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메이저리거 (48)화 (47/207)

4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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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등판 하는 날이다.

그리고 오늘 경기는 4월의 투수 상과 신인상이 걸린 중요한 경기였다.

오늘 경기 상대는 아메리칸 동부지구 1위로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였다.

1.

볼티모어 오리올스.

한국 선수들과 악연이 많은 구단이지만 이만큼 신기한 구단도 없었다.

매년 시즌이 시작되고 시즌 초반인 5월 초,중순까지는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해 1위 선두를 달리는 팀이지만 시즌 중반에 들어선다면 하위 순위로 되돌아가는 팀.

그래서인지 낮은 순위의 최종 성적 때문에 팬들의 시선에선 약팀의 이미지로 상당히 강한 팀이었지만 시즌 초반에는 그 누구보다 강한 팀이었다.

과학과도 같은 기이한 현상에 팬들은 '이번 시즌 볼티모어도 볼티모어 했구나' 싶을 정도로 시즌 초반엔 압도적인데

역시나 이번 시즌에도 신인들이 센세이셔널한 성적을 내는 뉴욕 양키스를 제치고 아메리칸 동부지구 1위를 달리고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오늘 내 상대는 시즌 초반만큼은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였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에서 나는 초반부터 위기에 봉착했다.

-따악!!!!

[아, 리가 벌써 실점을 하는군요. 이제까지와의 경기와는 조금 다른 모습인데요?]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1번 타자 리카르드 선수를 다섯 구 만에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낼 때만 해도 오늘도 순조롭게 풀리나 싶었거든요.]

[사실 리카르드 선수와의 맞대결에서도 두 번의 페어볼 타구가 나올 뻔했을 만큼 위험천만했었거든요? 하지만 운이 좋게 파울 판정을 받음으로써 98마일 바깥쪽 포심으로 헛스윙 삼진을 잡아냈습니다만....... 어쩌면 처음부터 위태위태했는지도 몰랐겠습니다.]

[리카르드 선수를 이어 타석에선 2번타자 존스 선수가 내야 안타로 출루하더니 3번 타자로 나선 마차도 선수가 삼루수 페어볼로 2루 적시타를 때려내며 1실점을 했거든요? 지금까지 경기 투구 내용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

[무실점 이닝이 4월 마지막 등판에서 무너지는군요. 아쉽습니다.]

[비록 지금까지 몇 경기 안 뛴 어린 루키선수 였지만 그동안 이렇게 연속으로 맞아 나간 적은 없었는데 이게 무슨 일일까요. 혹시 몸에 이상이 생긴 걸까요?]

[글쎄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양키스에서 애지중지하는 선수인 만큼 경기 전날 몸 상태를 일일이 구단 주치의가 살펴본다고 캐시먼 단장이 인터뷰한 바가 있었거든요.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어린 루키니까요.]

회귀 후, 메이저리그에서 첫 실점을 기록했다.

뭔가 갑갑해 쓸데없이 달궈진 어깨를 빙빙 돌리고 있을 때 어느새 마운드에 올라온 개리 산체스가 걱정스레 물었다.

"어디 안 좋아?"

"아니, 그냥 좀...던질 데가 없네."

'왜 이러지?' 라고 말을 잇자 나를 바라보고 있던 개리 산체스의 표정이 굳었다.

"컨디션이 안 좋은 거 아니야? 보통 컨디션이 안 좋은 투수들이 그런 현상을 겪는다고 사바시아 씨가 그랬던 게 기억이 나는데.... "

"그럴 수도 있겠지. 그리고 스프링 캠프 전에 미리 몸을 풀어놓은 것도 있겠고."

"컨디션이 안 좋은 거면 평소처럼 정면승부는 피하자. 계속 가다간 뚜드러 맞을 수도 있겠어."

"그러고는 싶은데... 마차도한테 그러다가 맞았잖아."

"그것도 그렇네.... 일단 이번 이닝은 끝내야 고민이라도 해볼 텐데... 오늘 볼티모어 애들이 만만치가 않아서...이럴 땐 어떡해야... 음..."

아직 1회 초라 더 살펴봐도 되겠지만 투수들 사이에선 유독 그런 날이 있었다.

무슨 투구를 해도 얻어맞을 것 같은 날.

이런 날에는 무엇을 해도 얻어맞고 일찍이 강판당하는 날이다.

전생에서도 이런 날이 드물었는데 아무래도 큰 키에 맞춰 급격히 흐트러진 밸런스를 맞추느라 혹사한 것이 원인인 것 같았다.

'무엇보다 시즌 초반 오리올스 놈들이 만만찮기도 하고'

시즌 초반 최강자라는 별칭답게 오늘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선수들은 명장이 벼린 칼날과도 같았다.

유인구를 던졌음에도 꿈쩍도 하지 않더니 평소처럼 존 안에 욱여넣으면 귀신같이 쳐냈다.

심지어 심판이 보기에도 애매하게 카운트를 줄 것 같은 공은 어떻게든 파울이라도 치려고 매달렸다.

언젠가 메이저리그에서 실점 할 것이라고 예상하였지만 단순히 컨디션이 안 좋아맞게 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강타선을 또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무서움이라는 감정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후우...."

"어떻게 할래? 리. 네 결정에 따를게. 벤치 사인도 그렇고."

우선 개리 산체스의 말대로 일단은 이번 이닝을 끝내야 한다.

눈앞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개리 산체스가 입을 열었다.

"일단 급한 대로 투구 수를 최대한 늘리고 피하면서 던지자. 포심이 좀 밋밋한 것 같으니까 변화구 위주로 던지고. 슬라이더 비중을 높히는 게 어때?"

"으음... 알았어. 개리, 우선 네 말대로 하고 이닝 끝나고 고민해보자."

개리의 말은 정확했다.

컨디션이 안 좋을 수록 평소와 다르게 변칙적인 경기 운영을 할 수밖에 없다.

상대방은 내가 컨디션이 좋았을 때의 투구 기록에 대비해 준비 해왔을 테니까.

물론 내가 경기를 많이 뛴 선수였다면 안 좋은 컨디션을 보고 다르게 던질 것이라고 상대 팀에서 예상해 대비할 수도 있겠지만 다행히 아직은 메이저리그에서 이제 5경기 등판한 루키에 불과했다.

-뻐엉!!!

"스트라잌, 아웃!!!"

다행히 임시방편으로 마련했던 개리 산체스의 노림수는 통했다.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완벽한 슬라이더에 스트라이크 삼진!!! ]

[최근 타율이 4할에 육박할 정도로 컨디션이 좋은 볼티모어 4번 타자 트럼보 선수를 6구 만에 삼진으로 잡아냅니다!! 이거.. 투구 내용이 조금 바뀌었죠?]

[네. 개리 산체스와 마운드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도움이 됐나 보군요. 평소 포심을 자주 던지던 것과 달리 6구 중 자그마치 5구가 변화구였습니다. 방금 삼진으로 잡을 때 던진 공도 슬라이더거든요? 평소 리의 전체 투구 중 8%의 구사율을 자랑했는데... 벌써 3구나 던졌습니다.]

[상당히 센스있는 투구네요. 자신이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평소 파워 피처의 이미지를 버리고 커맨드와 제구에 집중하고 있네요.]

[매번 리의 경기 중계를 할 때마다 하는 소리 같아 식상하시겠지만 정말 루키 답지 않군요. 하하하. ]

-따악!!!

[체인지업에 크리스 데이비스 선수를 땅볼로 처리합니다. 평소보다 구속은 낮지만 정말 완벽한 제구력이네요. 존 바깥쪽으로 급격히 내리꽂는 완벽한 체인지업이었습니다.]

[초구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연속 피칭으로 땅볼 유도를 기가 막히게 해냈습니다.]

[리가 역동적인 투구 내용으로 1회 초 위기를 벗어납니다.]

다행히 1회 초 나는 1실점만 하며 이닝을 끝낼 수 있었다.

투구 수가 많이 늘은게 흠이었지만 대량 실점보단 나았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덕아웃에 들어온 내가 평소와 다르게 심각한 표정으로 앉으려 하자 팀 사기 버프를 받았음에도 타자들이 조용히 입을 열지 않고 내 곁으로도 다가오지 않았다.

한 사람만 빼고.

개리 산체스가 포수 마스크를 벗으며 옆에 앉더니 좋지않은 표정을 하고 묻는다.

"어떻게 하면 될까?"

"글쎄...."

1이닝이야 변화구 위주의 피칭으로 변칙적인 투구를 한다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었다.

타순이 돌수록 선수들은 내 공이 눈에 익을 테고 변화구 위주의 피칭을 한다는 것을 이닝이 거듭될수록 눈치를 챈다면 타석에서 변화구만을 노리고 타이밍을 맞출 것이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불리해지는 구조이자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는 탑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전생처럼 일찍이 마운드에서 내려와야 할까?

오늘 같은 날, 이런 날에는 많은 투구 수를 던지면 던질수록 자신을 옭아매는 기분이라 던지기 싫었다. 전생에서도 그랬고.

그러면 정말 피해야 할까?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메이저리그에서 선발로 뛴다면 언제든 찾아오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매번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마다 경기를 건너 뛸 수 없는 프로 선수 입장에선 상당히 복잡할 수밖에 없었는데 전생에서는 구단의 배려를 받고 일찍이 고의 강판을 하고 그랬었던 경험이 많았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럴 때마다 탈출구를 찾지 않고 스스로 그 상황을 외면했던 자신이 멍청하게 보였다.

왜 야구의 신이 처음 계약 자리에서 내 정신 상태를 뜯어 고쳐주고 싶어 했는지 알 것 같기도 했고.

"이대로 몇 이닝 버티다가 내려갈래? 감독님도 여기 오기 전에 물어보시더라고. 너 오늘 컨디션 안 좋아 보이는데... 계속 뛸 생각이냐고."

전생이었다면 '그래야 할 것 같아.' 라고 팀의 배려를 받았겠지만.... 글쎄.

이번 생은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량의 실점을 할 것을 알고서라도 미래의 나를 위해서라도 우직하게 던져야 할까?

그때 다음 이닝부터 할 투구 내용을 개리 산체스와 내가 심각하게 이야기하려 할 때 한 남자가 다가와 앉았다.

"리."

고개를 돌려보자 한 남자가 보였다.

그 사람은 2009년부터 양키스에서 뛰어오고 여전히 37살의 나이로 여전히 위력적인 투구로 팀의 3선발을 맡은

CC 사바시아였다.

그런 그가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내가 클리블랜드에서 데뷔해서 지금까지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내 밥이었는데. 어때.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알려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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