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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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 트레이드 때를 제외하고 면담을 신청했던 적이 없었는데, 모처럼 내가 먼저 면담을 요청했기 때문일까.
조 지라디 감독님은 나의 요청을 단번에 받아들이셨다.
뉴욕 양키스의 에이스이자 팀 프런트에서도 애지중지 키워가며 밀어주고 있는 나와의 면담.
감독으로써 나와 같은 선수와 한 팀이 될 수 있어 늘 고맙다고 인터뷰를 하시는 감독님답게 나를 보자마자 환한 웃음으로 자리를 안내해주셨다.
물론 자리에 앉은 내 표정을 보기 전까지만 말이다.
"으음? 리, 자네 표정이 왜 그런가. 혹시....."
조 지라디 감독님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으셨다.
"부상이라도 입은겐가? 설마.... 아니지?"
불안함이 그윽해보이는 감독님의 눈빛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부상은 아닙니다."
"휴우. 다행이구먼. 자네가 이상황에서 부상이라도 입으면 큰일이니 말일세. 그렇다면 다른 문제라도 있는겐가?"
".....큰일은 아니지만... 혹시 제 등판 일정을 조금만 조정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으음.... 진짜 무슨 문제라도 있는건가?"
조 지라디 감독님은 부상이 아니라는 말에 안심했던 표정을 지으셨다가 등판 일정을 조정해달라는 내 말에 다시금 심각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동안 충분히 관리도 해줬으니... 검사 결과에서도 체력적인 문제가 없다는 것도 들었는데말이지... 혹시 개인적인 사정 때문인가?"
이래뵈도 19살이였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루키라고 불리지만 엄연히 성년의 나이.
부상은 아니라 다행이라지만 팀 사정상 나의 이탈은 절망적이었다.
이제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 위해서 매경기 승리가 무척 소중할 때였다.
와일드 카드의 경쟁도 치열한 상황에서 1, 2주만 더 지나면 매 경기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것처럼 전력을 모두 투입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것 역시 그때까지 희망이 남아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는데,
확실한 1승을 가져올 수 있는 내가 빠진다면, 그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조 지라디 감독님의 표정은 그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진 것처럼 불안한 표정을 하고 계셨다.
"혹시나 어제 집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가?"
많은 메이저리그 선수가 스스로 몸관리를 철저하게 하지만, 의외로 개인적인 사건이 일어나 경기에서 빠지는 경우가 제법 많이 있었다.
조 지라디 감독의 경험상 기분 전환으로 산책이나 드라이브라도 하다 사건에 휘말리는 일은 이제 흔하다 느껴질 느껴질 정도였고, 가끔 고소에 법정을 드나드는 선수들도 자주 있었다.
심지어는 여성 팬에게 사인을 하다가 성추행으로 고소를 당했던 선수도 나온 적이 있었으니,
팀이 안 되려고 하면 하늘도 무심하게 모든일이 안되듯이.
시즌 초반 브렛 가드너가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안좋은 일들은 언제든 일어나곤 했다.
작년에도 다나카 마사히로부터 시작해서 많은 주전 선수들이 비슷한 일을 겪어, 선수들의 부상이나 개인적인 일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조 지라디 감독님이라 그럴까?
점잖은 성격으로 유명하신 감독님마저 책상에 침까지 튀어가며 서둘러 대답을 재촉하셨다.
"리, 혹시 무슨 일에 휘말리기라도 한건가? 아니면 큰 부상은 아니고 작은? 단순히 컨디션 문제일수도 있지... 어쩐일인가?"
만약 조그마한 부상이라도 당했다면 다른 선수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일이라는 듯 서서히 흥분하면서 묻는 조 지라디 감독님.
그런일들이 벌어진다면 포스트시즌으로 가는 길이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했고, 당장 관리 소홀이라는 명목으로 언론과 팬들에게서 수많은 질타를 받을 게 분명했다.
물론 그러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런 일들은 아니에요. 제가 오늘 면담 신청을 한 이유는.... 제가 마운드에 오를 수 있는 시간을 늘려달라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런 일들이 아니라 다행이네만.... 으음. 마운드에 오를 수 있는 시간이라... 그게 무슨 뜻인지는....."
"다른 선수들처럼 하루 휴식일이 생겼을 때 하루 앞당겨서 선발 등판을 해도 좋고, 상황에 따라 4일 또는 3일 등판도 하고 싶습니다."
"으음..."
"아시다시피 양키스의 타격은 서서히 물이 올라왔으니까요. 대신 투구 수 제한하셔도 됩니다. 예를들어 4일엔 90구 제한을 해주시고, 3일은 80구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점수만 난다면 곧바로 내려와도 되니까요."
"...표정을 보니 그냥 하는 말은 아니구만."
내 표정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조 지라디 감독님의 말씀처럼 많은 생각을 하고 결정한 일이었다.
신이 준 능력 때문에 부상이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나이가 어려 많은 경기에 나서게 되면 언론이나 팬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게 뻔했다.
그래서 팀에 부정적인 영향이 끼칠까, 주위의 시선을 속이기 위해서라도 그간 팀에서 해주는 관리를 열심히 받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팀에서 여유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법.
팀의 포스트 시즌 진출 여부를 앞두고도 언론의 비판이 무서워서 중요한 경기들을 앞두고도 팀의 관리하에 5일 휴식하며 6일째에 등판을 한다는 것은 좋지 않다는 판단이 섰다.
이번 일을 감독님께서 받아주신다면 언론이나 팬들에게서 혹사라는 말이 나올것이 뻔했지만 그것이 내 커리어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것으로인해 구단이 욕 좀 먹겠지만,
어차피 그것도 좋은 성적을 낸다면 사라질 말들이었으니까.
"이미 마음은 굳혔습니다."
나는 양보할 수 없다는 듯이 조 지라디 감독님을 바라봤다.
"팀이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하는 것을 절대 지켜보고 싶지 않습니다. 남들이 희생해가며 저를 이렇게 도와줬는데, 저또한 희생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것은 제 꿈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그걸 위해서라도 절 더 사용해주십쇼."
내가 이 생각을 떠올린 때는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원정 경기가 끝난 직후. 그 뒤, 며칠의 시간을 가지며 팀 분위기를 살핀 후, 최종적으로 마음을 굳혔다.
그동안 나는 또 한번 선발로 마운드에 올라 시즌 22승 달성에 성공했다.
하지만 뉴욕 양키스의 소득은 그리 좋았다고 볼 수 없었으니.
스탠튼이 지명 타자로 합류하기 전인, 이전보다야 훨씬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8월이 10일정도 남은 현재, 시즌 162경기 중 75퍼센트에 해당하는 121경기를 치른 뉴욕 양키스의 성적은 68승 53패(승률 0.562) 였다.
최근 치룬 15경기에서 9승 6패를 달리고 있었고 와일드 카드 경쟁에서 3위를 달리고 있는 미네소타 트윈스는 여전히 2게임 차로 2위인 양키스를 쫓아오고 있었고.
남은 경기는 41경기.
다수의 전문가가 와일드 카드 결정전에 진출할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는 시즌 93승에는 25승정도가 부족한 상태였다.
시즌 93승은 뉴욕 양키스가 남은 41경기에서 25승 16패로 6할 1푼의 승률을 기록해야만 얻어낼 수 있는 수치.
하지만 뉴욕 양키스의 현재 승률인 0.562로 계산하면 23승 정도를 추가 하는 데 그치게 될 것이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잘나가고 있는 지금보다 더 반등할 수 있는 무언가가 더 필요했다.
자유로운 트레이드 시한이 끝났으니 트레이드와 같은 외부적인 요인에 더이상 기대할 거리도 없는 상황.
심지어 부상자 명단에 있는 선수들 중에서도 팀 전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려 줄 선수도 딱히 없었다.
로스터 확장이라는 카드가 있었지만 이것은 와일드 카드에서 경쟁하고 있는 미네소타 트윈스에서도 양키스와 마찬가지로 주어진 보너스 카드이니 여기에 큰 기대를 거는건 무모했다.
심지어 신인 선수들이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되려 경기를 망칠 수 있으니, 확실한 카드도 아니었다.
지안카를로 스탠튼을 영입함으로써 반등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조금씩 반등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그와 반대로 그간 6선발 체제에서 많은 등판을 했던 불펜진들이 지친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리 화려한 승리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6선발 체제인 선발진과 다르게 4월부터 많은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보니 패전조와 섞어 따로 관리를 받는다고 해도 시즌 막판이 되어 지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고연봉을 받는 만큼 승리조 불펜진들이 여전히 자신들의 로케이션을 지켜가며 잘 소화해주고 있었지만, 지친 모습을 드러내 실점을 하는 횟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불안한 것이 사실이었다.
'다른 선발 투수들로는 안 돼. 지금 상황에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무리한다면 팀이 더 악화될거야.'
다나카 마사히로는 후반기부터 점차 나아진 투구를 보이더니 이젠 완전 살아났으며 cc사바시아도 이름값만큼은 해주지 못하고 있지만 나이에 비하면 준수한 활약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루이스 세베리노는 말할것도 없는 좋은 활약을 하고 있었고, 마이크 피네다, 몽고메리도 여전했다.
하지만 활약만 보면 그렇지, 자세히 분석해본다면 불펜진들이 혹사되고 있는것은 이미 몇몇 언론들이 눈치 채고 기사화 시키고 있었다.
당장 몽고메리, 루이스 세베리노, 마이크 피네다의 평균 이닝이 6이닝정도 였고, cc 사바시아는 그보다 낮은 5.7이닝이었으니까.
선발 투수들은 6선발 체제에서 체력을 아끼는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이닝 소화 능력이 떨어지다보니 불펜진의 혹사는 당연지사였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해야되는데...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내가 더 많이 던져서 부담을 줄여주면 돼.'
일반 사람들과 다르게 자신은 부상도 없다.
심지어 적은 투구 수로 이닝 소화력도 뛰어났다.
정답을 두고 모른채 하는 것은 바보였다. 그리고 나는 바보가 아닌만큼 아껴온 힘을 풀 때가 지금이라는 것에 확신이 찬 순간 머뭇거릴 필요는 없었다.
이전보다 한층 더 확신이 찬 눈으로 조 지라디 감독님께 말을 전했다.
"저를 지금보다 더 많이 등판시켜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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