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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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를 향해 쏟아지는 시선은 대부분 걱정이었다.
무리한 등판으로 인해 메이저리그의 인기를 이끌어낸 나에게 아픈 곳이 생기지 않을가. 평소와 비교해 떨어질 구위로 인해, 이제는 역사적인 가치까지 지닌 연속이닝 무실점 기록이 끝나지 않을까.
혹시나 이번 등판에 일어난 실패로 인해 그가 크게 실망해 회의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지금까지와 달리 평범한 투수로 전락하지않을까.
차갑고 날카로운 비난보다는 진정으로 나를 염려해주는 야구팬들이 정말 많았다.
어느새 내가 메이저리그의 독보적인 스타가 된 것도 큰 지분을 차지한 덕인것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야구 팬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 상상해봤던 판타지 속의 투수.
팬들이 머릿 속에서만 '이런 투수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던 판타지 속의 투수가 실제로 나타났기 때문인 것이 메이저리그 팬들이 나를 걱정하는 큰 이유였다.
하향세를 거듭하던 메이저리그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전성기 이상의 인기를 끌어낸 선수를 한순간의 실수로 잃고 싶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나는 이러한 팬들의 마음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모두에게 놀림감이 되었던 전생과는 별개로 모든 팬들에게서 사랑 받는 것은 특별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들의 모든 의견에 내가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 번 마운드에 오른 후, 4일이나 5일을 쉬어야 한다는 게,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될 필요는 없잖아?'
짧게 쉬는 것보다 오래 쉬는게 몸에 좋다는 건 안다.
하지만 무작정 오래쉰다고 좋을까?
무릇 스포츠 선수라면 자신의 루틴이 있는 법이고 정해진 휴식일이 있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모두가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당장 서로 다른 나라의 프로리그들을 비교해 봐도, 메이저리그에서는 5선발 로테이션을 택하고 있고, 일본 프로야구는 6선발 로테이션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처럼 환경과 선수 개개인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게 전적으로 나의 의견이었다.
'물론 5, 6일의 휴식이 나쁜건 아니지. 하지만 무작정 오래쉬면 몸이 식는것도 문제야. 완전한 휴식은 시즌 이후나 하는거지, 시즌 중반에는 몸이 적당히 달아올라 있는게 좋아.'
물론 자신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지금 내 몸이 전생을 포함해 가장 컨디션이 좋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3일 쉬고 등판하는 것이 다른 선수에게 꼭 좋을 거라고 확인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시험해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그러한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없을지를.
부상을 당하지 않는 몸인 것은 맞지만 체력이 닳지않는 몸은 아니었으니까말이다.
그리고 능력이 없었다고 해도 이세상에선 사람들마다 각자 타고난 것들이 있었다.
21세기가 되어서도 프로에서 투수와 타자를 동시에 하는 선수가 있고, 오른손과 왼손을 모두 메이저리그 수준으로 던질 수 있는 투수가 있고 반대로 그렇게 쳐낼 수 있는 타자가 있는데.
휴식일을 적게 필요로 하는 선발 투수가 나온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데드볼 시대나 몇 십년 전의 메이저리그에선 흔하디 흔한 일이었지만 21세기 들어선 그런 일들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만약 21세기에 그러한 투수가 등장하게 된다면, 그게 자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고 싶었다.
그 투수는 앞서 예를 든 유형의 선수보다 팀에 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지금보다 더 높은 위상을 갖게 되는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자신에겐 남들과 달리 신이 준 능력들이 있었다.
나의 선택이 과연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만들어 진 틀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은 한 번의 인생으로 충분했다.
'일단 한 번 해보자.'
그리고 뉴욕 양키스의 공격이 끝이나, 나는 모자와 글로브를 챙겨 다시금 마운드에 올랐다.
1.
-빠각!!!
[공이 유격수 정면으로 굴러갑니다. 디디 그레고리우스 선수, 가볍게 잡아서 곧장 1루에 송구, 아웃! 성호 리가 4회 말 첫 타자를 깔끔하게 유격수쪽 땅볼로 처리합니다.]
[평소에도 대단한 그였지만 오늘은 참 평소보다 더욱 대단한 것 같습니다. 벌써 이번이 5번째인가요?]
[맞습니다. 뉴욕 양키스의 선발 투수로 화제를 낳았던 리가 지금까지 10명의 타자를 상대하며 그중 5명의 타자 배트를 부러트렸습니다.]
[브라이언 도저 선수는 이번만 벌써 두 번째죠? 경기 첫 타석 때부터 배트가 부러졌었으니.]
[네, 심지어 이번 타석에서는 파울판정을 받은 타구에서도 배트가 부러져 나갔으니, 총 세개의 배트를 도저 선수에게서 빼앗아갔습니다. 아마 오늘 도저 선수, 마음이 참 쓰라릴 거 같네요.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오늘 리의 피칭은 압도적으로 보이네요.]
존 해설위원이 신이 난 목소리로 오늘 성호에게 여러차례 배트를 헌납했던 브라이언 도저를 언급하며 성호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그라운드에서는 여전히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성호는 언제나처럼 타자를 공격했고, 공격을 막아내기 급급해하던 타자는 결국 성호에게 잡아먹히며 고개를 떨어뜨리고 팀의 덕아웃으로 돌아가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그래서 양키스 경기를 중계하는 폭스 스포츠 중계진들 모두에게 여유가 넘쳤다.
도저히 그가 얻어맞을 것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것 같았기에.
경기 전, 은근하게 3일 휴식에 대한 우려를 표했던 존 해설위원은 여전히 신이 난 목소리로 성호가 오늘 어떤 피칭을 하는지, 더욱 열을 가하며 설명했다.
[배트를 부러트리는 것도 좋지만 오늘 리가 보여주는 모습은 정말 놀랍네요.]
[으음? 제가 보기엔 평소와 다르게 컷 패스트볼의 비중이 조금 늘긴 했지만... 별 다를 바가 없는데 어떤 부분에서 그러셨습니까? 존 해설위원님.]
[캐스터님의 의견도 맞습니다만, 올 시즌 이정도로 폭력적이고 무자비했던 때가 있었나 싶어서요. 그렇지 않나요?]
[흐음.... '폭력적이고 무자비하다' 라는 말에 담긴 속뜻에 따라 받아들일수는 있겠습니다만.....]
[굳이 비교를 하자면 올스타전 때와 비슷하겠군요. 그날 포심 패스트볼만 스트라이크존에 줄기차게 꽂아 넣어 6타자 연속 삼구 삼진을 잡아냈을 때처럼, 오늘 리는 스트라이크 존만을 공략하며 공을 던지고 있어요.]
성호가 오늘 4회 말, 첫 번째 타자인 브라이언 도저를 상대할 때까지 던진 '볼'의 개수가 고작 1개에 불과했다.
실제로는 그보다 조금 더 많긴 하겠지만, 유인구에 타자들이 배트를 휘둘러, 전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볼의 갯수는 줄어들었고 스트라이크에 몰린 타자들에게서 헛스윙을 이끌어내 이닝을 완벽히 틀어막았다.
[하지만 그런 걸로 '폭력적이고 무자비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리는 원래도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비율이 다른 투수들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높은 선수였잖습니까?]
[맞습니다. 헌데 오늘은 스트라이크 존을 아주 포악하게 다룬다는 점이 평소 그와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좀 더 풀어서 말씀드리자면, 평소 리는 스트라이크 존 안에 공을 던질 때도 타자가 생각하지 못한 구종과 코스를 선택하거나 타자의 약점만을 고려하는, 아주 영리한 모습을 주로 보여주는 편이었습니다.]
[네, 정말 그랬었죠.]
[하지만, 오늘은 어떻습니까? 이 경기를 지켜보시는 팬분들께서도 느끼셨겠지만 리는 오늘 전혀 그러지 않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공을 100마일이 넘는 포심 패스트볼로 던지면서 타자와 '힘' 대 '힘'의 대결을 벌이고 있습니다. 마치....]
[마치?]
[칠 수 있으면 쳐보라 이런 거죠.]
[하지만 저런 식의 피칭은 메이저리그에서도 꽤 많이 있지 않습니까? 당장 양키스의 수호문인 아롤디스 채프먼도 그렇고요.]
[그렇긴 합니다만...... 혹시 이거 저만 눈치챈건가요?]
[무엇..을 말입니까?]
[오늘 리가 보여주는 투구에는 분명히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무슨 의미죠? 시즌 후반에 들어 평소와 다르게 지쳤음에도 힘을 더 들이면서까지 던질 의미가 있었나요?]
[네, 그렇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아마도 보여주고 싶었나 봅니다. 양키스의 새로운 리더가 말이죠.]
[뭘 말씀하는 겁니까? 존 해설위원님?]
[자신이 3일 쉬고 던져도 괜찮다는 것을요.]
[....]
[바로 그것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겁니다. 저 작은 루키가 말이죠. 자신을 걱정하는.....]
[....걱정하는?]
[모든 팬들께 말이죠. 메이저리그의 모두는 그를 사랑하니까요.]
1.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저희가 경기 시작 전에 시청자분들과 간단히 이야기를 할 때도 가장 걱정했던 것은 혹여나 3일만에 등판한 리가 평소와 달리 부진하면 어떻게 될까. 였습니다. 그 때문에 실점이라도 하게 되면 정말 큰일 이었으니까요.]
[그렇죠. 만일 그런 일이 일제로 일어나게 된다면 역사를 제 손으로 멈추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비난을 받았을테니까요.]
[맞습니다. 어쩌면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들어냈음에도 역사를 제 손으로 멈췄다는 꼬리표가 따라 붙을 수도 있었죠. 하지만 리는 달랐습니다.]
[어떤 식으로요?]
[많은 전문가들이 경기 전에 그랬듯이 오늘 3일 휴식하고 등판한 리가 실점을 피하기 위해 본인이 가진 다섯 가지 구종과 매덕스보다 뛰어난 제구력을 바탕으로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 것으로 예상했었죠.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으음... 그렇지 않네요. 오히려..... 강력한 피칭으로 상대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랬다.
모두가 했던 걱정이 전부 기우라는 것을 몸소 증명해 주는 것처럼, 압도적인 포심 패스트볼과 컷 패스트볼의 구위를 내세워 상대를 잡아먹고 있었다.
누가 이 모습을 보고 그가 3일 쉬고 등판한 선발 투수라고 생각할 것인가.
그것도 시즌 27번째 경기에 선발 등판한 투수라고.
[리도 분명히 알고 있을 겁니다.]
분명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을 두고 많은 팬이 어떠한 걱정을 했는지를요.]
그래서 더더욱 이런 피칭을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떤 사탕발린 말보다도 이런 압도적인 모습을 한번이라도 보여주는게. 자신을 걱정하는 팬들을 빠르게 설득할 수 있는 길이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뻐엉!!
"스트라이크 아웃!!!"
[그는 아마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겁니다. 자신이 팬들을 사랑하는 만큼, 팬들도 자신을 믿어달라구요. 그리고 바로.....]
-부웅!!
"스윙 스트라잌, 아웃!!!!"
[이 경기를 통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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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료 쿠폰, 후원쿠폰 주시는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어째선지 조아라는 원고료 쿠폰 주신분들 내역이 안뜨고 후원 쿠폰 주신 분들만 내역에 나오네요.
가장 최근에 주신 풍우 001님 후원쿠폰 감사드립니다.
오늘부터 주신분들은 작게나마 써드리겠습니다.ㅠ.ㅠ
원고료 쿠폰 주시는 분들도 정말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보러와주신 모든 분들 감사인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