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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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이 뉴욕 양키스 프런트는 이번 시즌을 걱정하는 팬들의 성화 속에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아롤디스 채프먼을 5년 86M 뉴욕 양키스와 FA 계약]
2016 시즌 종료후 뉴욕 양키스에서 시카고 컵스로 트레이드 된 아롤디스 채프먼을 FA로 5년 86M(한화 1000억원)으로 다시 데려왔다. 3시즌을 치르면 옵트아웃이 가능한 계약. 양키스로서는 손해볼 것이 없는 계약으로 옵트아웃으로 나가도 그만큼 페이롤이 굳으니 좋고, 그러지 않아도 5년 8600만 달러로 최정상 마무리를 써먹을 수 있으니 구단 입장에서는 상당히 좋은 계약이었다.
이어서 크리스 카터를 1년 3M에 데려왔다. 아마도 그렉 버드와 플래툰(상대팀의 투수에 따라 타자를 선별적으로 기용하거나 혹은 반대로 타자에 따라 투수를 선별적으로 기용하는 작전을 말한다.)으로 활용할 계획인 듯 싶었고 맷 홀리데이와 1년 1300만 달러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훗날 템파베이 주전 1루수로 자리 매김하는 최죄만을 마이너 계약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렇게 스프링 캠프 기간이 끝나가고 시범경기 첫 경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뉴욕 양키스의 팬들의 반응은.... 직설적으로 얘기해서 기대치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아롤디스 채프먼, 델린 베탄시스, 채드 그린, 아담 워렌, 체이슨 쉬리브로 이어지는 불펜진이야 확실히 리그 평균 이상이겠지만 다나카를 제외한 나머지 로테이션엔 모조리 다 물음표가 붙어있었고 타선 역시 2016년 좋은 활약을 보여준 게리 산체스 정도를 제외하면 기대할만 타자 자체가 씨가 마른 상황이었다.
그나마 스프링캠프 팀 자체 경기에서 괜찮은 활약을 보여준 그렉 버드정도나 좀 기대해볼만한 상황에 과연 이번시즌에도 애런 힉스가 25인 로스터에 포함될 것인지, 애런 저지는 과연 몇 일 만에 AAA로 내려갈것이냐 등등 여러가지 의견들이 생겨났다.
그런 의견들이 게시판을 지배할수록 다가오는 시범경기에 대한 팬들의 기대치는 점점 낮아졌으며 가장 중요한 시즌 성적에 대한 기대치 자체도 더욱 낮아졌다. 바라는 건 너무 심한 루징시즌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도에 이번 시즌 콜업된 뉴페이스들이 그래도 폭망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정도.
그렇게 팬들이 하나둘씩 다음 시즌 뉴욕 양키스의 성적을 두고 토론하고 있을 때,
양키스의 훈련장은 점점 사람들이 채워졌고 그덕에 시장통이 따로 없을 정도로 시끌시끌 했는데 며칠 전까지 몇몇 투수와 포수들끼리 훈련하던 것을 기억해보면 차라리 북적이는 분위기가 훨씬 나았다.
'무엇보다 활기가 가득하기도 하고'
신인 시절에서나 볼 수 있는 향상심. 꿈을 이루고 싶은 의지.
여러 기운들이 모여 분위기는 활기로 가득했다.
의외로 개리 산체스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나를 데리고 이번 시즌 주전으로 뛰게 될 선수들에게 소개를 시켜주었는데 그 덕분에 적응은 꽤 쉬웠다.
선수식이 자신의 할 일이 없어졌다며 중간중간 징징대긴 했지만..
이미 몇몇 선수들과 전화번호를 나눌 정도로 친해졌는데 그 중 한명이 내 옆에서 스윙 폼을 간결하게 연습하고 있는 애런 저지였다.
"리, 어때?"
이틀 전, 타자들도 모두 참여했던 훈련 속에 개리 산체스가 했던 내기를 참가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 내 공을 쳐내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애런 저지는 눈을 반짝이며 연습을 도와달라 하였고 이번시즌 주전을 확보해 안심하고 있던 개리 산체스도 그와 함께 부탁했다. 그 덕에 매일같이 모여 훈련했는데 애런 저지가 하이 패스트볼과 낮은 변화구 공략에 불편함을 느껴 미래서 애런저지 스스로 약점을 보완하려고 뜯어고쳤던 스윙 폼을 알려주었더니 어제부터 꾸준히 나에게 달라붙어 스윙 폼에 대해 물어왔다.
'어차피 1,2년 뒤면 알게 될 것을.'
괜히 알려줬나 싶지만서도 애런을 잘 챙겨주라는 개리 산체스의 부탁 때문에 거절하지도 못했다.
"거기서 팔 살짝 내리고, 발은 더 꺾어."
"이렇게?"
내 말에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해내는 애런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괴물 같은 놈"
"응? 뭐라고? 그거 한국 말이지? 개물 가튼 늠? 이게 뭐야?"
"뭐야 너가 한국 말을 어떻게 알아?"
그에 애런은 뒤통수를 긁으며 푼수같은 웃음을 지었다.
"헤헤, 그게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좀 배웠지. 아뇨아쎄요. 바갑씁니다. 저어는 애뤈저지임미다. 어때 좀 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아."
"그래? 조금 더 공부해볼게. 아직 배운지 하루밖에 안됐거든. 그것보다 지금 폼은 어때? 좀 괜찮아진것 같아?"
"난 이제 너 무서워지려한다. 감독님이랑 코치한테 한소리 들으면 어쩌려고 시즌 시작 몇 주전에 스윙 폼을 바꿔?"
"그래도 이게 편한걸 어떡하라고. 아무튼 더 연습해야겠어. 고마워 리."
"고마우면 타자코치 님께 한 소리 들을 때 나는 빼주라고."
"알았으니까, 어때. 많이 괜찮아졌어?"
라고 물으며 스윙 폼을 가져가는 애런 저지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셨다.
'안그래도 신인 최다 홈런으로 52개나 때리는 놈이 여기서 얼마나 더 나아지려고'
나도 '신인상 타야되는데. 누구 코가 석자인지.' 라고 한숨을 내쉬며 애런의 스윙 폼을 조정해주었다.
1.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2월 말.
메이저리그 구단 모두가 시범경기에 돌입했다.
정규시즌과 마찬가지로 거의 매일 경기가 있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 뉴욕 양키스의 시범경기 선발 명단이 공개 되었다.
그에 한국 언론을 뒤흔들고 미국으로 떠난 뒤 한동안 소식이 없었던 내 소식을 기다려왔던 한국 언론은 당연하게도 난리가 났고, 미국의 뉴욕 양키스의 팬들은 다른 의미로 난리가 났다.
[아니, 내가 지금 자다 일어나서 그런가? 시범경기 첫 선발이 다나카가 아닌데???]
ㄴ[그러게... 오류겠지? 하여간 요즘 양키스 프런트들 왜 이러는거야? 이번시즌은 아예 버리겠다는 걸까?]
[내 사촌이 양키스 프런트에서 일하는데 오보 아니라네. 필리스 상대로 낸 선발 투수가 SUNGHO LEE. 맞다네. 듣기론 프런트에서 엄청 기대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ㄴ 왓더뻑. 뭐라는거야 장난해? 프로필보니 올해 19살이던데 무슨 기대? 신인을 완전히 망치려하는군.
ㄴ 그건 모르지. 듣기론 아시아 하이스쿨 리그에서 가장 뛰어났던 투수라던데...
ㄴ 하이스쿨에선 나도 에이스였어. 그럼 나도 양키스 선발로 나설수 있는거야?
ㄴ 어디 시골에서 130km/h 똥볼이나 던진걸 에이스라고 하면 어떡하란거야? 헤이, 정신차리라고. 저 19살 꼬마가 18살의 나이로 던진 공이 무려 149km/h 였다고. 지금은 키가 무려 193cm에 100kg 초반대로 보라스에서 유능한 디렉터에게 개인지도 받았다고 하더군. 지금 공 던지면 장난아닐거라고.
[퍽킹... 양키스 이번시즌 아예 포기하겠단 거구나.. 아무리 그래도 신인을 첫 선발로 내보낸건 선수입장에서도 정신병이 안걸리면 다행일걸.. 심지어 상대는 필리건들이라고!!!!]
[이번 시즌 시즌 티켓을 할인하더니만. 이런 꼼수가 있었구나.. 지금이라도 환불을 해야되는건가?]
[그래.. 좋아. 19살이라는 투수인것도 좌완에 빠른 볼 던지는 선수라는것도 다 이해된다고. 근데 왜 1선발이냐고!!!! 다나카에게 문제가 생긴건가? 그럼 왜 발표는 따로 없는건데!!!!!!]
[다들 진정하라고 혹시 모르잖아. 리라는 선수가 대단한 선수일지도.]
ㄴ 맞아. 난 개인적으로 저 선수의 투구를 유튜브에서 봤었는데 퍼펙트 피칭을 했었다고!! 의심만 하지말고 링크 줄테니까 어서 빨리 보고오라고. http.....
ㄴ 보고왔는데 꽤 던지던걸? 한번 응원하러 가볼까?
ㄴ 저건 하이스쿨 리그에서 던진거라는데? 거기서 잘 던지는 투수는 양키스 팜에도 넘쳐난다고, 이 애송이 새끼들아.
ㄴ 넌 뭘하든 트집잡을 생각인것 같은데?
1.
양키스의 오랜 팬인 마커스 가드쉬는 자신을 상대로 입을 나불거리는 양키스 커뮤니티 회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풕킹.. 이새끼들이 뭘 안다고. 내가 양키스에서 야구 본지가 벌써 20년이라고... 근데 뭘하든 트집만 잡는다고? 작년 시즌 망한것도 생각못하고.."
무려 20년이다.
1997년.
이번 시범경기 첫 선발로 등판 예정이라던 1998년생 애송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야구를 보았고 양키스를 사랑해왔다.
그런데 영광의 2000년대 양키스는 어디가고 2010년부터 서서히 무너져가는 양키스를 보고 충격을 받게되었다. 그 이후로 하루가 멀다하고 낮은 순위에 위치한 뉴욕 양키스의 성적을 보고 술을 마시다보니 어렸을 적 아버지와 함께 손잡고 관객석에서 응원했던 진심 어린 뉴욕 양키스의 팬심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비틀어진 감정만이 가슴 깊이 자리를 잡았다.
몇 년전의 자신이라면 구단의 기대를 받는 루키를 응원했겠지만 지금의 자신은 과거의 자신과 달랐다.
슬그머니 루키를 까기위해 올린 댓글에 대다수가 자신의 의견을 두고 공감해주었고 그에 희열을 느꼈다. 하지만 공감하지 못하는 일부 회원들의 댓글을 보자 가슴 깊이 자리잡은 비틀어진 팬심이 그를 자극했다.
곧바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ㄴ 트집? 이봐. 난 양키스를 지켜온 20년이 있다고. 데릭지터가 신인일때부터 지켜봐왔고 황금기를 함께했던 사이야. 그런 내가 보기엔 이 리라는 선수는 내년이면 짐싸고 질질싸고 고국으로 떠나게될걸? 이딴 선수를 350만 달러로 데려온 양키스는 후회할거라고!!! 메이저리그 직행? 지나가는 개가 웃겠군. 내가 시범경기 쫓아다니며 이 친구가 홈런을 얻어맞을 때마다 시원하게 비웃어주겠어. 잘보라고!!!!
"흥. 제대로된 반박도 못할 것들이 입만 나불거리긴. 나는 무려 이십 년을 넘게 봐왔다고. 양키스는 더 바뀌어야 돼. 왜 내 의견을 들어주지 않는거냐고!"
몇 분을 허공에 대고 19살 풋내기 좌완투수를 시범경기 첫 선발 자리에 올린 뉴욕 양키스의 프런트를 일갈했다.
"흥, 얼굴은 잘생겼구만. 얼굴로 티켓을 팔아먹으려는 속셈이 확실해! 안그러면 19살이 선발을? 그것도 내 구단의 1선발이라니. 못 하기만 해봐. 아주 소리를 바락바락 질러대며 엉덩이를 걷어차주겠어. 두고 보자고."
2.
뉴욕 양키스 시범경기 첫째날이 밝았다.
훈련장 분위기는 스프링 캠프 훈련 기간 때와 묘하게 달랐는데 그 때는 들뜸이 느껴지는 곳이었다면 이 곳은 흡사 전쟁터와 같았다.
25인 로스터를 호시탐탐 넘보는 실력있는 마이너리그 선수들이나, 40인 로스터라도 포함돼 보려는 초청선수들이 매서운 눈빛으로 훈련하고 있었다.
내 신분 역시 아직은 초청 선수.
하지만 다른 선수들처럼 큰 긴장은 하지 않았다.
스프링 캠프에 참가하면서부터 공을 던진거라곤 애런 저지와 개리 산체스의 내기 때와 팀 자체 경기 뿐이었고 훈련땐 달라진 몸에 맞춰 투구 폼에 맞춰 가볍게 던지는 것 뿐이었다.
보통 나같이 신인 선수들은 코치와 감독의 눈에 들기위해 훈련을 과하게 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미 전생의 경험으로 과한 훈련은 독이란 것을 안다.
심지어 시범 경기가 끝날 때까지 다섯 번의 선발 등판은 보장 받았으니 그 사이에 보여주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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