신 숙녀 분이 계시던데... 아닙니다. 평소 격식 있는 자리에서는 저도 양복입어요. 양복. 알죠? 아무튼 오늘 이 모습은 그냥 재미로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예--!!!

다시 쏟아지는 환호성.

마이크를 들고 무대로 나오니 엄청난 흥분이 몰려왔다.

공을 쥐고 마운드에 섰을 때와는 전혀 다른쪽의 상태.

나는 혹시나 진짜로 이런 의상을 좋아한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복장에 대한 설명부터 먼저 했다.

이는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니 크게 긴장될 일이 아니었다.

진짜는 바로 지금부터.

짧았던 행사 시간이 벌써 거의 끝을 맺고 있으니 자신이 인사를 마치고 내려가면 여기 모인 수만 명의 팬들 역시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듣기론 불과 1시간도 안 되는 이 시간을 위해 하루를 먼저 나와 기다린 팬들도 있는 자리인데.

나는 그들에게 뭔가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보답이라고 해도 좋았으니까.

하지만 벌써 회귀를 하고 1년이라는 시간을 더 살아왔지만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직 대단한 사람은 아직 되지 못했다.

자신은 대단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아직 시즌을 마치지 않은 단순한 루키였으니까.

그래서 이럴 때 쓸 수 것 중 가장 좋은 카드를 쓰기로 했다.

솔직함이 듬뿍담긴 진심을 알려주는 것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가끔 즐겨보시던 책에서 아주 멋진 말을 본 적이 있습니다. '마법의 가을' 이라고."

명작으로 소문난 글은 아니었다.

좋지 않은 가정 형편답게 길거리에서 파는 싸구려 책이었다.

하지만 분명 재미가 있었다.

"그 말을 처음 보는 순간부터 야구를 꿈꿔온 지금까지. 저는 '마법의 가을' 이라는 말이 야구와 정말 잘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제가 야구 선수가 되면 그 책 속의 주인공이 말한 것처럼 마법의 가을을 경험해 보고, 이왕이면 제 손으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꿈을 꾸며 꿈을 키워왔습니다."

야구선수와 팬 모두를 가장 설레게 하는 단어는 역시 가을 야구다.

지난 1년 동안 했던 노력이라는 재료로 결과라는 열매를 마지막으로 잘 익게 할 수 있는 시기였고.

자신이 해온 노력들을 열매의 비료로 쓰는 만큼 평소보다 멋진 장면이 자주 나오는 시기이기도 했다.

"드디어 제가 바라던 그때가 왔습니다."

회귀한 나에게는 처음 있는 일인 가을야구.

지난 생에서 몇 번이나 그 무대의 주인공이 아닌 조연으로써 뛰어왔던 나.

모든 것들이 필름이 되어 눈가에 스쳐지나가는 듯한 환영이 펼쳐졌다.

"그게 바로 내일부터 시작되네요. 떨리기보다는 기쁘고 설렙니다. 시즌을 여러분들과 환상적으로 보낸 만큼. 이번 가을에도 저 혼자 보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여기 계신 우리 양키스 팬들과 함께!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이 새로운 이야기에 주인공이 되는 겁니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모든 것을 다하는 동료가 되어, 서로가 서로의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사이.

그게 바로 이번 생에서 내가 느낀 선수와 팬의 관계였다.

"이 이야기는 새로운 것을 개척해나가는 모험담과 같아 분명 재미는 있을겁니다. 새로운 주인공들이 경기마다 등장하여 우리를 기쁘게 해줄 거니까요. 하지만 분명 믿기 어려운 현실,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들이 우리 앞을 가로막을 수도 있습니다."

누구는 그랬다.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이기에

때로는 힘이 들지는 몰라도 모두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제가 약속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입니다. 우승이라는 허영심이 아닙니다. 그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노력이라는 과정을 담아내고 결과라는 결실을 만들어내겠다는 겁니다."

나의 이 말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는지 가을을 걱정하던 뉴욕 양키스를 응원하는 팬들은 충분히 마음을 놓은 표정이었다.

나의 존재가 양키스의 역사 한 페이지에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들을 실망시킨 적이 없는 선수가 바로 나였으니 말이다.

"시간이 지난다면 가을은 또 다시 우릴 찾겠지만, 우린 가을을 찾을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시즌 시작이 시작하고 에이스의 부진과 부상으로 절망에 빠져야만 했던 뉴욕 양키스.

힘든 시간을 보낸 건 구단뿐만 아니라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전생과 비슷한 흐름으로 벌써부터 내년 시즌 구상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컸다.

헌데 반대로 올 시즌 메이저리그 전체의 주인공이 되었다.

비록 팀 성적이 최고는 아니었지만.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팀은 분명 다른 팀도 아닌 뉴욕 양키스였다.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고 벌써부터 평가받고 있는 내가 양키스에 있는한, 주인공이라는 자리를 뺏길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니 우리 마지막까지 즐겨보죠. 마법의 가을을 위하여!"

그리고 모두가 외쳤다.

-Here's to the magical fall! (마법의 가을을 위하여!)

나로인해 새 역사로 장식 될 이 가을을 위하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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