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메이저리거 (90)화 (88/207)

90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90화소녀는 괴성을 지르며 쥐고 있던 신발을 우리쪽으로 내던졌다.

"뭐, 뭐야! 진짜 리에요? 어..? 애런 저지? 아쿠냐 주니어? 그레이스! 당장 뒤돌아 봐! 너가 그렇게 기다리던 리가 왔다고!"

"우웅? 언니, 그게 무슨 소리... 어?.. 어? 리? 리. ? 진짜 리다! 리이이이!"

바로 그 때, 뒤를 돌아본 귀여운 여자 아이가 믿기지 않았는지 작은 손가락으로 눈을 비비며 붕어처럼 몇차례 입을 껌뻑거리더니 이것이 현실인 것을 깨닫고 두손에 쥐어진 신발을 내팽겨치더니 달려와 내 다리를 안았다.

"우와아아아! 진짜아, 리에요?"

"그, 그래. 너는 이름이 뭐야?"

"저어는, 그레이시라고 해요! 맥케이 그레이시! 우와아... 진짜 애런 저지다..."

아직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그게 귀여워 번쩍 안아들어 눈을 마주봤다.

"그래? 너가 그 사연에 적힌 그레이시구나. 그럼 뒤에 있는 저 숙녀분이 클로에?"

"으우웅. 마자여. 저희 언니에요. 헤헤. 예쁘죠?"

으음. 예쁘긴 하네. 반짝이는 검은 빛의 눈동자에 동양인의 혼혈인지 고급스런 동양미를 가진 여자였다.

분명 아까 무표정일 때는 시크한 느낌으로 차도녀와 비슷한 인상이었는데, 나에게 안긴 그레이시를 바라보며 웃을 때는 따뜻하고 맑은 이미지를 가진 반전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말랐네.'

안겨있는 그레이시도 마찬가지였지만 아직도 멍한 표정의 클로에는 말라도 너무 말랐다.

"....너희가 사연 보냈던 애들 맞지?"

"네에, 마자여. 저희 언니가 저대신 보내써요. 우아아아아. 진짜 리다!"

"네, 어.... 미안해요! 여기가 좀.. 지저분하죠?"

"괜찮은데 뭘, 그것보다 학교에 있을 시간 아니야? 학교에 있을 줄 알고 서프라이즈 해주려고 했는데."

나의 물음에 클로에가 자라목이 되어 움츠렸다.

"아, 아버지께서 오늘은 집, 집에서 혼자 있으라고 하셔서....."

"....뭐?"

고개를 돌려 컨테이너 구석 구석을 살피자 그동안 살아온 흔적이 여럿 보였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펜, 기저귀에 낙서자국까지. 이 춥고 작은 공간에서 그나마 따뜻해보이는 작은 이불까지.

상황은 내 생각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분명 촬영팀이 조사하기론 동네에서 가장 존경 받는 복지사에 조용히 전도하는 전도사라고 말을 해줬는데.

존경 받는 사람이 딸 같은 아이에게 학교도 가지 말고 이쓰레기장 같은 곳에 혼자 남으라고 했다니?

설마, 설마 하는 생각들에 의심의 싹이 하나씩 열매를 맺어간다.

"리... 이거 완전."

아쿠냐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직, 그래. 아직은 모르는거다.

단순히 놀이 공간으로 쓰는 걸수도 있잖아.

이빨을 짓이기며 가까스레 분노를 참고 억지 미소로 되물었다.

"밥은 먹었어?"

"...네."

-꼬르르륵.

대답과 함께 클로에의 뱃속에서 난 소리.

클로에의 얼굴이 화악- 붉어진다.

이제야 좀 애같네.

"큭큭, 밥 안먹었구나? 아직 시간 좀 남았지? 가자. 맛있는거 먹으러. 그레이시도 배고프지?"

"우아아! 우리 마싯는거 먹으러 가여?"

"그러엄. 이래뵈도 우리 돈 많거든? 돈 빼면 바보들이거든. 자, 가자. 클로에!"

"네, 네?!"

"뭐해?"

허공에 손을 폈다.

"손잡아.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 오늘 우리가 만난 기념으로 오빠가 맛있는거 사줄게."

내 말에 눈동자가 획획 왼쪽, 오른쪽으로 몇 차례 돌더니,

"어...."

반쯤 자리에 일어나 머뭇거린다.

평소에 얼마나 눈치 보고 살았으면 밥먹으러 가는것도 저렇게 눈치를 보는걸까?

답답한 심정에 몇걸음 걸어가 부드럽게 손을 낚아챘다.

"사연 보냈으니까, 오늘 하루는 같이 보내야되는거야. 자아~ 맛있는거 먹으러가자!"

1.

"여기 많이 비싼데..."

이제 고등학생이나 됐을 법한 소녀가 돈부터 걱정하는 것이 퍽이나 슬펐다.

결국 나는 어설픈 미소와 함께 고개를 흔들었다.

"걱정하지말고 다 먹어. 오빠 돈 많이 버는거 알지? 며칠 전에 기사도 크게 났을건데. 그리고 부족하면 이놈들이 사줄거니까 진짜 걱정하지말고."

"맞아, 맞아. 클로에! 이건 내가 살거니까 리한테는 다음에 크게 얻어먹어. 알았지?"

"아쿠냐, 이건 내가 살게. 클로에, 그레이시. 마음껏 먹어. 더 시켜줄까?"

잠시 뒤, 음식이 나오고 그레이시는 '우아아, 처음 보는 거다!' 라며 소리치더니 방긋방긋 웃으며 음식을 먹었고 클로에는 눈치를 보다 한입을 베어물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곤 허겁지겁 먹는다.

그렇게 비싸지도 않은 값싼 햄버거인데 저렇게 먹는 이유가 뭘까.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뭐...?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복지사? 전도사? 이건 누가봐도... 후우..."

안쓰러운 눈빛으로 두 소녀를 바라봤다.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잘 풀릴까.

2.

클로에, 그녀에겐 꿈 같은 시간이었다.

가끔 동전을 모아 정말 가끔 동생들에게 사줄 수 있었던 음식을 여동생 그레이시와 함께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평소 집에서 정해진 시간에 나오는 밥과는 차원이 달랐다.

위생도 좋았고 맛도 좋았다.

가장 좋은건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지만.

뭐든 좋았다.

밥을 먹고 자신들이 살고 있던 집으로 걸어 갈 때 마다 걸음이 느려졌다.

조금이라도 이 꿈같은 시간을 더 즐기고 싶었다.

늦으면 혼날텐데.

복잡한 생각을 하며 그레이시의 손을 잡고 땅바닥을 보며 걷는데 좋은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클로에,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다면 꼭 연락 해야 돼. 알겠지?"

오늘,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어준 사람.

최근 그레이시 때문에 알게된 리라는 사람이었다.

"...저."

말하고 싶었다.

그저, 한번만 도와달라고. 저 지옥같은 집에 다신 들어가 살기 싫다고.

가끔 자신을 쳐다볼때 음흉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아버지'의 눈빛이 정말 싫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사람들은, 오늘 하루 오는 거니까.

어차피, 내일이면 잊혀질 사람이니까.

이런 사람들은 많이 봐왔다.

신문에 낼거라며 봉사는 커녕 사진만 찍다 돌아간 사람들.

이지옥같은 집에서 자란 클로에는 수없이 봐온 사람들이 늘 같은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네."

그가 건네준 작은 종이엔 휴대폰 번호가 쓰여있었다.

주먹에 살짝 구겨진 종이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평상시에도 연락 해도 돼. 알겠지?"

"어이, 리. 너만 착한 척이야? 클로에! 여기 내 번호라고. 평소에 자주 연락해야된다?"

"저지, 너 허파에 바람찼냐? 평소에 내 연락도 안받는 놈이 자주 연락은 개뿔. 클로에! 내 번호야. 도움 필요하면 꼭 연락 하라고."

참 좋은 사람들....

분명 눈치 챘을 건데.

끝까지 모른 척 하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고마웠다.

"어? 클로에 웃었다! 리, 봤어? 진짜 웃었어!

"어.... 그러네? 클로에. 오늘 처음 웃는거 알아?"

"아...."

그러고보니 이렇게 마음 놓고 있었을 때가 언제였지?

클로에는 자그맣게 자신의 심장이 잘게 떨리고 있는 것을 이제서야 느꼈다.

조금 더. 조금이라도.

이 따뜻한 감정을 느끼고 싶었다.

클로에의 시선이 그녀의 손을 꼭 붙잡은 그레이시에 향했다.

이 어린 아이라도, 꼭 행복해야할텐데.

고개를 들어 웃으며 자신을 보는 그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레이시, 오늘 행복했어?"

잔잔한 물음.

동시에 주위가 조용해진건 착각이겠지.

"우우웅! 조아써! 리랑 줘어어지랑 주니어랑! 다 조아써!"

"...."

그레이시가 정말 행복하다는 듯이 웃는다.

얼마나 좋은지 제자리에서 방방 뛰기까지 했다.

".....그래?"

이 작은 아이를 위해서라도, 마지막 용기를 내어볼 순 없는걸까?

클로에의 마음 속에 작은 새싹이 돋았다.

2.

그들과는 집 근처에서 헤어졌다.

꼭 다음에 오겠다며 연락을 하라고 하는 말과 함께.

클로에는 그레이시와 한차례 감사 인사를 하고 손에 가득 쥐어준 선물 꾸러미를 들고 집에 들어섰다.

"클로에! 클로에! 어디 있느냐!"

술에 잔뜩 취했는지 얼굴이 벌건 남성이 고함을 지르며 창고나 다름없는, 하나뿐인 우리들의 보금자리에서 나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 아버지..."

이자가 '아버지'였다.

"언, 언니.. 으으.....으....흐으으읍... 어떡해."

아버지의 고함소리에 그레이시가 몸을 심하게 떨며 붙잡은 손을 꽉 쥔다.

클로에가 울고 있는 그레이시를 끌어안고 토닥였다.

"괜찮아. 그레이시.... 괜찮을 거야."

그녀, 클로에 역시 평소보다 난폭해보이는 아버지가 어깨까지 떨릴 만큼 무서웠지만 자신만을 의지하고 있는 그레이시를 달랬다.

자신들의 보금 자리인 컨테이너를 뒤지다 밖으로 나온 아버지의 손에는 결코 값이 싸지 않는 고급 위스키 병이 들려있었다.

"클로에! 거기 있었구나!"

자신을 발견하고 병나발 불 듯 마신 사내는 마치 독사와 같은 눈빛으로 클로에를 훑어보았다.

"집에 있으라 했더니 감히 집 밖을 나갔다 와? 흐, 흐흐흐. 말을 안들었으니 벌을 받아야겠어. 따라와라."

음흉한 눈빛과 말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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