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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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렸다.
"아~ 좋아. 어? 아직도 안자고 있었어요?"
실비아가 내 하얀 와이셔츠에 팬티만 입고 샤워실에서 나왔다.
와이셔츠 단추는 잠그지도 않았는지 사이로 가슴골이 보이는게.
아까 전에만 두번의 정사를 나눴음에도 괜스레 침이 꿀꺽 넘어갔다.
진짜 왜 저리 섹시한거야?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더 그래보인다.
"그냥... 잠깐 뭐 좀 생각하고 있었어요."
"히, 그래요? 다행이다."
"뭐가요?"
"자고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그래요?"
"네, 잠깐만요. 저 머리 좀 금방 말릴게요. 잠깐만 기다려줘요."
실비아가 멋대로 만들어 둔 화장대 앞으로 가서 드라이기를 켰다.
보스턴 레드삭스와 경기한지 어느새 하루가 지나고 내일부터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시리즈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원래 그녀의 스케줄도 있다보니 포스트시즌이 끝나면 돌아오는 길에 연락해 만나려 했지만 뜬금없이 찾아온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
위잉위이잉-
"흥, 흐응 흥"
요란한 드라이기 소리와 동시에 콧노래가 들렸다.
요근래 일이 바빠 연락을 아예 못하다시피 해서 실비아가 집에 찾아왔을 땐 미안한 감정이 들었는데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 그녀는 나름 괜찮아보였다.
얼핏 화장대 거울로 보인 그녀의 표정도 밝아보였고.
섹스를 하고난 이후라 그런건가?
뭐, 예전에도 연락을 자주 안하기는 했다.
한국과 달리 외국에서는 개인 프라이버시가 중요해서 딱 할 말만 하는 연애 스타일이었으니까.
나 역시도 그에 맞춰서 연락을 하긴 했는데...
요근래 부쩍 많아졌던 그녀의 연락이 최근 줄어든게 조금 의아했다.
물론 그녀가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의심이 들진 않았지만.
묘하게 그변화가 불편한건 사실이다.
괜스레 감정에 지는 것 같아 투덜대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실비아가 그런 날 거울로 바라보더니 드라이기를 끄고 고개를 돌린다.
그녀는 왜 다가왔는지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좀 도와줄게요."
"머리 말리는거요? 제가 할게요. 좀 쉬어야하잖아요. 침대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금방 갈게요."
응? 내가 또 하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아나?
몇주간 못해서 오늘만 두번이나 했으니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한데.
솔직히 지금 모습을 보고 덮치고 싶다는 생각이 든건 사실이었지만, 내일 경기를 위해 참기로 했다. 하지만 내 선택과 다르게 눈동자에 은근한 기대감이 조금 실린 그녀를 보니 괜스레 미안했다.
뒷통수를 한번 긁적이고 실비아의 오른손에 쥐여있던 드라이기를 뺏어 버튼을 올렸다.
그리고 드라이기로 그녀의 머리를 말려주니까 혀를 살짝 내밀고 힛 웃고는 뒷걸음질쳐 내 몸과 가까이 한다.
"또 하고 싶어서 그래요?"
"아닌데. 그냥 도와주는건데요? 여자가 머리 말리는거 은근 오래걸린다면서요? 귀찮고."
나도 모르게 불퉁하게 답했다.
이러면 안되는데.
마음과 다른 대답에 속으로 저도 모르게 후회했다.
하지만 실비아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입에 웃음을 달고 뒤로 돌아 정면으로 안긴다.
그러고는 내 등을 어루만졌다.
"왜요?"
"도와줄거면 침대에 눕는 것도 도와달라고요. 괜찮죠?"
내 목에 팔을 걸면서 대답한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 안긴 상태로 드라이기를 이용해서 몇번 그녀의 머리를 말려주고 엉덩이를 받쳐들어 안아 올렸다.
사실 그동안 실비아를 만나면서 섹스를 할 때를 제외하고 이런걸 한번도 안해준게 사실이란걸 깨달아서 좀 그랬다.
오늘도 스케줄에 힘들어하는 그녀를 못참고 덮친 것도 있었고.
언젠가 헤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과 언젠까지나 함께할 거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의 차이일까?
어쩌면 그녀는 그런 배려 없는 모습에 이미 내 그런 마음을 눈치채고 있어서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으히히! 진짜 해줘요?"
공중에서 안긴 채로 발을 동동거리며 좋아한다.
"왜요? 안해줄 것 같았어요?"
"....아뇨. 그냥 최근에 좀 피곤해보여서."
"이정도야 뭐, 거기다 실비아가 원체 가볍기도 하고."
"헤, 진짜요? 그럼 있잖아요. 부탁 하나만 해도 돼요?"
부탁?
"무슨 부탁이요?"
"으흥흥, 별건 아니고."
말을 이으려던 그녀가 안긴 채로 내 입술을 혀로 핥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마중 나가는 내 혓바닥.
혀를 뱀처럼 휘감았다.
그녀와의 키스는 언제나처럼 좋았다.
키스를 하다 뒷걸음질을 쳤더니 뒷발에 침대가 걸렸다.
그러자 잠깐의 키스에 입을 뗀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앞으로도 이런거 해달라고 하면 해줄수 있어요?"
그녀의 질문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도 해줄게요. 근데 지금보다 큰 집으로 이사가면 좀 힘들지도 모르겠는데요? 실비아 플로리다 주 집이 그렇잖아요."
"그럼 앞으로 이집에서 쭈욱 같이 살면 되겠다. 그쵸? 으히히."
"여기 제 집 아니거든요? 구단에서 내어준 집이에요. 돈 벌면 이사 가야죠. 그리고 실비아도 궁전 같은 집에서 사는게 꿈이라면서요?"
장난스레 타박하면서 침대 위에 내려놓으려고 했는데, 엉덩이가 침대에 닿고도 계속 매달려 팔을 안 푼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침대 위에 올라 그녀를 눕히고 올라 탔는데, 그녀의 표정은 조금 복잡해보였다.
"....근데 그런 집에서 살수 있을까요? 아니, 그것보다 우리 둘....."
잠깐 말음 멈춘다.
"아, 아니에요. 좀 주책맞죠? 헤헤, 피곤하다. 얼른 자요."
평소 그녀답지 않게 애매한 대답이었다.
어떤 말을 덧붙이려 했을까.
궁금했지만 따로 묻지는 않았다.
아까전보다 더욱 복잡해보이는 그녀의 표정이 눈에 걸려서.
사실 표정만 봐도 뒷말은 어느정도 눈치챌수 있었다.
그녀는 집을 살수 있을지보다 그집을 샀을 때 나와 같이 있을수 있는지를 걱정하는것 같았다.
분위기를 보면 그녀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해주는게 맞았지만 결국 나는 끝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
그렇게 잠깐 가만히 있는데.
"저기 리... 조금만 올라타 있어도 될까요?"
"네?"
실비아가 내 위로 안기듯 올라타고는 누우며 작게 말한다.
"맨날 침대에 혼자 누워있으면 쓸쓸한데... 리랑 있을 땐 그냥도 좋지만 이렇게 해야 더 마음이 편한거 같아요."
그렇게 대답하며 '두근거리는거 진짜 좋다.' 라고 덧붙이며 내 가슴에 귀를 댔다.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금전 그녀의 애매한 대답에 할 말을 고르려는데.
슬쩍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니.
조금 잠이 오는 듯 슬며시 눈을 감는 그녀가 보였다.
"그냥..... 지금만 같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같이...."
금새 잠이든 그녀가 잠결에 내뱉은 한 마디.
어째선지 조금,은 마음이 시려오는 그런 말이었다.
1.
"그래도 저번 경기로 목표에 거의 도달했군."
"네, 어느 정도는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할 스타인브레너 구단주와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이 다시 만났다.
이들은 성호의 선발 등판 경기를 보고난 후, 이어진 팀 분위기가 아주 좋았기에 와일드카드 결정전 진출에 대한 확신을 품게 되었고, 덕분에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흠, 확실히 선발 로테이션상으로 보면 이제 우리 팀이 올라갈 가능성이 훨씬 더 커보이더군."
"그렇습니다. 확실한 승리 보증수표나 다름 없는 리의 등판이 한 차례 예정되어 있고, 내일부터 있을 마지막 3연전 시리즈 역시 미네소타 트윈스가 상대하는 팀에 비하면 우리 쪽이 좀 더 유리한 상황입니다."
뉴욕 양키스의 최종 3연전 상대는 와일드카드 1위를 확정 지은 토론토 블루제이스다.
그에 반히니 와일드카드 2위 경쟁자인 미네소타 트윈스가 상대해야 할 팀은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1위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였다.
클리블랜드는 같은 지구 2위 미네소타 트윈스를 멀찌감치 떨어뜨리고 디비전시리즈에 진출을 확정 지은 강팀.
유일하게 아메리칸리그에서 시즌 100승을 넘긴 팀이기도 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측에서는 이미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 지었지만, 디비전시리즈를 대비해 주전 선수들 대부분을 일정대로 뛰게 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으음. 좋구만. 우리 쪽에 아주 좋아."
할 스타인브레너 구단주가 다시 한번 크게 미소를 지었다.
시즌 전, 팀의 상황을 떠올리면 자신이 9월 말에 이런 기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2017시즌 활약해줘야할 다나카 마사히로는 스프링캠프에서부터 2016년 부상으로 여전히 골골대고 있었고, 기대하고 있던 신인 투수들이 모두 망했고 연락을 받았을 땐, 뉴욕 양키스의 2017시즌은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2020년까지 리빌딩을 거칠 각오를 하고 있었지만 내심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도 바라고 있었던 그였기에 다나카의 부진과 신인들의 부진을 연락 받았을 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강의 에이스를 보유하게된 지금은, 자신을 제외하고도 모든 전문가가 뉴욕 양키스가 최고의 시즌을 보낼 수 있다고 의견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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