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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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그런걸로 사과는요. 우선 핀 스트라이프를 입게 된 걸 축하해요. 양키스에 온 것도 환영하구요. 무엇보다 우린 지금 스탠튼 씨의 힘이 많이 필요하니, 부디 좋은 모습을 보여주시길 기대할게요."
"리가 절 추천해줬다죠? 리가 부끄럽지 않게 반드시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내 말에 입술을 굳게 다물고 명심하겠다는 표정으로 답하는 지안카를로 스탠튼.
스탠튼은 다른 선수들에게도 이미지에 맞지않게 모두 예의를 갖춰 대했지만, 내 앞에서는 그 정도기 더욱 심한 듯 보였다.
이를 보고 있는 내가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분명 전생에서는 벤치 클리어링도 불사르고 앞장서던 호랑이 같은 면모가 그의 특징이었는데......
살짝 어색해진 분위기를 모면하려고 조금 전에 애런 저지가 보여준 행동을 얼른 따라했다.
"스탠튼... 스탠튼이라고 불러도 되겠죠? 저는 리라고 부르면 돼요. 성호도 괜찮지만 대개로 발음이 뭉개져서... 으음. 그리고 저지 말대로 오늘부터 바로 친해지자구요."
".... 진짜 친해져도 되겠습니까?"
왠지 벅찬 감동이 한층 짙어진 그의 얼굴을 보니 순간 거절할 뻔 봤지만 전생의 경험 덕분인지 달싹거리는 입을 겨우 버텨냈다.
"당연하죠. 게다가.... 저 때문에 외야수 자리는 포기했다면서요?"
오늘 애런 저지에게서 알게된 사실이었는데 놀랍게도 지안카를로 스탠튼은 자신의 부상이 자주 일어나는 것을 겸허히 인정하고 감독이나 단장님이 추천했던 지명 타자 자리를 맡기로 했다.
아무래도 지명 타자는 포지션을 가진 선수들보다 연봉 디스카운트가 들어가 연봉 협상에서 조금 더 적게 받을 수 밖에 없을텐데... 제3자 입장에서 지켜볼 땐 수비 커리어까지 포기해가며 그것에 응한 그의 의지는 여러모로 대단했다.
'하긴, 전생에서도 2020년대에도 골골댔으니, 자신도 그걸 모르진 않았겠지. 다만 계기가 없어서 포기를 못했던 것이고."
전생에서 팬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선 건강한 스탠튼이라면 역대 홈런 기록을 갈아치울 수 있을 것이라고 늘 말을 해왔는데 어쩌면 이번 생에선 그걸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하, 솔직히 그 결정을 하는게 조금 힘들긴 했습니다만, 캐시먼 단장님이 당신과.. 아니
, 썽호, 아니.. 리와"
지안카를로 스탠튼은 나보다 아홉 살이나 많음에도 말을 놓는 것이 여전히 뭔가 어색해보였다.
"편하게 말씀 하세요."
그때문에 내가 평소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섰지만, 쉽사리 나아질 거 같지 않았다.
"어, 어... 네!아니, 응. 그럴게.. 요? 아니, 아무튼 천천히 그러겠다..요."
"...일단 말은 천천히 놓으셔도 됩니다."
"하하, 그럴게요.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아무튼 캐시먼 단장 님이 리가 그렇게 추천을 해줬다고 했는데 맞나요?"
"네, 뭐... 그렇긴 하죠."
실제로 건강한 스탠튼이 이번 시즌 59개의 홈런과 32개의 2루타를 만들어 내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만약 그가 부상 유발의 원인인 외야 자리를 포기하고 지명 타자만을 뛰게 된다면... 심지어 팀 사기 대폭 상승 버프까지 받게 된다면 그는 어떤 성적을 내게될까? 라는 생각으로 트레이드로 고민 중이었던 캐시먼 단장님께 다이렉트로 전화 해서 말을 했던 적이 얼마 전이었다.
"...솔직히 제 커리어도 있으니 무척이나 고민을 했는데, 리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하니 결정이 쉬워졌어요. 감사합니다. 안그래도 개인 트레이너들이 모두 외야는 포기 하지 않겠냐고 매년 추천했었거든요."
"그렇구나..."
좀 놀라운데.
스탠튼이 나를 보고 그런 결정을 했다는게 신기하기도 했다.
전생엔 굳건히 은퇴전까지 양키스의 외야진을 책임졌는데. 물론 부상을 그보다 더 당했지만.
부상당하고도 매년 30개의 홈런을 때려내는 스탠튼이었기에 기대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표정을 보니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뭐지?
계속 입을 달싹거리는게 비대한 덩치답지 않게 소심한 학우를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한 번 더 적극성을 발휘했다.
"애런 저지가 그러던데, 절 무척이나 만나고 싶어 했다던데, 그 말이 사실이에요?"
다시 한 번 먼저 스탠튼에게 다가가 묻자, 그는 입을 몇번 달싹이더니 입을 열었다.
"....예전에 애런 저지를 만났을 때 그렇게 말했던 건 사실이에요."
"왜요? 절 만나야 할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어요?"
지안카를로 스탠튼은 라커룸에 들어와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과는 다르게 이순간 많이 망설이는 듯 보였다.
조금씩 대화를 나누며 자신감이 차오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나의 눈치를 살피며 목까지 차올라온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나는 더욱 큰 궁금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점점 재촉하게 될 정도로.
"뭔지 말해봐요. 가능한 거면 내가 도와줄 테니까."
"정말? 정말 말해도 됩니까? 그리고 도와주실거에요?"
"당연하죠. 우린 이제 친해지기로 했잖아요."
"으음."
이제야 마음을 굳힌 표정.
지안카를로 스탠튼이 움츠리고 있던 몸을 쫙 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원래 193cm인 나보다 더 큰 200cm에 가까운 198cm를 가진 거구이다.
막상 마주해보니 생각보다 나랑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지만, 야구 선수 중에서도 키가 큰 편인 그는, 어디에 나가도 당당할 수 있는 체격이었다.
그런 그가 나에게 한 발짝 더 다가와 오른손도 아닌 왼손을 내밀었다.
우타자면서 왜 왼손을 내미는거지?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나는 얼떨결에 그 손을 붙잡으며 그에게 물었다.
"설마 악수가 하고 싶었다는 건 아니죠?ㅡ"
"....."
손을 잡아주자 그의 얼굴엔 한층 더 짙은 벅참이 느껴졌다.
마치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았다는 것처럼.
마치 드디어 잡았다는 것처럼.
... 표정보니 진짠 것 같은데?
설마 게인가?
합리적 의심이 든다.
야구 선수들 중 게이가 있다는건 알고 있는데....
그게 지안카를로 스탠튼이었다고?
설마....
순간 든 생각에, 전신에 오소소 소름이 돋기 시작하자 왼손을 빼내려는데 파워툴이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에게도 80점으로 평가받는 스탠튼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주손인 오른손이 아님에도 그 힘이 압도적이었으니,
왼손을 빼내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고조된 언성으로 따지듯 말해보려는데..
"저기요! 난 그런 취향이.. 아니..."
"등에 사인 좀 해주세요. 부탁합니다."
"으, 응?"
뭐? 사인?
그것도 등에?
.....그게 무슨 개소리야?
1.
악수 제의에 뜬금없는 소리를 내뱉는 지안카를로 스탠튼.
나는 이제 지안카를로 스탠튼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올지 도저히 예측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상대의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뜬금없이 등에 사인이라니..... 그건 좀... 차라리 다른 곳엔 어때요?"
그러자 지안카를로 스탠튼이 신나서 재촉하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진짜요? 그렇다면 우선 야구 공이랑 제 배트에도 부탁드립니다.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쓸 배트다보니 예비로 10개정도 우선 가능할까요? 그리고 리의 유니폼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얼마전에 구매한 엘 시리즈 H 에도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차에도 가능할까요? 사인 받으려고 하얀 스포츠카를 샀는데 정면에 잘 보이게ㅡ"
속사포로 말을 하며 내내 나를 바라보는 지안카를로 스탠튼.
그의 눈은 마치 불을 뿜을 듯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는 분명 나를 향한 강한 열망으로 보였다.
'설마... 이 새끼 진짜 게이 아니야?'
진짜 합리적 의심이 드는 상황에서 스탠튼은 여기까지 말한 이상 더는 감출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속에 있던 생각을 모두 남김없이 털어 놓았다.
"리! 아니, 썽호! 너는 이제까지 본 어떤 메이저리그 선수보다도 가장 뛰어난 선수야! 나는 너의 피칭을 보고 반했고, 열렬한 팬이 되었어. 부디 내가 너의 곁에서 널 자세히 지켜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지 않겠어? 나중에 자서전을 쓸건데 너를 주제로 카테고리를 만들거고, 박물관에 너가 사인해준 야구 용품도....."
...
지안카를로 스탠튼이 속사포처럼 속마음을 털어 놓을 때, 그순간 애런 저지가 내 어깨를 두들기며 귓가에 속삭였다.
"큭큭, 리. 잘해 봐. 둘이 잘 어울리는 것 같으니까."
... 뭘 잘해 봐. 미친 놈아.
"어때? 괜찮지? 그리고 다른 레전드들처럼 왼손을 본떠서 석상처럼 전시를, 아. 재료는 금으로 하는게 좋겠지? 그리고 매경기 던진 공도 양보해줄수 있을까? 경기가 끝나면 개인 인터뷰도 좀...."
내가 생각하기엔 이새끼.
"해주고, 그리고 팬클럽에 가입도 했거든. 팬미팅도 해줄수 있을까? 그리고 또 나중에... 식사자리도.. 큽"
진짜 미친새끼는 확실한 것 같다.
내가 추천한 선수들은 왜 이리 다 미친 놈일까?
아쿠냐 주니어도 그렇고, 스탠튼도 그렇고.
그리고. 왜.
".....리, 아무튼.... 부탁할게."
그리고 왜 할 말은 다 해놓고서 갑자기 쑥스러워하냐고. 날 보면서 말이야.
왜!!!!!
아무래도 아쿠냐 주니어 때와 마찬가지로 순간 깊은 후회가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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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과 선호작품 한번씩 부탁드립니다.
후원 쿠폰과 원고료 쿠폰 주시는 분들 글쓰는데에 너무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