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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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발 출전 하는 날.
평소와 같이 실비아에게 배운 필라테스로 몸을 풀어주고 구장 근처에서 아침 일찍이 열리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사먹으며 휴대폰을 살피는데 부재중 전화가 한가득 쌓여있다.
[실비아]
[부재중 전화 6]
"응? 실비아?"
쌓인 부재중 전화에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나? 불안한 마음이 들어 서둘러 실비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리! 전화 해줬네요!
"아침에 전화 했잖아요? 혹시 무슨 일 있어요?"
-보고싶어서요. 근데 왜 이렇게 전화 안받았어요?
묘하게 날카로운 어투다.
"알잖아요. 등판 날에는 무음으로 바꿔두는 거."
내 루틴이라면 루틴이다. 그제야 생각이 났는지 귀엽게 웃는다.
-에헤헤, 까먹었다.
"으이그. 무슨 일 없는 거 맞죠?"
"히잉, 그냥 무지 보고 싶었어요... 이번 촬영 끝나고 리 집에 있어도 되요?"
"어, 음...."
-...안되요? 왜요? 무슨 약속 있어요? 누구랑요?
한마디도 안하고 일정 생각한건데.
정확히 네마디가 날아온다.
첫경험 이후로 살짝 달라진 실비아가 요즘 좀 신기하다.
묘하게 적극적으로 변했다고 할까?
"그냥 일정 생각하고 있었어요. 촬영 언제 끝난다고 했죠?"
-으음... 아마도, 5월 20일 즈음요?
"그럼 23일쯤 보겠네요. 22일까지 원정 일정이거든요."
-히잉... 알겠어요. 그럼 이번엔 내가 리의 집으로 갈게요.
"알겠어요. 그 때 봐요.
-오늘 경기 휴대폰으로 지켜볼게요. 사랑해요. 내 사랑.
조금 집착 어린 모습이 보이는게 첫날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 되어가는 것 같았지만.... 요즘은 그 모습에 묘하게 짜릿함이 느껴진다.
저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나한테 집착을 하다니.
그에 마음 속 깊이 잠들어있던 소유욕이 고개를 슬쩍 든다.
집착하는 여자가 내 취향이었나?
실비아가 내 위에 올라타 꽉 껴안으며 '어디 가지마요' 라고 속삭이며 허리를 흔드는 생각을 하니 척추뼈로부터 시작된 쾌감에 물건이 슬쩍 고개를 들던 찰나 샌드위치 가게임이 생각나 서둘러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물었다.
샌드위치 가게에 나와 훈련장에 도착했는데 아쿠냐 주니어가 묘한 눈초리를 보낸다.
"리, 왔어? 미리 축하한다고."
"뭐가? 축하할 일이 따로 있나?"
"일주일도 안되서 인스타그램 팔로우가 200만명 찍혔다면서? 메이저리그 최단 기록이라던데 역시... 잘생긴 놈은 다 빠른건가? 너 조루지?"
"뭔 개소린가 했네. 잘생긴거랑 빠른거랑 뭔 상관이야? 나 조루 아니거든?"
며칠 전에 실비아가 그렇게 앙앙댔는데.
누가 누굴보고 조루라는거야?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남의 성생활 평가하지 마시고 갑자기 왜 그래?"
"칫, 부러워서 그런다. 난 아직도 10만따린데 넌 200만이라니...."
"큭큭, 부러우면 잘하시던가."
"이씨, 잘하고 있거든? 그냥 너가 잘생겨서 그런거겠지!"
"그럼 잘생기시던가."
".... 치사한 새끼. 오늘 경기 망해버려라!"
씩씩대며 방망이를 챙기고 라커룸을 나간 아쿠냐 주니어를 보며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망할래야 망할수가 없네요~"
허공에 떠있는 한 창을 바라보며.
1.
2017년 5월 1일. 토론토 선발 등판 3일 전.
-띠잉! 띠잉! 띠잉!
며칠 뒤 있을 토론토와의 선발 등판에 대비해 컨디션 관리차 일찍 잠들었던 나는 연신 울려대는 진동 소리에 잠이 깨 여전히 울고있는 폰을 찾으러 몸을 일으켰다.
보통 때 같으면 실비아가 깨워줬을텐데라고 생각하며 알람을 끄기 위해 휴대폰의 잠금을 해제하는데 순간 놀라 휴대폰을 땅에 떨어뜨렸다.
-타닥 타앙
"이게 뭐야!"
땅에 떨어진 휴대폰을 조심스레 들어올린 나는 연신 울려대는 진동음부터 설정에 들어가 무음으로 교체했다. 휴대폰 알림바엔 온갖 DM 메세지와 팔로우 메세지가 쌓여있었다.
[인스타그램 999+]
"아, 그러고보니 오늘 자정에 올렸다고 했지?"
어젯밤 에밀리에게서 인스타그램에 오늘 자정부터 사진을 올린다고 연락을 받긴 받았는데 내가 모르고 알람 설정을 켜놨나보다.
다시 한 번 휴대폰을 살펴보는데 왜 스포츠 스타들이 스캔들이 많은지 그 이유를 좀 알것 같았다. 자신을 언제부터 알았다고 사랑을 고백하는 메세지부터 98번 내 유니폼과 티팬티를 입고 허리라인과 엉덩이를 들어내 화끈한 뒤태샷을 보내질 않나, 심지어 누드 사진까지 보낸 여자도 있었다. 그리고 첫 게시물엔 댓글이 한가득이었는데 온갖 욕설이 섞인 보스턴 레드삭스 팬들과 뉴욕 양키스의 팬들이 앞다퉈 싸우고 있었다.
의외로 신기한건 한국 팬들이 꽤 적다는 거다.
'해외 팬들이 너무 많은건가? 음.. 팔로워가...'
팔로워가 궁금해 프로필 창으로 들어가보니 순간 입을 떡 벌렸다.
"뭐...? 120만?"
이는 뉴욕 양키스에서 최대 팔로워는 기본이고 몇 년간 쌓아왔던 마이크 트라웃과 브라이스 하퍼와 비슷한 수였다.
그걸 하루만에 거의 따라잡다니.
물론 아직 몇 십만이 부족했지만... 아직 새벽인 한국에 소식이 전해지면 분명 더 오를터였다.
그리고 그 순간 시스템 메세지 창이 쏟아져나왔다.
[10만 팔로우 달성! 하급 랜덤 선물박스가 증정됩니다.]
[하급 랜덤 선물박스]
[기능: 야구에 대한 하급 재능을 랜덤으로 습득합니다.]
"오픈은 어떻게 하는 거야? 그냥 오픈하면 되나?"
그에 반응이 없던 랜덤 박스가 허공에서 빛이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빛번짐이 점점 확대되더니 빵! 하는 폭죽소리와 함께 상자가 열렸다.
[당첨!]
[획득: 포심 패스트볼 경험치권]
[효과: D등급 이하의 포심 패스트볼의 경험치를 모두 채워줍니다.]
그것을 보고 나는 쾌재를 불렀다. 안그래도 D등급에 들어서고서도 경기장에서만 한구에 경험치가 2포인트씩 오르는 바람에 슬슬 힘이 부치는 기분이었는데 마침 딱 좋은 타이밍에 필요한 것이 나왔다.
곧바로 사용하겠다는 생각을 하자 오랜만에 보는 구종별 메세지가 떴다.
[포심 패스트볼(D급)]
[다음 단계까지 필요한 경험치 728/1000]
[체인지업(D급)]
[다음 단계까지 필요한 경험치 370/1000]
[커브(D급)]
[다음 단계까지 필요한 경험치 252/1000]
[슬라이더(D급)]
[다음 단계까지 필요한 경험치 156/1000]
[커터(D급)]
[다음 단계까지 필요한 경험치 188/1000]
[포심 패스트볼 경험치권을 사용하셨습니다.]
[포심 패스트볼(D)] -> [포심 패스트볼(C)]
너무나도 많이 뜬 메세지 창에 한눈을 팔기도 잠시 띠링 소리와 함께 새로운 메세지 창이 떠올랐다.
[100만 팔로워 달성! 중급 랜덤 박스가 지급됩니다.]
중급 랜덤 박스?
하급 랜덤 박스로 D등급의 포심 패스트볼을 단번에 C등급으로 올렸는데, 중급 랜덤 박스라.
왠지 모르게 손끝이 저려온다.
이럴 때마다 안좋은 일이 일어나곤 했지만 신경쓸 틈도 없이 쿵쿵대는 심장을 배경삼아
바로 오픈했다.
그리고,
[당첨!]
[획득: 포심 패스트볼 경험치권]
[효과: C등급 이하의 포심 패스트볼의 경험치를 모두 채워줍니다.]
믿을 수 없는 시스템 메세지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1.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리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3차전.
평일 낮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뉴욕양키스 팬들이 양키 스타디움을 가득 메웠다. 삼삼오오 모인 팬들의 손에는 [1위를 수성하자!] 라는 글귀가 적힌 종이판을 들고 있었다. 캐나다에서 원정 팀인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따라 온 수백명의 팬들이 그것을 보고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개새끼들. 아주 그냥 지들이 이미 이겼다는 듯이 행동하는구나."
"빌어먹을 새끼들. 남들보곤 다 촌놈이라고 비하하는 새끼들이 하는 짓거린 상대를 존중하지도 않는다니까. 오늘 경기 처발라버리면 좋겠다."
"그럴거야. 요즘 우리 팀이 장난 아니잖아? 최근 6경기 5승 1패라고. 다나카한테 진게 아쉽지만 루키 하나 뚜드러패는건 어렵지않을거야."
토론토 한 팬의 말에 옆에 같이 원정팀 토론토를 응원하러 찾아온 팬이 걱정스레 입을 열었다.
"근데.... 있잖아.. 저 리라는 선수, 지금 아메리칸 리그에서 투수 부문 전부다 1위던데 가능할까?"
"... 그건 시즌 초반이라 초심자의 행운같은 거라고. 잘 보라고. 오늘 경기 2이닝도 못버티고 나가떨어질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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