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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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가 기록을 세운다는 소식에 야구 중계를 하던 작은 펍엔 사람이 가득차있었다.
"진짜 기록이라고?"
"아니, 기록 세운 건 아니고 이제 기록을 세운다네?"
"으음. 그래? 근데 19살이라며? 벌써 투구수가 100개가 넘었는데 괜찮은거야? 미래를 위해서라도 내려야되지 않을까? 1점 차이기도 하고, 채프먼 올리면 그냥 이길 것 같은데..."
"그래서 그동안 조 지라디 감독이 관리 해줬잖아. 7이닝 / 100구 이 이상은 절대 안넘겼다네? 특별한 기록 앞둔거 아니면. 그리고 중간에 하루씩 더 쉬게 해주기도 했고. 저 친구가 체력 테스트도 팀 내 1위라잖아. 어련하겠어? 최연소 노히터에 최연소 데뷔전 기록까지 세웠고 최연소 연속탈삼진 기록까지 세웠으니 믿어봐야지."
"하긴, 그랬었지. 기록 꼭 세웠으면 좋겠네. 벌써 9회 초라 힘들겠지만.... 흐후... 가끔 이런 펍에서 맥주를 마시면 00년대의 그 양키스가 너무 그립더라고."
공의 움직임을 결정짓는 것은 공의 회전수다. 그리고 회전수를 결정짓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악력이다. 기술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악력이 기본적으로 밑바탕이 되어야만 공의 세기가 달라지는 만큼 악력이 떨어져 경기 후반부에 무너지는 투수들은 많았다.
그리고 마운드에서 초구를 뿌린 나 역시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뻐엉!!!
"스트라이크!!!!"
[초구, 몸쪽 낮은 패스트볼. 지켜보는 칸하 선수!]
[애매한 위치였는데 이걸 잡아주는 군요. 리에겐 호소식이네요.]
"심판님, 이게 들어왔나요?"
살짝 벗어난 만큼 칸하가 소심어린 성격을 이겨내며 따져물었으나 심판은 단호했다.
그에 칸하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타석에 다시 들어섰다.
무언의 항의인 것이다.
그리고 타석에선 폼이 침착했던 초구때와 미묘하게 앞으로 쏠린 것을 확인한 나는 개리 산체스에게 직접 사인을 보냈다.
-부웅!!!
"스윙-스트라이크!!!! 투!!!"
[낙차 큰 커브!! 칸하 선수가 성급하게 방망이를 휘둘렀습니다. 침착해야 하는데요.]
[커브가 예술이네요. 성급해보이는 칸하 선수에겐 이보다 위협적인 공은 없죠.]
원바운드된 공을 간신히 잡아낸 개리 산체스가 심판에게 새 공을 받아 나에게 건넸다.
흐르는 땀을 닦고 송진가루까지 섞이자 매끄러운 공이 제법 착 하고 감겨왔다.
꽉 잡히는게 느낌이 좋다.
그리고 산체스가 사인을 보냈다.
'체인지업?'
요구한 사인은 바깥쪽 낮은 체인지업.
자신이 생각했던 사인과 조금 달랐지만 공에만 집중하고 싶어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힘차게 와인드업을 가져가 공을 뿌렸다.
칸하가 뿌린 공에 팔을 휘두르는 것이 보이고 반동에 고개가 내려가 결과를 알수 없었지만,
-뻐엉!!!!
개리 산체스의 글로브에 박히는 포구음에 난 확신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20번째.
메이저리그에서의 한경기 20번째 삼진이었다.
1.
[삼진!!! 또 삼진입니다!!! 미쳤습니다. 미쳤어요!!! 9회 초, 선두 타자를 상대로 헛스윙 삼구 삼진을 잡아냅니다. 경기 스무 번째 삼진!!!! 데뷔전에 세웠던 17개의 삼진에서 20개의 삼진으로 기록을 세우는 성호리 !!! 그리고 최연소 한경기 20탈삼진의 기록을 세웁니다!!!]
[공식적으로 한 경기 최다 탈삼진은 21개입니다만, 그것은 1962년 톰 체니 선수가 16이닝이나 던져가며 세웠던 기록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식 이닝에서 끝난 기록, 9이닝 20탈삼진은 로저 클레멘스(1986·1996년)가 2차례, 케리 우드(1998년)와 랜디 존슨(2001년)이 각각 1차례 달성했고, 2016년에 맥스 슈어져 선수를 마지막으로 6번째 달성자가 나오지 않았었죠. 그리고 마침내 오늘!!!]
[6번째 진기록이 나옵니다. 역대 최연소 1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을 세우는 성호 리!!!!]
[이건 사실 더 대단하다고 봐야죠. 모두 전성기에 세웠던 투수들이거든요? 19살의 나이에 20 탈삼진 경기를 할 것이라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제가 뭐랬습니까. 제가 뭐랬어요!!! 리는 투수로써 완벽한 선수라구요!!!!]
[워워, 존. 이제 진정하시죠.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웃 카운트는 아직 두 개나 남았다고요. 지금이야 '20개나' 되는 탈삼진을 잡은 성호 리지만... 그러니까 한 타자만을 더 잡으면.... 데드볼 시대까지 합쳐 약 150년의 메이저리그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 있는 광경을 목격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저번처럼 쓰러지시지 마시고 침착하세요.]
[하하하하, 너무 흥분했네요. 잠시 경기장이 소강상태입니다. 뉴욕 양키스의 팬들이 모두 자리에 일어나 박수를 치는군요.]
[예, 장관입니다. 그리고 타석에서 잠시 그것을 기다려주는 오클랜드의 2번타자 보트 선수. 상대를 존중해주는 모습이 보기가 아주 좋네요.]
경기를 중계하던 해설위원과 캐스터가 난리가 난 만큼 경기를 지켜보던 팬들도 난리가 났다.
모두 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고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몇분이 지나고 기다려준 2번 타자 보트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초구 몸쪽 깊숙한 포심 패스트볼을 뿌렸다.
-뻐엉!!!
"스트라이크!!!!"
오클랜드의 팬들이 끔찍한 광경을 보고 있다는 것처럼 머리를 쥐어뜯었다.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21탈삼진의 희생양이 하필 자신들의 팀이라니. 이미 역대 6번째 기록을 내줬지만, 그래도 사상 최초의 21탈삼진의 희생양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비록 뉴욕 양키스의 홈이었지만 오클랜드 팬들이 목소리를 높여 자신들의 타자를 응원했다.
"제발 좀 치라고!!! 아웃 당해도 좋으니까!!! 제발 공을 건들기만이라도 해보라고!!! 이 멍청한 자식들아!!!!!"
"이 씨발 등신새끼들아. 내가 이딴 경기 보려고 오클랜드에서 뉴욕까지 비행기타고 온줄 알아? 적당히 좀 하라고!!!!"
"우우우우우!!! 아무리 탱킹을 해도 그렇지 19살한테 20개 삼진? 니들이 그러고도 메이저리거냐!!!!"
저것이 과연 응원인가는 의문이 생겼지만, 9회까지 제대로된 공격을 이어나가지 못한 타자에게는 대기록에 압도되어 어깨가 무거워졌을 때 찬물을 끼얹어준 것이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지 몰랐다.
그리고 두 번째 공.
팬들의 일갈에 머리가 차갑게 식은 보트가 마침내 팬들의 응원에 응답했다.
-따악!!!
바깥 코스 낮게 깔리는 커터를 그가 배트로 두들겼다.
하지만 포심 패스트볼을 예상하고 친 만큼 얻어걸린 스윙이었기 때문에 타구의 각도와 속도가 그리 좋지 못했다.
"아웃!!"
포수 뜬 공.
개리 산체스가 복잡한 표정으로 가볍게 공을 낚아챘다.
투 아웃.
20개의 탈삼진을 잡은 상황에서 대기록까지 필요한 탈삼진은 단 한개.
그리고 남은 아웃 카운트는 단 하나였다.
2.
[포수 파울 지역 뜬공으로 개리 산체스 선수가 가볍게 처리합니다. 9회 초, 투아웃 상황!!]
[이제 남은 아웃 카운트는 단 하나입니다. 마지막 기회나 마찬가지에요. 제발....]
[크흠. 존, 조금 진정하시죠. 저도 메이저리그의 오랜 팬으로써 150년의 역사를 새로 쓰는 기록을 눈앞에서 보고 싶지만 저희는 해설위원입니다. 경기 중계에 집중하시죠.]
[그러긴 해야겠습니다만... 지금 중계가 무슨 상관입니까? 보스턴의 팬들도 손에 땀이 차있을걸요? 지금 이 장면은 메이저리그의 역사가 담긴 장면입니다. 21세기에!!! 1800년도의 기록을 도전하는거라구요!!!]
[으음. 사실 저도 조금 그렇습니다. 물론 해설위원으로써.... 경기를 중계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청자분들에게 상황을 중계하는 것이지만 저도 존 해설 위원과 마찬가지로 야구 팬이거든요... 뭐랄까, 저도 이 순간만큼은 존 해설 위원과 같은 마음입니다.]
"12.7%...... 커미셔너님 미쳤습니다."
"....진짠가?"
12.7%. 뉴욕 주에서만 중계하고 그외 지역에서는 돈을 주고 시청해야되는 만큼 평균 3% 미만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양키스의 경기와 판이하게 달랐다.
12.7%다.
무려 평소의 시청률보다 4배나 높은 수치.
이는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밤비노 시리즈보다 높은 수치였고 매해 치뤄지는 월드시리즈와의 비슷한 시청률이었다.
그것을 시즌 중반이 채 지나지 않은, 5 월 말에 달성한 것이다.
그리고 오클랜드의, 2번 타자인 보트가 포수 파울지역 뜬공으로 아웃되었을 때,
"시청률 13% 돌파입니다!!!!"
마지막 타자일 수도 있는 오클랜드의 3번타자 로우리가 들어섰을 때,
"시청률 13.2% 돌파!!!! 미쳤습니다!!!!"
그리고 초구로 104마일의 포심을 한가운데에 꽂아넣을 때,
".... 시청률 13.5% 달성입니다. 제발!!!"
롭 맨 프레드 커미셔너의 시선이 초구를 뿌린 성호에게 향했고,
어느새 땀이 가득찬 그의 손아귀는 꽉 쥐어있었다.
'제발....'
3.
[타석에는 오늘 경기 3타수 무안타 2개의 삼진을 헌납한 로우리 선수가 들어섭니다. 오클랜드의 3번 타자입니다.]
[이 선수가 오클랜드에서 크리스 데이비스 선수 다음으로 타격감이 좋은 선수거든요? 3할을 유지하고 있는 타율이 그것을 증명할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성호 리!!! 리는 할 수 있습니다. 자 초구!!]
-뻐엉!!!!
초구.
내 공이 개리 산체스의 미트를 꿰뚫었다.
"스트라이크!!!!"
[104마일 !!!!! 9회 초, 투아웃에서 104마일을 던지는 성호 리!!!!!!]
[빨라요. 눈이 쫓아가지 못하네요.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 있던 개리 산체스의 글로브에 공이 편안히 들어섭니다.]
오클랜드의 야유가 더 커졌다.
양키스의 홈인 만큼 5만명의 뉴욕 양키스 팬들이 수천명에 불과한 원정 팬 오클랜드의 야유를 가볍게 누를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 순간 만큼은 모두가 마운드에 시선을 옮겼다.
모두가 기대하고 있는 만큼 난 그 기대를 전생과 달리 보답할 생각이 충분했다.
제 2구.
-부웅!!!!!
로우리가 나의 두 번째 공을 향해 크게 배트를 휘둘렀지만,
"스윙ㅡ스트라이크!!! 투!!!"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는 슬라이더에 허공만을 갈라냈다.
하지만 로우리는 아쉬워하지않아보였다.
마치 다음 공을 기다리는 것처럼.
폼을 다듬고 허공에 여러차례 가볍게 스윙을 가져가고 장갑을 조여매더니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볼카운트 0-2.
위대한 기록을 앞두고,
제 3구. 크게 와인드업을 가져갔다.
그리고 공을 던진 순간 알수있었다.
야구의 신을 만나 계약을 하고 회귀를 하고 일어났던 일들.
고등학교 마지막 경기에서의 퍼펙트 게임.
19살의 나이에 메이저리그 데뷔해 데뷔전 완봉승 17K를 기록해 역사를 갱신했을 때.
열두 타자 연속 삼진을 잡고 역사를 갱신했을 때.
최연소 노히터를 기록해 역사를 갱신했을 때.
그 순간만 느낄 수 있었던 짜릿함이,
공을 던진 순간 느껴졌다.
-뻐엉!!!!
"스트라이크, 아웃!!!!!! 게임 셋!!!!!"
이번 경기.
21번째 삼진이었다.
경기를 중계하던 해설자들은 마지막 경기인 것 처럼 목소리를 높혔고.
경기장을 찾아온 뉴욕 양키스의 5만여명의 팬들은 자리에 일어나 박수를 보냈으며,
메이저리그 닷컴에는 두가지의 메인 기사가 장식되었다.
[성호 리, 메이저리그 한경기 최다 탈삼진 신기록 경신!]
[휴스턴 애스트로스, 징계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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