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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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타자들이 모여 성호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고 있을 때, 크리스 세일은 평소와는 다르게 경기 시작 전임에도 전혀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오늘 상대하게 될 뉴욕 양키스 타자들에 대한 정보가 아닌, 상대 선발 투수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꽉 채우고 비켜주질 않고있었기 때문이다.
크리스 세일은 처음 야구를 시작한 이후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상대 선발 투수를 이렇게까지 깊게 의식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6월에 있었던 디트로이드의 저스틴 벌렌더와의 경기에서도 이렇게까지 신경썼던 적은 없었다.
'퍼펙트게임에.... 92.1이닝 1실점 55이닝 연속 무실점....거기다 127탈삼진이라니...'
오늘 양키 스타디움에서 맞대결을 펼칠 성호가 만들어낸 결과.
눈만 감아도 이 기록이 떠올랐다.
이 경기를 앞두고 꿈속에서도 몇 번이나 성호에게 완벽하게 패하고 그 경기를 몇번이나 반복해서 꿨는지 숫자를 셀 수도 없었다.
그리고 눈을 뜨면 온갖 포털 사이트에서 자신을 괴롭혔다.
라이벌.
이 단어와 함께 말이다.
어느 한 기사가 생각난 크리스 세일은 빠득 이를 갈았다.
'그 루키랑 내가 라이벌이라고? 감히? 그 19살 짜리가?'
비록 2017시즌에서 선발 투수로써 기록은 많이 부족했지만 자신이 누구던가.
2010년에 메이저리그에 단 두 달만에 콜업이 돼 메이저리그를 누볐던 투수.
아롤디스 채프먼과 랜디 존슨의 후계자로 불렸던 투수.
당장 누적 기록만 말해도 입이 아플 정도였다.
작년 시즌 기록만 해도 226이닝을 던져 233탈삼진을 잡았으니까.
그런데 불과 3개월도 안뛴 놈이 자신의 라이벌이란다.
심지어 보스턴 주의 언론사에서도 라이벌전이라며 떠들어대기 시작했고 그것은 자신에게 큰 스트레스를 가져왔다.
그리고 6월 8일에 있었던 그의 퍼펙트게임.
그의 아름다운 피칭을 보고나서부터 크리스 세일은 지독한 갈증에 시달렸다.
크리스 세일은 본래 불펜 보직에 있었다 우연히 로빈 벤추라 감독이 새로 부임한 2012년부터 선발 투수로써 기회를 받고 배움을 통해 야구의 재미를 느꼈고 이전보다 훨씬 더 야구에 집중 할 수 있었다.
2013년엔 214이닝을 던져 3.07점의 평균 자책점을 달성하기도 했고, 메이저리그에서 매년 이와 비슷한 성적을 내며 다른 누구보다도 찬란한 길을 걸었다.
이전까지 불펜 보직에만 뛰었던 것과 달리 선발 투수로써 값어치를 인정 받으며, 보스턴 레드삭스의 제안을 받아 이적을 하고 이름을 내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17년.
시즌 초반부터 메이저리그를 폭격하고 있는 크리스 세일은 2점대 평균 자책점으로 전성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럼으로써 부상때문에 늘 놓쳤던 사이영상을 올해는 꼭 받으려 노력하였으나...
'씨발, 겨우 19살 짜리 애새끼한테 밀렸어.'
물론 자신의 성적도 정말 훌륭했다.
100이닝 가까이 던지며 2점대 평균 자책점을 기록 중인건 아메리칸 리그에서 자신 뿐이었으니까.
실제로 아메리칸리그 투수 부문에서 '이성호' 라는 이름을 지우면 모든 부문에서 크리스 세일의 이름이 가장 위에 있었다.
그때문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노력하면 사이영 상을 받을 수 있겠지 싶었는데.
'후우....'
도저히 저 괴물 신인에게 부진 할 낌새 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야구를 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나이처럼 갈수록 발전했고 타자들을 농락했다.
이젠 그가 1실점을 했다는게 신기할 정도였다.
자신의 상식선에선 매일 발전하는 그가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가 그동안 노력했던건 뭐였냐고!'
크리스 세일은 스스로가 고교시절부터 지금까지 누구보다 야구에만 집중했고,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해왔다고 믿었다.
한데 성호와의 기록을 비교한다면, 스스로 자신했던 모든 것들이 부정되는 것 같았다.
자신이 성호보다 나이도 9살이나 많았음에도 말이다.
지금 성호와 자신이 함께 사이 영 상 경쟁을 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봐도 그와 자신은 격차가 더 날 뿐, 경쟁 상대가 아니었다.
그의 퍼펙트 게임 이후로 이 사실을 깨달은 크리스 세일은 불면증까지 앓게 되었고 결국 팀 정신과 의사에게까지 상담을 거친 결과...
해결방법은 하나 뿐이었다.
'반드시 그를 이겨야한다.'
크리스 세일이 퀭한 눈으로 빠득 이를 갈며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겨주마. 내 트라우마를 위해서라도.'
상대가 최고의 모습을 보일 거라고 믿고, 그것보다 더 많은 준비를 해오는 것.
그게 오늘 크리스 세일이 밤까지 지세며 세워온 전략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오늘 선발 투수인 이성호가 마운드에 오름으로써 경기가 시작되었다.
1.
-뻐엉!!!
"스트라이크!!!!"
-부웅!!!!
"스윙, 스트라이크 투!!!"
-부웅!!!!!
"스윙, 스트라잌, 아웃!!!!"
삼구삼진, 헛스윙 아웃.
'오늘 뭘 생각하고 나왔는지 훤히 보이네.'
나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선두 타자를 상대해 보고, 오늘 이들의 전략을 빠르게 눈치챌 수 있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1번 타자인 베츠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배트를 휙휙 휘둘렀다.
초구를 지켜보나 싶었지만 그것마저 몸을 움찔거렸고 두번째와 세번째로 던졌던 포심 패스트볼에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누가봐도 한번만 걸려라 스윙이잖아.'
라이벌전에서의 55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
59이닝을 4이닝 앞두고 있는 만큼,
아무래도 그들에겐 그것이 큰 부담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래서 어제 다나카 마사히로와의 1차전 때와 달리 적극적인 스윙을 가져가는 것일테고.
심지어 104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에 얼추 스윙 타이밍도 맞는게 나름대로 많은 연습과 연구를 해둔 상태인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무키 베츠의 첫 타석 결과는 삼진 아웃.
그리고,
-부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부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준비한 것은 저들 뿐만이 아니었다.
2.
나는 무키 베츠로부터 시작한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1회 초 수비를 삼자범퇴로 깔끔히 끝내 버렸다.
세 개의 삼진 아웃으로.
심판의 좁은 스트라이크 존에 한개의 볼 판정을 받은 것이 아쉬웠지만 10구 3삼진으로 투구 수 관리도 깔끔했다.
당연히 그만큼 만원 관중이었던 양키 스타디움이 뜨거워진 것은 당연했다.
지난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을 때의 환호성 만큼 커다랗진 않았지만 박수 소리는 여전했다.
'아마 무실점 기록을 기대 하고 있는 거겠지'
그렇다면 그들의 열기와 기대에 보답을 하면 된다.
'이분위기만 이끌면 쉽겠어.'
하지만 이 열기는 결코 오래가진 못했다.
-뻐엉!!!
"스트라잌, 아웃!!!!"
-부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뻐엉!!!
"스트라잌, 아웃!!!!
이어서 1회 말, 마운드에 오른 크리스 세일이, 뉴욕 양키스의 세 타자를 모두 삼진 아웃으로 돌려세웠으니 말이다.
1회를 마치고 내려오는 크리스 세일.
어째선지 퀭한 눈이었지만 날 바라보는 눈빛만은 명장이 벼린 칼날과도 같았다.
그리고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를 대표하는 두 투수의 대결은, 경기 초반부터 아주 눈부셨다.
2.
오늘 경기가 쉬울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철저하게 틀렸다.
-따악!!!
보스턴 레드삭스의 4번 타자 라미레즈의 타구가 하늘 높이 솟아 올랐다.
"제발!"
"파울!!"
"오우우우우.."
관중들의 신음소리.
마찬가지로 내 간담이 서늘했다.
외야 관중석 쪽으로 높이 날아가던 공이 바람과 함께 폴대 바깥으로 빠져 겨우 파울 판정을 받아냈다.
만약 바람이 반대로 불었다면 분명 넘어갔을 법한 타구.
운이 좋았다.
'안그래도 다들 한방이 있는 타자들뿐인데... 이렇게 계속 나온다면 위험할 것 같은데...'
당장 지금 타석에 서있는 4번 타자 라미레즈는 지난 시즌 홈런 30개를 때려낸 선수였다.
그다음으로 나올 5번 타자 트래비스는 0.471의 타율과 7개의 홈런을 기록하고 있었다.
오늘 보스턴 레드삭스가 선발 출전 시킨 타자 명단을 살펴보면 다나카 마사히로 때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아주 작정하고 나온듯,
장타력이 있는 무키 베츠를 1번으로 세워두질 않나 2번 타자로는 공갈포 벤치 멤버인 영을 선발 출장 시키기까지 했다.
3번 타자였던 보가츠는 말해봐야 입만 아팠다.
심지어 보스턴 레드삭스의 리더인 페드로리아를 제외 시킨 것 부터가 얼마나 그들이 나의 기록을 깨고 싶어하는지 마음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부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또 다시 나온 삼구삼진!
다행히 오늘 리미터를 풀 생각이었던 나는 4번 타자인 라미레즈를 한등급 업그레이드된 A등급의 컷 패스트볼. 98마일의 컷 패스트볼로 헛스윙을 이끌어냈다.
'이정도면 기세가 좀 .. 죽었으려나?'
고개를 저으며 보스턴 레드삭스의 덕아웃을 향해 걸어가는 라미레즈를 보며 피어난 작은 기대감.
하지만 다음으로 타석에 들어서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5번 타자 트래비스를 보니 금세 사그라들었다.
되려 트래비스의 투지가 한층 강해진 것 같았고 타석에 들어서는 그의 분위기는 예사롭지않았다.
연습 스윙 역시 아주 호쾌했으니.
방망이가 바람 가르는게 바람 소리가 내 귓가에 맴도는 기분이다.
그 모습에 되려 당황한 것은 나였다.
'이러다... 진짜 곧 맞을 거 같은데?'
왠지, 회귀 후 처음으로 좋지않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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