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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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 스트라잌, 아웃!!!!"
다음으로 들어선 5번 타자 만치니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만치니가 공을 지켜보든 배트를 휘두르든, 거기에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전 이닝에서도 생각했지만 둘 중 어떤 선택지를 고르지않고 그저 치지 못할 공을 던지면 됐다.
만치니가 뻔히 지켜보는 가운데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때려 박고, 배트 타이밍이 엇나가 나온 파울 타구로 손쉽게 투 스트라이크를 만들고.
마지막엔 상대의 눈을 농락하는 A급 컷 패스트볼을 던져, 가볍게 스윙 삼짓을 이끌어 냈다.
8회 초도 순식간에 투아웃.
이제 타석에는 볼티모어 오리올스 팬들의 희망. 아메리칸리그 홈런왕을 2번이나 차지했던 크리스 데이비스가 들어섰다.
오늘 크리스 데이비스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양키 스타디움 원정에 나서기 전, SNS에 꼭 홈런을 치고 싶다면서 의지를 피력한 바가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한 실패.
타석에 들어서는 것조차 소극적이었다.
'이제야 눈빛이 죽었네.'
직전 4월에 있었던 볼티모어 때 봤던 그 눈빛.
경기 시작 전부터 나를 째려보던 그 눈빛.
하지만 8회 초, 투아웃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서는 그의 눈에는 도저히 칠 수 없다는 패배감이 가득했다.
나는 언론과 소셜 미디어에서 내 약점이 볼티모어 오리올스라고 떠드는 사람들에게, 혹은 볼티모어 선수들에게 입증하기 위해, 유독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중심 타자들에게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대접을 해주었다.
-부웅!!!
"스윙 스트라잌!!!!"
초구부터 던진 104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을 크리스 데이비스가 배트로 맞혀내지 못했고,
-부웅!!!!
"스윙, 스트라이크!!!!!"
이어 던진 바깥쪽 컷 패스트볼에 또 다시 헛스윙을 하더니.
-부웅!!!
"스윙, 스트라잌, 아웃!!!!"
또다시 던진 포심 패스트볼은 크리스 데이비스의 몸쪽 깊은 곳을 노렸고, 개리 산체스의 미트에 허망하게 들어섰다.
또 다시 삼구, 삼진이었다.
1.
맥없이 끝난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8회 초 공격.
반대로 뉴욕 양키스의 공격은 8회 말 불을 뿜었다.
오늘 퍼펙트게임을 유지하고 있는 성호를 상대로 기대 이상으로 버텨내던 상대 투수가, 성호의 압도적인 투구에 결국 잡아먹혀 무너진 것이다.
-따악!!!!
[갑니까? 가나요? 가네요!!!!!!! 애런 저지!!! 오늘 경기 멀티 홈런포!!!!! 이렇게되면 다시 마이크 트라웃과 홈런 공동 1위로 들어섭니다!!!]
8회 말, 선두 타자였던 애런 저지의 홈런을 시작으로 할러데이와 카스트로가 연속 안타를 때려냈다.
[무사 주자 1, 2루. 타석에는 오우, 브렛 가드너입니다. 그가 드디어 복귀를 하네요.]
-따악!!!
[씨~~~~유 어게인!!!!!! 2개월의 결장 속에 복귀전 첫 타석에 홈런 포를 쏘아내는 브렛 가드너!!! 이렇게 되면 아쿠냐 주니어가 상당히 부담이겠는데요?!! 순식간에 5점을 쓸어담는 뉴욕 양키스!]
순식간에 4실점.
스코어는 이제 5 대 0.
양키스 타자들의 연속 안타에 점수가 금방 불어났다.
볼티모어의 덕아웃에서는 뒤늦게 투수를 교체해봤지만, 이미 불이 붙은 양키스 타자들의 배트를 막아낼 수 없었다.
문제는 길어지는 공격시간.
양키스의 공격 시간이 늘어난 만큼 성호에게 주여진 휴식 시간도 늘어나는 것이지만,
이미 달궈진 어깨마저 식는다면 그것은 휴식이 아니었다.
덕아웃에서 걱정스런 눈길로 이어진 공격을 보고있던 조 지라디 감독도 이 부분을 염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도 긴장을 안하고 있구만. 역시 괜한 걱정이었나? 허허.'
대기록을 앞둔 선발 투수에게 긴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대기록을 앞둔 선수라면 지금이 어느 때라도 긴장되고 초조할 것이 분명한데
자신이 어떤 기록을 이어나가고 있는지 알고 있는 성호는 이런 분위기와 상황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보였다.
심지어 선수들 틈에 끼어 타자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수십년간 메이저리그에서 일해왔던 조 지라디 감독마저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
그런 성호에게 조 지라디 감독이 코치에게 자리를 맡긴 뒤, 그에게 다가갔다.
"괜찮겠나? 어깨가 다 식을 수도 있는데."
"괜찮습니다. 8회 초에 조금 강하게 던지다보니 이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요."
"이미 충분히 점수 냈으이. 공격 중단 사인은 보낸지 꽤 됐다네. 그러니 걱정은 안해도 되네."
자신의 말에 배려해줘서 고맙다며 태연하게 웃는 성호.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벗어나려는데
그가 자신에게 먼저 질문을 던졌다.
"조 지라디 감독님. 감독님은 여기 메이저리그에서 오래 뛰셨잖아요."
"그랬지. 양키스에서 생활을 보낸 것만 해도 20년은 되니까."
"그럼 역시 잘 아시겠네요. 뉴욕 양키스 선수 중 퍼펙트게임에 성공한 투수가 누가 있는지도 아시나요?"
"뭐?"
조 지라디 감독은 그의 질문에 너무 놀라 자신도 모르게 되묻기부터 했다.
그만큼 성호가 질문한 것은 자신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저도 지금 제가 무슨 기록을 앞두고 있는지 잘 알고 있어요. 사실 제 오랜 꿈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궁금해졌거든요. 뉴욕 양키스에선 그 기록을 어떤 선수들이 몇번 세웠을까 라고요."
"으음. 그렇구만."
조 지라디 감독은 당황하기도 잠시 상대가 성호란 것을 알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내가 기억하기론 딱 3명이 전부일세. 1956년 돈 라슨, 1998년 데이비스 웰스, 1999년 데이비드 콘만이 핀 스트라이프를 입고 퍼펙트게임에 성공했지. 그리고 그중 돈 라슨이 월드 시리즈에서 유일하게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기도 했고."
거기에 맞춰 짝이 그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라는 것도 이야기 해주었다.
"...그렇다면 21세기엔 단 한명도 없는거네요?"
정말로 알지 못했는지 놀란 표정으로 되묻는다.
"양키스가 과거 많은 기록을 세운 건 알고있었는데..... 으음. 거기다가 이제껏 단 3명이 그 기록을 달성했다는 것도 신기하네요... 아! 혹시 그럼 프로야구가 생긴 이후로 퍼펙트 게임을 정말, 정말, 아깝게실패한 투수는 있었나요? 예를 들면 9회 2아웃 상황이요."
".....그것은, 없었네."
"그럼 오늘 더 잘해야겠네요. 18년만에 있는 일이니까 기대하면서 지켜봐 주시는 팬들을 위해서라도요."
조 지라디 감독이 대답을 하려는 순간 뉴욕 양키스의 공격이 끝이 났고 코치의 부름에 성호가 글로브와 모자를 챙겨 마운드로 걸어 나갔다.
조 지라디 감독은 그 모습을 보며 못다 한 말을 속으로 삼켰다.
'미안하구만. 자넬 속일 생각은 없었어.'
사실 딱 한 명 있었다.
2000년대. 핀 스프라이프를 입고 메이저리그 팀을 상대로 퍼펙트게임에 근접했던 투수가.
2001년 9월 3일.
당시 뉴욕 양키스 소속이었던 마이크 무시나는 적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펜웨이파크에서 9회말 2아웃까지 퍼펙트 게임을 기록하고 있었고, 마지막 타자였던 칼 에버렛을 상대로 볼 카운트 1볼 2스트라이크까지 끌고가 퍼펙트 게임에 스트라이크 하나만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안타를 맞고 퍼펙트 경기를 놓치게 되었다.
이 사실은 그당시 메이저리그에서 선수로써 뛰었던 조 지라디 감독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퍼펙트게임을 앞두고 성호에게 악영향이 끼칠까, 진실을 말하지 못했을 뿐이다.
'부디 오랜 시간동안 자네와 같은 선수를 기다려온 팬들에게... 기쁨을 안겨주게나.'
조 지라디 감독의 이런 마음은 정확히 3분 뒤, 더욱 간절해졌다.
뉴욕 양키스의 공격이 끝난 후, 9회 초. 마운드에 오른 성호가 공 5개 만에 선두 타자를 잡아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덕아웃에서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는 자신을 바라보며 보내오는 미소.
그런 그의 여유로움을 확인 했을 때.
조 지라디 감독의 양팔엔 오소소ㅡ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2.
어떤 스포츠 경기든, 경기를 가만히 지켜보다 보면 경기장에서 흐르는 기묘한 분위기를 느껴질 때가 있다.
어느 쪽이 우세한지, 어느 쪽이 불리한지.
지금까지의 결과와 관계없이 앞으로 경기의 내용이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세' 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수천만명의 팬들이 지켜보는 이 경기에서 처럼 말이다.
-뻐엉!!!
"스트라이크 아웃!!!!!"
9회 초, 마운드에 올라 7번 타자 만치니를 잡은 나는 덤덤했다.
지금 만치니를 다섯구만에 삼진으로 처리하면서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모른다거나 그런것은 아니었다.
그저 익숙했다.
이런 대기록의 중심에 서 있는 게.
전생에선 무려 13년동안이나 이런 분위기와 기세를 가질수 없었지만 이번 생에서 내가 걸었던 길을 생각하면, 이렇게 담담하게 서 있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회귀 이후 보냈던 지난 시간동안 긴장되는 순간을 여러 번 겪다보니, 이젠 긴장을 하고 있을 때 어떤식으로 내 마음가짐을 관리해야 하는지 몸에 완전히 익숙해져있었다.
어쩌면 이 상황에서 내가 던질 수 있는 최고의 공을 던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뻐엉!!!
"스트라이크!!!"
-뻐엉!!!!
"스트라이크!!!!"
-부웅!!!!
"스윙, 스트라잌 아웃!!!!!"
맹수같은 내 기세에 볼티모어 오리올스 타자들은 그러지 못했다.
자신의 커리어에서 퍼펙트게임의 제물이 되는 경험이 대부분 처음인 오늘,
상대는 메이저리그를 지배하고 있는 나였다.
9번 타자의 타석에 대타가 들어섰다.
이번 시즌 2할 후반대의 타율인 리카르도.
하지만 성적과 별개로 몸을 잔뜩 움치리는게 겁먹은 듯 보였지만, 자신을 노려보는 것이 뭔가 수가 있어 보였다.
아마도 그것은 특종 구종 하나를 노리는 것일테고.
나의 고민은 깊지않았다.
이미 결승선이 눈앞에 보이는데.
아직 몸에 힘이 가득 남아있는데.
아직 몸에 남아있는 힘을 마지막 타자에게 쏟아붓는건 당연한 일이다.
답이 뻔히 보이는 문제를 알고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바보인 것이다.
-뻐엉!!!!
"스트라이크!!!"
-뻐엉!!!!
"스트라이크!!!"
두 번의 104마일의 포심.
그리고 생각했다.
이 경기가 끝나고 나서 무엇을 해야할지.
오늘만큼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다.
회귀 전부터 여기까지 온 자신을 격려하며.
-뻐엉!!!
"....."
잠시간의 침묵.
그리고 무엇보다 바라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트라이크!!!!"
정말로 바랬던,
"아웃!!!!!!!"
그 순간에 말이다.
"우아아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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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동안 봐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인사드립니다.
애매하게 100편 될바에야 오늘 3연참해서 그냥 100편 채워버렸답니다.ㅠ.ㅠ
추천과 선호작품 한번씩 부탁드리고, 후원 쿠폰과 원고료쿠폰 주시는것들 글쓰는데 너무 힘이됩니다.
다들 행복하세요!! 늘 그렇듯 오늘도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