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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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세일처럼 완벽하게 압도적인 투구를 하고 있는것은 아니었지만, 나 역시 이전 3이닝을 아주 깔끔하게 막아냈다.
삼진 7개와 내야 땅볼 2개로.
동시에 58이닝 연속 이닝 무실점을 달성하며 돈 드라이스데일이 1968년에 세웠던 기록에 이어 연속이닝 무실점 기록 역대 2위를 달성했다.
덕분에 오늘 경기에서 기록이란 기록은 전부 나올 것 같았다.
크리스 세일은 내가 세웠던 열두 타자 연속 삼진의 기록에 도전할 수 있고, 나는 59이닝 연속 무실점에 도전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덕에 양팀 수비수들은 정말이지 할 일이 전혀 없을 정도였다.
이제까지 외야로 날아간 타구가 양 팀 통틀어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어찌 보면 전형적인 투수전이었지만 압도적인 투수전에 52000여명이 꽉 채운 양키 스타디움은 어느새 집중해서 경기에 빠져들었다.
'우선 경기에 집중하자.'
역대 기록과 동일한 기록을 세울 수 있는 이닝이었다.
이외의 것들은 차근차근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4회 초,마운드에 오르자 개리 산체스가 건네준 야구 공을 받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타석에 들어서는 상대의 1번 타자 였다.
'무키 베츠'
지난 시즌 31개의 홈런을 쳐낸 보스턴 레드삭스 대표 거포.
본래라면 3번이나 4번 중심롤을 맡았을 무키 베츠가 1회 초에 이어 다시금 1번 타자로 타석에 들어서 배트를 까딱거리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거 참, 티를 내도 저렇게 티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나를 마치 잡아 먹일 듯 쳐보다는 무키 베츠.
보스턴 레드삭스의 드래프트로 입단해 메이저리그까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데뷔한 그, 다웠다.
사실 저정도의 눈빛은 회귀 전, 메이저리그에서 뿐만 아니라 회귀 후에도 무수히 많이 받아 보았다.
당장 지난 경기에서 퍼펙트게임에 가까워지면서, 볼티모어 오리올스 타자들이 자신을 얼마나 살벌하게 쳐다보았던가.
볼티모어의 7살 짜리 원정팬도 경기장에서 자신을 죽일 듯이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때 자신은 기분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회귀 전에서야 많은 부담감과 실패로 그들의 눈빛이 기록을 앞둔 상태에서 두려웠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런 부담감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개리 산체스가 4회 초, 마운드에 올라오기 전 무키 베츠에 대한 정보를 읊어주었던 것을 다시금 떠올렸다.
'공격에선 3할과 30홈런, 20도루를 동시에 기록할 수 있는 토탈 패키지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타자라고 했지?'
수비도 단순한 골드글러브 수준이 아닌 제이슨 헤이워드 같이 수비로 WAR를 쓸어담을 정도로 MLB 정상급이다보니 최고 수준의 5툴 플레이어로 부를 수 있는 선수라고 평가 받고 있었다.
'약점을 찾아야된다.'
첫 타석에야 구위와 스피드로 눌렀다지만 4회 초, 40개를 넘긴 투구 수가 자랑하듯 상대팀의 타자들은 내 공을 많이 지켜봤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 이닝을 넘긴다면 역대 기록에 이르르는 만큼 평소보다 더욱 집중해서 준비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생각하자. 생각해. 무키 베츠의 약점이 뭐였더라? 아!'
드디어 생각났다.
무키 베츠의 약점이 말이다.
2.
무키 베츠는 삼진이 적은 타자였다.
타석에서 서면 디서플린과 배트 컨트롤이 뛰어난 것은 이미 유명한 그의 장점이었고 bat-to-ball 스킬은 리그내 최고 중 한 명이고 베츠만큼 피치 인식 능력이 뛰어난 타자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모든 투수들이 무키 베츠를 공략하는데 애를 먹기도 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의 약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바보, 기록에 미쳐서 기본적인것도 잊어먹고 있었네.'
무키 베츠가 제대로 된 타구를 만들어내지 못할 때는 오로지 타이밍이 맞지 않았을 때다.
지난 이닝에서 상대했던 라미레즈와 달리 무키 베츠 뛰어난 배트 컨트롤과 컨택율을 가지고 있었지만 유독 바깥쪽 공을 쳐내는데 어려움을 토로했다.
'실제로 오른쪽에 당겨친 공에 타율이 낮기도 했으니까.'
생각해보니 1회 초에서 그를 상대할 때도 바깥쪽 포심 패스트볼로 공략을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답은 단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약점이 기억났다고 해서 그를 무조건 공략할 수 있는건 아니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는 작년 30개의 홈런을 때려낸 거포이기도 하면서 높은 성공률로 20개의 도루를 해낸 스타터 기질의 타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홈런이 아니라고 해도 루상에 내보낸다면 상당히 위험한 타자, 그것이 바로 무키 베츠였다.
'일단...'
초구는 바깥쪽 체인지업.
일부러 볼이 되게 던졌다.
혹시나 그에게서 헛스윙이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뻐엉!!!
"볼!!"
역시나 컨택율이 리그 탑을 다투는 무키 베츠는 미동도 하지 않고 공을 골라냈다.
나는 신경도 쓰지 않고, 개리 산체스에게 사인을 보내고 두번째 공으로는 빠른 포심 패스트볼을 몸쪽에 붙였다.
-따악!!!
"파울!!!"
공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몸쪽으로 붙었다.
그래서인지 베츠가 들고 있던 배트에 배트 중심이 아닌 손잡이 부근에 맞았는데, 타구는 곧장 그라운드 밖으로 벗어났고, 배트는 금이 가 부러져버렸다.
A급에 가까워진 포심 패스트볼의 위력.
그것을 배트의 손잡이 부근은 이겨낼 수 없었다.
카운트는 1-1.
무키 베츠가 새 배트를 가지고 타석에 들어서자, 나는 곧장 공을 던졌다.
-부웅!!!
"스윙, 스트라이크!!!"
내가 던진 공은 바깥쪽 높은 코스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커브.
바깥쪽이 약한 무키 베츠의 스윙은 잘채인 파워 커브에 완벽히 속아넘어간듯 보였다.
그가 스윙을 끝내고 자세마저 무너지고 나서야, 공이 개리 산체스 미트에 도착했을 정도였으니.
무키 베츠는 곧장 고개를 돌려 나를 노려보았다.
처음과 다른 눈빛.
처음엔 그저 잡아먹일 듯이 쳐다봤다면 지금은 어떻게든 쳐내고 싶다는 간절한 눈빛이었다.
'바깥쪽 체인지업으로 하나 뺐고, 몸쪽 포심 패스트볼이랑 바깥쪽 하단 파워 커브로 속였으니까...'
안그래도 투 스트라이크에 몰린 타자는 초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전에야 자기가 타석을 주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투수의 공에 맞춰 휘둘러야한다.
공을 바라보고 잘못하다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는다면 그대로 아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상대는 컨택율이 페드로리아에 이어 손에 꼽는 무키 베츠였다.
바깥쪽이 약하다고 해도 오늘 주심의 성향이 바깥쪽에 짜디 짠 판정을 하고 있다보니
승부구로 무슨 구종을 꺼내건 바깥쪽은 피해야만 했다.
혹시라도 볼의 갯수가 늘어난다면 불리해지는건 투수였으니까 말이다.
5가지의 구종.
그중 무엇을 골라야하지 고민할 때, 개리 산체스가 사인을 보내왔다.
'그거..? 흐음.. 그 구종이 역시 제일 나은건가? 오케이.'
개리 산체스의 사인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 와인드업을 하고 공을 뿌렸다.
-부웅!!!
"스윙, 스트라잌, 아웃!!!!"
개리 산체스가 보내왔던 사인은 간단했다.
98마일의 컷 패스트볼.
A급에 오르고 기존의 상식 틀을 깬 움직임을 보이는 만큼 다른 투수에게서 볼 수 없는 구종이다보니 타자들이 이를 악물고 치려 노력을 해보지만, 승부구로 이만큼 완벽한 구종은 없었다.
기존의 컷 패스트볼보다 완벽해진 컷 패스트볼이었으니까.
2.
[존 해설위원님. 4회 초, 리가 1번 타자로 나섰던 무키 베츠를 완벽한 삼진으로 잡아냄으로써 58.1이닝으로 무실점 연속이닝 기록을 단독 2위에 올라섰는데.... 리의 기록 작성 확률이 이제 높다고 봐도 될까요?]
[앞으로 타순만 본다면.... 공갈포 기질을 가진 영과 뛰어난 타자인 보가츠 선수가 남은 만큼 장타력은 확실히 있는 선수들이거든요? 기록을 세울 가능성이 높겠지만 의외의 한 방 만큼은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미 리는 1회 초에 1번부터 3번까지, 보스턴 레드삭스의 타선을 이겨냈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방금 꺼냈던 포심 패스트볼과 컷 패스트볼을 승부구로 던져 이겨냈죠. 그래서 어쩌면 이번 이닝이 더 위험할 수도 있는거 아니겠습니까? 리의 투구수가 50개를 바라보고 있는만큼 보스턴 레드삭스의 타자들도 눈에 익을 때로 익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리에게 조언을 하나 해준다면..]
[해준다면요?]
[기존의 상식틀을 깨고 어느날 갑자기 튀어나온 그 완벽한 컷 패스트볼. 그 컷 패스트볼을 이번 이닝에서만큼은 적극적으로 던지라고 하겠습니다. 보통 리의 투구를 보면 2스트라이크 이후에나 컷 패스트볼을 던져왔거든요.]
[네,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컷 패스트볼이 포심 패스트볼과 연계해 삼진을 잡아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컷 패스트볼은 애초에 땅볼 유도에도 좋은 구종이거든요? 그만큼 파울도 많이 유도할수 있는데.... 리는 지금까지 너무 컷 패스트볼을 승부구로 사용하고 있어요. 최고의 공은 승부를 할 때만 던지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상황에서 던지는 것도 좋거든요.]
[그렇습니까? 아, 마침... 4회 초, 보스턴 레드삭스의 2번타자인 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과연 그가 존 해설 위원의 조언을 들었을지... 그리고 곧바로 와인드업을 가져가는 리!!! 과연 그의 초구는?]
-따악!!!!
"아웃!!!"
영을 초구 체인지업으로 땅볼을 잡아냈다.
패스트볼 계열에 강하며 변화구에 약한 전형적인 공갈포인 그를 손쉽게 잡아내고
무실점 이닝을 58.2이닝까지 늘렸다.
4회 초, 첫 타석에서 무키 베츠를 잡아냈을 때와 다르게 경기장은 고요했다.
이 공간에 오만여명의 인원이 있다는게 안믿겨질 정도였다.
영이 아웃되자 요란하게 연습 스윙을 하고 타석에 선 보가츠를 한차례 바라봤다.
폭스 스포츠에서 경기를 중계하던 두 사람.
그들의 말이 내 귀에 들렸을 리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야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의견이 일치할 수 있었다.
최고의 순간에는 최고의 공을 던지는 것.
그걸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성호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따악!!!!
"아웃!!!!"
59이닝 무실점. 98마일의 컷 패스트볼.
성호는 4회 초 투구를 간단히 마쳤다.
그리고 덕아웃으로 향하는 순간.
양키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양키스 팬들과 빨간 티셔츠를 입은 보스턴 레드삭스의 팬들마저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내주었다.
동, 서, 남, 북.
어디서든 그의 이름을 들을 수 있게.
"리! 리! 리!"
"리! 리! 리!"
"리! 리! 리!"
"리! 리! 리!"
모두가 자리에 일어나 그의 기록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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