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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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독실에 들어갔다.
"푹 쉬고 있나?"
"네, 아직 팔이 올라가진 않습니다만... 감독님 덕분에 잘 쉬었습니다."
"흠... 어제 무리한 만큼 푹 쉬게나. 오늘 부른건 다름이 아니라 다음 등판 일정을 알려주려고 불렀네."
뉴욕 양키스는 시즌 개막부터 원정 6연전이었는데 템파베이 시리즈가 끝나면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3연전이 시작된다.
"원랜... 팀 케미를 위해서라도 볼티모어 전에 따라와야되지만... 코치진과 상의해보니 자네는 뉴욕에 미리 가있는게 낫겠어."
"예? 그 말씀은..."
"이번에도 데뷔전 일세."
"네에?"
"홈 데뷔전 말일세. 허허. 나름 농이었는데 재미가 없었나보군. 미안허이."
"하하하, 아닙니다. 다만... 아닙니다.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정확히는 홈 데뷔전과 홈 개막전을 맡길 생각이야."
"다나카 다음 등판이군요."
"그래, 알다시피 자네는 우리 팀의 2선발이니까. 음.. 볼티모어와의 3차전 중간 하루 쉬니 총 6일은 쉬겠구만. 그때까지 컨디션 관리 잘 하고."
"예, 감독님."
"나가봐."
"예, 감독님. 감사합니다."
1.
원래 마운드에 서지 않음에도 팀에 합류를 해야 됐지만 어제 경기를 무리해서 던진 만큼 감독님이 다음 등판 전까지 휴식을 주셨다.
그덕에 플로리다주에 있는 숙소에서 이번 템파베이와의 3차전을 시청했는데.
[cc사바시아 오늘 컨디션이 너무 좋아보입니다.]
[아마도 조 지라디 감독의 전술이 적중한 것 같습니다. cc사바시아 선수도 이제 37세거든요?]
[벌써 그렇게나 됐군요. 사바시아 선수가 사이 영 상을 받은게 엊그제 같은데 말입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사바시아 선수는 참 대단했죠. 물론 지금도 대단한 선수입니다. 2015년 부상 당한 무릎을 위해 몸무게까지 늘려가며 버텨줘서 2016시즌에는 은퇴하나 싶었는데 보란 듯이 2016시즌부터 다시 부활했습니다. 사실 팬들은 준수하게 이닝만 먹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37세의 사바시아가 템파베이의 3차전에서 벌써 5이닝 무실점입니다.]
[저런게 베테랑의 품격이죠. 허허. 참 대단합니다.]
cc사바시아는 시범 경기 등판을 거의 거르고 몸 만들기에 집중한 만큼 시즌에 들어서자 쾌조의 스타트를 보였다.
[하지만 어제와 달리 뉴욕 양키스의 방망이는 잠잠합니다.]
[다행히 사바시아 선수가 막아주고 있습니다만.... 투구수가 많고 템파베이의 콥 선수도 만만치 않거든요?]
[헛스윙 삼진!!! 만만치 않다는 말을 듣자마자 애런 저지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냅니다.]
[콥 선수의 체인지업은 정말 명품이네요.]
흥미진진한 경기에 위닝 시리즈라는 결과가 걸려 있는 만큼 나는 손을 꽉 쥐며 텔레비전을 바라봤다.
"애런, 한번만 치자고"
[어느 덧 10회 초, 아직도 스코어가 0대0인 상황에서 뉴욕 양키스의 공격입니다. 선두타자는 애런 저지. 어제와 달리 오늘은 4타수 무안타에 그치고 있습니다.]
[애런 저지 선수는 전시즌부터 하이 패스트볼이 약점이었거든요? 시범경기에서부터 갑자기 스윙 폼을 바꾸더니 하이 패스트볼을 공략하긴 했습니다만... 변화구 대처가 미흡했죠?]
[아마 아직 바뀐 스윙 폼이 몸에 안익는 것 같습.... 말씀드린 순간!!!!!!!!!! 애런 저지!!!!!! 씨~~~~유~~~바!!!! 이게 넘어갑니다!!! 땅에 처박힐 것 같은 콜로메 선수의 커브를 보란듯이 퍼올려 넘겨버립니다!!! 엄청난 힘입니다!!!!!!!]
[미친듯한 파워네요. 괜히 70점 이상의 스케일을 받은게 아닌듯 합니다. 초구 땅에 처박히는 커브를 순수 손목의 힘으로 넘겨버립니다!!!!!!]
애런저지가 10회초 두번째 타자로 나서 이틀 연속 무사에서 홈런을 치는 것을 보고 한차례 환호하고 텔레비전을 끄자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우웅-!
-리, 저 좀 늦을 것 같아요! 괜찮을까요?
-(햄토리가 울상짓는 이모티콘)
-(미안해하는 이모티콘)
어제 경기가 끝나고 연락했던 야엘 셀비아는 다행히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연락을 받아주었다.
특이한건 연락을 하자마자 1분만에 답장이 와서 조금 신기했다.
'연락을 기다린건가?'
다시금 생각해보니 휴대폰 앞에서 자신의 연락을 기다리는 귀여운 실비아가 떠오르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제 연락했던 실비아와는 생각보다 이야기가 잘통했다. 무엇보다 목소리가 너무 좋았다. 이야기도 잘통하고 목소리까지 좋아서 시간이 지나가는줄 모르고 통화했다가 너무 늦은 것 같아 전화를 끊으려 할 때 실비아가 무언가를 바래 보이는 것 같아 혹시나 싶어 에프터 신청을 했더니 들뜬 목소리로 오케이 사인을 보내줬다.
'음?'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다고 메세지를 보낸 실비아에게 알겠다고 답장을 보내려는 순간 그녀의 프로필이 업데이트가 되어 내 눈길을 끌었다.
해변가에 찍은 사진인 것 같은데 궁금해 프로필을 클릭해봤다.
(해변에서 비키니를 입고 찍은 사진)
[Flower _ Johnny Stimson]
새로 업데이트가 된 건 두가지였는데 하나는 앞서 본 사진이었고 프로필 배경음악이 생겼다.
'꽃? 팝송이네.'
궁금해 검색해보고 한번 들어보자 노래가 내 스타일이어서 한차례 완곡했다.
'실비아가 노래 스타일도 나랑 겹치는구나'
-실비아, 프로필 음악 좋던데요?
-아, 들었어요?ㅋㅋㅋㅋ 방금 업데이트 한 건데!
-네. 제 스타일이어서 지금도 듣고 있는 중 ㅋㅋㅋㅋ 근데 이거 가사가 좋네요.
대충 썸을 뜻하는 가사 내용이었다.
확신하지 못하는 남자에게 접근을 바라는 그런 가사 내용 이랄까....
문득 갑자기 업데이트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실비아, 혹시 이 노래 저때문...
도도도도도--!
빠른 손길로 지워냈다.
'말도 안되지. 오버하지말자.'
요즘 얼굴이 잘생겨져 자신감이 너무 과도했나보다.
-실비아, 혹시 배경사진으로 올려져있는 해변 어디에요?
-왜요??
-아, 예뻐서 가보고 싶어서요.
-예쁘죠? ㅋㅋㅋㅋ 플로리다주 해변이에요. 저희 집 근처!
응?
실비아가 플로리다주에 살았었나?
그에 대해 물어보자,
-아, 집은 플로리다주에 있어요. 여기가 일 년 내내 날씨도 좋고 선해서 살기 좋은 동네거든요. 일 할 때만 LA나 뉴욕에 있는 집에 살아요!
이렇게 답했다.
알고보니 모델들이나 유명 가수, 스포츠 선수들도 플로리다주에 집을 두고 일을 다닌다고 한다.
-리! 미안한데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요! 조금 있다가 약속 장소에서 뵈요!!!! 미안해요!!!
-(볼을 비비는 햄스터 이모티콘)
1.
트로피카나 필드가 위치한 플로리다 주 서부 해안가 도심.
4월 초인만큼 날이 선선해 긴팔셔츠를 입고 팔단을 절반으로 접고 반바지를 입고 나왔다.
이 시기에 유행하는 캐주얼 패션이었다.
실비아와 만나기로 했던 곳은 식당인데 플로리다주에서 가장 유명한 맛집이었다.
뭐 그래봐야 한국처럼 지역 음식이 있는건 아니고 그냥 고급 스테이크 집이었는데 이미 경험해본 실비아의 적극 추천으로 약속 장소로 잡았다.
식당 앞 조금만 걸으면 나오는 신호등 앞에서 휴대폰으로 오늘 경기를 이긴 양키스의 뉴스 댓글을 보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저 거의 도착했어요! 혹시 식당 앞에서 기다리고 계신가요?
"식당 앞에서 기다리긴 뭐해서 조금 걸으면 나오는 신호등 쪽에 있어요."
-아! 미안해요, 리. 거의 도착했어요! 어! 저거 리 맞죠?
신호등 건너편에서 익숙한 형상의 여자가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실비아였다.
어제와 달리 오늘의 실비아는 매듭 포인트로 허리라인을 들어낸 화이트 크롭 남방과 짧은 청자켓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늘씬한 다리와 허리가 부각되어 청순해보이면서도 섹시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매력적이던지 나도 모르게 꿀꺽, 군침을 삼킬 정도다.
"리! 많이 기다렸죠?"
"아뇨... 그다지 오래 기다리진 않았는데.. 혹시 일하시다가 바로 오신거에요?"
"네? 아,아뇨. 혹시.. 이상한가요?"
이리 물으며 자신의 몸을 한번 살펴본 실비아는 이내 조그마한 목소리로 '역시 너무 과했나? 하아... 어떡해, 그러니까 내가 너무 과할거 같다고 했잖아.' 라고 중얼거렸다.
그 모습이 어쩐지 귀여워 짓궃게 물었다.
"일이 바빴나봐요?"
"미안해요!! 일 때문에 늦은건 아니고, 그,그 할 일이 있어서...."
진심으로 미안한지 실비아가 고개를 푹 숙이고 울상을 짓는다.
그 모습이 귀여워 조금 더 놀리고 싶었다.
"저, 실비아.. 미안한데 다른 약속이 생겨서요..."
"네?..."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미안해요. 실비아가 이렇게까지 늦게 올 줄 몰랐어요. 여기 티켓이요."
사람을 속이려면 확실하게 속여야된다.
지갑에서 예약된 식당의 티켓증을 실비아의 손에 쥐어주자 잠시 멍하듯 허공을 바라보더니 정말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그,그래요.. 미안해요. 리, 바쁠텐데..."
고개를 푹 숙이는 실비아를 보자 아빠웃음이 나와 더 이상 속일 수 없었다.
"큭큭큭, 장난이에요. 푸하하하. 왜 이렇게 잘 속아요?"
그에 상황 파악이 됐는지 실비아가 황당하다는 듯 날 바라본다.
"진짜죠?"
"진짜죠. 늦었다고 해도 십분 늦었는데 제가 취소 하겠어요? 제가 연락했잖아요. 장난이었어요."
"하 씨, 저는 정말 십분때문에 늦어서 나랑 십분만 밥먹고 갈거였나? 생각했다구요. 취소한 것보다 그게 더 실망스러웠는데! 리! 다음부턴 장난치지마요. 아, 진짜!"
"큭큭큭, 미안해요. 들어가죠. 늦었어요."
실비아에게 등을 얻어맞은건 덤이었다.
은근 손이 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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