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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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키스타디움에 수만 명의 팬이 찾아왔지만 오늘은 유독 더 소란스러운 느낌이었다.
[2017시즌 개막 후, 2승 4패 위기의 양키스!!!]
[성호 리, 위기의 뉴욕양키스를 구할 수 있을까?]
[19살의 루키에게 기댈 수 밖에 없는 뉴욕 양키스! 위기에 놓이다!!]
조회수가 많은 기사 중엔 모두 '위기' 라는 단어가 들어갔고 시즌 초임에도 뉴욕 양키스의 답답한 경기력에 팬들은 분노했다.
-아니 장난하는거야? 캐시먼은 뭐하는 거야? 팀이 시즌 초반부터 불화설에 삐걱거리고 있는데 손도 쓰지 못하다니. 시즌을 위해서라도 지금이라도 해고해야돼.
-조 지라디 감독도 이상하다니까. 나름 베테랑 감독이랍시고 덕아웃에서 맨날 분위기만 무드있게 잡고 하는거라곤 아무것도 없다고 ㅡㅡ
-이번 경기도 지면 2승 5패야. 최악이라고. 이러다가 동부지구 5위로 내려앉겠어. 난 죽어서도 그 꼴을 못본다고!!!!
ㄴ 이번 경기도 진다면 프런트에 전화해 당장 캐시먼 그 놈의 해고 시위를 시작할거라 전할거라고!!!
ㄴ 어쩌다 뉴욕 양키스가 이렇게 됐는지 참.... 조 지라디 감독은 시즌 시작부터 뉴코어니 뭐니 해놓고 다 망했잖아ㅠ
-이 새끼들 지금 뭐라는거야? ㅋㅋㅋㅋ 다 망해? 애런저지랑 리가 망했다고? 6경기 홈런 2개랑 9이닝 17K가 망한거면 니네 인생은 얼마나 망한거냐 ㅋㅋㅋ
ㄴ 2222 입벌구 새끼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망했다느니 ㅋㅋㅋ 이제 6경기 했는데 뭐 이리 호들갑이여 ㅋㅋㅋㅋㅋㅋ
-나, 양키스 1997년부터 응원해온 본좐데 나도 가만히 있는데 니들이 뭐라고 떠드는거냐? 리는 진짜라고. 잘봐. 오늘 분명 니들은 경기 끝나고 떡벌어진 입에 벌레가 들어가도 모를테니깐 ㅋㅋ
ㄴ ㅋㅋㅋ 20년 본좌왔누 ㅋㅋㅋ 시범경기 때만해도 성호 리를 얼굴값때매 선발시켰다느니 뭐니 음모론 퍼뜨리다가 직관가서 팬됐다더니 진짜네?ㅋㅋㅋㅋㅋ 개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20년 본좌다. 너도 직관 가봐. 오늘의 양키스는 무적이니까. 1점만 내도 이길걸? 잘보라고! 이 글은 성지가 될 것이니까!
1.
뉴욕 타임즈의 1면 기사를 본 캐시먼은 신문을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이런 씨발! 몇 번을 말해야 돼? 싸우지도 않았고 오해라니까! 모리스. 인터뷰 제대로 내보낸 것 맞아?"
캐시먼의 비서로 새로 발령받은 모리스는 경직된 상태로 대답했다.
"네, 뉴욕 타임즈부터 시작해서 단독 기사로 시간을 두고 내보내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팬들의 반응이 너무 좋지않다보니까.... 확실하게 밀어주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캐시먼은 모리스의 말에 손가락으로 책상을 일정한 속도로 두들겼다.
"선수들 기싸움은 현재 진행 중이고?"
"네, CC사바시아나 맷 선수가 사이에 끼어서 중재라도 해보려합니다만..."
"개 같은 것들. 내가 젊은 것들 똥까지 이 나이에 치워줘야 돼? 서로 오해인걸 알면 풀면되잖아.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후...."
길게 한숨을 내쉰 캐시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바시아나 맷은 팀 리더 스타일이 아니야... 그나마 개리 산체스가 답이긴 한데.."
이미 답은 정해진 거나 다름 없었다.
현재 뉴욕 양키스는 선발진도 크게 문제지만 무엇보다 구심점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중심이 없다는 것은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무게 중심이 어느순간 한쪽으로 쏠려 무너지기 마련이니까.
"저... 개리 산체스보단.. 다른 선수가 있긴한데..."
모리스의 말에 캐시먼은 눈썹을 살짝 올려 이어 말해보라는 듯 제스처를 취했다.
그에 모리스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 리라고.... 있지않습니까? 비록 외국인 용병이긴 하지만 소통에도 문제 없고 사생활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운동밖에 안한다고 혀를 내더군요. 더군다나 그 소심한 루이스 세베리노 선수하고도 많이 친해진 상태입니다. 심지어 요샌 불펜진들이나 타자들에게 가끔 코칭도 해줘서 두루두루 친하답니다. 선발진은 말할 것도 없구요."
"흐음...."
캐시먼은 모리스의 말에 다시금 손가락으로 책상을 일정한 속도로 두들겼다.
툭,툭,툭,툭,툭
"리는 아직 안 돼. 겉으로 보기엔 적응 문제도 해결된 것 같겠지만 모르는 거라고."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차라리 트레이드라도 해서 베테랑 한 두명은 더 데리고 와야됩니다. 이러다간 곪아 터질 수도 있으니까요."
곪은 상처도 오래두다보면 터지는 법이다.
그것을 캐시먼 단장도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모리스의 말을 들어보니 순간 나쁘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그 무엇을 떠올린 순간 책상을 두들기던 캐시먼의 검지 손가락이 멈췄다.
"리, 리. 리. 그래. 좋은 방법이 생각났어. 리는 오늘 컨디션 어떻대?"
좋은 생각이 낫다던 캐시먼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그것을 모리스 비서관이 의아하게 쳐다봤지만 캐시먼은 개의치않았다.
당장 오늘부터 시작하는 템파베이의 1차전.
무언가 알 수 없는 기대감이 차오르자 캐시먼의 심장이 쿵쿵 뛰어대기 시작했다.
2.
경기 당일.
나는 아침 일찍 조깅으로 하루를 열었다.
아침부터 날씨가 화창한 것을 보니, 몸도 개운해진 기분이 들었다.
'보통 이런 때는 공이 잘 채이던데. 흠, 오늘 왠지 컨디션이 좋은데?'
가끔 그런 날이 있지않나.
컨디션이 너무 좋다고 느끼는 날.
가만히 있어도 들뜨고 힘을 평소보다 덜 들여 던져도 공이 쭉쭉 박히는 날.
전생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해보자면...
'이런 날 나는 언터처블이었지.'
그리고 상대는 내 데뷔전 9이닝 17K의 제물이었던 템파베이였다.
왠지 벌써부터 경기가 기대되어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3.
"오, 리! 안녕하세요. 오늘은 일찍 나오셨네요?'
"안녕하세요. 베스 씨, 오늘도 고생하시네요."
양키스의 경비원이라 불리는 베스씨와 기분 좋게 인사를 하고.
"와아! 리다! 아빠! 저기 리에요!"
귀여운 꼬마 남자아이를 기분 좋게 안아주며 사인을 해주고.
-리, 오늘도 사랑해요. 보고싶어요. 경기 끝나고 보러가도 되요?
실비아와의 기분 좋은 통화를 마치자 어느새,
경기가 시작되는 시간이 다가왔다.
양키 스타디움은 시즌 홈 개막전부터 전석 매진이라는 기분 좋은 출발을 하였다. 드문드문 보이는 '캐시먼 out' 이라던가 '조 지랄한다' 라는 요상한 문구가 보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물론 자리의 상당수가 뉴욕 양키스의 진짜 팬들이었지만, 시즌 개막 후 팀의 성적 저하로 얼마나 팬심이 흉흉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아빠, 오늘은 양키스가 이길 수 있겠죠?"
아침 일찍 성호에게 사인을 받았던 남자 꼬마 아이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러지않을까? 리가 템파베이 전에서 무척이나 잘했잖아."
"맞아요! 그 때 정말 멋있었다구요! 저는 꼭 커서 리같은 선수가 되고싶어요.!"
입에 바람을 넣으며 볼을 부푼 상태에서 다짐하는 아들의 모습이 귀여운 나머지 꼬마의 아버지는 참지 못하고 자신의 아들을 들어올렸다.
"그러렴. 이 아빠가 우리 아들이라면 뭐든지 도와줄테니까. 아빠가 뭐라했지?"
"가족과 함께라면 무엇이라도 헤쳐나갈수 있다 했어요! 그럼... 양키스도 우리랑 함께니깐 오늘 꼭 이기겠죠??"
아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하자 아버지는 쓰게 웃었다.
자신도 뉴욕 양키스를 몇십년간 응원했던 팬이었지만, 2010년 들어서 양키스의 성적이 처참하다는 것쯤 하나는 알 수 있었으니까.
특히 이번 시즌은 전 시즌보다 더더욱 그랬다.
물론 이번 경기 이후로 갑자기 더 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게 스포츠였고 스포츠 세계에선 당연한 것이란 없다는 것은 우리 5살 먹은 아들도 아는 사실이니까.
과거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던 영광의 양키스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연패를 끊고 위풍당당하게 연승을 할 수 있을수도 있다.
아버지는 불안히 자신을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아들에게 활짝 웃으며 답했다.
"리를 믿어보자. 그는 이제까지의 선수들과 다를 거라고. 아버지는 그렇게 굳게 믿고있단다."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서.
'리, 오늘 경기라도 제발.. 부탁하오.'
3.
미국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야구 팬들 역시 기다리고 있었던 이성호의 두번째 선발 등판.
2015년까지 최고 호황을 맞았던 대한민국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2016년부터 한풀 꺾이는 모양새를 보여주었다.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류함진은 부상의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했는지 불안한 시즌 출발을 하였고 다음으로 팬들에게 킹캉이라는 별명도 만들어지며 사랑받던 강정후는 음주운전 하나로 커리어가 꼬였다.
이제 남은 선수는 단 한명. 투수 이성호였다.
한국 선수들의 부진과 악재 속에서 이성호의 메이저리그 선발. 그것도 시즌 홈 개막전에서의 선발 등판은 메이저리그의 한국인 활약을 기다려오던 팬들에게 최고의 선물이었다.
40억원을 포기하고 마이너리그에도 거치지않고 곧장 메이저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기까지 했으니.
모든 메이저리그 한국 팬은 이성호의 선발 등판전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오늘.
기획이사 김기석을 필두로 스텝들은 아침 황금 시간대 공중파 BMC의 중계석 앞으로 전부 모였다.
"오늘 잘 하겠죠?"
한 스텝의 질문에 김기석 이사는 호탕하게 웃으며 질문했던 스텝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흐흐, 잘보라고. 내가 보기엔 오늘 이성호? 사고 한번 크게 칠테니까. 내가 아까 화장실갔을때 이생각하다가 손가락에 오줌이 묻었다니까? 이게 뭐겠어? 액땜이란거지. 흐흐흐. 오늘 기록 하나 나온다. 내가 보기엔."
"아... 네."
물을 뜨러간다 핑계대고 어깨에 손에서 살짝 벗어난 스텝이 김기석을 째려봤다.
그 모습을 본 해설위원들과 스텝들이 한차례 웃었고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마운드 위에 서 개리산체스 선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이 나오고, 몇 차례 연습 피칭을 했더니 드디어 경기가 시작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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