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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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베테랑 선수답게 긴장하는 모습은 아니지만 선수 생활 내내 백업 유틸리티 자원으로 쓰여진 선수답게 무게감은 많이 떨어지네요. 오늘 3타석 무안타 행진입니다. 타율은 1할대까지 떨어진 상황.]
[아무래도 오클랜드가 리빌딩을 하고 있는 만큼 백업 선수들을 많이 기용하고 있는 느낌이죠.]
로살레스가 타석에서 성호를 바라봤다. 그는 해설자의 말처럼 선수 생활 내내 백업에 전전하며 몇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의 시선이 잠시 양키스의 외야를 책임지고 있는 아쿠냐 주니어와 애런 저지에게 향했다.
'좋겠네.'
아쿠냐 주니어와 애런 저지.
온갖 언론에 집중 조명을 받으며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보이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자신도 한때 유망주 랭킹 BA 순위 3위까지 올랐을 만큼 뛰어난 유망주였지만, 자신은 정체됐고 저들은 성장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메이저리그에서 수년간 뛰고있는 자신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것이 참 간사해지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자신은 30대에 들어서는 나이에서도 여러 구단에서 백업으로 기용되고 있는 반면 저들은 메이저리그의 대표 구단 중 하나인 뉴욕 양키스에서 주전 선수로써 어린 나이에 자리를 잡았으니, 자신과 비교해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은 아직 메이저 무대에 밟고 있었다. 비록 리빌딩 중인 팀에서나 가까스레 반주전으로 기용되고 있었다지만 자신도 저들과 같은 메이저리그다.
배트를 꽉 쥐었다.
'온다.'
-부웅!!!
"스윙-스트라이크!!!"
초구는 높은 코스의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완전한 헛스윙.
하지만 타이밍이 얼추 맞았다. 단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공이 조금 더 높았을 뿐.
물론 저 어린 선수의 공이 자신이 쉽게 칠 만큼 쉬운 공이 아니란 것 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이야.'
그러나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여러모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번지점프가 무서운 것을 안다고 해서 막상 뛰어보면 또 다르듯.
로살레스가 침착하게 다음 공을 기다렸다.
4.
그사이 마운드의 흙을 잠시 정리하던 나는 가볍게 어깨를 흔들었다.
전생에 비해 커진 키와 몸이 슬슬 완전히 적응되고 있는 만큼 몸은 가벼웠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서서히 힘이 빠지고 있는 8회 초, 세 번째 타자였다.
와인드업을 하고 두 번째 공을 뿌렸다.
개리 산체스 에게서 날아온 사인은 바깥쪽 낮은 코스의 체인지업.
-부웅!!!
"스윙- 스트라이크!!!"
'후우.... 다행이다.'
체인지업을 던질 때 잘채이지 않아 생각보다 덜 떨어져 살짝 몰린 공이 되어버렸는데 상대 타자가 헛 스윙을 해주었다.
8회 초, 마지막 타자는 생각보다 더 쉬운 선수였다.
잠시 마운드 바닥에 있는 송진가루를 톡톡 건드리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볼 카운트 0-2.
홈런 한방이라도 맞게된다면 공든 탑이 무너진다.
타석에 선 타자가 자리를 잡자마자 개리 산체스에게 직접 사인을 보냈고
와인드업을 가져갔다. 그리고 글로브 안에 숨어있던 왼손이 번개처럼 공을 뿌렸다.
-뻐엉!!!!
"스트라이크, 아웃!!!!"
[루킹 삼진!!! 리가 8회 말, 마지막 타자를 삼구 삼진으로 처리합니다!!!!!]
[이것이 19살 다운 패기일까요? 한가운데 포심을 그것도 8회 초에 101마일로 루킹 삼진을 잡아냅니다.]
[마운드에서 거친 호흡을 가져가며 내려오는 모습과 달리 자신감은 여전하네요. 이것으로 이번 경기 열아홉 개째 삼진을 적립합니다. 벌써 시즌 118번째 삼진입니다.]
[이제 10경기를 뛰고 있는 선수가... 118번째 삼진이라니. 이거 정말 말이 안나오는 군요. 이러다 300탈삼진까지 도전할....]
[하하하, 존, 거기까지 하죠. 아직은 어린 루키에게 부담을 주기 이른 것 같습니다.]
"얌마, 갑자기 사인 보내서 깜짝 놀랐잖아."
"놀랐어?"
"그럼 안놀라겠냐.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변화구로 승부하려고 했단말이야. 한두개쯤은 빼려고 했는데... 알다시피 기록이 걸려있잖아."
"그래?"
기록이 눈앞에 걸려있는게 본인이 아니라는 것처럼 되묻는 모습이 담담함 그 자체였다.
1대0의 상황. 혹시모를 홈런에 실점해 연장전으로 이어진다면 기록 연장에 부담감이 생길텐데.... 태연한 그 모습에 개리 산체스는 다시 한 번 실감했다.
그동안 자신이 동경해왔던 리더에게서 기대했던 모습이 이런 것이었다고.
1.
"이러다가 진짜 기록 세우는거 아니야?"
"... 아쿠냐, 너 진짜 그러다 맞아 죽는 수가 있다."
"아니, 지금 두 개만 추가하면 스물 한 개잖아. 그리고 저기 타석도 1, 2, 3번으로 오늘 리한테서 안타 하나도 못뽑아낸 물빠따 놈들이라고. 그럼 기록 거의 달성한거 아니야?"
"누가 그걸 모르냐? 엉? 모르냐고! 아쿠냐, 좀 닥쳐. 그거 몰라서 다 조용히 있는 줄 알아?"
"괜찮아. 리잖아. 당장 옆으로 가서 장난쳐도 삼진 두 개는 가뿐히 잡을 걸?"
아쿠냐 주니어의 이야기에 애런 저지가 답답하자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야, 이 씨. 리가 잘던지는거 누가 모르냐? 그걸 몰라서 누가 안건드는거냐고! 혹시 모르니까 안건드는거 아니야. 거기다가 이제 리 투수구도 100개 넘어가는거 몰라? 감독님도 평소 같으면 체력 부상 걱정할 타이밍인데 입 꼭 다물고 있잖아. 조금이라도 쉬게 만드려고!!!"
"으음... 그래도 리인데..."
"리도 사람이라고! 사람! 쟤한테 우리가 장난스럽게 로봇이라고 부르니까 진짜 기계라고 생각하기라도 하는거야?"
"아니.... 으음. 평소엔 별로 신경을 안쓰는 것 같아서. 그리고 너랑 리 빼면 친한 애도 없으니까.... 심심하기도 하고."
아쿠냐 주니어가 눈을 끔뻑끔뻑하며 답했다.
마치 자신은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애라는 것처럼.
그 순간 애런 저지는 물없이 빵을 한가득 먹은 것처럼 느껴지는 답답함에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로 내뱉었다.
"야 이 씨발 게이 새끼야.... 좀 닥치라고!!!!"
1.
8회 말, 오클랜드 애스틀렉스에선 패전조 중 한명인 엑스포드를 내보냈지만 경기의 흐름에 전운이 감도는 만큼 경직된 상태로 타석에 들어서는 양키스 타자들은 최대한 버티기만 했을 뿐, 별다른 점수를 내진 못했다.
그리고 9회 초,
성호가 마운드에 다시 올라섰다.
"다 올렸대?"
"아니요... 아직.."
"아직도? 뭐하고 있는거야! 빨리 폭스에 연락해서 자막띄우고, 닷컴 메인에 기사 띄우라고 했잖아. 인스타에는? 페이스북엔? 트위터엔? 다 올리라고 얼른!!"
8회 양키스의 공격이 끝나가는 시점.
MLB 커미셔너 롭 맨 프레드의 머리가 재빨리 돌아갔다.
물론 아직 뚜렷한 기록이 나오진 않았다. 투수는 완급조절을 하며 던졌다고 해도 이미 8이닝을 던진 상황이었고, 아웃 카운트는 세 개나 남았을 뿐더러 새로운 기록을 위해서는 삼진을 무려 두 개나 잡아야됐다.
하지만 원래 이슈를 위해선 결과보단 과정과 기대가 중요한 법이다.
언론이 먼저 설레발을 떨고 그에 맞춰 팬들이 설레발에 기대감을 품고 관심을 가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인 것이다.
[19살의 성호 리, 사상 최초 한 경기 21탈삼진 도전한다!!!]
[데뷔 시즌, 역대급 기록 다 세우나? 20탈삼진 이후로 최초 21 탈삼진에 도전장 내민 성호 리.]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롭 맨 프레드 커미셔너는 양키스의 공격이 삼자범퇴로 간단히 끝났음에도 입가에 자그맣게 미소가 실렸다.
"시청률 10% 돌파입니다!!!!!"
마운드에 선 성호가 오늘 상대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1번 타자 킨하를 향해 속구를 뿌린 바로 그순간에 말이다.=============================※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작품후기]추천과 선호작품 한번씩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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