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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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ㅇㅇ 맞음 ㅋㅋㅋㅋㅋㅋㅋ 오늘 왠지 투수 맞대결보다 타자 맞대결이 더 꿀잼이네 ㅋㅋㅋㅋ 리랑 그레인키 타격 대결 ㅋㅋㅋ
ㄴ 노잼인데? 투수가 잘쳐봐야 거기서 거기지.
-리 때문에 뉴비들 많이 유입되긴 됐구나. 그레인키가 타자들만큼은 아니어도 투수들 중에선 손에 꼽히게 잘친다. 실제로 실버 슬러거도 받았고.
ㄴ 나 리 팬인데 리는 잘 못쳐??
ㄴ 모르겠다. 첫 타석에서 잭 그레인키 상대하는 것 보면 재능은 있어보이던데? 9구나 얻어냈잖아.
ㄴ 근데 그건 잭 그레인키 그 괴짜 자식이 포심 패스트볼 고집해서 그런거 아님?
-어찌됐든 잭 그레인키가 잘막아냈지 ㅋㅋ 양키스 타선이랑 애리조나 타선이랑 비교가 되냐 ㅋㅋ 리 그자식은 팀빨도 심해. 개인적으로 이번에 잭 그레인키가 한방 후려쳐서 저 어린 놈의 새끼 무실점 기록이나 깨버렸으면 좋겠어.
ㄴ 어린 놈의 새끼? 너 꼰대냐? 스포츠에 나이가 왜 나와.
ㄴ 진짜 기록 깨지면 니놈 새낀 내가 도끼들고 찾아가 죽인다. 진심이다.
ㄴ 클리프 리한테도 한방 쳤으니까 성호 리한테도 한방 칠 때 됐다 ㅋㅋㅋㅋㅋㅋ.
ㄴ 요즘 리 까는 애들 많이 보이네 ㅋㅋ
-조심해라. 요즘 뱀심으로 리 까는 애들 많아지는 것 같은데... 팬클럽 수준이 스토커 수준이다. 나중에 신상털리고 후두려맞지 말고 조용히 혼자 까라.
1.
경기는 3회 말, 투 아웃 상황.
내 눈에는 오늘 애리조나 디백스의 9번 타자로 나선 잭 그레인키가 타석에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3회 초, 만났을 때와 똑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정면승부 하자는건가?'
나는 타자로 나섰을 때, 잭 그레인키가 정면 승부를 일부러 고집했던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아마, 그래서 인터뷰로 내 타격 실력을 거론해서 내 신경을 긁은거겠지.'
그리고 실제로 그는 초구 슬라이더를 던진 이후로 포심 패스트볼만을 던져 날 상대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대답을 이번 승부에서 돌려주어야 할 타이밍이었다.
물론 그를 따라 무조건 정면 승부를 위해 포심 패스트볼로 그를 상대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피할 이유가 없지.'
애초에 기록도 중요했지만 내 승부욕과 자존심도 중요했다.
그리고 기록과 승부욕, 자존심 모두를 챙길 상황을 그가 직접 만들어주었다.
더욱이 나는 포심 패스트볼만으로 그를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비록 잭 그레인키가 최대 91마일의 날카로운 포심 패스트볼을 던져 타자들을 쉽게 제압하지만, 나의 포심 패스트볼은 잭 그레인키의 포심 패스트볼과 급이 달랐다.
어쩌면 2009년부터 95마일을 던지는 매덕스라고 불리던 잭 그레인키보다 더 파괴력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올시즌 내가 던진 포심 패스트볼의 평균 구속이 99마일.
최고 구속은 104마일까지 밥먹듯이 찍어낸 적이 있었다.
막상 마운드에 서, 그와의 정면 승부에 대한 생각을 해보니 그에게 고마웠다.
'쓸데없이 생각 할 필요도 없고... 내가 오히려 고마워해야되잖아? 이번 기회에 그레인키를 흔들수도 있는거니까.'
모든 스포츠 선수들이 그렇겠지만 경쟁자에게 패배해 한 수 아래라는 사실을 깨닫게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실제로 전생에서 수없이 패배를 맛봤던 나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오직 그에게 승리할 생각만을 가지고 조금 흐트러진 마운드를 발로 몇차례 쓸고는 던질 준비를 마쳤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다른 생각은 배제하고 그와의 승부에선 최고의 포심 패스트볼을 던져 그레인키를 잡아내기로 마음 먹었다.
다리를 치켜들고, 스트라이크 존 가운데만을 보고 힘껏 공을 던진순간 알수 있었다.
-뻐엉!!!
이만한 공은 오늘 경기에서 다시 던지기도 힘들 것 같다고.
"스트라이크!!!"
"와아아아아!!!!"
들려오는 환호성.
평소에도 양키 스타디움에서 104마일을 던지고나면 이런 환호성이 들리기도 했으니 그려러니 한 찰나,
그것이 몇십초나 지속되자 의문을 가지고 관중석을 돌아보다가, 관중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려있었다. 그리고 타석에선 잭 그레인키의 시선마저 전광판을 향하는 것을 보고, 나도 함께 고개를 돌려 전광판을 바라봤다.
"어...?"
그곳엔 숫자가 적혀있었다.
그것도,
믿을 수 없는 숫자가.
[105마일.]
2.
-뻐엉!!
"스트라이크 아웃!!!"
3구 삼진.
포심 패스트볼을 연달아 내던져 3회 말, 마지막 타자인 잭 그레인키를 삼구 삼진으로 잡아내고 이닝을 마쳤다.
그리고 나는 잭 그레인키가 그랬던 것 처럼 잭 그레인키를 바라보지도 않고, 덕아웃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면서도 내 머릿속엔 의문이 가득 차있었다.
"리, 어떻게 된 일이야? 갑자기 105마일이라니!!!"
"그러게.."
나도 이유 좀 알고 싶은데.
시스템 창을 띄워보고 싶었으나 걸어가는 도중이다보니 띄울수가 없었다.
걸어가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곤란하기도 하고, 애초에 경기중에 시스템 창을 안보는게 내 또 하나의 징크스가 되어버리기도 했다.
"그래? 하긴 뭐, 너가 갑자기 이러는 게 한두번도 아니고. 그래도 이걸로 하난 확실해졌네."
개리 산체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105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에 놀라기도 잠시, 그것을 전혀 신경 쓰는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대감과 설렘이 가득하다는 표정.
"잭 그레인키가 아무리 포심 패스트볼을 잘 던져도, 홈 팬들한테 환호성조차 못받았잖아. 분명 2억 달러를 주고 사온 에이스인데 말이야. 그런데도 리, 너한테 그렇게 오랜 환호성을 보냈다는건...... 승자가 이미 결정된거나 마찬가지아니겠어?"
1.
이후 경기는 양키스와 애리조나의 에이스 맞대결인만큼 치열하게 흘러갔다.
단지 선발 투수 두 사람만이 활약한 것이 아니었다.
양키스와 애리조나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또다른 선수들.
각팀의 타자들은 자기 팀의 에이스가 경기에서 이길 수 있도록, 어떻게 해서든 상대 투수를 공략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출루에 성공하는 선수도 하나둘씩 늘어났고, 6회 말까지 마친 결과.
나의 기록은 6이닝 2피안타 0볼넷 9탈삼진 무실점.
잭 그레인키의 기록은 6이닝 4피안타 2볼넷 9탈삼진 무실점.
애리조나 디백스의 홈구장 체이스필드는 냉탕과 온탕이 오가며, 오늘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오늘 잭 그레인키 2009시즌 보는 것 같네. 아무리 최고 구속 갱신한 리라고 해도 쉽지 않을 듯.
ㄴ 2009시즌보단 2015시즌 아님? 2015시즌에 더 잘했잖아.
ㄴ 그레인키에겐 2009시즌이 더 특별할걸. 정신병 극복하고 새로 태어난 해라. 그리고 잭 그레인키 폼보면 2009년 4월 폼이다 ㅋㅋㅋ 진짜 장난아니네 포스.
ㄴ ㅎㄷㄷ. 나 기억함. 그때 0.5점대 평균자책점이었잖아. 진짜 극강이었는데. 전시즌이랑 합쳐서 38이닝 무실점 기록도 세우고.
-이새끼들 뭐라는거냐 ㅋㅋ 리가 만만해보이냐? 지금 6이닝 무실점까지 합해서 85이닝 무실점이고 이번 시즌 평균 자책점이 0.1 이하인건 앎??ㅋㅋㅋㅋㅋㅋ 2009년 4월 ㅇㅈㄹ ㅋㅋㅋㅋㅋ 부랄 탁 치고 간다~!
2.
7회 초 뉴욕 양키스의 공격.
애리조나 디백스의 마운드는 여전히 잭 그레인키가 지키고 있었다.
그의 투구 수는 벌써 90구가 넘었지만, 잭 그레인키가 1회 초에 32구를 던졌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9회까지 던질 수있는 페이스였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2회 초부터 6회 초까지 던졌던 투구만큼이나 효율적인 투구 수 관리가 중요했는데.
-따악!!
"세입!!!"
-따악!!!
"세입!!!"
-뻐엉!!
"스트라잌, 아웃!!!!"
-따악!!
"아웃!!!!"
안타 두 개를 내어줬지만, 이후 타자들에게 삼진 한 개와 외야 플라이 아웃을 잡아냈다.
상황은 순식간에 투 아웃 주자 1루와 3루.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서 다섯 번째로 타석에 들어서야 할 선수는 바로, 나였다.
"리, 꼭 나가야겠는가?."
"대타요? 으음...."
조 지라디 감독은 애매한 눈길로 날 바라보셨다.
마음같아선 내려버리고 싶은 눈치인데 오늘 경기가 관심이 큰 경기다보니 내 의견을 반영해줄 심산으로 보였다.
더군다나 원래 특별한 기록이 아니라면 투구수 100개나 혹은 7이닝을 제한 하기로 했었으니, 명분도 충분했다.
연속 무실점 이닝이야 오늘이 아니라고 해도 충분히 기회가 있을터고.
하지만 오랜만에 뛰는 심장을, 나는 이대로 멈추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경기 끝까지 마운드에 서고 싶네요."
그말과 함께 조 지라디 감독님은 고개를 끄덕이셨고 배트를 챙겨 타석을 향해 걸어가려는 나의 어깨를 잔잔히 두들겨주셨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서자 거의 육만명에 육박하는 관중들의 시선이 내게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묵직한 중압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그라운드를 바라보니 여전히 날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있는 그와 1루와 3루를 밟고 있는 동료들이 보였다.
'번트는 안되고, 무조건 안타.'
자신을 거를 일도 없으니 이만큼 좋은 기회가 없었다.
짧은 단타만 만들어내도 점수가 날 수 있는 상황.
앞선 타석에선 외야 플라이로 아웃되었지만 아쉽지않았다.
'갈수록 배트에 잘 맞고 있으니까.'
잭 그레인키는 여전히 나와의 승부에서 포심 패스트볼을 고집했고 두번째 타석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포심 패스트볼만을 던졌다.
아마 그 모습은 마운드에 선 그의 미소를 보니 이번 타석에서도 마찬가지일듯 보였다.
'이번엔 반드시 칠 수 있다.'
승부를 거듭할수록 늘어만 가는 자신감.
상대에 대한 생소함은 타자보다는 투수에게 이득을 주지만, 그것이 반복될수록 투수가 아닌 타자에게 이득이 된다.
그걸 잘 아는 나는 초구부터 제대로 돌려보겠다고 배트를 꽉 움켜쥐었다.
'이번에도 역시 포심 패스트볼이겠지.'
잭 그레인키가 왼발을 들었다.
완전히 쭉 뻗어 몸통 뒤로 보이던 그의 왼팔이 비스듬하게 세워져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몸이 1루쪽으로 좀 쏠리는 와일드한 투구폼인 만큼 키킹이 다른 투수들보다 커 헷갈려했던것도 잠시, 이제 나에게도 완전히 적응된 투구 폼이었다.
그의 손끝에서 숨겨져있던 공이 스트라이크존으로 뿌려질때.
익숙해진 리듬감에 맞춰, 똑같은 속도로 허리를 돌릴 수 있었다.
그가 던진 공은 역시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그렇게 맞닿은 배트와 공.
그것은 둘이 완벽한 타이밍에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따악!!!!
배트를 쥔 나의 손에는 아무런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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