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2
2025년 5월 10일 12:00 (현지시각 14:00),
베트남 하장 QL 4C 도로.
부르르르릉!
100cc 오토바이를 타고 하장의 산비탈 길을 달리는 한 사내, 왼편으로 펼쳐진 멋진 풍경은 그야말로 황홀할 정도로 서민적이면서도 아름다웠지만, 이 사내의 얼굴은 완전히 똥 씹은 표정이었다.
속도위반으로 2024년 9월에 김순희와 결혼한 박기웅 팀장은 다음 해 이자성 과장이 국가정보원을 관두자 과장으로 승진과 함께 대외정보 1과를 맡게 되었다. 또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숱한 위험한 임무를 수행했고 신혼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박기웅 과장은 당분간 내근근무를 해왔으나, 대테러수사국에서 이첩된 사건 하나를 해결하고자 지금은 이곳 베트남 하장에 관광객으로 위장하여 산비탈 길을 따라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이유였다.
“제길! 짜증! 개자식 잡히면 아주 묵사발을 만들겠어!”
100일도 안 된 딸의 얼굴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아른거리자 박기웅 과장은 현재 상황이 짜증 났는지 투덜거렸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엄청나게 넓어진 영토와 수많은 주 정부가 신설되면서 국가정보원 역시 추가 인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인력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예전 같은 경우, 국가정보원에 들어오려면 적어도 10대 1의 경쟁률 뚫고 들어와야 할 정도로 인기 있었다. 하지만 현재, 중소기업조차 대기업 못지않은 연봉과 복지혜택이 컸고 군대조차 예전과 상상할 수 없는 특별대우 정책이 발표되면서 국가정보원은 낙동강 오리 알이었다. 특히나 목숨이 오가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블랙 요원들이 다수인 대외정보국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에 신입 요원들 충원이 저조하게 되면서 이번에 대테러수사국에서 이첩된 사건은 돌고 돌아 대외정보국 1과에 배당된 것이었다.
“아! 나도 이 과장님 아니지, 지금은 전무이시지, 암튼 이번 기회에 국정원 때려치우고 이 전무님 백으로 한울 소프트나 들어갈까! 요새 아주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처 한울 소프트 임직원 대우가 장난 아니라는데······.”
자꾸만 머릿속에서 100일도 안 된 딸의 얼굴이 아른거리자 박기웅 과장은 쓸데없는 생각마저 들자 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먼지 나는 비포장도로를 달린 박기웅 과장은 어느새 목적지인 동반 마을에 도착했다.
중화민국 국경선과 매우 가까운 베트남 하장 외곽의 이곳 동반 마을은 세계적으로 오토바이 투어로 유명해 특히나 서방국가의 수많은 관광객이 저마다 대여한 오토바이를 타고 투어 중에 잠시 쉬는 마을이라 마을 주민은 적었지만, 오토바이 투어 관광객으로 인해 마을은 활기찼다.
끼이익!
조금은 허름해 보이는 게스트하우스 앞에 선 박기웅 팀장은 오토바이에서 내려 조그마한 로비로 향했다. 그리고는 스마트 폰을 내밀고는 동시통역 앱을 실행했다.
“여기서 하루 묵고 싶은데요?”
“네, 24만 동입니다.”
“오! 엄청 싸네요? 여기요.”
한국 돈으로 12,000원밖에 안 되는 매우 저렴한 가격에 박기웅 과장은 놀랬다. 하지만, 싼 게 비지떡이라고 12개 침실이 있는 방에는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는 달랑 2개였다.
직원의 안내를 받고 방에 들어온 박기웅 과장은 온갖 인상을 쓰며 다시 나갈까 하는 고민했다. 운영비도 넉넉하게 받은 상태였기에 굳이 에어컨도 한 방에 침대가 12개인 방에서 잘 필요는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곳일수록 찾고자 하는 인물의 행방을 찾을 수 있기에 꾹 참고 자기로 마음을 먹었다.
현재 하장 일대에는 박기웅 과장처럼 관광객 행세를 하는 대외정보 1과 소속 1팀과 2팀이 여러 마을에서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이처럼 2팀이나 파견 나와 찾고 있는 자는 지난 2023년 붉은혁명청년단에서 활동을 하면서 11월 22일 평화광장에서 안동태 주지사를 저격한 국가전복가담죄와 살인미수죄를 저지른 외팔이 저격수라 불리는 김진이였다.
대테러수사국에서 붉은혁명청년단 비밀 은신처를 덮쳤을 때 놓친 김진을 대테러수사국에서 1년이 넘게 추적을 했지만, 국내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서 해외에서도 활동하는 대외정보국에 사건이 이첩되었고 며칠 전 베트남 하장에 김진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오게 된 것이었다.
대충 짐을 풀고 밖으로 나온 박기웅 과장은 굶주린 배를 쌀국수 하나로 대충 때우고는 관광하듯 말을 전체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을 주민에게 틈틈이 김진에 관해서 물어봤다.
하지만, 이날 박기웅 과장은 별다를 소득을 얻지 못했다. 밤에 1팀과 2팀 요원들과 연락을 해봤지만, 마찬가지로 김진의 행방을 알아내지 못했다. 이렇게 하룻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 게스트하우스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그때, 허름한 행색을 한 남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이에 박기웅 과장은 유심히 그의 외팔을 봤다.
더운 날씨임에도 긴소매를 입은 그 남자는 검은 장갑을 끼고 있었고 걸을 때마다 소매의 움직임도 부자연스러웠다. 그랬다. 긴소매 안쪽에 엉성하게 나무로 만든 가짜 팔을 달고 끝에 장갑을 붙인 것이었다. 김진이라는 것이 확신이 들었다.
이에 하얀 이를 보이며 미소를 보이는 박기웅 과장, 생가보다 빨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박기웅 과장은 천천히 커피잔을 탁자에 내리고 눈치채지 않도록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지나가는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고민에 들어갔다. 이곳에 파견 오면서 일체의 첨단 특수장비는 국가정보원 내 새롭게 추가된 조항 때문에 가져올 수 없었다. 이에 김진의 위치를 파악하면 즉시 팀원들을 불러 수적으로 제압하는 것으로 사전 약속이 되어 있었다.
사건 이첩 당시 김진의 프로필 파일에는 북한 11군단 특수작전대대 출신으로 저격이 주특기였지만, 격투술 또한 상당하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김진은 외팔이었고 자신 또한 맨손격투에 자신이 있었기에 외팔이와 싸워서 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이에 결심한 박기웅 과장!
순간적으로 달려간 박기웅 과장은 김진의 어깨를 짚고 곧바로 오른손으로 그의 오른팔을 잡고 꺾으려는 그때 김진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몸을 돌려 뿌리침과 동시에 뒤돌아차기를 시도했다. 이에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중압감을 주는 그의 오른발이 회전하며 박기웅 과장의 오른쪽 아래턱을 노려왔다.
휘익!
순간적으로 얼굴을 뒤로 빼자 간발의 차이로 김진의 오른발은 허공을 가르며 지나갔다.
‘만만치 않다.’
불현듯 박기웅 과장의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예전 오지완과 비교하자면 단 한 번의 발차기로 김진이 한 수 위일 것으로 생각이 들 정도였다.
뒤로 몇 걸음 떨어지며 거리를 벌린 김진은 특유의 살벌한 눈빛을 발산하며 박기웅 과장을 노려봤다. 살기였다. 오지완에게도 느껴보지 못한 매우 살벌한 살기 그 자체였다.
‘아 이거 너무 성급했나?’
국가정보원에서 블랙 요원으로 활동한 지 7년 차인 박기웅 과장은 후회감이 들 정도로 처음으로 상대방에게서 공포심을 느꼈다.
“뭐네? 남조선 간나 새끼네?”
음산한 어투의 북한사투리, 틀림없는 김진이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박기웅 과장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는 최대한 여유 있는 어투로 비꼬듯 말했다.
“어이! 김진! 2년 동안 숨어 사느라 고생했어. 이제 고생 그만하고 발 쭉 펴고 감옥에서 자는 건 어때?”
이에 김진은 콧방귀를 끼며 대꾸했다.
“고저 간나새끼래!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구만 기래! 그따위 헛소리하믄 목숨줄 끊어진다는 걸 아네 모르네? 내래 오늘 확실하게 알려주갔어!”
말이 끝남과 동시에 김진은 순간적인 몸놀림을 보이며 연속 발차기를 가해왔다.
팍! 팍! 파파파팍!
왼발, 오른발, 다시 왼발, 그리고는 순간적으로 역방향으로 회전하며 연속적인 뒤후리기 공격을 퍼부었다.
그랬다. 김진의 격투기술은 손보다는 발이었다. 그러니 외팔이라는 것은 그에게 있어 결점이 아니었다.
여러 방향에서 날아오는 발차기 최선을 다해 피하며 막긴 했지만, 허벅지와 복부, 그리고 왼팔에 한 대씩 얻어맞고 말았다.
밀려오는 통증에 박기웅의 인상은 자동으로 구겨졌다.
“제법 하는구만 기래! 그럼 이번것도 막아보라우!”
다시금 일갈과 함께 몸을 날린 김진의 매서운 발차기가 또다시 시작했다.
공중 2단 앞차기를 시작으로 회전하며 하단차기를 했고 이를 피하자 회전속도를 더욱 빠르게 하며 뒤후리기를 가해왔다.
퍼억!
옆구리에 얻어맞은 박기웅이 양손으로 감싸며 뒷걸음질을 했다. 하지만 김진의 발차기는 여지없이 밀려왔다.
파악! 파악!
오른쪽 안쪽 허벅지에 한 대, 그리고 왼발 이단 차기로 왼쪽 허벅지와 얼굴에 각각 한 대씩 얻어맞은 박기웅은 끝내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으나 정신력으로 한 바퀴 구르며 바로 일어났다.
허억! 허억! 허억!
박기웅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내질러졌다. 지금까지 김진의 발차기에 십여 대를 맞았지만, 박기웅은 김진을 향해 한 대도 못 맞춘 상태였다.
“힘드네? 이제 시작이야! 정신 바짝 차리라우! 알갔어?”
또다시 도발과 함께 번개 같은 발차기가 날아왔다.
파악!
크억!
팟팟팟!
정신없이 날아오는 발기술에 박기웅 과장은 반격할 틈이 보이지 않았다. 이에 계속해서 뒷걸음질하며 피할 뿐이었다. 이처럼 번개 폭풍 같은 발차기를 선보인 김진은 한층 더 여유로운 몸놀림을 보이며 제자리 뛰기를 하며 말했다.
“이젠 쫄아서 공격도 못 하는거네? 그러면 재미없지 않네? 최선을 다해보라우 간나새끼야!”
김진의 도발에 박기웅 과장은 뭔가 대책을 생각해야만 했다. 그냥 이렇게 싸우다가는 필패라는 것을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짧은 순간 생각에 잠긴 박기웅은 이내 일갈하며 선빵을 날렸다.
“개소리 닥쳐 새꺄!”
오른쪽 어깨를 낮추고 깊숙이 들어오는 박기웅의 주먹! 하지만 김진은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며 한 발짝 뒤로 빠졌다. 이에 주먹은 그대로 스치며 지나갔고 왼쪽 복부가 노출된 박기웅이 재차 왼쪽 주먹을 내지려는 그때, 김진의 오른쪽 무릎이 불쑥 튀어 올랐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복부에서 밀려오는 고통에 주저앉을 뻔한 박기웅은 간신히 중심을 잡았지만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숨 막히는 고통에 온 세상이 노랗게 보였다.
파악! 파악! 팡악!
순간 박기웅의 눈에서 불꽃이 튀겼다.
앞돌려차기로 오른쪽, 왼쪽, 오른쪽 턱을 연달아 맞은 박기웅은 순간 정신을 잃고는 바닥에 꼬꾸라지고 말았다.
쿠웅!
예전 충칭에서 중국 조폭 여러 명과도 싸워서 이기고 대외공작대 출신의 오지완 하고도 맨손격투로 승리한 박기웅은 바닥에 엎어져 꿈틀거렸다.
“쯧쯧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간나새끼래! 그리 계속 축하다 있으라우!”
쓰러진 박기웅에게 다가온 김진은 왼팔처럼 오른발을 들어 그대로 박기웅의 뒷목을 향해 내려쳤다.
파악!
순간, 내려치는 오른발을 몸을 돌려 가까스로 피한 박기웅은 그대로 몸을 구부리며 양발을 엿가위형식으로 내려친 김진의 오른발 사이로 집어넣어 감싸고는 그대로 힘을 주며 돌렸다. 이에 오른발이 걸린 김진은 중심을 잃고 앞으로 꼬꾸라졌다. 이때를 놓칠세라 박기웅은 신속한 동작으로 배 위로 올라가 상위 포지션을 잡았다.
조금 전, 고민하던 박기웅은 원거리 타격이 좋은 적일수록 거리를 좁히는 근접전에 취약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근접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자 일부러 카운터를 맞아줬다.
만약 박기웅의 맷집이 약했다면 역으로 김진에게 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연달아 3대를 얻어맞고는 정신만큼은 잃지 않았다. 대신 잃은 척만 했을 뿐이었다.
어쨌든 순간 방심으로 깔리게 된 김진은 위에서 내려치는 주먹에 연달아 얻어맞고 말았다.
사정없이 내려치는 박기웅의 주먹에 김진의 얼굴은 난장판이 되었다. 시뻘건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김진 역시 쉽게 포기할 인간이 아니었다. 양 무릎으로 박기웅의 엉덩이 쪽을 치면서 중심을 빼앗고자 했다.
이에 몇 번이나 뒤뚱거린 박기웅은 순간 김진의 오른팔을 양손을 잡고는 그대로 몸을 회전하면서 양발로 오른팔을 끼고는 가슴과 얼굴을 짓누르는 암바 자세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오른팔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리며 꺾어버렸다.
빠각!
순간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며 지금까지 얼굴이 죽사발이 되면서도 신음 한번 내지 않았던 김진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아악!”
오른팔이 완전히 기형학적으로 꺾여버린 상황, 박기웅은 이에 그치지 않고 오른팔로 김진의 목을 감싸고는 왼손으로 고정했다. 그리고는 어깨로 김진의 얼굴을 왼쪽으로 밀어제치며 죽을 힘을 당해 쪼여버렸다.
크억! 크억! 크억!
소리없는 비명이 김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른쪽 대동맥이 막히면서 김진은 서서히 의식이 사라져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땅바닥에 축 처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헉억! 허억! 허억!
기절한 김진 옆으로 벌러덩 누운 박기웅은 양팔을 벌린 상태로 건친 숨소리를 냈다.
지금까지 많은 싸움이 있었지만, 오늘처럼 목숨을 걸고 죽을 힘을 다해 싸운 건 처음이었다. 완전히 기진맥진한 박기웅의 두 눈에는 파란 하늘이 아닌 노란 하늘로 보였고 급기야 빙글빙글 돌기까지 했다.
“시발! 이번에 정말 복귀하면 때려치우고 만다.”