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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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정말 괜찮겠나? 당신은 리가 마이너리그에서 몇 년 보내야한다고 하지 않았나. 만약 자네가 끝까지 그랬다면... 리에게 한번 물어보기라도 하려했네만..."
뉴욕 양키스의 단장, 캐시먼의 질문에 조 지라디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눈을 동그랗게 뜬 캐시먼이 물었다.
"흠... 단순히 보스턴과의 투구 내용이 좋았다고 자네의 그 고집이 바뀌진 않았을거인데..."
조 지라디 감독은 리가 필리스 전 3이닝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캐시먼과의 대면 자리에서 리는 아직 경험이 필요하다며 마이너리그에 1년이라도 보내놓자고 추천했다. 그에 구단에서도 자신과 입지가 비슷한 조 지라디 감독의 면전에 당장 거절할 수 없었던 캐시먼은 계약 조건이 있으니 리가 계약 조건을 못지키지않는 이상 그럴 수 없다고 대답했었다. 하지만 보스턴과의 경기가 완전히 끝나고 자신을 찾아와 리를 정규시즌에 제대로 사용하겠다고 하는 조 지라디 감독에게 의구심을 가졌다.
"혹시 그 이유를 알 수 있겠나?"
조 지라디 감독 입장에서는 리는 단순히 수많은 루키 중 하나였다. 시범 경기에서 아무리 잘한 루키들도 정규시즌에만 가면 무너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한 선수 하나 쯤은 있는 법이다. 조 지라디 감독이 보기엔 세베리노가 그랬고 애런 저지가 그랬다. 그리고 얼마 전, 보스턴과의 경기에서 4이닝 이후로의 리가 그랬다.
페드로리아에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과했던 힘을 빼고 던져 삼진으로 잡아냈을 때, 퍼펙트 게임이 팀원의 실수로 무너졌을 때, 개의치않고 되려 위로하며 다음 타자를 잡아냈을 때.
그 이후로 조 지라디 감독이 이성호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꼈다.
'물론 아직 한 경기에 불과하지만'
어쩌면 자신의 눈이 틀렸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되려 개운하다는듯 정말 즐겁게 환한 웃음을 지으며 던지는 그 얼굴이 잊혀지지않았다.
조 지라디 감독은 깨달았다.
어느새 자신은 열 아홉 살의 루키가 아닌 한 선수로 그를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 정했다.
며칠 후 다가올 2017시즌, 꼭 이 선수를 써보고 싶다고.
2.
"음?"
"리, 갑자기 왜 그래요?
"갑자기 귀가 간지러워서요. 누가 내 이야길 하나?"
"예? 그게 무슨..?"
"아아, 한국에서 옛날부터 내려온 속담 같은건데 귀가 간지러우면 남이 내 이야기를 하고있다ㅡ 라는 이야기가 있거든요."
"오호, 그런게 있었군요. 무척 재밌는 속담이네요."
성공적으로 마지막 시범 경기를 등판을 마친 나는 지금 인터뷰를 하러 나와 있었다.
상대는 메이저리그 닷컴에서 뉴욕 양키스를 담당하고 있는 베테랑 기자, 자메스.
뉴욕 양키스의 담당 기자 아니랄까봐 수염은 깔끔하게 잘라 인상이 깔끔해보였고 멋스럽게 자란 금발 머리가 상당히 어울려보이는 중년 남자였다.
그런 자메스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리가 입단 했을 때부터 상당히 이슈가 있었죠? 그 이유를 아시나요?"
"음... 네, 잘 알고 있어요. 아마 지금 자메스씨가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질문하러 온것과 같아보이는데요?"
"하하하, 그렇죠. 시범경기에서 팀 내 선발투수 중 평균자책점 1위! 이 조건을 달성해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에 들어가게돼 2017 시즌 데뷔가 확실시 되어가고 있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만약 제가 당신이라면 하늘 날고 있는 기분일 것 같아요. 혹시 이번 시범 경기 성적을 아시나요?"
"어느 정돈 알고 있어요. 하지만 자세히는 모르겠네요."
"하하하, 그렇다면 실점이 없다는 것 쯤은 알겠죠? 그것조차 모르신다면 당장 뉴욕 양키스 프런트에서 리의 나이를 의심할거라구요!"
"하하하, 다행이네요. 네, 그건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기분은.. 음.. 최고에요."
이번 시범 경기 등판 성적을 보면 상당히 대단했다.
5경기 선발 등판. 20이닝 평균 자책점 0.
"그리고 음.. 이닝 당 출루율(whip)이 평균 자책점보다 높은 0.1이고, 20이닝 동안 잡은 삼진이 무려 25개라니.... 이건 미국에서 처음 데뷔하는 루키의 성적이라고 믿기 힘든 성적이잖아요. 당신도 알고있죠?"
자메스는 종이에 프런트된 내 성적을 바라보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만큼 시범 경기라고 하지만 19살 루키가 낸 성적이 뛰어났다.
자메스는 메이저리그 닷컴에서 뉴욕 양키스의 전담기자로 10년을 넘게 일했는데 시범 경기 내내 이러한 성적을 유지하는 열 아홉 살은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말도 안되는 성적을 낸 루키는 의외로 담담해보였다.
"아직 시범 경기잖아요? 정식 기록으로 인정되지 않는데 굳이 저처럼 열심히 던질 필요는 없죠."
"아무리 그래도 시범 경기 초반이나 후반엔 주전들을 상대로 실점을 안한건 충분히 경악스러울만한 성적이죠. 리, 혹시 그거 아시나요? 당신이 이번 시즌 신인왕 후보 TOP 3안에 뽑힌 것을?"
"정말요? 음.. 기쁘네요."
"세상에... 참으로 기뻐보이는 군요. 질투날 정도로 잘생긴 얼굴에, 메이저리그에서 기대되는 신인 선수로 뽑히다니... 리는 고향에서도 인기 많나요? 그러니 이렇게 담담할 수 있는거 아닌가요?"
"흐음, 딱히 적은 건 아닌 것 같아요. 아무래도 한국에선 미국으로 건너와 야구를 하는게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니까요."
"역시 그렇군요. 그렇다면...."
인터뷰는 칭찬 일색이었다.
애초에 오늘 인터뷰 목적 자체가 뉴욕 양키스에서 나라는 선수가 있음을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알리는 것이었으니.
딱히 민감한 질문이 없었다곤 못했지만 말이다.
"리,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이요! 올해 생일이 지나 19살이 되어 한국 나이로도 성인이 되었는데.... 여자친구는 있으신가요?"
미국에선 만 18살부터 성인이고 한국에선 만 19살부터 성인이었다.
한국 나이로 올해 만 19세가 된 나는 이제 어엿한 성인이다.
"그동안 너무 바빠서 여자라곤 만나보지도 못했어요."
"진짜인가요? 이렇게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요?"
"정말이에요. 이런거 가지고 거짓말 할 스타일도 아니고, 정말 바빴어요."
그러고보니 전생부터 여자 복이 없다.
야구의 신이 저주를 건 것도 아니라고 하는데 왜 이렇게 여자를 만난 적이 별로 없을까?
"모태 솔로라니. OMG! 전세계에 계신 리의 여성 팬분들. 기회입니다! 리는 아직 여자를 만나본 적도 없대요!"
장난스럽게 나를 향해 놀리는 자메스의 휴대폰이 진동을 울었다.
지이잉 지이이잉
"어, 음. 리, 잠시만요. 인터뷰할 땐 전화를 하지 말라고 부탁했는데...."
"괜찮아요. 받아보세요."
"고마워요, 그럼..."
자메스는 잠시 자리에서 떨어져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더니 나에게 다가온다.
"리!!!! 당신은 알고있었나요?"
"예, 예?"
뜬금없이 무척이나 흥분하며 질문하는 자메스가 다시금 질문했다.
"알고있었냐구요!!!! 조 지라디 감독이 당신을 개막전 다음 선발로 내보낸다고 발표한 것을요!!!!"
3.
['밤비노의 저주' 보스턴, 뉴욕 양키스에 1:0 패 크리스 세일 4이닝 1실점]
[진짜가 등장? 19살의 리, 보스턴 레드삭스 상대로 6.1이닝 0실점!!!]
[마지막 무키 베츠 상대로 101마일? 리의 성장속도, 예사롭지않다.]
[시범경기 팀 내 최저 자책점시,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 포함 조건 달성. 리의 데뷔 일자는?]
[결승타 맷 할러데이 '리는 준비 됐고, 그는 이미 우리와 한 팀이다']
[다나카 마사히로 '같은 아시아인으로써 보스턴 레드삭스 상대로 이런 투구를 하는 것은 19살 답지 않았다. 기대가 된다.']
[6.1이닝 0실점 6이닝 퍼펙트 달성한 리의 단독 인터뷰 "아직도 나는 배고프다. 팀에서 많은 걸 배우고 싶다."]
[조 지라디 감독 "이번 시즌 개막전 선발은 다나카. 다음은 리가 등판할 것.]
시범 경기가 끝나고 몇 시간 만에 인터넷을 가득 매운 기사들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뉴욕 양키스의 이성호와 관련된 기사들이었다.
그에 환하게 웃은 남성이 있었는데 바로 공중파 방송사 중 한 곳인 BMC의 스포츠 기획이사 김기석이었다.
"그래!! 역시 이대로 끝날리가 없지!! 흐흐흐"
정말이지 자신은 운이 끝도 없이 좋았다.
한국에서는 박찬화 이후로 메이저리그에 뛰는 선수가 나타나지않자 메이저리그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기 시작했고 시간이 거슬러 2012년 1월.
경제부에서 스포츠 기획부장으로 유배를 온 김기석은 부장으로써 가장 먼저 한 일이 관심이 사그라든 메이저리그의 값싼 중계권을 따내는 것이었다.
사실 그때는 반쯤 자신을 스포츠부로 유배를 보낸 윗선 사장들에게 자신은 아직도 능력있다고 시위하는 차원에서 협상을 시작했다.
그에 400만달러 3년 이라는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독점 중계권을 따냈고 그나마 뛰고 있는 추진수 경기를 내보냈지만 사람들은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일년 뒤인 2013년 갑자기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류함진이 포스팅 시스템으로 메이저리그로 진출을 선언 하는 일이 생겼다.
그렇게 엄청난 관심을 받고 여러 협상 끝에 류함진이 LA 다저스에 입단하였고 김기석은 반쯤 도박한다는 심정으로 류함진의 등판 전경기를 공중파에 편성하겠다는 공격적인 행보를 선언했고 윗선까지 직접 찾아가 허락을 받아냈다. 그 노력이 빛이 발했는지 류함진의 맹활약에 힘입어 높은 시청률로 보답 했고 김기석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부장에서 기획 이사로 승진했다.
하지만 2015시즌 류함진의 장기 부상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사그라들었고 2016시즌 복귀했던 류함진은 어깨 부상이 재발해 또 다시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그리고 키운 히어로즈에서 메이저리그로 진출해 많은 관심을 가져온 강정후는 음주운전 사건으로 중계 취소라는 결과까지 가져왔다.
그렇게 중계권료가 끝날 2016시즌 김기석은 류함진의 가능성을 믿고 2017시즌 말까지 중계권을 구입해 연장한 상태였다.
하지만 2017시즌 복귀하는 류함진이 부상 회복이 더뎌 시즌이 시작하는 4월이 다 되서도 컨디션이 안좋다는 것을 보고 받은 김기석은 애써 불안한 감정을 가진것도 잠시, 환호했다.
"흐흐흐, 이 복덩이 같으니라고. 너가 날 살리는 구나!!! 으아!!!"
김기석이 보고 있는 모니터에는 보스턴 레드삭스 1번타자 페드로리아를 상대로 삼진을 잡고 소리를 지르는 이성호가 보였다.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다는가?
"넌 내가 확실히 띄워준다. 이 복덩아!! 이렇게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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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건강하세요.
계약 관련해서 이야기하는겁니다만, 조 지라디 감독은 강제로 마이너로 보낸다는것이 아니라 '제의' 하려던 것 뿐이었습니다. 오해없으시길바랍니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