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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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경기 전 브리핑에서 코치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분명 포심을 기점으로 투 스트라이크 이후 각종 변화구를 결정구로 사용한다고 했었다. 실제로 눈앞에서 포수에게 사인을 내는 리라는 선수는 초구가 포심일 확률이 무려 70%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한테 느린 커브를 던져? 하.'
선구안이 메이저리그에서도 톱급으로 좋기로 소문난 자신이다.
그것을 토대로 4할에 가까운 출루율도 세운 적이 있으며 커브를 상대로는 말할 것도 없었다.
2006년부터 2017년 지금까지 메이저리그에서 정상을 지켜온 자신이었다.
쌓인 연차만큼 많은 투수들을 상대해왔고 날카롭던 선구안은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졌다.
'한 번 더 던져보라고. 애송이. 가뿐히 쳐줄테니까'
-부웅
"스트라이크!!"
존에 살짝 걸치는 속구. 전광판에 100이라는 숫자가 찍혔다. 노쇠할 대로 노쇠한 페드로리아에겐 체감상 더 빠른 공이었다. 페드로리아의 배트가 뒤늦게 세차게 허공을 갈랐다.
1.
초구 느린 커브를 의식해서 인지 스윙이 흐트러진 페드로리아를 바라보며 슬며시 주먹을 움켜쥐며 만족스러움을 표했다.
만약 작년의 페드로리아 였다면 4할에 육박하는 커브 공략률로 땅에 처박히는 커브라도 모두 두들겨서 안타로 만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작년시즌이 커리어 하이였던 페드로리아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페드로리아는 아니다.
미래 2017시즌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위해 날카로운 선구안을 벼르고 별러 나이에 비해 준수한 기록을 세웠지만 과거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느려진 스윙 속도가 발목을 잡는 타자를 향해 나는 세번째 공을 뿌렸다.
-뻐엉
"스트라잌, 아웃!!!!"
[페드로리아!! 구석에 꽂히는 강속구에 속수무책 삼진입니다!!! 양키스의 리가 보스턴의 심장. 페드로리아를 상대로 삼구 삼진을 기록합니다.]
[매우 과감하고 엄청난 공격적인 피칭이었습니다. 페드로리아가 2016시즌 커브 상대로 4할에 육박한 타율을 기록했거든요? 하지만 19살의 어린 투수가 페드로리아 상대로 초구 75마일의 커브를 던져 낚더니 100마일의 속구 두번으로 삼진을 잡아냈습니다.]
[페드로리아 입장에선 참 어처구니가 없겠군요. 70마일의 느린 커브를 던지고 100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다뇨. 체감 속도가 상상 이상일 것입니다.]
보스턴의 심장. 페드로리아를 단 3구만에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마운드 구석에 있는 로진백을 가볍게 두들겼다. 태연하게 마운드를 정리하는 내 모습을 보며 경기장을 꽉 채운 관중들이 환호했다. 나는 그것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바로 이 환호였다.
전생에서도 이런 환호를 잊을 수 없어 수많은 조롱과 야유를 받으면서도 공을 던졌다.
두근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는것을 애써 심호흡으로 참아내고 방금 있었던 승부를 복기했다.
오늘은 나의 시범 경기 마지막 등판 경기다보니 이닝 상관 없이 90구를 보장 받은 상태.
아마 양키스의 조 지라디 감독은 이미 이번시즌 선발 투수로 나를 낙점한 상태에서 마지막 시험대에 올린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가슴 속 깊이 차오른 희열 속에 복잡한 생각은 하지않기로 했다.
'무조건 전력 투구다.'
2.
당연한 말이지만 투수가 굳이 매이닝을 전력으로 던질 필요는 없다. 특히 선발로 나와 긴 이닝을 소화해야 하는 선발투수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최고 100마일을 던지는 선발 투수들도 평균 94-95마일 정도로 조절하는게 보통이었고 전생의 나도 마찬가지였다.
전생에서 최고 96마일의 공을 던진 나는 평균 92마일의 공을 던지고 위기에서나 위협적인 타자가 나타났을 때 96마일의 공을 전력으로 던졌는데 오늘은 달랐다.
97마일 98마일 99마일 97마일 100마일.
게다가 어느새 E급 포심 패스트볼의 경험치바 500까지 가득 찼고 던질수록 공이 더러워졌는데 시범 경기 기록 한해서 플러스와 플러스 플러스 구종 등급 사이로 평가 받은 내 포심과 그에 못지않은 커브가 더해지니 보스턴 레드삭스 타자들은 속수무책 이었다.
-뻐엉
"스트라잌, 아웃!!!!"
땅에 처박히는 커브에 스윙 한번, 존에 가까스로 걸치는 커터에 스윙 한번, 하이 패스트볼에 스윙 한번.
뻔한 볼 패턴이었지만 그에 대응 조차 하지 못하고 보스턴 레드삭스의 3번타자 무키 베츠의 방망이가 허공을 갈랐다.
[볼카운트 0-2에서 다시 98마일의 빠른 하이 패스트볼!!! 스윙 삼진!!]
[1회 초, 리가 보스턴 레드삭스의 트리오를 손쉽게 세타자 연속 삼진으로 잡아냅니다.]
[리가 투스트라이크 이후로 존에 꽂아넣는 스타일인것을 아는 보스턴 레드삭스 타자들은 배트를 안낼수가 없거든요. 방금도 그 패턴에 당했다고 봐야죠?]
[알고보면 참 쉬운 패턴인데 공락하려 하면 체인지업이나 커터 같은 구종을 던져대니 속아넘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앞서 무키 베츠를 상대로 두번째 스트라이크 때 던졌던 커터 말씀 하시는 거죠? 커브 다음으로 포심만을 던지던 패턴 속에 커터는 당연히 속아 넘어갈수 밖에 없죠.]
[이제 1회지만 이 선수 정말 뭐죠? 정말이지 18살 답지않습니다!]
[사실 이 선수가 양키스에 350만달러로 영입되고 350만달러의 조건으로 메이저리그 직행 조건을 달았을 때만 해도 양키스가 싼값에 좋은 유망주를 구했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매우 싼값에 좋우 에이스를 구했구나 싶군요.]
삼진을 잡은 나는 모자를 한차례 들썩거리고 덕아웃을 향해 걸어가는 날 찍는 카메라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에 맞춰 플로리다주 시범경기장을 찾아온 관중들이 환호를 내보냈다.
고작 1회였지만 많이 불안했을 양키스의 팬들에게 보내는 선물이었다.
3.
'세타자 상대로 13구.'
감독님이 정해주었던 90구까지 77구가 남아있었다. 나쁘지않은 시작이다. 하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내 목표는 9이닝을 모두 던지는 것.
어차피 이 경기 이후로 일주일이상 쉬어가기 때문에 체력적인 부담 또한 없다.
1회에 있었던 경기 내용을 복기하고 있을 때 보스턴 레드삭스의 선발로 나선 크리스 세일이 1회를 두 개의 삼진과 하나의 뜬 공으로 막아냈다.
거기까지 약 5분.
쉴 틈은 없었다. 구석에 앉아 1회를 복기하던 나는 아무 말 없이 다시 마운드로 올라왔다.
이번에 상대할 선수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4번타자로 부활을 꿈꾸는 핸리 라미레즈.
1번타자 페드로리아처럼 2016시즌 뛰어난 성적을 내보이며 이번 시즌에서도 4번타자로 낙점받지만 전생에서 처참히 망했던 타자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망했다고 해도 무려 23개의 홈런을 때려내는 강타자이기도 했다. 허투로 던질 순 없었다.
-따악.
라미레즈가 때려낸 타구가 외야를 뚫어낼 것 같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가더니 반발력이 줄어 툭 떨어졌다.
"아웃!!!"
다행이다. 힘이 제대로 받지 않았는지 단순한 플라이아웃에 그쳤다.
[핸리 라미레즈!! 강한 타구 였는데 중간에 힘이 빠졌네요. 애런 저지가 안전하게 잡아냅니다.]
2회, 나의 피칭은 1회와 완전히 달랐다. 핸리 라미레즈를 초구에 우익수 플라이 아웃을 끝으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변화구를 사용해 타자들의 배트를 유혹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5번타자 모어랜드는 늘 그렇듯 2할대의 낮은 성적을 유지한 타자고 6번타자에 이름을 올린 보가츠는 스프링캠프에서 입은 부상으로 인해 폼이 아직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타자들을 상대로 굳이 온 힘을 들여 던질 필욘 없었다.
2이닝 연속 삼자범퇴.
모어랜드를 3구 삼진으로 잡아내고 보가츠를 초구만에 투수 앞 땅볼로 잡아냈다.
2이닝에 던진 공의 갯수는 5구.
1이닝에 던졌던 13구에 비하면 훨씬 효율적인 투구였다.
[놀랍습니다!! 리, 단 5구만에 보스턴의 타자들을 돌려세우는군요!!]
[지금 리플레이를 보시면 파괴적인 1이닝 때와 달리 타자들의 배트를 살살 유혹하듯 치기 좋아하는 코스에만 까다롭게 던져줬거든요? 그 결과 라미레즈와 보가츠같은 강타자들이 속아넘어갔고 모어랜드는 허허... 모어랜드 했네요.]
[지금 투구 내용을 보면 사인을 리 선수가 개리 산체스 선수에게 보냈거든요? 이건 어떻게 보십니까?]
[19살의 어린 나이에 상대 타자들에 대한 분석능력도 뛰어난 것 같습니다. 물론 로케이션도 나이에 맞지않게 뛰어나구요. 흠.. 오늘 투구 내용으로만 보면 도저히 이번 시즌 데뷔할 루키로 보이지않는데요?]
이어지는 2회 말 크리스 세일을 상대로 양키스의 공격이 시작됐다.
세일은 할러데이를 삼구 삼진으로 잡아내더니 엘스버리와 카스트로를 상대로도 삼진을 잡아내 세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냈다.
그에 맞서 나도 7번부터 시작하는 보스턴의 3회 초 공격을 또 한 번 삼자범퇴로 막아냈다.
'좋았어'
지금까지의 투구 상황을 보면 신은 내 편이었다.
아무리 강력한 공이라도 운이 좋지 않으면 안타를 맞기 마련인데 오늘의 양키스의 선수들은 집중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는지 강습 타구마저 족족 잡아내 내 투구수를 아껴주었고 또 다시 3이닝을 삼자범퇴로 막아내 플로리다 주 시범경기장이 들끓었다.
3회 초에 내가 보스턴을 상대로 던진 공이 무려 7구.
3이닝 25구라는 효율적인 투구를 좋은 수비 덕분에 이뤄내고 있었다.
하지만 3회 말 7번부터 시작된 공격은 또다시 세일의 압도적인 투구에 입을 다물었다.
올해 처음 데뷔하게 될 내가 효율적인 투구 내용으로 보스턴 레드삭스의 강타자들을 막아내고 있음에도 세일의 압도적인 투구에 분위기가 말려든 상황.
분위기를 반전 시키기 위해선 4회의 내 투구 내용이 중요했다.
4회. 또 다시 페드로리아가 타석에 들어섰다. 내가 다른 타자들을 상대함으로써 공이 적당히 눈에 익었을 두번째 타순.
선구안이 전성기 못지않은 상태인 페드로리아를 상대로 또다시 공격적으로 피칭하긴 힘들었다. 나는 곧바로 개리 산체스에게 사인을 보냈다.
-부웅
"스트라이크!!!!!"
페드로리아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아직 괜찮다. 저 늙은 호랑이는 내 공을 못따라오고 있었다. 게다가 오늘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가장 위협적인 타자라고 하면 단연 페드로리아와 무키베츠 그리고 핸리 라미레즈다. 이번 이닝과 다음 이닝만 무사히 막아낸다면 투구수를 아낄수 있는 이닝이 오게 된다.
바깥쪽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체인지업.
몸쪽 깊은 패스트볼.
하이 패스트볼. 페드로리아의 배트가 쉬지않고 돌아갔다.
특히 몸쪽 깊은 패스트볼을 받아쳐 운만 좋았다면 페어볼이 될수 있었던건 내 간담을 서늘케 했다.
볼카운트 0-2.
다섯 번째 공을 던졌다.
-따악!!!!!!
[와!! 페드로리아 땅에 처박히는 커브를 아슬아슬 하게 걷어내는 군요.]
[와.. 페드로리아 선수가 선구안 만큼은 메이저리그에서 단연 상위권에 위치해있거든요? 그것도 커브를 상대로 높은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데 리 선수 앞에서는 걷어내기 바쁩니다. 하지만 스윙 폼이 흐트러지면서까지 걷어내는 배트 컨트롤 하나 만큼은 정말 대단합니다.]
완벽하게 속아넘어가 했는데 헛스윙 하기 전 기가막히게 몸을 살짝 낮춰 배트에 맞춰내는 모습에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혀를 내둘렀다.
'후, 그래. 보스턴의 리더라면 이정돈 해줘야지.'
지금부턴 투구 수를 아낄 때가 아님을 인정하고 나는 여섯 번째 공을 뿌렸다.
'제대로 채였다.'
제대로 실밥에 채인 체인지업.
-부웅
[스윙삼진!!! 리!!! 결국 이번에도 페드로리아를 이겨냅니다!!!!]
[말이 필요 없군요. 리스펙 합니다. 방금 체인지업은 제대로 채였어요. 아마 페드로리아의 그 미친 선구안으로도 구분해내지 못했을겁니다. 그 결과가 허망하게 바람만 가른 저 스윙이죠.]
'아직이야'
비록 페드로리아를 상대로 6구나 던지며 투구수가 31구로 늘었지만 아직 나에겐 59구가 남아있다.=============================※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작품후기]달아주신 댓글 잘봤습니다.
연중은 절대 없을 것이며
가끔가다 작품을 되돌아보기 위해 휴재는 있을 지도 모릅니다.
다만, 무조건 하는 것은 아니고 이 글이 몇백화가 되면 설정이나 캐릭터들 살펴볼겸 한번씩 하는거 빼곤 없을것같네요.
다만 직업이 없어서.. 돈이 부족해지면 글쓰다가 일해서 연참이 불가능해질순..ㅠㅠ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피드백 언제나 환영하며,
추천과 선호작 해주시면 정말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댓글도요!!
원고료 쿠폰도 감사합니다.
글 열심히 쓰겠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