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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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 타석에서 선 타자가 내가 보란듯 위협적인 스윙 체크를 하고 있었다.
나는 공을 꼭 쥐었다. 최대한 상위 타선 상대로 투구 수를 더 아끼고 싶었지만 두번째 타석에 선 페드로리아를 상대로 경험해보니 그럴 여유 따윈 없었다.
'나는 아직 부족하다.'
그것을 인정하니 머릿속이 왠지 개운 해졌고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이어지는 2번타자 앤드류 베닌텐디.
5툴 능력이 출중해 2016시즌 화려하게 데뷔한 신인.보스턴에서 기대하고 있는 유망주지만 과거 베닌텐디와 친했던 나는 그런 베닌텐디의 약점을 알고있다.
'좌완 상대로 공갈포란 단점이 있지.'
그리고 나는 좌완이다. 하지만 한방이 있는 녀석인 만큼 가볍게 던질 생각은 없었다.
-부웅
"스트라이크!!!!"
몸쪽 깊은 커브에 누가봐도 빠진 공이었지만 큰 스윙을 가져간 베닌텐디.
전형적인 '얻어걸려봐라' 스윙이었다.
확실히 이녀석은 전에 내가 알던 그 녀석이 맞다.
빠르게 투구를 진행했다.
몸쪽 하이 패스트볼.
- 부웅.
"스트라이크!!!!"
앤드류 베닌텐디의 배트가 또 다시 허공을 갈랐다.
투스트라이크.
약점이 만연한 타자인 만큼 조금의 긴장도 하지않고 세 번째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공갈포를 상대로는 유인구도 좋지만 스트라이크에 아슬아슬 걸치게 던지는 능력도 중요하다.
혹여나 몰리게 된다면 공갈포들의 큰 스윙상 좋은 공이 들어갔어도 넘어갈수 있는거니까.
결국 이런 상황에서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에게 겁먹지 말고 실투 없이 집중 공략 하는 방법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전생의 프로 경험으로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세 번째 던진 공은 하이 커브 볼.
높게 왼쪽 스트라이크 존 구석에 날아가는 느린 공에 베닌텐디의 배트가 또 다시 허공을 갈랐다.
"스트라잌!!! 아웃!!!"
4회 초 이번 경기 여섯 번째 삼진을 잡아냈다. 간졸여 보던 양키스의 팬들의 열기에 스타디움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 열기는 4회 초 마지막 타자인 무키 베츠가 내가 던진 커브에 다시금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는 순간 절정을 향했다.
하지만 보스턴의 3번 중심 타자를 맡은 무키 베츠는 2016시즌 실버슬러거와 골든 글로브를 받은 타자였다. 꽤 끈질겼고 그 덕분에 제법 투구수가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무키 베츠 상대로 무려 11구나 던져야만 했다
'이로써 4이닝 45구인가'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선발 투수라면 이상적인 투구였다.
덕아웃 구석에서 패딩을 입고 어느정도 달궈진 어깨의 열기를 보호한 나는 4회 말 양키스의 공격을 보기 위해 시선을 그라운드로 향했다.
-따악!!!
4회 말. 투아웃.
장타력 하나만큼은 리그 최정상으로 평가받은 그렉버드가 일을 냈다.
"그렉버드!!! 달리라고!!!"
덕아웃에서 가만히 내 눈치를 보던 선수들은 공중에 떠오른 그렉 버드의 공을 보고 소리쳤다.
넘어 가기엔 살짝 아쉽게 떠오른 공.
골든 글러브의 주인공 우익수 무키 베츠가 경기장 외곽에 떨어지는 공을 잡으려 폴짝 뛰었다. 하지만 조금 모자랐다. 재빨리 바운드 된 공을 잡고 던졌지만 어느새 방망이를 내던진 그렉 버드는 이미 이루를 밟은 상황이었다.
[그렉 버드!! 역시 리그에서 장타력 하나만큼은 인정 받은 이유가 여기있군요!!! 가볍게 쳐낸 것 같았는데 우익선상에 깊게 떨어집니다!!! 빨라요 빨라!!!]
[너무 쉽게 세입입니다. 그렉 버드가 장타력에 비해 아쉬운 선구안을 가졌다고 평가 받거든요? 이번건 제대로 받아쳤습니다. 이 선수 매년 성장하는데요? 대단한 타격이었습니다.]
[이러면 크리스 세일의 4이닝 퍼펙트가 여기서 무너졌네요. 이러면 다음 타자가... 맷 할러데이가 타석에 섭니다!!!]
37세의 나이임에도 1년 1300만달러로 뉴욕 양키스에온 맷 할러데이.
2016시즌에 36세의 나이임에도 20홈런을 쳐냈고 7년간 143개의 홈런을 쳐낸 장타자다.
비록 노쇠한 만큼 시즌에 들어선다면 지명타자로 활용될 예정이었지만 장타력만큼은 무시할 수 없는 타자였다.
-부웅
"스트라이크!!!"
초구 몸쪽 낮은 공에 헛스윙. 맷 할러데이가 타석에 잠시 물러났다. 그에 2루로 다시 귀루한 그렉 버드가 할러데이를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이봐, 할레데이씨. 시범 경기 내내 똥 쌌으면 이번 경기 루키를 위해서라도 하나 해주쇼'
표정의 의미를 깨달은 할러데이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두번이나 기회가 있다고."
중얼거리며 타석에 다시 들어선 할러데이가 크리스 세일을 노려봤다.
비록 야구 선수로써 노년기에 은퇴해야 할 나이인 만큼 시범 경기에서 힘을 들이지않고 해도 되지만 이번 시즌 데뷔 할 루키가 경기 시작 전에 꼭 이기고 싶다고 말한 것을 보았다.
심지어 그것이 루키만이 낼 수 있는 젊은 승부욕이라는 것을 느낀 맷 할러데이는 자신의 데뷔 시즌이었던 2004년을 회상했다.
콜로라도에서 데뷔했고 팀의 리더였던 토드 핼튼에게 조언 받은 다음 경기에 끝내기 홈런을 칠수 있었던 그 날.
그때의 환호와 열정을 떠올린 할러데이는 몸이 달아올랐고 그렇기에 지금 날아오는 공의 구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도 쳐낼수 있을 것 같았다.
-따악!!!!
[쳤습니다!!!!! 우중간을 깔끔히 가르는 안타! 비록 장타는 아니지만 그렉버드가 여유롭게 홈을 밟습니다!!!!]
[4회 말, 이번 시즌 양키스에 온 37살의 맷 할러데이의 1타점 적시타! 양키스가 드디어 크리스 세일을 상대로 귀중한 한점을 획득합니다!!!]
스타디움과 덕아웃이 그와 동시에 달아올랐다. 나또한 나를 보며 주먹을 꽉쥔 맷 할러데이를 바라보며 웃어주었다.
이제 됐다. 이제 자신만 완벽하게 경기를 소화하면 된다.
9이닝까지의 욕심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버린지 오래다. 다만, 조금 더 공을 오래 던지고 싶었다.
5번타자가 아쉽게 삼진 아웃 되는 것을 보고 어깨를 보호하고 있던 패딩을 벗고 글로브와 모자를 챙겨 마운드 위로 향했다.
이젠 승리를 위해 마운드를 지켜야만 했다.
1.
존 베스크 불펜 코치가 조 지라디 감독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까요? 투구 수가 80개가 넘어갑니다. 그리고 퍼펙트도..."
조 지라디 감독은 불펜 코치의 말에 전광판을 바라봤다.
[아쉽게도 7회 초, 리의 퍼펙트 게임이 깨졌군요. ]
[페드로리아이 내야 땅볼을 쳐내며 손쉽게 선두타자를 잡아내나 싶었지만 3루수 헤들리의 실책에 살아나갔습니다.]
퍼펙트 게임.
6이닝까지 보스턴 레드삭스를 농락하듯 매이닝 투구 컨셉을 바꿔가며 상대 타자들을 먹어삼켰던 리가 7회 초, 헤들리의 실책에 6이닝 퍼펙트 게임이 무너졌다.
하지만 그 때 조 자라디 감독은 미안해하는 헤들리를 바라보며 모자를 살짝 들어올려 괜찮다고 웃어주며 위로 해주는 리를 보았다.
조 지라디 감독은 예상대로 코치진과 정해두었던 90구라는 한계 투구수를 넘길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조 지라디 감독은 리가 무슨 기록을 세우든지 이 경기에서 10실점을 해도 신경 쓰지 않을 예정이었다. 정규시즌도 아닌 시범 경기에 불과하고 90구라는 내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전국 중계로 관심이 활활 타오르는 상황에서 리라는 루키가 어떤 식으로 던지는지. 그것만이 궁금했으니까.
처음 바짝 힘이 들어간 전력 투구를 하는 것을 보고 프린터에 조언해 저 루키를 마이너리그에서 1년이라도 썩게할 작정이었다.
자신은 2008년부터 2017년까지 뉴욕 양키스를 맡아옴으로써 그 정도의 힘은 있었으니까.
선발 투수는 162경기 동안 30경기 내외의 투구를 하는 만큼 매경기 매이닝 힘을 들어 전력투구를 하게된다면 결국 무너지는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래서 조 지라디 감독은 계약조건과 구단주의 반대가 있음을 알았어도 스타가 될 가능성이 보이는 저 루키가 무너지지않고 마이너리그에서 1년만이라도 마운드에서의 호흡 조절이라는 것을 배워 더 아름다운 피칭을 해줬으면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가 바뀐 것은 4회 초 보스턴의 심장 페드로리아를 상대했을 때였다.
어째선지 오늘 독기를 가득 담고 온 몸에 힘을 줘 던지던 리는 페드로리아를 상대하면서 힘을 빼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삼진을 잡아냄으로써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한 듯 보였다.
불과 2달 전에 생일이 지난 19살이 말이다.
그래서 조 지라디 감독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코치를 향해 지시했다.
"불펜 들여보내게."
"그래도 될까요?... 하지만 리가 오늘은 끝까지 뛰고 싶다고..."
사람들은 가끔 메이저리그 감독이 단장의 허수아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영입은 단장이 진행하고 팀을 꾸리는 것도 단장이 진행하니까, 감독은 그냥 그에맞춰 포지션만 세우는 그런 직업.
하지만 아니다.
"저 정도면 됐어. 스스로도 만족하고 있을걸세. 늦었으니 이번 타자까지만 상대하고 바로 교체하지"
단장이 현장 밖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라면 감독은 현장을 지배하는 음악가였으니 말이다.
단호한 조 지라디 감독의 말에 불펜 코치는 서둘러 불펜과 연결된 수화기를 들었다.
2.
3루수 헤들리의 실책에 페드로리아가 1루를 밟았다.
그에 7이닝 퍼펙트에 실패한 나는 헤들리를 한차례 위로하고 생각에 잠겼다.
'이런게 야구구나'
전생의 나는 18년간 미국에서 야구를 했음에도 늘 한 곳이 부족했다.
무언가 마음 한 곳이 텅 빈 느낌.
그 느낌은 공을 던지면 던질수록 커져서 시즌 말만 되면 그 느낌때문에 무너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금 꽉차오르는 고양감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어느 때보다 환한 미소였다.
'그래, 나에겐 열정이 없던거였어.'
어느순간 나는 열정을 잃었다.
단순히 팬들에게 욕을 먹지않기위해 매경기 최선을 다해 던졌고 단순히 돈값을 하기 위해 매경기 최선을 다했다.
그게 과연 맞는걸까?
나는 전생에 인연이 없었던 페드로리아를 바라봤다.
페드로리아는 자신을 바라보는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지만 나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조금 과한 제스처였지만 진심으로 고마웠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하나 배웠네요.'
야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팬들과, 팀 선수들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어느 새 잊은 나는 '혼자' 야구를 하고 있었고, 내가 아니면 안돼. 내가 승리를 지키기위해 마운드를 지키자. 나만 잘한다면 사람들은 날 욕하지않을거야. 이런 오만한 생각을 해왔다.
어쩌면 전생에 날 괴롭혔던 정신병과 트라우마는 내 스스로 만들어낸게 아닐까?
그것을 깨달은 나는 홀가분해짐을 느낄수 있었다.
그 때 온 몸이 환하게 빛났다.
[야구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야구의 신이 새로운 축복을 내립니다.]
[모든 구종 등급이 1단계 상승합니다.]
[포심 패스트볼(E) -> 포심 패스트볼(D)]
[슬라이더(E) -> 슬라이더(D)]
[체인지업(E) -> 체인지업(D)]
[커브(E) -> 커브(D)]
[커터(E) -> 커터(D)]
[[패시브 스킬: 팀]을 획득합니다]
[팀] [패시브스킬]
[야구는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님을 깨닫고 전생의 과오를 깨달은 사용자에게 기쁜 마음으로 야구의 신이 축복을 내려주었습니다.]
[이 스킬은 오늘날의 깨달음이 잊혀지지 않을 때까지 유지됩니다.]
[효과: 사용자의 선발 등판 시, 팀 사기 대폭 증가, 팀 수비 확률 대폭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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