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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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제가 어떤 대답을 해야하는지 알려 주실 분 있으십니까? 도저히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어서요."
"....."
당연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분위기만이 몇 분 전과 달리 상반되게 변하고 있었다.
아마도 나의 태도가 좋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출 수는 없었다.
"혹시 여기 계신 분들 중 제가 올 시즌 171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할 거라고 예측하신 분 계십니까? 아니면 세 번의 퍼펙트게임을 달성할 거라고 예측하신 분은요? 300 탈삼진을 예측하신 분도 있나요? 하다못해 좋은 평균 자책점을 이뤄낼 거라고 예상한 분들도 전혀 없었다고 들었는데....."
내용과 달리 나는 여전히 덤덤했다.
기자들의 상태는 들떴다가 가라앉았다가, 웃다가 화내는 것으로 바뀌었지만, 나는 여전히 처음과 똑같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간단히 말씀해 주십시오!"
그때 들려오는 한 마디.
뒤쪽에 앉은 기자 한 명이 크게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 다른 기자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대답을 독촉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나 역시도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나도 질질 끌 생각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제 생각을 속 시원하게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야 진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기자들.
나는 분위기가 정리된 것을 확인하고는, 한 마디 한 마디 힘을 줘가며 또박또박 자신의 생각을 저들에게 전했다.
"미래의 일을 놓고 이렇게 저렇게 되지 않겠냐고 물어보시면 대답하는 입장에서 정말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저기 기자님. 저와 나이 차이가 크지 않아보이는데 혹시 자식 있으십니까? 없다구요? 그럼 미래에 기자님은 아들과 딸 중 어느 성별의 자식을 낳게 될까요?"
지목당한 기자가 내 말에 고개를 젓으며 어깨를 으쓱인다.
"모르시겠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에 제가 망할지 잘될지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여기 계신 유능하신 기자님들은 딴에서 각각의 근거를 가지고 물으시고 있으신거겠지만, 저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누가 옳느니 틀리니 논하는거 자체가 웃기는 일 아니겠습니까? 혹시 여기 계신 분들 중 제가 처음으로 3일 휴식 후 선발 등판했던 미네소타 트윈스 전에서 퍼펙트게임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신 분 계십니까?"
다시금 조용해진 기자석.
"그렇다면 제가 올 시즌 던졌던 100마일의 포심 패스트볼 이후로 반년도 안되서 세계 최고 구속인 107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을 던질 것이라고 예상하신 분은요?"
"......"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미래의 일은 일이 일어나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다구요. 만약 제가 데뷔하기도 전부터 지금과 같은 성적을 낼 거라고 기자님들과의 인터뷰에서 대답했다면 믿으셨을까요?"
만약 내가 성적을 보여주기 전에 이들에게 이러한 성적을 내겠다고 떠들어댔다면 어느 한 명도 믿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멍청한 놈 취급이나 받았겠지.
나는 지금 그 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자리에 약속 드릴 수 있는 것은 몇가지 되지 않습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기자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그저 어떠한 순간에도 최선을 다할 거라는 것과 걱정하시는 결과가 나오면 다소 준비가 미흡했던 것들을 받아들이고 반성하겠다구요. 그래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테니까요."
잘못됐다고 확인되기 전까지 의지를 굽힐 생각을 하는건 전생의 일들로 충분했다.
남들은 뭐라고 말해도, 전생과 달리 나에겐 자신의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한국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주라고요. 그 말이 지금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말보단 행동으로, 아니. 결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종전에는 이 일의 시발점인 한 기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바로 앞에서 아직도 절 노려보고 계시는 베이라 마케티 기자님께 부탁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저 좀 응원해주라구요."
"큭큭, 메이저리그를 안본지 꽤 됐지만 오늘부터 챙겨보게 될 것 같군요. 응원하겠습니다. 미스터... K. 이렇게 부르면 될까요?"
갑작스럽게 자신을 부르는 말에 베이라 마케티가 기분 좋게 대답했다.
다행히 그 모습이 좋게 보였는지, 이 자리를 가득 채우던 긴장감이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다시 조용해졌다.
이제 그들도 아는 것이다.
이상황에서 더 이상의 질문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소란이 잦아든 현장에 더는 질문을 하는 기자가 보이지 않았고, 인터뷰는 그대로 끝이 났다.
1.
[이성호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주겠다. 응원해달라."]
[뉴욕 양키스의 새로운 시대. 새로운 리더. 품격마저 완벽했다!]
[브라이언 캐시먼 "오늘부터 우리는 위대한 여정과 함께 할 것."]
[조 지라디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있다. 치기 어린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선수. 그와 함께 할 수 있는건 감독으로써 축복이다."]
[뉴욕 양키스 선수단 공동 성명 "우리는 새로운 리더를 지지한다."]
-그의 말이 맞아. 그냥 믿자. 우리가 안 믿으면 누가 새로운 리더를 믿어줄까?
ㄴ 맞아. 그를 믿자. 우리는 그저 그를 지지해주면 되는거였어.
-생각해보니 우리가 호들갑 떨 이유는 없었어. 그의 말처럼 다들 보고 나서 이야기하자고. 솔직히 그가 28경기에서 28승을 할 거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잖아.
-난 솔직히 이렇게까지 난리가 날 일인가 싶어. 그는 누구보다 소중한 선수라서 구단에서도 적극적으로 관리하는건 팬이라면 다 아는 사실인데 그저 선발 일정에 흥분해선! 제발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은 입 닥치고 응원이나 해달라고!
ㄴ 생각해보니까 이제껏 난리 친 놈들 타팀 팬일 것 같다. 부러워서 분탕친거지.
ㄴ 부러우면 부럽다고 솔직히 말하라고 더러운 놈들아!!!!!
이성호의 인터뷰는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애초에 유튜브에서 실시간 영상으로 볼 수 있었고, 현장에 있던 기자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기사를 작성해 올렸다.
어떤 기자는 당시 주고 받았던 말들을 영상을 잘라넣고 Q&A 식으로 전부 정리해서 올렸고, 또 다른 기자는 현장에서 보여준 양키스의 새로운 리더의 자신감과 의지를 본인이 느낀 바대로 기사를 작성했다.
다행인 것은 어느 하나 부정적인 내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성호가 말했던 것들 중 '미래의 일에 걱정하지말고 벌어진 이후를 걱정하자' 라는 말은 자칫 '보고 나서 말하자' 라는 말로 근거를 가지고 질문했던 기자들에겐 건방지게 들릴 수 있었는데,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누구도 그것을 건방지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말을 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성호였기에 사람들은 더더욱 그간의 일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데뷔 시즌임에도 이제까지 그가 이룬 수많은 업적이 그것을 증명했으니 말이다.
-일하느라 실시간으로 못 봤는데 뉴욕 타임즈에서 베이라 마케티라는 기자가 쓴거 보니까 딱 그거네.
ㄴ??? 그게 뭔데?
ㄴ 예고 삼진이나 예고 홈런 같은거 말이야. 지금까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던 그가, 이제는 자신이 이룰 위대한 업적을 미리 사람들에게 알려주기로 마음 먹은 거라고. 이번 경기를 통해서 이제 절대 자신을 의심하지 말라고말이야.
ㄴ 헐. 그럼 그걸 뭐라고 해야하지? 예고 신기록 같은건가?
ㄴ 그게 뭐가 중요해. 그냥 그의 말대로 우린 그의 경기를 즐기면 되는거야.
여론은 급변했다.
압도적으로 그를 걱정하는 여론에서.
압도적으로 그를 지지하는 여론으로.
여론이 이러다 보니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히 성호의 다음 선발 등판 경기로 향했다.
-그래서 그는 언제 등판 하는건데? 이틀 뒤? 삼일 뒤?
다행히 그들은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인터뷰 바로 다음 날.
성호가 이미 그자리에서 발표한 대로.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2차전 선발 이성호 낙점!!]
보스턴 레드삭스와 벌어지는 3연전 시리즈의 두 번째 경기에 선발로 나서기로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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